쾰러 CEO는 블라이슈탈 같은 중견기업이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이뤄야 할 목표로 성공적인 승계와 세계화 두 가지를 꼽았다. / C영상미디어 김종연

창립 64년째인 ‘블라이슈탈(Bleistahl)’은 자동차 엔진 밸브 관련 부품을 만드는 독일 중견기업이다. 관련 부품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20%나 된다. 창업가문 3세인 에케하르트 쾰러(Ekkehard Köhler·56) 최고경영자(CEO)를 4월 23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중국 출장을 마친 쾰러 CEO는 현대자동차와의 거래 때문에 한국을 찾았다.

샤프하면서도 부드러웠다. 초록색 눈에 짧게 자른 머리 그리고 깔끔한 슈트 차림의 쾰러 CEO의 첫 느낌은 그랬다. 제조업, 특히 자동차 부품 생산업체 CEO라는 점 때문에 다소 강한 스타일을 예상했지만, 보기 좋게 빗나갔다. 특히 쾰러 CEO가 간간이 보인 미소는 가업 승계, 경영 전략 이야기로 다소 딱딱할 수 있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고객은 물론 직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 위해선 그들과 소통을 해야 한다. 이런 게 습관이 됐는지, 언제부턴가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게 됐다.”

쾰러 CEO는 할아버지·아버지에 이어 3대(代) 사장이다. 그가 CEO를 맡은 이후 블라이슈탈의 매출은 10배가 됐다. 취임 1년 전인 1994년 매출은 1500만유로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매출은 1억5500만유로(약 2000억원)를 기록했다. 블라이슈탈은 자동차 엔진에 연결된 흡·배기 밸브 등을 보호하고 보완하는 역할을 하는 밸브 시트와 밸브 가이드를 만들고 있다.

그는 블라이슈탈 같은 중견기업이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이뤄야 할 목표로 성공적인 승계와 세계화 딱 두가지를 얘기했다.

쾰러 CEO에 따르면 승계는 기업이 지속적으로 커나가기 위해 반드시 준비해야 할 문제다. 꼭 가족이 대를 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이 잇는 것이 기업의 장기적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다면 반드시 장기적인 승계 계획이 필요하다. 블라이슈탈은 쾰러 CEO의 할아버지가 1954년 설립했다. 쾰러 CEO의 아버지는 그에게 경영을 하겠냐는 의사를 물었다. “하고 싶다”고 말하자 아버지는 쾰러 CEO가 어렸을 때부터 회사에서 일하면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도록 했다. 대학(아헨공대 금속재료공학과, 기계공학 박사)에선 기초 기술을, 회사 내에선 블라이슈탈 고유의 조직문화와 리더십을 익혔다. 그는 3명의 딸이 있는데, 그중 첫째 딸이 4대 CEO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첫째 딸 역시 아헨공대 금속재료공학과에 다니고 있는데, 방학기간을 활용해 블라이슈탈의 사업장이 있는 해외 여러 나라를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있다.

쾰러 CEO는 “세계 시장을 돌아다니며 고객(자동차회사)에게 우리 제품을 써달라고 끊임없이 설득하고 또 설득한다”고 말했다. 물론 기술이 뒷받침돼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에 따르면 해외 시장 진출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 없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현대차의 경우, 블라이슈탈이 1994년에 처음 문을 두드렸는데, 첫 거래가 시작된 것은 2016년부터였다. 현대차를 고객으로 만들기 위해 22년을 쏟은 것이다.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블라이슈탈의 경영 철칙 중 하나다.


가업승계 | 물려받을 자녀의 의지·열정이 없다면 성공 어렵다

1995년 블라이슈탈 CEO에 올랐다. CEO가 되기까지 ‘경영 수업’을 어떻게 받았는지 궁금하다.
“열네 살 때(1976년)부터 블라이슈탈에서 일했다. 학생 때였으니까 여름·겨울 방학 때만 아르바이트 형태로 일했다. 당시 CEO였던 아버지가 ‘용돈도 벌 겸 방학 때 회사에서 일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나는 ‘좋다’고 답했다. 싫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한번 해보고 싶었다. 공장이 집 바로 옆이었고 직원들과 함께 어울리며 성장했다. 그래서인지 기계에 관심이 많았고 블라이슈탈이라는 회사 자체에도 매력을 느끼게 됐다.”

1976년부터 경영수업을 받았다고 보면 되나.
“넓게 보면 그렇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회사 경영을 배운 기간은 CEO가 되기 10년 전, 즉 스물셋 무렵부터였다. 그때부터 제조·생산과 고객 관리 등 회사 주요 부서에서 일했다. 여전히 학생이었기 때문에 방학 때 시간 내 일하는 형태였다. 그리고 일반 직원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 CEO의 아들이라고 해서 특별대우를 받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1992년 서른살 때 블라이슈탈의 생산 담당 부장으로 입사했고 1995년 CEO에 취임했다. 공식적으로는 입사 3년 만에 CEO가 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20년 동안 회사 일을 두루 거친 뒤에 CEO가 된 것이다.”

독일 명문인 아헨공대 금속재료공학과를 나와 같은 대학에서 기계공학 박사까지 마쳤다. 회사 경영을 위한 것이었나.
“그렇다. 어렸을 때부터 회사 경영을 원했다. 그래서 열처리를 포함해 자동차에 관련된 다양한 금속 재료 기술을 학교에서 배웠다. 이는 고객이 원하는 제품이나 고객이 처한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아버지도 아헨공대 금속재료공학과를 졸업했다. 나는 딸만 셋인데, 회사 경영에 관심을 보이는 큰딸 역시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다. 우리 가문은 아헨공대를 다니면서 사업의 기본 지식을 쌓았다. 가문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쾰러 CEO는 “기술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회사를 이끌려면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회사 구성원과 똑같은 위치에서 함께 일하고 그들을 이해해야 한다”면서 “회사 내 진짜 문화, 즉 구성원이 어떻게 일하는지,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사건들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쾰러 CEO가 CEO 되기 훨씬 전부터 회사 구성원과 함께 지내면서 보낸 시간은 리더가 되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었다. 구성원들이 말하는 방법은 물론 그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도 알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기술뿐 아니라 직원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어떻게 직원의 동기를 불러일으키는지, 어떻게 생산성을 끌어올릴지를 배워 나갔다. 그는 “회사는 CEO 혼자가 아니라 구성원·팀이 함께 운영해 나가는 것”이라며 “구성원과 팀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회사, 조직에서도 일했다.
“아헨 공대 박사를 마치고 3200개 금속회사를 회원으로 둔 프랑크푸르트 금속협회(VDMA Frankfurt)에서 1년을 일했다. 다양한 회사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네트워크와 경험을 넓힐 수 있었다. 그리고 블라이슈탈에 입사하기 전에 학생 신분으로 스웨덴의 금속 재료 업체에서 1년간 일했다.”

쾰러 CEO는 승계 이후의 회사 성장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가업을 물려받으려는 자녀의 ‘의지’를 꼽았다. 독일에서도 가업 승계에 성공한 곳들을 살펴보면, 아버지가 강압적으로 회사 경영을 맡으라고 해서 맡은 것이 아니라 본인이 하고 싶어서 적극 나선 경우가 대부분이다. 블라이슈탈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런 의지가 사업에 대한 열정으로 바뀌고, 그런 열정이 회사의 성장을 이끈다고 설명했다. “블라이슈탈에는 가족 경영 3대 철칙이 있다. 그중 하나가 ‘자신이 하는 일에 열정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일을 좋아해야 한다. 가업을 물려줄 때 자녀의 의지를 보는 가장 큰 이유다. 자녀에게 그럴 의지가 없다면 가업을 물려주지도 않지만, 물려받는다 해도 회사가 망하기 십상이다. 성공하려면 자신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 일을 사랑하고, 자신이 하는 것을 믿어야 한다.”

또 다른 가족 경영 철칙은.
“‘직원을 돌봐야 한다’는 것이다.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경영 철칙이다. 돌본다는 것은 그들을 이해하고,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돕고, 그들의 성장을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야 회사도 성장할 수 있다. 회사의 목표와 직원의 목표 그리고 일하기 좋은 환경이 합쳐지면 직원들의 재능과 창의력이 꽃피게 된다. 개인의 성장이 곧 회사의 성장인 것이다.”

쾰러 CEO는 직원을 돌볼 때 가장 중요한 점은 그들과 평등한 위치에 서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야 그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수 있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안전(safety)’이란 개념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직원들이 일하면서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블라이슈탈 직원이라면 누구나 ‘어렵다’ ‘도와 달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의 약점을 보여줄 수 있다는 의미다. 다른 직원들이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우면서, 서로 실력을 쌓아나간다. 오늘은 내가 도움을 줬지만 내일은 내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조직 문화다. 도움은 팀 단위로 이뤄진다. 블라이슈탈에선 이런 조직 내 구성원끼리의 지원과 헌신을 ‘선물’이라고 표현한다. 개인이 성공하면 회사도 성공할 수 있다.”

창업부터 현재까지 지켜야 할 회사 철칙도 있지만,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혁신해야 할 부분도 있다.
“기술, 연구·개발 분야가 그렇다. 할아버지가 1954년 블라이슈탈을 설립했을 당시 개발한 기술도 현재 사용되고는 있다. 물론 오늘날 요구되는 사항에 맞춰 수정되고 발전한 형태다. 이것이 우리 제품의 DNA라고 생각한다. 핵심 기술은 유지되지만 세대가 지나면서 개선되고 발전한다. 특히 우리는 오래 일한 직원이 젊은 직원에게 기술을 전수할 수 있도록 기술교육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기술은 사람 머리에서 나온다. 제품 개발 과정에서 연장자와 젊은이가 함께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기술이 전수되고, 시대 변화에 따라 더 나은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

기업을 물려받을 때 상속세는 어떻게 냈나. 한국은 지분을 자녀에게 넘겨줄 때 상속세율이 50%에 달한다.
“독일의 공식 상속세율은 30%다. 그러나 기업을 운영한다면 상속세의 85%를 공제받을 수 있다. 전부(100%) 공제받는 것도 가능하다. 85%를 공제받기 위해선 자녀가 가업을 승계한 후 최소 5년간 경영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고용 유지다. 승계 후 5년간 급여 총액이 가업 승계가 이뤄진 과세 연도 급여 총액의 400% 이상이어야 한다. 100% 공제를 받으려면 가업 승계자는 최소 7년간 사업을 이어가야 한다. 이 기간에 승계받은 해의 직원 급여 총액을 기준으로 700% 이상 급여를 유지해야 한다. 매년 지급하는 급여 총액을 승계받은 해 수준 이상으로 최소 7년간 유지하면 되는 것이다.”

쾰러 CEO는 “내가 블라이슈탈을 경영하는 동안에 이런 공제 조건을 충족했기 때문에, 상속세는 거의 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쾰러 CEO는 상속세 부담 없이 기업 규모 확대에 전념할 수 있었다. 블라이슈탈은 그가 CEO가 되기 직전 해인 1994년 직원수가 150명이었지만, 2018년 현재 800명 수준으로 늘었다.


세계화 | 고객의 가려운 곳 긁어주는 장기적 관계 구축해야 성공

쾰러 CEO가 맡기 전 블라이슈탈의 고객은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 자동차 업체였다. 그는 1995년 취임 후 세계화에 집중했다. 회사가 더 성장하려면 시장을 넓혀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할아버지가 창업했을 때는 고객이 독일 기업뿐이었고, 아버지 때는 유럽 중심이었다”면서 “내가 회사를 이끄는 현재는 세계의 기업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블라이슈탈은 현재 미국·브라질·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에 공장, 영국·프랑스·한국·일본 등에 기술영업 사무소를 두고 있다. 그는 “다임러, BMW, 폴크스바겐, GM, 포드, PSA, 르노닛산, 피아트크라이슬러, 스카니아, 현대차 등 세계 거의 모든 자동차 업체가 우리 파트너”라고 말했다. 현재 블라이슈탈의 해외 매출 비율은 전체의 35%. 그는 이 비중을 계속 높여 나갈 계획이다.


해외 진출 전략은 무엇인가.
“세계 주요 자동차 업체와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우리가 생각하는 세계화는 인건비가 낮은 해외에 공장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세계 시장의 고객이 우리의 제품과 서비스를 더 편리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하려면 소비자와 고객(거래업체)이 있는 곳으로 더 다가가 의견을 듣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1972년 브라질 공장, 2002년 남아공 공장을 지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최근에는 중국 공장도 지었다. 중국 자동차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블라이슈탈의 고객인 유럽·미국 자동차 업체들이 중국에 공장을 건설했기 때문이다.”

블라이슈탈의 첫 번째 해외 생산은 1972년 브라질에서 시작했다. 브라질로 시장을 확대한 독일 폴크스바겐의 요청에 따라 블라이슈탈도 함께 진출한 것이다.

무턱대고 따라가는 것은 아닐 텐데.
“당연하다. 고객이 원한다고 무턱대고 해외로 나갈 수는 없다. 진출하려는 국가에 우선 영업사무소를 만든다. 영업부가 현지 조사를 통해 사업 가능성을 판단한다. 우리가 들어갈 만하고 충분히 시장 규모가 있다고 판단하면 현지 공장을 짓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50% 법칙’이다. 처음에는 50%만 현지 공장에서 생산한다. 아무리 현지 조사를 제대로 했다고 해도 사업을 실제로 진행하면서 상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에 많은 투자를 해서 생산 설비를 건설했는데 그 시장에서 실패하면 큰 손실을 보게 된다. 50% 법칙을 통해 이런 리스크도 줄일 수 있다. 이후 현지 거래업체의 주문이 늘어나고 사업이 계획대로 돌아가면, 현지에서 100% 생산할 수 있도록 공장을 증설한다. 중국 시장도 이런 방식을 따르고 있다.”

고객 확보 때 중요하게 여기는 게 있다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이다. 우리 가문의 세 번째 경영 철칙이다. 우리는 현대차에 납품하기 위해 1994년 한국을 찾았다. 24년 전이었다. 하지만 계약을 따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현대차와 계속해서 관계를 유지했다. 그리고 2016년 현대차에 블라이슈탈의 제품을 공급하는 계약을 따냈다. 22년이 걸렸다. 우리는 새로운 고객을 확보할 때 장기적으로 바라보고 꾸준히 그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될 때까지 계속 도전하는 것이다.”


블라이슈탈 직원들. 쾰러 CEO는 “직원 개인의 성장이 곧 회사의 성장”이라고 강조했다. / 블라이슈탈

도전하고 관계만 유지한다고 되는 것은 아닌데.
“그렇다. 관계를 유지하면서 고객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게 매우 중요하다. 그동안 현대차와 꾸준히 네트워크를 유지하면서 현대차가 원하는 품질 관련 기술 지원(컨설팅)을 해왔다. 부품 관련 기술 자문 요청이 들어오면 성실하게 답하면서 도움을 줬다. 그러면서 신뢰를 쌓아 나갔다. 블라이슈탈은 영국·프랑스·한국·일본 등에 기술영업 사무소를 두고 있다. 시장 트렌드를 읽는 것뿐 아니라, 현지 업체가 원하는 기술 지원을 하는 목적도 크다.”

쾰러 CEO는 앞으로 중국 사업을 강화할 계획이다. 동시에 4세 경영도 준비 중이다. 아헨공대에서 공부하고 있는 큰딸이 가업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세계로 시장을 넓혔다면, 큰딸 시대에는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이자 생산국인 중국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쾰러 CEO는 “큰딸이 대학을 마친 뒤에 중국 자동차 부품 회사 등에서 일하면서 더 많은 경험과 리더십을 쌓고 회사 성장을 이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물론 큰딸이 그만한 능력을 검증받은 뒤에나 가능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 이 기사 작성에는 박지영 인턴기자(연세대 국제학과 4년)가 참여했습니다.

박용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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