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근 연세대 정치외교학, 미국 텍사스대 정치학 박사,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이화여대 겸임교수,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이춘근 연세대 정치외교학, 미국 텍사스대 정치학 박사,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이화여대 겸임교수,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자유주의 경제이론에 의하면 무역을 많이 하면 할수록 무역하는 나라의 국민은 무역을 적게 하거나 혹은 하지 않는 나라의 국민에 비해 훨씬 더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이 잘 만드는 물건은 수출하고 다른 나라가 더 잘 만드는 물건은 수입하는 것이 좋다는 사실은 경제학 이론에서 증명된 진리이다.

국제정치학에서도 국가 간 무역이 증대되면 국가들 사이에 평화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전쟁의 가능성은 줄어든다는 걸 증명하는 이론이 있다. 자유주의 국제정치학 이론(Liberal Theory of International Relations)으로 뭉뚱그려 불리는 이 이론은 산업혁명 시대 영국 산업의 중심지였던 맨체스터에서 유래했다.

맨체스터 학파는 ‘이제 싸우지 말고 장사를 합시다!(Let’s Trade Not War!)’라고 외쳤다. 어떤 국제정치 학자들은 이제 저 사람들은 돈을 버는 데 바빠 싸우는 일은 잊어버렸다고 말하며 국제무역은 평화의 증진에 큰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칭송했다.

그런데 지금 미국과 중국이 서로 상대방에 대해 분노의 삿대질을 해가며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다. 관세를 낮추고, 상대방이 서로 더 잘 만드는 물건을 더 많이 사주는 등 무역 장벽을 낮춰야 하는데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정반대의 행동을 벌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현재 지도자들은 자유무역의 이익을 모른단 말인가?

여기서 우리가 유념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국가들 간의 상업은 개인들 사이의 상업적 관계와는 본질이 다르다는 것이다. 국가 간 경제 관계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며 권력적이다. 국가들이 무역을 하는 이유는 자국 국민을 잘살게 하려는 측면과 더불어 자국의 힘을 증진시킨다는 목표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국가는 무역을 통해 돈을 더 벌려고 한다. 이런 국가들은 자유무역의 원칙을 공평하게 적용하려 하지 않는다. 내 것은 더 많이 수출하고 남의 것은 더 적게 수입하는 것이 경제학적으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정치학적으로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수출을 많이 하고 수입을 적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더 좋은 일 같아 보인다. 우리나라는 아예 ‘수출입국(輸出立國)’이라는 국가적인 구호까지 있었던 나라다. 수출을 통해서 나라를 세운다는 말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국제무역은 균형 상태를 유지하기보다는 불균형적일 가능성이 높기 마련이다. 수입을 많이 해서 달러가 빠져 나가는 나라들이 있는가 하면 수출을 통해 달러를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나라도 있다.

제1차세계대전 직전 유럽 국가들 사이의 무역액이 유럽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역사상 그 어떤 시대보다도 더 높았다. 총액 기준으로만 보았을 때 유럽 국가들은 국제무역의 비중이 가장 높아졌던 시절 역사상 가장 처절한 전쟁을 시작했던 것이다. 자유주의 경제학이론이 주장하는 ‘무역은 평화의 관건’이라는 가설을 여지없이 붕괴시켜 놓은 사건이 바로 제1차세계대전의 발발이었다.

문제는 불균형이었다. 국가들은 저마다 돈을 벌기에 바빠 상대방을 굶어죽이기 위한 무역정책을 감행했다. 유럽 국가들의 이런 정책은 국제정치학자들에 의해 ‘이웃 나라 거지 만들기 정책(beggar thy neighbour policy)’으로 불렸다.

지금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 전쟁 역시 국제정치학적 관점에서 봐야 이해할 수 있다. 사실 미국과 중국은 1970년대 중반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 목표 아래 수교하고 화해했다. 소련을 제압하고 패권을 유지하려던 미국은 공산 진영의 분열을 이용했다. 중국을 소련으로부터 완전히 떼어 내어 미국의 편에 서게 함으로써 미국은 미·소 패권 경쟁에서 승기(勝機)를 잡았다.

소련과 거의 전쟁 직전까지 다가갔던 중국은 미국과 전략적인 제휴를 함으로써 국가 안보와 경제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었다. 미국과 중국은 상호의존적 경제 구조 아래에서 중국은 달러를 엄청나게 벌게 됐고 미국의 소비자들은 싼 가격의 중국 물건을 마음껏 향유할 수 있게 됐다.


미국, 패권국 지위 양보할 리 없어

미국은 지난 수십년 동안 중국에 대규모 적자를 봤고 중국은 같은 기간 엄청난 액수의 달러를 쌓아 놓았다. 2010년 중국은 국내총생산(GDP) 기준, 일본을 앞질러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됐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중국이 너무 커진 것이다. 미국의 패권에 대한 도전자로 인식될 정도로 중국의 규모가 커진 것이다.

중국 IT 기업인 ZTE는 미국의 제재로 파산위기에 몰렸다. 사진 블룸버그
중국 IT 기업인 ZTE는 미국의 제재로 파산위기에 몰렸다. 사진 블룸버그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는데 중국 사람들은 이제 거침없이 중국몽(中國夢)을 이야기한다. 2030년, 혹은 2040년 구체적인 기간까지 제시하며 중국은 미국을 앞질러 세계 제1의 국가가 될 것이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해대고 있다.

과거 세계가 하나가 되기 이전 중국은 1000년 이상 아시아의 패자(霸者)였다. 중국은 1등에 익숙한 나라이지 결코 낮은 등수에 익숙한 나라가 아니다. 2010년 경제력에서 세계 2등으로 등극한 중국은 미국을 앞서는 것을 대전략의 목표로 삼고 있다. 강대국의 행태상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중국은 더욱 더 많은 달러를 매년 미국으로부터 엄청나게 벌어들였다. 2017년 중국은 1년 동안 미국으로부터 약 3700억달러를 벌어들였다. 중국과의 교역에서 미국은 그만큼 적자를 봤다.

중국의 부상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무엇일까? 유명한 전략이론가 에드워드 루트왁(Edward N. Luttwak) 박사는 미국의 대전략은 당연히 중국의 부상을 꺾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패권국인 미국은 패권적 지위가 미국에 얼마나 유리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결코 중국의 도전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많은 한국 사람이 언젠가는 중국이 평화적으로 미국을 앞서서 패권국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국제정치의 역사를 모르기에 하는 말이다.

역사의 진실은 ‘어떤 패권국도 자신의 지위를 도전자에게 평화적으로 양보한 일이 없었음’을 알려준다. 하물며 미국과 같은 전략 문화(strategic culture)를 갖춘 국가가 자신의 지위를 평화적으로 양보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결국 중국이 패권국이 되고 싶다면 전쟁을 해서 미국을 이겨야만 가능한 일이다.

미국은 많은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2030년 혹은 2040년까지 멍청하게 있다가 막강해진 중국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빼앗길 것인가? 그럴 리 없다. 미국은 자신의 지위에 도전한 소련, 일본, 유럽 등을 여지없이 격파해버린 전력을 가진 나라다. 이번 중국의 도전은 조금 뻑적지근한 면이 없는 바 아니다. 그래서 미국은 일찌감치 중국의 경제적 예봉을 꺾기로 작정했다. 아직도 서구 수준으로 자본주의 경제가 발전하지 못한 중국을 손보기 시작한 것이다.

경제학자들이 ‘미‧중 무역전쟁 어디까지 갈 것인가?’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하는 것을 보았다. 국제정치학자인 필자는 ‘미국이 보기에 중국이 미국 패권에 도전할 수 없을 때까지’라고 답하고 싶다. 미국은 지금 중국에 대해서도 마치 일본의 경우처럼 ‘잃어버린 20년’을 강요하고 있는 중이다.

이춘근 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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