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철 서울대 대학원 대기과학 박사, 영국 레딩대 대학원 기상학 박사과정, 남극세종과학기지 연구원, 제12대 기상청장

남재철
서울대 대학원 대기과학 박사, 영국 레딩대 대학원 기상학 박사과정, 남극세종과학기지 연구원, 제12대 기상청장

폭염 속에 태풍 특보 발표가 있던 8월 20일 오후, 그야말로 폭풍전야의 전운이 감도는 기상청을 찾았다. 남재철 전 기상청장은 구름 위성 사진을 띄운 채 화상회의가 열리는 현업실을 이리저리 오가며 “날씨가 안 좋으면 내가 죄인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유럽에 ‘날씨를 맞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싶은 사람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대중의 높은 기대와 달리 기상 선진국도 예보 정확도는 50%가 조금 넘을 뿐이다. 8월 24일 제19호 태풍 ‘솔릭’이 한반도를 관통했다. 진행 경로가 빗나가 수도권 지역에서 태풍의 피해는 예상만큼 심하지 않았던 만큼, 과잉 대응이었다는 논란을 남겼다. 추후 전화 통화에서 남 전 청장은 “모든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지만, 안전이 우선이라는 점에서 기상청의 대응은 적절했다”고 말했다. 8월 27일 단행된 개각으로 남 전  청장은 기상청장직을 내려놓았고, 김종석 한국기상산업연구원장이 제13대 기상청장으로 취임했다.

그 어느 때보다 날씨와 기후에 전 국민의 촉각이 곤두서 있다. 계절의 변화에 대한 자연스러운 기대와 찬사가 아니라 날씨의 폭력성에 대한 불평과 두려움이 대다수 국민의 감정이다.


날씨가 ‘공공의 적’이 된 분위기다.
“날씨는 비, 바람, 온도 등 눈에 보이는 기상 현상이다. 기후는 30년 동안 보인 평균적인 상태를 일컫는다. 비유를 들자면 아침저녁으로 오락가락하는 인간의 기분은 날씨고, 타고난 성격은 기후다. 그런데 우리 지구의 성격이 폭군처럼 바뀌고 있다. 인간으로선 살벌하게 느껴질 수밖에.”

날씨의 이런 폭력성이 더욱 심각해질 텐데.
“이대로라면 북반구 대부분의 나라에서 봄·가을이 여름과 겨울 사이 스쳐 가는 쉼표처럼 될 거다. 올해도 일찍 폭염이 왔고 긴 여름을 맞고 있다. 여름이 보통 6월·7월·8월 3개월간이었지만, 이젠 5월에 폭염주의보가 발령되고 늦더위는 10월까지 가기도 한다.”

이 상황을 어떻게 보나.
“대단히 심각하다. 46억 년 전, 지구가 생성된 이래 기온은 올라가기도 내려가기도 했다. 그런데도 백만 년 이상 이산화탄소(CO₂) 농도는 180~280㏙을 유지했다. 최근 200년 사이 400㏙까지 오르면서 CO₂ 농도와 온도의 상승 곡선이 같은 추이를 보이고 있다. 더운 곳은 더 덥고 추운 곳은 더 추워지면서 날씨의 양극화는 심해지고, 기온은 계단식으로 계속 오르고 있다.”

서울대에서 농학을 전공하고 대기과학 쪽으로 전과해 학위를 받았다. 특별히 전공을 바꾸게 된 계기가 있나.
“어린 시절 너무 가난해서 다섯 살 때부터 보릿고개를 제대로 겪었다. 배불리 쌀밥 먹는 게 소원이라 농대엘 갔다. 1970년대에 개량종인 통일벼가 나오면서 배곯을 일은 없어졌지만, 1978년에 냉해가 발생했다. 수확량이 30~40% 줄어든 거다. 그때 재배법론을 강의하시던 이은웅 학장님이 ‘우리 중에 누가 농업 기상을 연구하면 좋겠다’ 그러셨다. 농업 기상을 파고들다가 그 뒤 대기오염을 연구하는 환경 기상으로 전공을 바꿨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농사에 맞춰 절기를 정하고 계절을 맞이했지만, 이제 그런 생활의 지혜가 변화에 부딪힌 듯하다.
“덥고 가물어서 모기가 번식도 하지 못했다. 입추인 8월 7일에도 기온이 35도를 찍었다. 기상 이변으로 이제 절기의 의미는 점차 사라져 상징으로만 남게 됐다.”

한국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들이 기후 변화에 더욱 피로도가 큰 것 같다.
“그런 면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사계절의 변화와 함께 적당한 재난을 거치면서 국가 경제도, 기상학도 발전해온 셈이다. 문명과 문화의 발전을 사계절이 뚜렷한 중위도 나라에서 주도했다. 세계 기상 예보에서 최전선에 선 나라들은 다 선진국이다. 영국, 미국, 일본, 한국, 독일, 프랑스는 날씨 변화가 심하고 태풍, 집중호우, 폭설, 혹한 등 기상 재해가 잦다.”

현재 한국의 기상 예보 시스템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사실 한국의 예보 시스템은 전 세계에서 5, 6위 안에 들 정도로 앞서 있다. 기상관측망이 600개 이상 깔려 있고, 기상 전용 위성도 2010년에 이미 쏘아 올렸다. 수퍼컴퓨터의 위력도 강하다. 수치 모델 산출 성능이 탁월하다. 이것도 전 세계에 13대 정도만 있다. 한 번 쓰면 6년 정도 돌릴 수 있는데, 2020년에 5호기를 들여올 예정이다. 630억원 정도의 고가 장비다. 우리나라 날씨는 특히 서해가 블랙홀이다. 중국의 편서풍이 어떤 상태로 변할지 알 수 없어 해양 관측에 좀 더 집중하고 있다.”

최근엔 지구의 물이 끓고 있다는 경고도 곳곳에서 날아든다.
“바다 평균 온도를 보면 우리나라 서해안이 27~28도 정도다. 높은 바다 온도가 열대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해양 양식 어종의 폐사도 심각하다. 말씀드렸듯이 서해가 지금 우리나라 대기의 블랙홀이다. 계속 주시하고 있다. 498t 관측선을 서해 곳곳에 주기적으로 띄워 관찰할 계획이다.”

특별히 올해는 서울 지역의 폭염이 유난했다.
“서울이 더 덥게 느껴지는 건 도시 열섬 효과 때문이다. 가열된 콘크리트로 인해 그 열기가 더 세게 느껴졌던 거다. 비단 한반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노르웨이에서도 산불이 많았다. 전 세계가 폭염 재난으로 고통을 겪었다.”

그는 “연구원 생활까지 31년간 기상청에 근무했지만 이런 지독한 더위는 처음이었다”며 “1994년에도 폭염과 열대야를 겪었지만 이미 그 기록(최고기온, 열대야 일수 등)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올겨울 추위는 어느 정도 수준일까.
“예년과 비슷한 정도의 추위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양극화다. 지난 겨울만 봐도 평창 올림픽 즈음에 극한 한파가 있었지만, 또 온화한 날들이 이어져 구간 격차가 컸다. 앞으로 5년간만 보면 폭염과 혹한 일수는 길어지지만, 평균값을 보면 그 변화는 근소하리라고 본다.”

기후 변화에 따른 미래의 산업과 생활은 어떻게 될까.
“미래 경제를 기후 경제라고도 한다. 앞으로 더 더워지고 더 추워질 테니, 극한 상황에 대처하는 신산업이 뜰 거다. 기상청도 100년간의 기상 정보 데이터를 활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기후 변화에 적응 잘하는 기업이나 도시가 살아남고 그렇지 않으면 망한다. 기상청이 기후 변화 적응을 위해 CO₂ 감축을 얘기하면 당장은 귀를 닫고 싶겠지만, 미래 경제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다. 경제가 위축된다고 동참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국제 무역 시장에서 따돌림을 당할 거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면 날씨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겠나.
“이제 우리도 폭염과 혹한이 기후 변화 때문이란 걸 몸으로 자각하고, 냉난방이나 자동차도 좀 덜 쓰고 불필요한 전등은 끄는 쪽으로 습관의 방향을 틀어야 한다. 지금 상태에서는 인간이 지구의 암세포나 마찬가지다. 환경이 열악해지면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난 이래 현재 인류가 가장 이기적으로 자연을 많이 파괴했다. 후손에게 무엇을 물려줄지 이제 진짜 고민해야 한다.”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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