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는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기술을 통해 제작 전 미리 조립해 보고 테스트 할 수 있는 ‘가상현실 조립공장’을 시범 운영 중이다. 사진 BMW
BMW는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기술을 통해 제작 전 미리 조립해 보고 테스트 할 수 있는 ‘가상현실 조립공장’을 시범 운영 중이다. 사진 BMW

12월 초 독일 폴크스바겐은 30여 명에 달하는 주요 협력업체 대표들을 초청해 전기자동차 제품군인 ‘ID. 패밀리’와 공장 디지털화 그리고 자율주행자동차 분야에 2023년까지 110억유로(약 14조원)를 투자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폴크스바겐은 1년 전에 공격적으로 시작한 전기차 프로젝트인 ID. 제품군 1000만 대 생산 계획을 1500만 대로 수정하고 투자액도 대폭 늘렸다. ID. 제품군의 새로운 e-모빌리티 시스템에 대한 소프트웨어 개발과 커넥티드 서비스 분야에 책정된 예산만 90억유로(약 11조6000억원)에 달한다.

폴크스바겐 전기차 플랫폼은 MEB(Mo dularer Elektro Baukasten·모듈형 전기구동 매트릭스 구조)라 불린다. 기존 내연기관의 모듈형 플랫폼인 MQB를 전동화에 맞춰 새로 개발했다. MEB 플랫폼은 대용량 배터리를 차량 바닥면에 설치해 훨씬 넓은 내부공간을 확보했다. 또 주행거리를 늘리면서 주행안정성도 향상시켰다.

ID. 모델 생산을 위해 독일 동부 도시 츠비카우(Zwiekau)에 있는 기존 폴크스바겐 공장은 이미 MEB 생산 기반으로 개조하는 작업에 들어갔고 2019년 말에 완공될 예정이다. 츠비카우 공장에는 새로운 에너지 공급 시스템을 갖춘 총 1300여 대의 레오니(Leoni) 로봇이 설치된다. 레오니 로봇은 용접, 레이저 가공, 접착 및 접합 기술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인공지능(AI)이 탑재된 다목적의 신개념 로봇이다.

레오니는 무려 450년 전인 1569년 독일 뉘른베르크 근처에서 시작한 전선·케이블 전문 회사다. 2010년대부터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게 자동차, 항공 그리고 휴먼 머신 시스템과 스마트 공장 솔루션 관련 사업으로 전환했다. 폴크스바겐의 전략에 따라 폴크스바겐 산하 협력업체까지 함께 급속도로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2020년부터 본격 시판될 폴크스바겐 ID. 모델은 100% 전기차이면서 항상 디지털 네트워크에 연결된 커넥티드 자동차다. 100% 자율주행도 가능하다.

폴크스바겐 츠비카우 공장 생산라인이 완공되는 2019년 말부터 ID. 모델의 대량 맞춤 생산이 본격화된다. 현재 중국에 있는 폴크스바겐 공장도 ID. 모델 생산을 위한 공장 준공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토마스 울브리히 폴크스바겐 전력화 담당이사는 인터뷰에서 “2020년에 중국과 독일에서 동시에 생산될 ID. 모델은 자동차 디지털 네트워크의 표준이 될 것”이라며 “비틀(폴크스바겐을 상징하는 딱정벌레 차)과 골프(1980년대 이후 폴크스바겐의 주력 상품으로 큰 인기를 끈 해치백 자동차)의 신화에 이어 세 번째 신화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폴크스바겐은 ID. 모델에 적용되는 각종 지능형 운전 보조기술을 말하는 IQ.드라이브(Drive)를 탑재한 특별 양산 모델을 내년 초 유럽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IQ.드라이브는 폴크스바겐의 자율주행 비전을 브랜드화한 것으로, 자율주행 레벨 1단계부터 레벨 5단계까지의 모든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에 적용된다. 현존하는 각종 운전 자동화 보조기술과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완벽한 자율주행 모델을 실현하려는 폴크스바겐의 야심 찬 계획이다.


벤츠의 전기 구동 자동차 모델인 EQ. 사진 벤츠
벤츠의 전기 구동 자동차 모델인 EQ. 사진 벤츠

폴크스바겐은 대중화, 아우디는 프리미엄

2020년 시판될 예정인 폴크스바겐 첫 번째 IQ.드라이브의 ID. 모델은 소형차로, 판매 가격은 테슬라의 모델3보다 최소한 약 7000유로(약 1000만원) 정도 저렴할 것으로 예상한다.

전기차 시장을 먼저 개척한 곳은 미국 테슬라지만, 전기차 대량생산이 본격화됐을 때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시장을 장악할 업체가 어디가 될지 예단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전기차 시장의 본격적인 경쟁은 이제 출발선에 선 것에 불과하다.

폴크스바겐이 대량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아우디나 포르쉐는 전기차의 프리미엄을 지향한다. 아우디는 E-트론(Tron) 모델 판매를 시작으로 새해부터 전기차 생산·판매를 본격화한다. 자동차와 공장의 디지털화 작업도 동시에 추진한다. 2021년에 출시할 아우디의 E-트론 GT 모델과 포르쉐 타이칸(Taycan)은 폴크스바겐의 MEB 기술을 기반으로 한 같은 뿌리이지만, 전혀 다른 열매다.

MEB의 가장 큰 장점은 차체의 바닥 부분을 평평하게 만들어 공기저항을 최소화함으로써 에너지 효율을 더 높였다는 점이다. 따라서 폴크스바겐그룹의 MEB는 소형에서부터 2.5t의 대형 차량까지 다양한 변환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아우디는 2025년까지 최소 20개의 자사 모델을 모두 전동화한다는 계획 아래 약 400억유로(약 51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에 비해 BMW는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을 생산에 접목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 증강현실 기술을 통해 제작 전에 미리 조립해보고 테스트할 수 있는 ‘가상현실 조립공장’을 시범 운영 중이다. 3D 스캐닝과 3D 프린팅 기술을 바탕으로 현실 이미지와 가상 이미지를 결합해 3차원 공간 안에서 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궁극의 스마트 공장으로 평가된다.

2000년대 초반 등장했던 가상현실 게임 플랫폼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를 연상케 하지만, 이 증강현실 생산 시스템이 현실에 다양한 효과를 가져 온다는 점에서 미래 자동차 생산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BMW는 이미 이 기술을 3시리즈 생산에 적용하고 있다. 3시리즈 모델의 실내 콕핏(차량 실내의 앞부분)을 자동차 완성 전에 가상현실로 사전 조립해보는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미래의 구동 시스템으로 CASE(커넥티드, 자율주행, 공유, 전력구동화·Connected, Autonomous, Shared, Electromobility)를 기반으로 한 ‘EQ 콘셉트’를 지난 파리모터쇼에서 공개했다. EQ는 벤츠의 전기 구동 자동차 생태계를 아우르는 브랜드다. 벤츠를 상징하는 단어인 감성과 지성(Emotion und Intelligenz)을 말한다. 벤츠는 EQ 브랜드 확장을 위해 100억유로 이상 그리고 배터리 생산을 위해 전 세계적으로 10억유로 이상을 투자한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연료전지 그리고 순수 전기차까지 50종 이상의 서로 다른 전기 기반 자동차 모델을 2022년까지 선보일 계획이다.

자율주행의 선두주자라고 평가받는 벤츠는 독일 부품 기업 보쉬와 함께 2019년에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대도시 자율주행 마지막 단계인 레벨 5단계 필드 테스트를 마칠 예정이다. 계획대로 테스트가 끝나면 2019년 하반기에는 대도시 일부 노선에 고객을 상대로 하는 무인 운전자 자율주행 셔틀을 곧바로 운영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미국 엔비디아와 AI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도시의 복잡한 도로 환경에서 완전 자율주행을 하기 위한 결정적인 열쇠는 레이더와 라이더, 광학기술 등을 이용하는 3차원 인식 센서가 쥐고 있다. 센서의 도움을 받아 도로 환경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정밀한 센서 개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 이러한 센서로부터 얻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아주 짧은 시간에 처리하기 위해서는 관련된 전문 소프트웨어 기업과 긴밀히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 벤츠는 기존 협력업체인 보쉬는 물론이고 미국의 엔비디아, 독일의 지멘스와 4차 산업혁명 전문기업인 베라 퍼포먼스, 핵로드 등과 자율주행에 필요한 AI 알고리즘을 공동 개발하고 있다.

궁극의 자율주행은 에어택시와 연결된다. 에어택시 개념은 세계적인 항공 업체인 에어버스가 먼저 제기했다. 시티에어버스(City Airbus) 개념에서 출발해 2017년 초 자동차 디자인 회사인 이탈디자인, 지멘스 등과 협동으로 ‘팝.업(Pop.Up)’이라는 콘셉트를 소개했다.

최근엔 아우디가 본격적으로 참여하면서 ‘팝.업 넥스트(Pop.Up Next)’라는 콘셉트로 바뀌었다. 항공 회사 에어버스와 자동차 회사 아우디가 협력해 전기차와 드론 항공 기술을 융합해 새로운 모빌리티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다.

자동차에 드론을 장착해 언제든지 하늘을 난다는 기본 개념에서 크게 변한 것은 없지만, 실현된다면 지상과 하늘을 동시에 연결할 수 있는 3차원의 혁명적인 교통수단이 될 것이 틀림없다. 복잡한 환경의 지상에서 완전한 자율주행이 가능하다면, 하늘에서의 자동항공과 연결하는 것은 그리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에어택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벤츠가 추진하고 있는 볼로콥터(Volocopter)와 비슷한 개념이다. 하지만 팝업은 자동차 지붕에 드론을 탈부착해 지상과 공중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아우디가 항공기 제작사 에어버스와 공동 개발 중인 전기차와 드론이 합쳐진 ‘팝.업 넥스트’. 사진 블룸버그
아우디가 항공기 제작사 에어버스와 공동 개발 중인 전기차와 드론이 합쳐진 ‘팝.업 넥스트’. 사진 블룸버그

인공석유 개발 가속화하고 있는 독일

독일 정부와 완성차 업체의 최종 목표는 모두 전동화나 자율주행에 있지만 중단기적으로는 기존 내연기관의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적응과 기존 시스템에 대한 급격한 변화로 인한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항공사 루프트한자, 아우디 등은 이퓨얼(e-Fuel) 혹은 블루 크루드(Blue Crude) 등으로 불리는 인공연료를 계속 개발하고 있다. 이산화탄소와 수소를 합성해 인공석유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이산화탄소를 원료로 하므로 대기질 개선과 도심지 공기 정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질소산화물이나 매연 등을 배출하지 않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다. 다만 아직은 생산단가가 기존 석유보다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독일 정부와 참여 업체들은 대량생산 시 인공석유가 기존 석유와 비교해 충분히 경쟁력을 갖는다고 판단하고 투자와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 기존 연료 공급망과 인프라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인공석유가 경제성을 확보한다면, 디젤차는 부활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독일의 자동차 제작사마다 추구하는 디테일은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 개념은 모두 같다. 전동화와 자율주행 그리고 맞춤화에 따른 생산, 디지털화다. 이 모든 분야가 짧은 시간에 동시에 뒤섞이며 독일 자동차 산업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한국 자동차 업계는 지금까지 벤치마킹으로 혹은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으로 큰 성공을 거둬 왔다. 그러나 기존 방식으로는 지금처럼 전방위에서 동시에 불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트렌드를 따라잡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독일 완성차 업체에서 일하는 한 한국인 관계자는 “한국 업체들이 프런티어(frontier)로 혹은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나서기에 부족한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지금부터라도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며 “그동안 축적한 노하우와 자본이 있으니, 이를 토대로 좌우·상하를 넓고 면밀하게 살펴보면 반드시 미래 한국 자동차 산업의 좌표와 나아갈 방향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섭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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