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성수동 루트임팩트 사무실에서 교육 소셜벤처 ‘점프’ 직원들이 업무에 몰두하고 있다.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15일 성수동 공유오피스 '헤이그라운드' 사무실에서 교육 소셜벤처 ‘점프’ 직원들이 업무에 몰두하고 있다.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성동구 성수동에는 저층 공장들 사이로 8층 건물이 높게 솟아 있다. 이 건물 꼭대기층 테라스에서 밖을 내다보면 공장 지대인 성수동의 한적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시선을 실내로 돌리면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 66㎡ 남짓한 방 안에는 소파와 탁구대가 놓여 있고, 천장에는 클럽에서 볼 법한 파티볼도 달려 있다. 파티룸 같은 공간에서 젊은 사업가들이 노트북을 펴놓고 열띤 토론을 벌인다.

이곳은 지난해 10월 문재인 대통령이 제3차 일자리위원회 회의를 열고 ‘일자리정책 5년 로드맵’을 발표한 소셜 벤처 공유오피스 ‘헤이그라운드’다. 언뜻 보면 도심에 위치한 공유오피스 위워크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차이점이 있다. 이곳에 모이는 회원사들은 모두 ‘수익성’보다는 ‘사회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소셜 벤처’라는 특징을 공유한다.

헤이그라운드의 또 다른 특징은 주 고객층이 밀레니얼 세대라는 것이다. 총 82개의 입주사 중 밀레니얼 세대가 대표인 기업은 45개로 절반이 넘는다. 직원 수를 보면 그 비율은 더 높아진다. 총 558명의 직원 중 85%가 밀레니얼 세대에 해당한다.

가치 소비만 하던 밀레니얼 세대가 이제 ‘가치 생산’의 주역이 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인권, 교육, 환경 등 사회적 문제를 비즈니스 모델로 풀어나가는 밀레니얼 세대 소셜 벤처 사업가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가 소셜 벤처로 몰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회적 가치’도 돈이 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사회 운동이나 봉사도 사회를 변화시키는 방법 중 하나다. 하지만 자금이 부족하면 당장 생계에 어려움이 생긴다. 반면 돈을 벌 수 있는 사업 모델이 뒷받침되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일도 지속 가능해진다.

윤홍조(33) 대표가 운영하는 액세서리 온라인 판매 업체 ‘마리몬드’가 모범 사례다. 마리몬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꽃무늬 액세서리를 직접 디자인해 판매한다. 수지와 박보검도 이곳에서 각각 휴대전화 케이스와 티셔츠를 구매할 정도로 마리몬드 제품은 인기를 끌고 있다. 마리몬드는 2017년 12월 기준 영업이익의 72%에 달하는 21억6029만원 이상을 관련 시민단체에 기부하면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 경영자들은 진정성 마케팅에 강하다.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가 뚜렷하기 때문에 사업 이외의 공익 활동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 활동을 온라인 공간에 적극 홍보하는 것도 마케팅의 방식이다. 마리몬드 직원들은 매주 일본군 ‘위안부’ 수요 집회에 참여하고, 참가 후기를 홈페이지에 올린다. 소비자는 경영자의 윤리성을 신뢰하고 제품을 구매한다.

미국 시계 제조 업체 ‘이원(Eone)’도 마찬가지다. 김형수(39) 대표가 대학원 시절 시각장애인 친구가 시계를 보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이원을 설립했다. 이원의 ‘만지는 시계’는 시침과 분침 대신 구슬의 위치로 시간을 알린다.

이원은 사업 취지에 맞게 시계 홍보 사진을 배리어프리(barrier free) 영상과 함께 올린다. 배리어프리란 장애인과 노약자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나 서비스를 의미한다. 또 이원은 1년에 한 번씩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교류하는 자리를 만든다. 이원의 한국 법인인 이원코리아의 김명식(38) 이사는 “사회적 가치를 담는 브랜드는 소비자에게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실제로 내가 먼저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행동하고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유행 선도 능력이 성공요인

물론 선의만으로는 사업을 성공시키기 어렵다. 밀레니얼 세대의 경쟁력이 소셜 벤처의 성공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유행 선도 능력이 그중 하나다. 이원은 사업 초기 ‘만지는 시계’를 장애인 전용 제품으로 한정 짓지 않았다. 장애인 지원 기관에 제품을 유통하지 않는 대신 미국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킥스타터’에 올려 판매를 시작한 것이다. 디자인과 기능성을 살린 덕에 가격도 30만원대로 높여 잡았다. 일종의 프리미엄 전략이다. 장애인에게 베푼다는 관점이 아닌 시장에서 유행을 선도하겠다는 전략으로 사업을 구상한 것이다. 소비자도 타인을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이 아니라 유행을 따르고자 하는 내적 욕망에서 제품을 구매한다.

‘경험’에 기반한 사업 방식도 밀레니얼 세대의 강점이다. 대학생 멘토링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교육 소셜 벤처 ‘점프’는 직원 15명 중 13명(86%)이 밀레니얼 세대다. 대학생 멘토링 프로그램을 구상할 때 대학생의 입장을 고려하기 수월한 이유다.

점프의 교육 프로그램은 일반 아르바이트와 유사한 방식의 장학금 지급형 멘토링 방식과는 다르다. 점프는 대학생의 지속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대학생에게도 직장인 멘토를 붙였다. 직장인 멘토의 연령대는 30~40대로 비교적 젊은 편이다. 은초롱(33) 운영총괄팀장은 “이런 멘토링 시스템을 ‘세대 이어달리기’라고 부르고 있다”면서 “대학생들이 젊은 멘토에게서 더 높은 공감대를 느끼는 20대의 심리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 덕에 점프의 대학생 멘토 중도 탈락률은 5% 미만이다.

성과가 좋아 투자사 현대차그룹도 점프와 5년 연장 계약을 맺었다. 2013년부터 시작해 올해 계약 만료 예정이었던 ‘H 점프 스쿨’ 프로그램의 계약 기한은 2024년까지로 연장됐다.

소셜 벤처가 활성화되면서 지원 생태계도 변화하고 있다. 기존에는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부서에서 연간 한정된 예산으로 프로젝트를 후원하는 단발성 톱다운(top-down) 방식이 많았다. 이제는 밀레니얼 세대가 스스로 소셜 벤처 생태계를 구축한다.

사실 밀레니얼 세대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에 자금을 투자하는 임팩트 투자에 적극적이라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모건스탠리의 ‘지속 가능한 투자에 대한 관심(2017년)’ 보고서에 따르면 임팩트 투자에 대한 관심도가 전체 세대가 75%일 때 밀레니얼 세대는 86%로 더 높았다. 이제는 일회성 투자가 아닌 지속 가능한 생태계도 구축되고 있다. 국내에 밀레니얼 세대가 대표인 소셜 벤처 지원 기관이 생겨나고 있다. 각기 담당하는 역할도 세분화되고 있다.

생태계의 기본 모델은 재무적인 지원이다.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의 장남인 현대가 3세 정경선(33)씨가 설립한 ‘HG이니셔티브’가 대표적이다. HG이니셔티브는 소셜 벤처 투자사로 일자리를 통한 빈곤 퇴치를 목표로 하는 물류 업체 ‘두손컴퍼니’,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중개하는 농산물 유통사 ‘소녀방앗간’ 등 총 17개 벤처에 투자했다.

초기 단계에 자금을 대면서 벤처캐피털처럼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까지 제공하는 투자사도 있다. 한상엽(35) 대표가 운영하는 ‘소풍’은 소셜 벤처를 선정해 4000만원의 시드투자와 함께 12주간의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현재까지 총 42개 기업에 투자했고 기업 생존율은 93%에 달한다. 후속 투자 유치율도 36% 수준이다.

37세의 허재형 대표가 운영하는 비영리 사단법인 ‘루트임팩트’는 소셜 벤처에 비금전적인 지원을 담당하고 있다. 루트임팩트는 소셜 벤처를 포함한 사회 문제 해결에 관심 있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프로젝트 기반의 문제해결역량 교육 ‘임팩트 베이스캠프’, 소셜 벤처 취업을 원하는 청년을 기업과 연결하는 ‘임팩트 커리어Y’가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실제 임팩트 커리어Y에 참여한 청년 81%가 정직원으로 취업하는 데 성공했다.


자본 투자 방식으로 사회적 가치 창출

인프라나 기획 측면의 지원도 제공한다. 루트임팩트는 공유 업무 공간 헤이그라운드 사무실을 월 30만원 내외로 저렴하게 임대한다. 헤이그라운드 입주사들은 회계․법률 부문 등 회사 운영에 필요한 부분도 자문받는다.

루트임팩트 예산 규모는 2016년 10억3400만원에서 지난해 32억1100만원으로 2년 사이 3배나 증가했다.

이외에도 임팩트 투자사 ‘크레비스파트너스’, 경영 컨설팅 업체 ‘임팩트스퀘어’, 사회적 부동산 투자사 겸 공유업무공간 ‘공공그라운드’도 모두 밀레니얼 세대가 대표를 맡아 맹활약 중이다. 배수현(35) 공공그라운드 대표는 “밀레니얼 세대는 가치 있는 소비를 원하는 만큼 자본투자의 방식으로 의미 있는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면서 “가치 있는 활동을 하는 단체, 생산자, 소비자가 함께 어우러지는 생태계가 형성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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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공장지대의 변신
260여 소셜벤처 몰려…정부 지원 기대감도 커

미국에 실리콘밸리가 있다면 성수동에는 성수밸리가 있다. 성동구 성수동 공장지대를 중심으로 소셜 벤처 타운이 조성되고 있다. 성동구청에 따르면 현재 260여 개의 소셜 벤처가 성수동에 모여 있다. 폐공장 지대가 ‘소셜벤처 밸리’로 거듭난 것이다.

지난해 성동구청은 서울숲 청년 소셜 벤처 엑스포를 성수동에서 열었다. 올해로 두 번째다. 지난해 말 기술보증기금도 이곳에 소셜벤처가치평가센터를 신설했다. 소셜 벤처 활성화를 위해 올해 상반기까지 소셜 벤처 실태 파악에 나선다.

정부의 관심도 소셜 벤처로 쏠리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해 5월 1000억원의 기금을 조성하는 소셜 벤처 투자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오성업 중기부 사무관은 “2015년 기준 소셜 벤처 투자는 540억원에 불과했다”면서 “문재인 정부 들어 소셜 벤처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이미 기금을 운용하는 7개의 펀드 운용사가 선정됐고 6곳의 소셜 벤처에 투자가 이뤄졌다.

특히 중기부는 이달 내로 소셜 벤처 판별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전망이다. 기존에는 소셜 벤처에 대한 판단 기준이 없어 정책 지원이 어려웠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인증제는 존재했지만 수익성과 사회적 가치를 모두 추구하는 소셜 벤처에 적합한 제도는 아니었다. 사회적 기업은 취약계층 고용이나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기업들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소셜 벤처 판별 기준은 혁신 가능성과 사회성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중기부에서 메인비즈(경영 혁신형 기업)나 이노비즈(기술 혁신형 기업) 인증을 받으면 소셜 벤처로 판단되기 유리해진다는 가이드라인을 곧 발표할 예정”이라면서 “소셜 벤처지만 가이드라인에 못 미치는 경우 별도 자문위원회를 꾸려서 판별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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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허재형 루트임팩트 대표
“벤처 성장 막는 걸림돌 치워 주겠다”

김소희 기자

허재형 루트임팩트 대표는 서른일곱살의 밀레니얼 세대다. 그는 2009년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베인앤드컴퍼니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다가 2012년 퇴사했다. 계기는 동아리 후배가 올린 ‘사회적 변화를 만드는 일에 동참할 사람을 구한다’는 내용의 페이스북 게시글이었다. 동아리 후배는 허 대표를 현대가 3세 정경선씨에게 연결해줬고, 둘은 함께 사회적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비영리 사단법인 루트임팩트를 만들었다. 루트임팩트는 비영리단체, 사회적 기관, 소셜 벤처 등 사회적 경제 종사자를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이나 소셜 벤처를 직접 경영하지 않고 지원하는 역할을 맡은 이유는.
“한 가지 분야에 집중하기보다는 지렛대처럼 다른 벤처기업을 지원하는 일이 내 적성에 맞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사회가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한국의 사회적 경제 생태계 수준은.
“미국이나 유럽 등 주요 선진국에선 이미 사회적 경제 분야가 양적, 질적으로 모두 발전해 있다. 협력자와 조력자가 얼마나 세분화돼서 전문적으로 활동하느냐가 발전 단계를 가늠하는 지표다. 예컨대 정보기술(IT) 회사를 실리콘밸리 중역들과 주 3시간씩 교류하게 해주는 네트워킹 활동만 하는 사업가도 있다. 국내에선 임팩트 투자사 중 '옐로우독'이라는 회사는 최근 여성 창업자만 투자하는 펀드를 별도로 조성했다. 이런 세분화 과정이 다음 단계로 도약하는 전조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밀레니얼 세대가 사회적 경제 분야에 뛰어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밀레니얼 세대는 가치와 의미를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의미 있는 제품을 찾아서 공유하고 악덕 기업 제품은 불매하는 성향이 이 세대의 흐름이다. 그런 맥락에서 밀레니얼 세대의 창업가들은 이전 세대 창업가들과는 결이 다르다. 밀레니얼 세대도 그런 창업가가 만든 조직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져가면서 직장 선택의 무게가 덜해졌다는 점도 이유다.”

사회적 경제 분야는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던데 지속 가능한가.
“루트임팩트의 경우 개인 기부금, 기업 후원금뿐 아니라 사업 수익도 주 수익원에 포함된다. 일반 영리 기업이라고 지속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 것은 어느 경제 분야든 마찬가지다. 앞으로 개인 기부금이나 기업 후원금 다변화 전략을 취하면서, 사업 수익 비중을 높여나갈 계획이다.”

루트임팩트의 장기 비전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면 재무적인 성과는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많다. 하지만 국내외 사례를 살펴보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탐스 슈즈도 사회적 목적으로 시작해서 사업적으로도 성장하지 않았나. 특히 요즘에는 사업 목적 간 경계가 많이 무너지고 있다. 예컨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소셜 벤처와 영리 목적의 스타트업 사이에 교집합의 크기가 커졌다. 각 부문 투자자의 경계도 흐려지고 있다. 사회적 가치와 재무적 성과를 ‘A or B’가 아니라 ‘A and B’로 바라봐주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김소희 기자, 이정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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