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덤’과 ‘SKY 캐슬’, 두 편의 한국 드라마가 연초부터 온갖 이야깃거리를 쏟아냈다. 상류층의 치열한 교육열을 풍자한 SKY 캐슬은 비(非)지상파 시청률로는 역대 최고치인 23.8%(마지막회)를 기록했다. 조선시대 배경 좀비 드라마인 킹덤은 작품 공개와 동시에 전 세계 시청자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국내 콘텐츠 산업 종사자들의 ‘산업적 평가’가 남다르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조선’이 취재한 20여명의 업계 관계자 대부분은 “SKY 캐슬과 킹덤이 한국 드라마산업에 ‘새로운 문’을 열어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금까지 한국 드라마가 국내시장 또는 한류에 빠진 아시아권과 전 세계 특정층을 대상으로 한 것과 달리, 두 작품이 세계 주류시장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얘기다.

킹덤과 SKY 캐슬은 소재도 출연진도 만든 이들도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기존에 인기를 얻었던 ‘히트 드라마 콘텐츠’가 지켜왔던 일종의 공식을 거의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선 전통적인 편성 전략을 쓰지 않았다. 인기 시간대를 빌리지도, 지상파를 통하지도 않았다. 두 드라마는 지상파 3사(KBS·MBC·SBS)의 황금 시간대(월·화 또는 수·목 오후 10~11시)에 방영된 작품이 아니었다. SKY 캐슬은 중앙미디어그룹의 종합편성채널인 JTBC에서 금·토 오후 11시에, 킹덤은 아예 방송국의 힘을 빌리지 않고 국내 최초로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인 ‘넷플릭스’에서 독점 방영됐다.

내용에서도 마찬가지다. 등장인물도 장르도 기존의 히트 드라마 공식과 무관하다. 최근까지 국내와 해외에서 큰 화제를 끌었던 작품들은 중화권을 비롯한 아시아 전역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한류 스타들이 출연하는 로맨스 장르였다. 하지만 SKY 캐슬과 킹덤에는 한류 스타들의 사랑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는다.


SKY 캐슬에는 한류스타가 아닌 40대 여성 배우들이 전면에 등장했다.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 40대 여성 배우들이란, 40대 남성 배우들과 달리 스포트라이트 바깥으로 밀려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하는 존재들이었다. 이 드라마는 또 시청자 대부분이 겪었을, 또는 겪게 될 ‘입시’라는 소재를 기반으로 했다. ‘시험지 유출’ ‘가짜 하버드생 행세’ ‘명문대 입학 후 자살’ 등 입시와 관련된 비극적인 실제 사건들을 삽입해 몰입감을 높였다.

앞서 드라마 ‘시그널(tvN 방영)’로 이름을 알린 김은희 작가가 7년간 준비한 킹덤에도 한류 스타는 등장하지 않는다. 등장 인물 간 로맨스도 없다. 국내 최고 수준인 회당 제작비 20억원은 한국 전통 의상을 입은 좀비들을 생동감 있게 다루는 데 집중 투입됐다. 킹덤은 허기와 생존이란 본능적 욕구에 대한 이야기다. 호러이자 판타지이면서, 2019년 한국과 세계를 통렬히 풍자한다. 로맨스가 끼어들 틈은 없다.

SKY 캐슬과 킹덤이 이처럼 기존 드라마 콘텐츠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국내 콘텐츠 산업의 생태계 구조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조선’은 SKY 캐슬과 킹덤의 예를 통해 △제작 △유통 △소비 세 단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분석했다.


1 제작│드라마 산업의 역학관계 변화, 더 많아진 방송 플랫폼

SKY 캐슬과 킹덤은 드라마 ‘제작’ 단계에서 작품을 틀어줄 채널을 찾기 위해 제작사들이 수고스럽게 돌아다니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방송을 내보낼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에 시달릴 필요없이 콘텐츠 제작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상태였다는 것이다. 과거처럼 지상파 3사에 매달릴 필요없이, 새롭게 등장한 방송 플랫폼을 통해 불필요한 수고 없이 ‘드라마를 제작하자’는 확답을 들을 수 있었다.

기존에도 초특급 스타 작가의 대본은 지상파 3사에서 바로 ‘우리와 제작하자’며 환영받았다. 하지만 그렇게 콘텐츠 제작에만 집중할 수 있는 기회는 지금의 방송 환경보다 현저히 적을 수밖에 없었다. 절대적으로 방송 플랫폼의 숫자가 적었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방송사와 제작사는 심한 ‘갑을 관계’였다. 방송국의 선택을 받기 위해 제작사는 언제나 을이었다. 과거에는 수익 배분에 있어서도 제작사가 불리한 계약 조건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제작비를 대는 방송국은 광고 수익에 더해 저작권까지 모두 챙겨갔다.

하지만 견고했던 갑을 관계는 2011년 12월 TV조선, JTBC, 채널A, MBN 등 종합편성채널 4사의 개국으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드라마를 송출할 방송국이 늘어난 것이다. 종편 4사는 해마다 드라마 방영 편수를 늘리고 있다. 게다가 tvN, OCN 등 케이블 채널을 보유하고 있는 CJ ENM도 드라마 사업을 강화하면서, 지상파 3사 외에 드라마를 공급할 수 있는 창구가 매년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2016년 넷플릭스의 등장으로 한국 드라마 산업은 또 한번 전환점을 맞이했다. 한국 시장 진출 방안을 모색하던 넷플릭스는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 줄 제작사를 찾는 것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tvN의 ‘미스터 션샤인’을 동시 방영 조건으로 300억원에 구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지 시장에서 인기를 끌 수 있는 똘똘한 콘텐츠’를 사는 것에서 나아가, 흥미로운 자체 제작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넷플릭스의 회원 모객 전략이기 때문이다.

SKY 캐슬은 중앙일보 계열 ‘JTBC콘텐트허브’의 자회사인 ‘드라마하우스’와 공동 작업을 하게 되면서 JTBC에서 먼저 러브콜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SKY 캐슬의 대본을 쓴 유현미 작가는 과거에 함께 일했던 경력이 있는 조현탁 감독이 이 작품의 연출을 맡아주기를 바랐는데, 조 감독이 계약된 프로덕션이 드라마하우스였던 것이다. SKY 캐슬은 이 때문에 다른 방송국에 대본을 보여줄 틈도 없이 JTBC에서 방영이 확정됐다.

SKY 캐슬이 기존의 제작 관행을 어느 정도 따르면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 사례라면, 킹덤은 전례없는 파격적인 제작 과정을 거쳤다.

킹덤은 그 어떤 방송국도 거치지 않고 넷플릭스를 통해 독점 공개됐다. 한 회당 제작비가 20억원씩 투입된 ‘블록버스터급’ 드라마로, 시즌 1의 6개 회차에 총 120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갔다. 거액의 제작비는 전부 넷플릭스에서 지원했다.

킹덤의 김은희 작가는 ‘조선왕조실록’에서 ‘괴질로 많은 백성이 사망했다’는 문구를 보고 지난 2011년부터 조선시대 배경 좀비물 대본을 7년간 준비했다. 하지만 “TV드라마에서 좀비물이 웬 말이냐”는 주변의 말에 대본이 실제로 드라마화될 확률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017년 김 작가를 만난 넷플릭스 관계자는 “좀비물은 전 세계 190여개국의 1억3900만명 시청자 중 10% 이상은 무조건 보는 콘텐츠”라며 일사천리로 계약을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2 유통│‘넷플릭스’ 통해 전 세계 시청자에 동시 공개

SKY 캐슬과 킹덤 모두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개국에서 27개 언어로 제공된다. SKY 캐슬은 종편에서 본 방송이 송출되면, 그다음 날 바로 해당 회차가 넷플릭스에 공개됐다. 넷플릭스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킹덤은 아예 시즌 1(1~6화)이 1월 25일 전부 공개됐다.

넷플릭스는 북미와 유럽 시장을 중심으로 글로벌 OTT 시장에서 독주하고 있다.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된 넷플릭스의 시가총액은 2월 14일 기준 1556억달러(약 175조원)다. 이런 넷플릭스는 지난해 한국 상주팀을 서울에 꾸리면서 한국 사업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SKY 캐슬이 넷플릭스에 공개될 수 있었던 이유는 드라마의 저작권(IP)을 가진 JTBC와 넷플릭스의 계약 때문이다. 지난 2017년 4월 JTBC는 약 600시간에 달하는 분량의 드라마와 주요 콘텐츠의 글로벌 방영권을 판매하는 계약을 넷플릭스와 맺었다. SKY 캐슬도 해당 계약에 의거해 넷플릭스에 공급된 JTBC의 콘텐츠 중 하나였다.

킹덤은 전 세계 넷플릭스 회원들에게만 독점 공개됐다. 킹덤 공개일(1월 25일) 직후 트위터에는 ‘킹덤(Kingdom)’과 ‘모자(hat)’라는 단어가 들어간 영어 게시물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드라마의 배경이 조선시대여서 배우들이 썼던 갓을 두고 외국인들은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한 트위터 사용자는 “킹덤은 좀비와 멋진 모자에 관한 드라마”라고 했다. 그 어떤 방송사의 문턱 한번 거치지 않고, OTT 플랫폼 하나만으로 글로벌 시청자들의 관심을 제대로 모았다는 증거다.


3 소비│빈지워칭, 개취(개인취향) 소비…달라진 시청 행태 공략

과거 시청자가 드라마를 보는 수단은 TV가 거의 유일했다. 지금은 드라마를 볼 수 있는 ‘화면’의 가짓수가 우선 많다. 거의 모두가 스마트폰이라는 개인 화면을 갖고 있다. 태블릿PC·노트북까지 합하면 한 명당 개인 화면이 몇 개씩 되기도 한다. 또 스마트TV·IPTV도 일반화됐다.

이처럼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만큼 콘텐츠를 즐기는 것에 익숙해진 것도 킹덤의 성공 비결 중 하나로 꼽힌다. 콘텐츠 소비 행태의 변화 덕에 킹덤의 공개 방식이 소비자들에게 익숙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는 의미다.

킹덤은 한번에 6개 회차를 담은 시즌 1 전체를 공개했다. 한번에 콘텐츠를 몰아서 보는 ‘빈지 워칭(binge watching)’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넷플릭스는 현재 제작 중인 시즌 2도 올해 안에 시즌 전편을 한꺼번에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인터넷 통신의 발달로 인해 콘텐츠를 ‘개인 최적화’해 소비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도 킹덤의 흥행에 영향을 줬다. 시청자들은 집에 놓인 TV라는 단일 창구로 온 가족이 이야기를 소비하던 방식을 넘어 다양한 단말기를 통해 개인별 콘텐츠 소비를 하고 있다. 소비자에게 무한한 취향과 시간의 자유가 이미 주어진 상황이다.

이 때문에 전 세대가 함께 보기에 거부감 없는 콘텐츠가 필요한 안방 극장에서 다루기엔 너무 잔인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좀비물이 개인별 소비 문화를 만나 흥행 가도를 달릴 수 있게 됐다.

본 방송 시간에 TV 앞에 앉던 시대는 이미 끝나가고 있다. 이 때문에 방송통신위원회는 동영상 시청 방식의 변화를 반영한 새로운 통합 시청률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방통위는 지난 2018년 8월 ‘2017년도 N스크린 시청행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N스크린이란 스마트폰이나 PC 등 다양한 화면을 통해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는 의미로, 스크린이 여러개라는 의미에서 ‘N’이라는 영어 이니셜이 붙는다.

방통위는 당시 “방송 시청 행태가 TV를 통한 실시간 시청 외에 스마트폰, PC를 통한 시청이나 VOD 시청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스마트폰·태블릿PC·노트북·스마트TV로 콘텐츠를 즐기는 시대에 본 방송 시청률을 재는 것이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이제는 광고주들도 방송 프로그램의 광고 효과를 판단하기 위해 20~49세 시청률만 따로 집계한 자료를 주로 참고한다”고 설명했다. TV를 습관적으로 틀어놓는 장노년층 시청률을 세밀하게 구분해야 유의미한 지표가 나온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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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주 제작사 외주 제작사란 방송국 자체 인력이 아닌 외부의 콘텐츠 기획자다. 작가들과 계약을 맺고 어떤 드라마를 제작할지 기획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방송국에서 제작비를 받으면 촬영을 시작한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드라마는 전체의 70%가 외주 제작사에서 만들어진다.

방송 편성 방송 편성이란 방송국에서 특정 채널의 특정한 시간대에 어떤 프로그램을 방영할지 결정하는 작업이다. 방송사는 편성 결정을 할 수 있는 ‘편성권’을 갖는다.

빈지 워칭 빈지 워칭은 ‘폭식’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빈지(binge)’와 ‘시청’이라는 뜻의 ‘워칭(watching)’을 합쳐 만든 신조어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콘텐츠를 한 번에 몰아 보는 행위를 말한다. 지난 2017년 넷플릭스가 일주일 간격으로 1, 2편씩 콘텐츠를 공개하던 관행을 깨고 모든 회차를 한꺼번에 공개하면서 만들어진 단어다. 기존에는 종방된 콘텐츠에 한해서만 빈지 워칭이 가능했다.

이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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