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처럼 완만하게 휜 나트랑 해변은 6㎞나 늘어서있다. 사진 김진
활처럼 완만하게 휜 나트랑 해변은 6㎞나 늘어서있다. 사진 김진

나트랑(냐짱)은 이름만큼이나 명랑한 여행지다. 연중 따스한 햇볕이 쏟아지는 바다는 청량하다. 필리핀과 태국에 밀려 베트남의 휴양지는 그동안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 포문을 연 곳이 다낭이라면 나트랑은 베트남 휴양지의 블록버스터급 후속작이다. 하지만 아직 천만 관객은 끌지 못했다. 더 소란스러워지기 전에 다녀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트랑 캄란 공항을 빠져나오면 컴컴하고 조용한 분위기에 놀라게 된다. 쌀국수를 파는 허름한 식당이 하나 있지만 테이블은 텅텅 비어있고, 택시기사 몇 명만이 승객을 모시기 위해 두리번거린다. 미리 불러둔 택시로 40분 정도 걸려 나트랑 해변까지 갔다.

열대의 해안도시는 작열하는 태양만큼이나 활력이 있다. 나트랑도 그렇다. 발바닥이 익을 것 같은 모래밭을 가로질러 새파란 바다에 몸을 담갔다. 활처럼 완만하게 휜 나트랑 해변은 6㎞나 늘어서있다. 자유로운 분위기는 와이키키 해변을, 여유는 몰디브를, 저렴한 물가와 너른 해변은 보라카이를 닮았다. 선베드는 띄엄띄엄 있고 호객행위도 없다.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옆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필요도, 망고 바구니를 든 어린아이에게 맘이 약해져 돈을 주섬주섬 꺼내야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내게 ‘쉼’이란 야자수 아래에 누워 마룬파이브(Maroon 5)나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의 음악을 들으며 사이공 맥주 한 병에 발가락을 까딱거리다가 낮잠에 빠져드는 일. 이 쉬운 일이 왜 이렇게 어려웠을까. 일 년에 딱 사나흘이면 되는데. 아직 내 몸에 남아있는, 서울에서 온 경직된 근육을 풀어보기로 한다.

셋째 날부터는 시내에서 떨어진 5성급 리조트에 묵었다. 나트랑 해변에서는 조금 떨어져있지만 시내와 리조트를 연결하는 무료 셔틀버스가 매시간 다니니 불편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이곳이 베트남인 것을 알게 해주는 오토바이 소리도 전혀 없으니 소음으로부터의 완벽한 자유가 보장된다. 뮤트(mute)모드가 시작되면 평화롭고 조용하다. 파도소리와 새소리는 낮게 깔리는 음악에 가깝다. 레스토랑에서 커트러리가 챙챙 부딪히는 소리는 듣기가 좋다. 리조트는 놀랍게도 1시간짜리 마사지와 조식을 포함해서 1박에 10만원 중반이다. 여행 물가가 저렴한 것은 베트남을 자꾸 찾게 하는 일등공신이다.

두 번째는 음식이다. 베트남에는 맛없는 음식이 없다. 박항서 감독 덕분에 한국인이 특별 대우를 받는 건 요즘 베트남 어디서나 흔한 일이지만, 나트랑에는 생것을 좋아하는 한국인을 위해 근해에서 갓 잡은 싱싱한 생선을 회로 내오는 레스토랑도 있다. 쌀국수의 뜨거운 국물은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도 '아, 시원하다!' 감탄이 나오고, 숯불에 구운 고기와 야채를 비벼먹는 분짜(비빔국수)는 달콤하고 짭짤해서 맥주와 페어링이 좋다. 24시간 배불러 있어야 하는 것은 베트남 여행의 숙명이다. K-팝이 중간중간 흘러나오는 세련된 펍에서 취기가 올라 시답잖은 말에도 깔깔대다 보면 청담동 바나 이태원 펍이 하나도 부럽지 않다.

그렇다고 나트랑에 바다와 고급 리조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내로 들어오면 허름한 식당과 카페, 게스트하우스와 작은 호텔, 마시지숍이 즐비하다. 오래 머무르는 배낭여행객들의 터전이기도 하다. 거리 양옆으로 자리한 가게에서는 현지인들이 반미(베트남식 샌드위치)나 해산물구이, 채소와 열대과일을 판다. 거미줄처럼 이어진 거리에선 구글맵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됐다. 마사지숍에 그냥 들어가 한 시간에 만원 하는 전신마사지를 받고, 핫하다는 콩카페에서 수박주스나 연유가 잔뜩 들어간 베트남 쓰어다 커피(Caphe Suada)를 마신다.

나트랑은 원래 인도네시아계의 옛 참족이 세운 왕국인 참파왕국(Chăm Pa, 192~1832)의 잘나가는 어항이었다. 참파가 통치했던 분위기는 포나가르 사원(Thap Po nagar)에서 느낄 수 있다. 요금이 350원밖에 안 하는 4번 버스를 타고 포나가르 사원으로 향했다. 현재 남아있는 참파 유적 중 가장 오래된 곳이어서 의미가 깊다. 포나가르 사원은 제법 높은 곳에 위치해 나트랑 시내와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조망대로 인기가 많다. 1933년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나트랑 대성당은 나트랑에서 가장 이국적인 건축물이다. 작은 언덕을 산책 삼아 오르고 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성당 내부로 들어오는 성스러운 햇살에 잠시 눈을 감아보는 것도 괜찮다.

원시적인 자연을 좋아하고 고립을 자처하는 편이라면 닌반베이로 가보자. 수억 년 전 누군가 뚝 떨어뜨려 놓은 듯한 검고 큰 바위가 해변에 흩어져있는 모습은 셰이셀과 닮았다. 독특한 풍광 덕분에 나트랑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리조트가 들어서 있고 신혼부부들이 많이 찾는다. 원시림 트레킹이나 스노클링 투어를 해도 되지만 실은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솜뭉치 같은 구름이 흐르는 하늘과 일렁이는 파도가 있는데. 나트랑을 일컫는 별명이 있다. ‘베트남의 나폴리’다. 나트랑도 나폴리처럼 항구가 경제를 일으켰고, 오랜 세월이 쌓인 명소가 여행자를 매료시키기 때문이다. 해안 도시 특유의 개방적인 분위기도 비슷하다. 미세먼지 없는 파란 하늘과 온화한 바다, 맛있는 음식 말고 휴양에 더 필요한 것이 뭐가 있을까.

김진(여행작가·트래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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