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시내의 한 호텔 앞에 설치된 전력 회사 RWE의 전기자동차 충전기. 사진 블룸버그
독일 베를린 시내의 한 호텔 앞에 설치된 전력 회사 RWE의 전기자동차 충전기. 사진 블룸버그

스페인의 가정집. 소파에 앉은 한 여성이 남편과 스마트폰 화면을 확인하고 있다. 이 부부가 확인하는 애플리케이션(앱)은 스페인의 전력 대기업 이베르드롤라(Iberdrola)의 ‘에너지 월렛(Energy Wallet)’이다. 이 앱에 접속하면 현재까지 사용한 전력량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고 지불해야 할 전기료도 안내해준다. 미리 할인된 금액(약정 전기료)으로 전력을 선구매할 수도 있다. 에너지 월렛은 전력 소비자들이 계획적으로 전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돕고, 이베르드롤라가 정확한 전력수요를 예측해 낭비 없이 전력공급량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베르드롤라처럼 유럽의 주요 전력 회사들은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다양한 사업모델을 개발하는 한편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 분야를 확장하고 있다. 또 전기자동차 충전소를 운영하거나 인공지능(AI)의 분석능력을 활용해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는 전력 회사도 있다. 화력발전으로 전력을 생산(발전)해 이를 공급(송배전)하는 단순한 사업구조에 머물러 있지 않고 다양한 비즈니스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전력 회사들과 미래 에너지 산업을 놓고 경쟁하기 위해선 한국전력(이하 한전)도 전기를 생산해 송배전하는 데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비즈니스 영역을 대폭 변화시킨 대표적인 기업은 독일 전력 회사 에온(E.ON)이다. 에온은 2007년 신재생에너지 전담 자회사인 ‘EC&R(E.ON Climate & Renewables)’을 설립하고 현재까지 100억유로(약 12조8600억원) 이상을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에 투자했다. 유럽연합(EU)이 이산화탄소가 많이 발생한다며 화력발전 중심의 에너지 생산을 규제하자 규제에 맞춰 자회사를 만들어 재생에너지 발전 역량을 대폭 강화한 것이다. EC&R은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해 미국, 이탈리아, 영국 등 해외 시장에 진출해 현지에서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EC&R이 운영하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소의 전력생산규모는 5.2(기가와트·2015년 기준)다.

에온의 경쟁 회사인 독일의 전력 회사 RWE는 전기자동차 충전서비스로 맞춤형 배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전기자동차 운전자들은 스마트폰으로 RWE 앱에 접속한 후 RWE 전기자동차 충전소에서 얼마만큼의 전기를 충전할지를 입력한 후 스마트폰으로 결제하면 가까운 곳에 설치된 RWE 전기자동차 충전소에서 원하는 만큼의 전기를 충전할 수 있다.

전기자동차 산업이 확대되고 있고 전기자동차 운전자들이 주요 전력 소비자가 될 것을 예측해 미리 충전 인프라 사업에 진출한 것이다. RWE는 베를린, 슈투트가르트, 뮌헨 등 독일 주요 도시뿐 아니라 유럽 20개국에서 4900여 개 충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RWE는 전기자동차 충전소를 구축하기 위해 다임러, 르노, 폴크스바겐 등 자동차 제조회사나 호텔, 대규모 공장 등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파트너십을 맺은 기업의 고객들이 자사 충전소를 이용하도록 유도했다.

허준엽 한전경영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유럽 지역의 전력 소비 감소 등으로 수익성 위기가 오자 RWE가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고 전기차 시장의 충전 사업에 선제적으로 진출해 현재는 다른 전력 기업들보다 훨씬 더 많은 인프라를 구축해 놓은 상태”라고 했다.


컨설팅까지 하는 전력 회사

프랑스의 전력 회사 엔지(Engie)도 변화를 꾀하는 곳 중 하나다. 엔지는 민간 투자자의 자본을 모아 발전소를 설립하는 민자발전사업(IPP) 분야를 확대하는 한편 AI를 활용해 풍력발전의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풍력발전의 효율성을 높이는 연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 영국의 IPP 회사 인터내셔널 파워(International Power)를 인수한 엔지는 남미, 동남아시아, 중동 등 개발도상국에서 IPP 사업을 하고 있다. IPP는 민간투자자를 모아 발전소를 건설한 후 일정 기간 발전소를 운영하며 생산된 전력을 송배전 기업에 판매해 투자비를 회수하는 사업을 말한다. 엔지가 IPP 사업을 통해 중동, 중남미, 북미, 아시아 등 유럽 외 지역에 설립한 발전소 규모는 16.5에 달한다. 이렇게 세계 각지에서 IPP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에 엔지가 운영하는 전체 발전소 중 51%는 유럽 외 국가에서 운영되고 있다.

엔지는 AI나 드론을 활용한 연구·개발(R&D)에도 힘을 쏟고 있다. 프랑스 생드니 지역에 위치한 엔지 R&D센터에서는 풍력발전의 빅데이터를 AI로 분석해 발전 효율성을 높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또 드론을 이용해 태양광발전 패널 상태를 점검하는 방법도 개발 중이다.

엔지는 에너지 컨설팅 서비스에도 진출했다. 미국의 에너지 관리 회사인 옵테라(Opterra)를 인수(2016년)해 자회사인 ‘엔지 서비스’로 새롭게 출범시켰는데 엔지 서비스는 미국 항공사인 아메리칸 에어라인 등 80여 개 기업에 에너지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지 분석해주고 자문료를 받는다. 허 선임연구원은 “엔지 서비스는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활용해서 어디서 얼마만큼의 전력을 소비하고 있고 에너지 효율을 어떻게 하면 극대화할 수 있는지를 기업별로 분석하는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명덕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팀장은 “유럽에는 풍력이나 태양광 등 다양한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전력을 생산하는 소규모 발전 회사들이 많아지면서 전력 회사들 간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며 “이에 따라 화력, 원자력 등으로 전력을 주로 생산했던 대형 전력 회사들이 기존 방식으로의 생존이 쉽지 않은 상태에 놓이면서 사업 다각화와 인수·합병(M&A) 등을 시도하고 있다. 경쟁을 통해 새로운 시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게 유럽의 에너지 산업”이라고 했다.

한편 한전도 글로벌 전력 회사들처럼 다양한 사업분야에 도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전이 발전이나 송배전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지만 ICT 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는 등 사업 다각화에서는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승일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현재 에너지 산업 전체가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고 다양한 신사업이 등장하면서 글로벌 기업들이 먹을거리를 찾아 경쟁하고 있는데 한전이 공기업이라는 한계와 법과 규제의 틀에 매여있어 이런 기회를 놓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정해용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