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일 연세대 생화학과, 영국 런던 임페리얼칼리지 신경생물학 박사,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과대학 신경과학과 전임강사
문제일
연세대 생화학과, 영국 런던 임페리얼칼리지 신경생물학 박사,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과대학 신경과학과 전임강사

우리는 매일 드넓은 향(香)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5월 거리에서 풍기는 라일락이나 아카시아 꽃향기는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출근 직후 맡는 커피 향은 아직 활동할 준비가 덜 된 우리의 뇌를 자극해 업무에 뛰어들 준비를 하도록 돕는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향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담배 냄새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이들에게 심한 불쾌감을 유발한다. 또 발에서 나는 악취는 좌식문화를 하는 우리나라 사람에게 불편함을 주고, 겨드랑이에서 나는 땀 냄새는 가뜩이나 짜증스러운 여름 지하철을 지옥으로 만든다.

삶의 질을 우선하는 선진국에서는 향수·방향제·비누 등 향을 만드는 산업과 데오드란트(deodorant)처럼 냄새를 제거하는 두 가지 향 관련 산업이 동시에 발전해왔다.

경제 성장과 함께 삶의 질을 중시하는 경향은 우리나라에도 반영돼 2017년 기준 국내 향 관련 산업 시장(매출액 기준)은 어느새 3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시장 규모는 매년 성장하는 추세다. 그러나 향과 관련 산업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기술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향은 오감을 담당하는 다섯 가지 감각기관 중 하나인 후각기관이 담당한다. 감각기관은 세상의 정보를 감지해 뇌에 알려주는 일종의 센서다. 각 감각기관은 담당하는 자극에 따라 특이성을 갖는다. 시각기관인 눈은 빛에너지를 감지해 세상의 모양과 색에 관련된 정보를 뇌에 전달한다. 청각기관인 귀는 음파에너지를 감지해 주변 소리에 관한 정보를 뇌에 전달한다.

200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의 리처드 액셀 교수와 프레드 허치킨스 암연구소의 린다 벅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후각기관인 코는 우리가 호흡하면 콧속으로 공기와 함께 들어오는 방향성 화학물질의 구조정보를 뇌에 알려준다.

즉 우리가 향을 맡는다는 것은 그 대상으로부터 발산된 화학물질을 감지한다는 뜻이며, 우리는 그 화학물질의 구조를 통해 특정한 향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향을 감지하는 후각을 ‘화학감각(chemical sense)’이라고 부르고, 이를 담당하는 후각기관을 ‘화학감각기관’이라고 한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막염으로 시각과 청각을 잃은 헬렌 켈러 여사는 “후각은 멀리서부터 날아든 향기는 물론 우리가 살아 온 세월까지 느끼게 해주는 마법사다”라고 말했다. 그는 비록 세상을 보거나 듣지 못했지만, 후각을 통해 세상과 소통했다. 우리가 그 정도는 아니지만 향을 통해 멀리서 끓고 있는 음식이 무엇인지 맞힐 수도 있고, 시간을 거슬러 아주 오래전의 행복했던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릴 수도 있다.

후각은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들으면 간과하기 쉬운 중요한 정보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흥미로운 감각이다. 특히 눈과 귀가 발달하지 못한 하등동물에게 화학감각은 생존에 매우 중요한, 어쩌면 유일한 감각이다. 실제 단세포동물인 아메바는 온전히 화학감각만을 이용해 주변 환경을 탐지해 위험을 피하고 음식물을 찾아다니며 생존한다. 이처럼 후각기관은 생존 혹은 본능에 매우 중요한 감각기관이다.

우리가 장미 향을 맡으면 장미가 발산한 화학물질이 공기와 함께 코로 들어오게 된다. 이 화학물질은 콧속 통로를 통과하면서 우리 뇌 바로 밑 콧속 깊은 곳에 있는 후각상피에 이르게 된다. 후각상피에 있는 후각신경세포는 이들 화학물질을 알아보는 다양한 후각수용체를 갖고 있다. 사람의 경우 약 300개의 다른 후각수용체를 가지고 있으며 개의 경우는 약 1000개의 후각수용체를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개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종류의 향을 구별할 수 있다. 이렇게 후각수용체를 통해 ‘감지(detection)’된 정보는 후각신경세포에서 전기신호로 바뀌어 후각망울로 전달돼 이곳에서 ‘정보화(encoding)’ 과정을 거친다. 정보화한 신호가 뇌에 도달하면 뇌는 이 정보를 뇌에 저장된 기존 지식·경험·기억 등을 총망라하는 ‘정보처리(processing)’ 과정을 거쳐 어떤 향인지 알아차리게 된다.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프루스트 효과’

특히 향의 인지는 다른 감각기관과 달리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후각신경세포에서 감지된 정보는 우리 뇌 속 ‘변연계’라는 부위와 연결된다. 변연계는 인간의 감정과 기억을 담당하는 부위다. 이에 따라 인간이 향을 맡으면 단순히 그 향이 어떤 향인지 알아차리는 것뿐만 아니라 그 향에 얽힌 기억과 당시의 감정을 동시에 떠올릴 수 있다. ‘향의 기억’은 단순한 사실에 대한 기억뿐 아니라 감정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특별함이 있다.

이러한 현상은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자전적 소설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잘 묘사돼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은 한 카페에서 마들렌을 홍차에 찍어 먹다가 어릴 적 고모가 구워준 마들렌을 홍차에 찍어 먹으면서 느꼈던 행복한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경험을 한다. 이처럼 향은 사실 기억과 함께 감정 기억이 더욱 생생하게 되돌아 오도록 한다. 이런 현상을 마르셀 프루스트의 이름을 빌려 ‘프루스트 효과’라고 한다. 향은 행복했던 추억을 보관해둔 기억창고의 문을 활짝 열어주는 열쇠인 셈이다.

이처럼 특정 향에 대한 호불호의 경험은 소비자의 뇌에 평생 남을 만큼 강렬한 기억으로 존재한다는 점이 마케팅에서는 중요하다. 미국 육군의 연구를 인용한 2013년 삼성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향에 노출된 소비자는 쇼핑 시간을 실제보다 26%나 짧게 느꼈다고 한다. 이들은 이에 따라 평소보다 세 배나 더 넓은 매장을 둘러봤다. 이처럼 후각 경험을 활용한 향기 마케팅은 특정 제품에 대한 홍보는 물론 소비자의 쇼핑 패턴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미래에 향은 더 많은 산업에서 더 다양한 형태로 소비될 것이다. 향은 의료 산업에서 호기(呼氣·날숨)를 통해 병을 진단하는 인공지능(AI) 의사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고, 문화 산업에서는 음식 냄새가 풍기는 4D 극장에서 ‘리틀 포레스트’ 같은 영화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또 단순히 시각과 청각을 활용한 가상현실은 막을 내리고, 향기 나는 새로운 가상현실 혹은 증강현실이 우리를 찾을 것이다.

더 나아가 타 산업에서도 향을 이용한 신상품이 우리를 기다릴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운전자가 필요 없는 자율자동차의 실내가 마치 향기로운 꽃으로 장식된 응접실 같은 새로운 공간으로 우리를 맞이하고, 먼 미래 우주여행이 현실화하면 우리는 화성행 우주선 속에서 향기 나는 가상 꽃밭을 통해 힐링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 뇌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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