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수 현대자동차 중앙연구소 연구원, 미시간 주립대 컴퓨터 과학 학사, 인디애나 주립대 컴퓨터 전자학 석사
이승수
현대자동차 중앙연구소 연구원, 미시간 주립대 컴퓨터 과학 학사, 인디애나 주립대 컴퓨터 전자학 석사

현대·기아차는 매년 300여 개가 넘는 협력사들을 대상으로 10여 개 부문에서 ‘올해의 협력사’ 상을 준다. 올해는 처음으로 반도체 회사가 상을 받았다. 그 주인공은 독일의 차량용 반도체 회사 인피니언 테크놀로지스였다.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고객사인 완성차 업체를 관리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인피니언 코리아의 경우 외국계 반도체 업체 처음으로 국내 불량분석연구실을 설립했다. 한 달 이상 걸리던 불량품 원인 분석 기간을 10일 이내로 줄였다.

2007년에는 ‘현대-인피니언 혁신센터’를 만들어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발 벗고 나섰다. 부품 업체가 완성차 업체의 하청을 받아 납품하는 수직적 구조가 아니라, 인피니언이 현대차와 직접 협의해서 반도체를 만들어 납품하는 수평적 구조다. 이를 통해 기술 개발 속도를 7~8년에서 3~4년으로 줄였다.

이승수 인피니언 코리아 대표를 만나 오랜 기간 한국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 입지를 다진 비결을 물었다. 그는 인피니언 코리아 합류 전 현대자동차 중앙연구소에서 7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다. “현대차 출신인 것도 비결 중 하나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근무 당시 현대차에서 취득한 자동차 기능사 1급 자격증이 도움이 되더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점차 주제는 ‘교육’ 쪽으로 초점이 맞춰졌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는데 현대자동차 근무 경력이 있다. 인피니언 코리아에 합류하게 된 과정은.
“1995년 당시 현대차에서 엔진 자체 개발에 성공한 뒤 엔진 전자 제어기까지 개발을 시도했다. 현대차의 엔진 자체 개발 프로젝트에서 엔진 전자 제어기 관련 팀의 연구원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완성차 업체에 엔진 전자 제어기를 납품하는 해외 업체들과 경쟁에 밀려 부침이 있었고, 결국 팀이 해체됐다. 이때 기술 독립으로 시장을 점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시 익힌 기술을 후배 개발자들에게 전달해 시행착오를 줄여보자는 생각으로 차량용 반도체 업계에 합류하게 됐다.”

현대차에서 경력이 어떻게 도움 됐나.
“당시 경험은 자동차 시스템 전반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완성차 업체에서 실무 경험을 쌓다 보면 기계 구조를 알게 된다. 현대차 근무 당시 자동차 기능사 1급 자격증도 취득했다. 덕분에 차량용 반도체를 개발할 때 단순 납품에 목적을 두지 않고, 해당 제품이 자동차라는 거대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구현돼야 효율적으로 작동할지 고민할 수 있게 됐다. 인피니언 코리아에서는 현대차가 요구하는 사양을 맞춘 보급형 반도체인 ASSP(Application Specific Standard Product)도 만든다. 이를 만들려면 자동차 전체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차량용 반도체를 정복하려면 ‘자동차’와 ‘반도체’를 동시에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맞다. 이 업계에서 10년 전부터 느낀 점은 융합적 접근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전자 공학을 전공한 사람은 전자 장치만 안다. 기계 공학을 전공한 사람은 기계(자동차)만 안다. 반도체 전문가는 또 반도체만 안다. 하지만 기술은 융합되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를 만들려면 세 분야 전문가가 만나서 협력해야 하는데, 서로 간 분야를 모르면 싸움만 일어나지 않겠나. 최근에는 연료전지도 중요해지면서 화학까지 알아야 한다.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인력이 현장에는 부족하다. 이러면 최신 기술을 쓰지 못하고 기존의 것을 선택하게 된다. 기술을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따라갈 수밖에 없는 위치에 머문다.”

인피니언 코리아가 한국에서 여러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내용인가.
“현재 국민대, 한양대, 대구·경북 과학기술원, 창원대, 숭실대 등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각자 분리돼 있는 사업을 하나로 융합해 실전에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다. 반도체가 어디에 적용되는지 실제 애플리케이션을 소개해주는 것이다. 반도체를 시스템상 구현하는 경험도 중요하다. 한양대가 주관하는 지능형 모형차 경진대회 공식 후원사로 활동하고 있다. 인피니언의 MCU(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전장 부품의 연산 처리 기능 수행) 반도체를 이용해 참가자들이 스스로 제어 알고리즘을 생각하고 경주용차에 프로그래밍해서 자율주행차의 모습을 직접 고안하는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 중국 칭화대에서도 이 모델을 본따 대회를 진행했다고 한다.”

인피니언 코리아는 현재 일반 기업사를 대상으로도 ‘인피니언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16개 과정을 진행해 50개 업체에서 420명이 참여했다. 현대차와 같은 고객사는 물론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대기업 직원들도 참가 신청을 한다. 일부 기업들은 이 프로그램을 필수 이수 과목으로 뒀다. 인피니언 코리아 사무실 12층에 자체 아카데미룸까지 만들었다.

아무리 한국 지사라 할지라도, 엄연히 따지면 외국계 사기업인데. 한국 인재 양성에 비용을 투자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사실 내 사명과도 같다. 인피니언 자체도 경험 있는 애플리케이션 엔지니어를 채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는 회사 내부의 인력 수급 문제이기도 하지만, 국내 차량용 반도체 생태계의 파이가 커지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한다. 한국인으로서 국내 차량용 반도체 생태계가 보다 커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외국 기업의 전문가들이 한국에 현장 기술과 노하우를 전달해주면 선순환 구조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인피니언 입장에서도 이득이다. 인피니언의 고객사는 자동차 전장 시스템과 관련된 모든 업체들이다. 차량용 반도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완성차나 부품 업체들, 혹은 인피니언과 아이디어를 공유할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들이 많아져야 장기적 관점에서 인피니언의 사업도 활력을 띨 수 있다.”

국내 차량용 반도체 생태계는 어떻게 키워야 하나.
“시스템 반도체 부문은 오랜 기간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하고, 한 회사가 모두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메모리 반도체 사업처럼 투자한다고 짧은 기간 안에 결과가 나오지도 않는다. 국가, 기업, 학교가 협력해 일관되게 투자해야 다양한 인재가 모인다. 인력 양성은 학교만으로는 안 되고, 국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해외 선도 반도체 업체의 디자인센터를 유치하거나 학생들을 해외 업체의 연수 프로그램에 보내는 것도 방법이다. 물론 국내 회사끼리 협력체를 만들고, 기술을 국산화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사람이 남으면, 기술도 남는다. 해외 업체에서 기술을 배운 사람이 한국에 남으면, 그 기술이 한국에서 선순환할 것이라는 뜻이다.”

전문 인력을 받아줄 소규모 팹리스 업체들이 고전하고 있다는 문제도 있다. 정부에서 팹리스 지원 의지를 보였는데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협력이 답이다. 실리콘밸리의 인피니언 이노베이션 센터에서는 새로운 시장 개발을 위해 고객사, 기술 파트너사와 협력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싱가포르에서 문을 연 ‘코이노베이션 스페이스’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스타트업들로부터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고 이들은 인피니언의 기술 전문성, 제품, 시장 경험을 활용할 수 있다. 인피니언 코리아도 한국에 이 모델을 적용하도록 준비 중이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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