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차는 ‘바퀴 달린 데이터센터(Data center on wheels)’다.”

인텔 전 최고경영자(CEO) 브라이언 크르자니크는 2017년 모빌아이를 인수하면서 자율주행차를 이렇게 정의했다. 모빌아이는 자율주행차에 들어갈 카메라 기술을 가진 이스라엘 기업이다. 현대차, GM, BMW 등 자동차 회사에 자동차용 카메라 시스템을 판다. 인텔은 모빌아이를 153억달러에 인수했다. 인텔 역사상 두 번째 규모다. 이를 두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반도체 업체 인텔이 자율주행차에 큰 내기(big bet)를 걸었다”고 평가했다.

크르자니크 전 CEO가 말한 대로 자동차는 기계에서 전자 장치 집약체로 변화하고 있다. 조만간 상용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자율주행차에는 일반 자동차(대당 약 300개)보다 많은 반도체가 들어간다. 업계에서는 자율주행차 1대에 2000개 이상의 반도체가 탑재될 것으로 내다본다.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는 개인이 소유하는 가장 크고 비싼 전자제품으로 변신 중”이라며 “몇 년 뒤에는 자동차 꽁무니에 붙어 있던 1.5(1500cc·엔진 용량 표시) 대신 ‘인텔 인사이드’나 ‘퀄컴’이 붙은 자동차가 등장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인텔뿐만 아니라 퀄컴, 삼성 등 정보통신(IT) 기업은 자율주행차 시대에 폭증할 반도체 수요를 선점하기 위해 자동차 전장(電裝·전자 부품) 반도체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자동차 전장 반도체(이하 차량용 반도체)란 자동차에 탑재되는 이미지센서나 내비게이션, 오디오 등에 사용되는 비메모리 반도체를 뜻한다. 사람의 머리에 해당하는 전자제어장치(ECU)가 핵심이며 센서와 제어장치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포함한다.

차량용 반도체 시장을 지배하는 ‘절대 강자’는 없다. 2017년 말 기준 차량용 반도체 시장 1위인 네덜란드 NXP의 점유율은 12.5%다. 2위는 독일 인피니언(10.8%), 3위는 일본 르네사스(10%)다. 시장 점유율 1위와 3위 회사 차이가 2.5%포인트에 불과하다. 현재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시장 최강자인 퀄컴과 일본 전자 기업 도시바를 포함해 28곳에 달하는 기업이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 참여했다.

차량용 반도체 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크다. 자율주행차뿐만 아니라 전기자동차, 커넥티드카(IT 기술이 결합한 자동차) 등 미래형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반도체 수요가 늘어날 전망이기 때문이다. 시장조사 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2017년 340억달러 규모인 전 세계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2022년에 553억달러까지 클 것으로 예측된다. 우리나라 기업의 차량용 반도체 시장 준비 현황을 살펴보고, 이 분야에서 시장 강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꼽아봤다.


1│삼성·LG 등 대기업 기술력 집결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대기업은 앞다퉈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었다. 삼성전자는 자사의 차량용 반도체를 독일 아우디에 공급하며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삼성전자가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 본격 대응하기 위해 전용 브랜드 ‘엑시노스 오토’와 ‘아이소셀 오토’를 출시(2018년 10월)한 지 1년도 안 돼 거둔 성과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 중에서 핵심 역량을 가진 제품군을 꼽아 자동차용으로 선보였다”며 “아우디와 공급 계약을 함에 따라, 다른 자동차 회사도 삼성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은 차량용 반도체를 차근차근 준비해왔다. 삼성은 2015년 12월 자동차 전장 사업팀을 발족했다. 2016년 11월엔 글로벌 카오디오 1위 업체인 하만 지분 100%를 80억달러에 인수하기로 하고, 2017년 3월 인수 작업을 마무리했다. 이어 삼성은 지난해 8월 ‘4대 미래 성장 사업’ 중 하나로 차량용 반도체를 선정했다. 이혁재 서울대 전기공학부 교수는 “차량용 반도체의 처리 속도가 중요해지고 있다”며 “삼성은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에서 쌓은 빠른 처리 속도를 차량용 반도체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는 반도체 기업이 아니다. 대신 LG전자는 해당 분야 기술력을 갖춘 기업과 협력해 차량용 반도체를 준비하고 있다. LG전자는 세계 1위 차량용 반도체 기업인 NXP와 손잡고 차세대 첨단 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을 2020년까지 개발할 계획이다. ADAS는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운전자에게 전방 추돌, 차선 이탈, 안전거리, 속도 등 위험 요소를 미리 알려주는 시스템이다. LG전자는 스마트폰, 가전에서 축적해온 카메라와 영상 인식 기술을 ADAS에서 활용할 수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고성능을 요구하는 고객을 상대할 때 자동차 업계에서 인지도와 실력을 갖춘 NXP와 협력한다는 사실이 도움 된다”고 말했다. LG전자는 이외에도 퀄컴, 정밀지도 제작 업체 히어 등 글로벌 IT 기업과 전장 부품 개발을 위한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2│삼성‘100조원 현금’, 언제든 M&A 가능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진입 장벽이 높다. 차량용 반도체에 문제가 발생하면 자동차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자동차 회사는 차량용 반도체 업체에 고도의 기술 수준과 완성도를 요구한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사를 쉽게 바꾸지도 않는다. 차량용 반도체 신규 진입자인 삼성과 인텔이 각각 이 분야의 강자인 하만과 모빌아이를 인수한 것은 이들 기업이 가진 신뢰도까지 사들여 시장에 진입할 때 도움받기 위해서다.

삼성은 2016년 하만을 인수했다. 하만은 JBL과 마크레빈슨 등 등급별 오디오 브랜드를 모두 갖춘 인포테인먼트 기업이다. 2015년 기준 세계 카오디오 시장 점유율 41%로 1위다. 카오디오는 차량용 반도체의 주요 분야 중 하나다. 무엇보다 삼성은 하만이 자동차 회사와 협력하면서 쌓아온 신뢰와 유통망을 활용할 수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은 그동안 자동차 회사와 일하는 기업이 아니었다”며 “하만이 삼성에 자동차 회사와 접점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오스트리아 차량용 조명 업체 ZKW를 인수하며 전장 사업에 힘을 주고 있다. 포르쉐, BMW 등 글로벌 자동차 회사 20곳이 ZKW의 고객사다.

삼성은 기존 차량용 반도체 업체를 추가로 인수할 자금력을 갖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삼성전자의 현금 보유액은 총 104조2136억원으로 전년(83조6044억원)보다 24.65% 증가했다. 현금 보유액은 기업의 현금과 현금성 자산, 단기 금융 상품 잔액 등을 합친 것이다. 연구·개발(R&D)은 물론 인수·합병(M&A)에 즉시 투입할 수 있는 돈이다. 이를 반영하듯 반도체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NXP, 인피니언 등을 인수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난해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NXP 인수를 검토했다는 소식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삼성이 차량용 반도체 업체를 인수할 것이라는 전망을 거두지 않고 있다.


3│창의성 갖춘 스타트업 포진

차량용 반도체는 종류가 다양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이 차량용 반도체 강화에 나서고 있지만, 이들 대기업이 모든 종류의 차량용 반도체를 개발하는 것을 불가능에 가깝다.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의 활약이 필요한 이유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차량용 반도체는 세상에 정해진 것이 없다”며 “기능과 용도가 다 다르기 때문에 스타트업이 시장에서 원하거나, 지금까지 없는 기능을 담은 차량용 반도체를 선보이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선 텔레칩스, 넥스트칩, 스트라드비젼, 페르세우스, 퓨리오사 등과 같은 스타트업이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 활약 중이다. 다음 장부터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스타트업을 소개한다.

정미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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