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첼시를 인수한 로만 아브라모비치, 맨체스터 시티를 인수한 셰이키 만수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인수한 고(故) 말콤 글레이저. 사진 AFP
왼쪽부터 첼시를 인수한 로만 아브라모비치, 맨체스터 시티를 인수한 셰이키 만수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인수한 고(故) 말콤 글레이저. 사진 AFP

“나의 인수 결정은 돈벌이와 관련 없다. 나는 이것(구단 운영)보다 훨씬 리스크가 적은 방식으로 돈을 버는 법을 이미 알고 있다. 어쨌거나 나는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고, 즐기고 싶다.”

2003년 영국프리미어리그(EPL) 구단 첼시를 1억9600만달러(약 2290억원)에 인수한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당시 BBC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124억달러(약 14조원) 자산을 보유한 러시아 석유 재벌로, 억만장자로서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처음으로 축구 구단을 인수했다. 프리미어리그가 전 세계 스포츠리그 매출 3위(1위 NFL, 2위 MBL)를 기록하는 배경에는 로만과 같은 부호들의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수익보다 우승을 목표로 삼는 여유로움이다.

로만은 적자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애초에 수익률을 기대하지 않았기에 첼시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다. 당시 로만은 수준급 선수들을 1억파운드(약 1513억원)를 들여 스카우트하고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 경험이 있는 조제 모리뉴 감독을 영입했다. 인수 당시 첼시의 프리미어리그 성적은 5위. 자금을 투입하기 시작하자 첼시는 거짓말처럼 두 시즌(2004-2005, 2005-2006)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이때부터 프리미어리그에서 ‘쩐(돈)의 전쟁’이 시작됐다. 훈련 강도를 높여 성적을 올리는 ‘스포츠의 정석’에서 벗어나 값비싼 인재 영입으로 승부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로만과 같은 다른 억만장자들도 프리미어리그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슈가대디(금전적 후원을 아끼지 않는 스폰서)’라고 불린다.

현재까지 팀을 우승으로 이끌겠다는 일념으로 뛰어든 축구팬 슈가대디는 프리미어리그 20개 구단 가운데 12개에 이른다. 미국 4명, 영국 2명, 중국 1명, 러시아 1명, 이집트 1명, 이란 1명, 아랍에미리트(UAE) 1명, 태국 1명의 자산가가 구단을 소유하고 있다. 이들의 총자산은 908억달러(약 106조원)에 이른다. 그만큼 자금을 프리미어리그에 투입할 여력이 있는 것이다.

가장 많은 자금을 투입한 구단주는 2008년 맨체스터 시티를 인수한 UAE의 석유 재벌 셰이키 만수르다. 그는 현재까지 2조1000억원을 구단 운영에 투입했다. 손해를 보더라도 인재 유치엔 적극적이었다. 2010년 한때 수입의 97%를 선수 연봉으로 지급했고, 2011년 영국 축구 사상 최대 규모인 1억9700만파운드(약 2973억원)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는 만수르의 한 달 월급에 불과하다고 알려졌다.

막대한 투자는 성적으로 보답한다. 2007-2008시즌 맨체스터 시티는 프리미어리그 9위였지만 이후 네 시즌(2011-2012, 2013-2014, 2017-2018, 2018-2019) 우승을 차지했다. 슈가대디의 도움을 받은 다른 구단도 프리미어리그 상위 랭킹을 유지하고 있다. 2019-2020시즌의 프리미어리그 1~7위는 모두 슈가대디가 있는 구단(리버풀, 맨체스터 시티, 래스터 시티, 첼시, 아스널, 크리스털 팰리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다.


두꺼운 팬층은 매출 상승으로 이어져

국제축구연맹(FIFA) 산하 국제스포츠연구센터(CIES) 축구관측소에 따르면 프리미어리그가 선수단을 갖추는 데 투입한 비용은 57억유로(약 7조원)에 달한다. 2위 리그인 이탈리아 세리에A(24억유로)보다 두 배 이상 많다. 1개 팀 평균 2억8500만유로(약 3703억원)를 쓴 셈이다. 한국 프로야구 10개 구단의 선수 연봉 총액(약 734억원)의 5배에 이르는 규모다.

슈가대디의 인재 영입 경쟁은 전 세계 팬층을 모으는 계기로도 작용한다. 대표적인 예가 2006년 첼시가 AC밀란(이탈리아 축구 리그 ‘세리에 A’ 소속 구단)에서 영입한 안드레이 셰프첸코다. 그는 당시 전 세계에서 호날두와 메시 못지않은 팬덤을 누리고 있었다. 안드레이의 인수 금액은 4330만유로(약 564억원)에 달했다.

2008년 맨체스터 시티가 4300만유로(약 560억원)를 주고 영입한 레알마드리드(스페인 축구 리그 ‘라리가’ 소속 구단) 출신 호비뉴도 이슈를 모았다. 당시 2억 명에 이르는 브라질 축구팬이 라리가가 아닌 프리미어리그로 눈길을 돌렸다.

최근에는 글레이저 가문이 이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1억1000만유로(약 1434억원)를 지급하고 유벤투스(세리에A 소속 구단)에서 폴 포그바를 영입했다. 영입 당시 폴의 유니폼 매출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사상 최대치라고 알려졌다.

인기몰이용 선수 영입도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전 세계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아시아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한국 박지성, 일본 가가와 신지 등 아시아 선수를 적극적으로 영입하면서 아시아 팬덤을 구축했다. 특히 2004년 중국 시장 진출을 노리고 동팡저우를 영입하기도 했다. 동팡저우는 소속 기간 4년 동안 딱 1경기만 출전한 ‘마케팅용 선수’였다.

팬층이 두꺼워지면서 프리미어리그의 시청률도 매년 올라가고 있다. 프리미어리그의 매출 50% 이상을 차지하는 중계권료가 매년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2016-2017시즌 중계권료 매출은 27억6800만파운드(약 4조원)로 전 시즌보다 43% 올랐고 이후에도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전 세계 소비 시장을 노리는 해외 자본도 프리미어리그 구단에 마케팅비를 지급한다. 상위 구단들이 스포츠 유니폼 계약비를 지속적으로 갱신하는 것이 방증이다. 리버풀은 올해 뉴발란스와 유니폼 계약을 마치고 나이키와 새로운 계약을 했는데, 현재 아디다스와 계약으로 최고 기록(연간 7500만파운드·약 1135억원)을 세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뛰어넘는 것이 목표라고 공언했다. 마케팅 경쟁으로 프리미어리그의 광고 매출도 매년 한 자릿수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프리미어리그의 광고 매출은 전 매출의 27%를 차지한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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