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스웨터는 안쪽이 플리스 소재로 돼 있어서 무척 따뜻해요. 그렇겠죠?” 한 중국 여성이 스마트폰을 보면서 회색 스웨터를 소개하고 있다. 스마트폰 속 타오바오(淘宝) 창에 실시간 질문이 빗발친다. 타오바오는 중국 최대 모바일 쇼핑몰이다. 여성은 채팅창에 ‘뒷모습을 보여달라’는 요청이 올라오자 뒤돌아 보여주고, ‘옷에서 냄새가 나느냐’는 질문이 뜨자 옷에 코를 묻고 냄새를 맡아본다. 지난해 12월 11일 진행된 이 모바일 라이브 쇼핑 방송 동시접속자 수는 230만 명. 이 여성은 중국의 유명 왕홍(綱紅) 장다이(张大奕)다. 그는 앞선 11월 11일 중국 최대 쇼핑 축제 ‘광군제’에 진행한 라이브 쇼핑 방송에서 하루 동안 3억4000만위안(약 579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중국의 왕홍경제가 진화하고 있다. 디지털 경제와 정보기술(IT) 발전이 왕홍과 결합해 새로운 형태의 유통을 만든다. 왕홍은 왕루어홍런(綱絡紅人)의 줄임말로 인터넷을 뜻하는 ‘왕’과 유명하다는 뜻의 ‘홍’을 합한 말이다. 장다이는 중국의 마이크로 블로그 플랫폼 웨이보(微博)에서 팔로어 1170만 명을 보유한 온라인 스타다. 그는 예쁜 외모와 패션 감각으로 웨이보에서 일찌감치 유명세를 탔고, 2014년 타오바오에 입점하면서 자신을 브랜드화한 대표적인 왕홍이다.

왕홍 개념이 등장한 것은 2010년 초반이다.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웨이보, 위챗 등을 통해 자신을 알리는 사람이 생기고, 이들을 팔로(follow)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인기를 얻었다. 1세대로 분류되는 이들은 인터넷상에서 예쁜 외모나 우스꽝스러운 발언 등으로 중국 전역에서 인기를 끌었다.

본격적으로 왕홍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4년 이후. 모바일 이용자와 함께 SNS 플랫폼도 증가하면서 왕홍 영향력이 자연스럽게 커졌다. 기업도 이들을 제품 홍보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산업화가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중국 화장품 브랜드 ‘퍼펙트다이어리(完美日记)’. 중국의 신생 브랜드였지만, 젊은층이 많은 플랫폼 샤오홍슈(小紅書)에서 왕홍 입소문 마케팅을 펼쳐 ‘국민 브랜드’로 올라섰다.

왕홍경제라는 용어는 여기에서 나왔다. 이들은 각자 활동하는 플랫폼에서 적게는 수십만에서 많게는 수천만 팔로어를 몰고 다니는데, 덕분에 왕홍이 소개하는 제품 홍보 효과는 엄청나다. 이들은 웨이보, 타오바오, 샤오홍슈, 콰이쇼우(快手) 등 중국만의 다양한 SNS 플랫폼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규모와 숫자 면에서 다른 나라 인플루언서를 압도한다. 디지털 마케팅 회사 WARC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중국의 왕홍 수는 2100만 명을 넘어섰고, 이들을 관리하는 다중채널네트워크(MCN) 수도 지난해 9월 기준 6500개를 넘어섰다. 실제로 시장 조사 기관들은 지난해 왕홍이 일으킨 경제 효과를 적게는 40억달러(약 5조원)에서 많게는 86억달러(약 10조원)까지 추산한다.

최근 왕홍경제는 유통·신기술과 결합하며 중국 소비 시장을 바꾸는 주역으로 진화했다. 대표적인 흐름이 ‘라이브 스트리밍(live streaming)’이다. 모바일 플랫폼에서 라이브 방송을 통해 소통하면서 물건을 파는 일종의 ‘모바일 생방송 홈쇼핑’이다. 왕홍들은 타오바오, 콰이쇼우 등 SNS에 상점을 열고 실시간으로 물건을 판다. 방송 시청자들은 하단에 있는 작은 창을 터치해 방송 중인 물건을 바로 살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광군제에 알리바바 플랫폼에는 왕홍 수만 명이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물건을 팔았다. 알리바바가 역대 최대 거래 금액(GMV)인 2684억위안(약 44조6200억원)을 달성할 수 있었던 데는 라이브 판매가 힘이 됐던 것으로 분석된다.

왕홍은 14억 인구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시장 중국을 움직이는 힘이다. ‘이코노미조선’이 왕홍경제의 움직임에 주목한 이유다. 특히 중국의 디지털 경제는 세계를 압도하는 수준으로 급성장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 성장률은 연평균 57.2%로 세계 평균(18.2%)을 넘어섰고, 시장조사기관 첸잔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이 규모는 2022년 1796억위안(약 30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지난해 중국의 모바일 결제 침투율은 86%로 세계 평균(34%)을 크게 웃돌았다.

중국 유통 업계는 ‘신(新)유통’을 향해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 전 회장이 2016년 제시한 이 개념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허무는 유통 방식을 말한다. 전자상거래와 모바일 결제 같은 온라인 쇼핑, 매장에서 이뤄지는 오프라인 쇼핑, 단시간에 배송하는 첨단 물류의 세 분야를 융합한 모델이다. 왕홍은 이 실험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중국인은 과거부터 이어진 ‘짝퉁’ ‘허위’ 제품 논란 탓에 입소문을 신뢰한다. 톱클라우트에 따르면 왕홍 추천이 제품 구매로 이어지는 비율은 20%로, 전통 광고(1%)를 크게 웃돈다.


왕홍경제 100억달러 돌파 코앞…“적극적으로 활용해야”

사실 한국 기업도 일찌감치 왕홍 마케팅에 나섰다. 2016년 이후 왕홍경제 급성장을 지켜보면서 이들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중국 고객 비중이 높은 소비재·화장품·여행 업종이 먼저 나섰다. 그러나 최근 일각에서는 왕홍 효과에 대한 의구심도 나온다. 왕홍 몸값이 오른 탓에 기대만큼의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는 불만이다. ‘이코노미조선’이 만난 국내 왕홍 마케팅·기획사 여럿은 “왕홍 마케팅을 계속하기 어렵다”는 고백까지 했다. 중국 현지 관계자는 “일부 중국인 사이에 ‘한국 기업이 왕홍으로 중국 사람 돈을 쉽게 벌려고 한다’는 비판도 나와 놀랐다”고도 했다.

그러나 중국 현지 마케팅 전문가 의견은 다르다. 왕홍경제가 더 커질 것으로 보는 만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파블로 머론 디지털럭셔리그룹(DLG) 파트너는 “올해 왕홍경제 규모가 100억달러(약 11조7000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보는 만큼 기업들도 왕홍 활용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성정민 맥킨지 글로벌연구소(MGI) 중국 소장은 “중국 소비자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것이 디지털 채널, 그중에서도 왕홍”이라면서 “중국 소비자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싶다면 어떤 형태든 그들이 사용하는 채널에 파고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틈새시장조차 큰 중국에서는 기회가 많다”고 덧붙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왕홍을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왕홍 활용의 실패 사례를 보면 왕홍의 특장점이 무엇인지, 판매 이력은 어떤지, 활동 플랫폼의 이용자층은 누구인지 등에 대한 분석 없이 이름값만 보고 일회성으로 섭외해 효과를 보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이에 대해 이철호 엠플러스아시아 대표는 “스팟성 행사가 아니라 발굴 왕홍과 최소 6개월~1년 정도 계약을 유지하며 지속성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식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중국에서는 ‘쭝차오경제(种草经济·상품을 추천해서 다른 사람의 소비 욕구를 자극하는 행위에서 발생하는 경제)’ ‘KOC(Key Opinion Consumers·영향력 있는 소비자)’ 개념이 힘을 얻는다. 인기가 눈에 띄게 많지 않더라도 영향력 있는 왕홍 발굴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이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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