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옥 고려대 수학교육학, 미국 뉴욕대 응용수학학 박사, 제7대 한국산업응용수학회 회장, 현 건국대 수학과 교수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정은옥
고려대 수학교육학, 미국 뉴욕대 응용수학학 박사, 제7대 한국산업응용수학회 회장, 현 건국대 수학과 교수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질병관리본부의 확진자 통계 확인했어?”

“바이러스 노출군 데이터를 바꿔보겠습니다.”

“두 그래프 모양이 다른 이유는 뭘까?”

3월 17일 오후 서울 화양동 건국대 과학관 3층. 이 대학 수학과 정은옥 교수 연구실은 토론 열기로 뜨거웠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침체된 캠퍼스와는 분위기가 180도 달랐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연구원들의 손이 정 교수 지시에 따라 바삐 움직였다. 연구실 한쪽 테이블에 놓인 빔프로젝터는 복잡한 수식이 적힌 문서를 하얀 벽에 쏘고 있었다. “말로는 설명이 힘들 것 같아서 참고 자료를 띄워놓고 (취재진을) 기다렸어요.” 정 교수가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정 교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생물수학(biomathematics)’ 전문가다. 미국 뉴욕대에서 응용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2002년부터 건국대 교수로 일하고 있다. 그는 산업수학의 여러 갈래 중에서도 감염병의 전파 양상 등을 분석하는 생물수학에 줄곧 집중해 왔다. 감염병 전파 수리 모델링 기법을 활용해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의 확산 흐름을 파악했고, 최근에는 연구실의 김소영 박사와 함께 비슷한 방식으로 코로나19가 잦아드는 시기를 예측해 화제를 모았다.

“감염병 수리 모델링 자체는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분석 도구예요. 이번에 저희가 실시한 코로나19 추적 연구의 특징은 사람들의 ‘행동 변화’까지 고려했다는 점입니다.” 정 교수가 벽면에 펼쳐진 화면을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했다.

감염병 확산 추세를 보여주는 대표적 수리 모델은 ‘SEIR’이다. SEIR 모델은 감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감염 의심군(susceptible), 바이러스 노출군(exposed), 감염 환자군(infectious), 회복군(recovered) 등 네 단계로 분류한 다음 시간 흐름에 따른 환자 발생을 예측하는 모형이다. 정 교수팀은 여기에 ‘행동 변화군(behavior changed susceptible)’이라는 변수를 추가했다.

“11년 전 신종 인플루엔자 유행 당시와 비교해보면 지금은 사회적 거리 두기, 손 씻기 등의 비(非)약물적 중재가 훨씬 강도 높게 이뤄지고 있어요. 정부가 연일 이런 노력을 강조하면서 개학 연기 등의 정책을 추진하고, 국민도 학습효과 덕에 예전보다 협조를 잘하죠. 행동 변화는 환자 증가와 유사하게 흘러갑니다. 생각해보세요. 동네에서 확진자가 나오면 더 열심히 마스크를 착용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잖아요. 우리는 사람들의 이런 행동 변화까지 계산에 넣어야 더욱 정확한 예측값이 나온다고 판단했습니다.”

연구진은 질병관리본부가 제공한 2월 18일부터 3월 9일까지의 확진자 데이터를 토대로 수리 모델링을 실시했다. 국내 첫 확진자는 1월 20일에 발생했지만,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퍼져나간 건 31번 확진자가 등장한 2월 18일이기 때문이다. 전체 인구 정보는 2020년 2월 주민등록 인구 현황 데이터를 사용했다.

“화면 중간에 ‘δ(델타) = 0.01’이라고 적힌 거 보이시죠? 델타는 사람들의 행동 변화로 코로나19 전파가 줄어든 비율을 의미해요. 쉽게 말해 하루 평균 100명과 접촉했던 이가 현재는 1명만 접촉(행동 변화)한다고 가정한 뒤 코로나19 확산 양상을 보겠다는 겁니다. 우리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이 경우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4월 말 9400명 수준에서 정점을 찍고 나서 회복 단계에 접어듭니다.”

하루 접촉자를 1명에서 2명(δ = 0.02)으로 조정하면 어찌 될까. 이 조건에서는 확진자 증가 추세가 6월 중순까지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 수는 1만3000명으로 불어났다. 접촉자가 3명(δ = 0.03)일 때는 예측값이 9월 말 2만2000명으로 바뀌었다. 정 교수는 “자칫 소홀해지기 쉬운 사회적 거리 두기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결과다”라고 했다.

정 교수는 실제 확진자 발생 추이를 나타낸 그래프 모양이 ‘δ = 0.01’ 상황을 가정한 그래프와 가장 흡사하다고 귀띔했다. “한국인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충실히 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많은 이가 한 달 넘게 외출을 자제하면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잖아요. 사태 종식의 지름길을 걷고 있는 셈이니 다들 조금만 더 힘을 내줬으면 해요.”

이날 정 교수는 초·중·고교 개학 연기가 코로나19 억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수리 모델링으로 분석해 보여주기도 했다(학술지 발표 등의 일정을 염두에 두고 있어 구체적인 숫자는 비공개).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만약 전국의 초·중·고교가 예정대로 3월 2일에 개학했다면 이후 일주일 동안 학동기(만 7~19세) 확진자 수가 실제보다 더 많이 증가했을 것이다.

설명을 마친 정은옥 교수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 그의 개인 연구실로 자리를 옮겼다.


정은옥 건국대 수학과 교수 연구팀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정은옥 건국대 수학과 교수 연구팀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수리 모델링은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기 때문에 위험 부담이 크겠다는 생각도 든다. 예측이 빗나가면 어쩌나.
“수리 모델링을 점쟁이로 생각하면 안 된다. 물론 ‘이 고통이 언제 끝나는지’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시점을 정확하게 추측할 수 있는 전문가나 시스템은 없다. 예기치 않은 변수가 늘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수리 모델링은 합리적인 가정하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갈 뿐이다.”

수리 모델링의 힘은 무엇인가.
“가장 효과적인 정책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신종 인플루엔자가 유행했을 때를 예로 들어보자. 당시 많은 전문가가 강남역처럼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 위주로 중재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그게 맞다. 그런데 수리 모델링 결과는 달랐다. 강남역처럼 각종 네트워크가 지나치게 복잡한 지역은 정책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결괏값이 도출된 것이다. 차라리 초기 확진자가 나온 과천 일대를 제어하는 게 다른 지역에도 도움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낯선 감염병이 퍼질 때 누군가는 격리부터 주장할 수 있고 다른 누군가는 개인위생을 강조할 수 있다. 모든 주장은 각자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방금 우리는 수리 모델링을 통해 사회적 거리 두기가 사태 진화 시기를 얼마나 앞당길 수 있는지 확인하지 않았나. 숫자 결과는 정부가 중재 정책의 우선순위를 짤 수 있도록 돕는다. 또 정책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국민의 동참을 유도하기도 쉽다.”

정부의 감염병 대책에 수리 모델링 결과가 잘 반영되는 편인가.
“점점 가치를 인정받는 분위기다. 내가 미국에서 돌아와 대학교수가 됐을 때만 해도 산업수학에 대한 정부의 이해도가 전반적으로 낮았다. 특히 생물수학 분야는 정말 척박했다. 지금은 연세대, 경희대, 부산대, 유니스트, 국가수리과학연구소 등 여러 학교와 기관에서 감염병을 수리적으로 추적하는 연구를 수행한다. 자연스레 정부가 수학자를 찾는 일도 늘었다. 최근 항바이러스제 적정 비축량을 제시하는 정부 연구 용역을 진행하기도 했다. 과거에는 경험과 감에 의존해 의약품 비축량을 결정했던 정부가 수리 모델링으로 가장 합리적인 보유 수준을 알려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우리가 실시한 수리 모델링 결과는 수백억원의 예산 절약으로 이어졌다. 이외에도 백신 접종의 연령별 우선순위, 병상 개수 추정 등에 관한 연구를 많은 수학자가 활발히 수행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

정부의 연구 지원 규모는 어떤가.
“넉넉하다고 볼 순 없다. 예컨대 내가 하는 생물수학만 하더라도 미국은 국립수학생물종합연구소(NIMBioS) 같은 전문 연구조직을 꾸려 운영한다. 그곳에는 감염병뿐 아니라 환경·통계·경영·역사 등 다양한 분야 학자가 있다. 산업수학자에게는 융합 연구를 위한 최상의 환경인 셈이다. 한국은 아직 개별 연구진의 각개전투로 성과를 내는 수준이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후 우리 연구팀이 발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던 건 그동안 유사한 모델링 작업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이다. 사실 모델링에 쓰인 수학 공식 자체는 그리 복잡한 게 아니다. 수식보다는 어떤 변수를 넣고 어떤 걸 제거할지를 신속히 정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부분은 연구 경험이 축적된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감염병 유행에 대비한 수리 모델링 구축에 집중할 수 있는 수학자가 지금보다 늘어난다면, 정부도 위급 상황에서 최고의 중재 정책 제언을 빨리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인류의 달 착륙 가능케 한 수학

여전히 많은 이에게 수학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하나의 장애물이자 필요악, 아킬레스건 정도로 남아 있다. 뜨거운 입시 경쟁 속에서 수학은 선택 또는 포기의 전략적 대상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선택한 자는 오지선다 시험지 속 수학과 학창 시절 내내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했고, 포기한 자에게는 ‘수포자(수학 포기자)’라는 패배의 언어가 뒤따랐다.

하지만 ‘이코노미조선’이 이번 커버 스토리를 준비하면서 만난 수학은 교과서와 문제집에만 존재하는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수학은 국가 정책 수립과 기업 경영 전략에 기여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 핵심 기술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수학 경쟁력이 곧 그 나라의 국력”이라고 입을 모았다. 앨런 셰퍼드가 미국 최초의 우주인이 되고 아폴로 우주선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달에 착륙한 배경에 수학자 캐서린 존슨의 우주 궤도 계산이 있었듯 말이다. ‘수학이 국력’이라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기획 취재 과정에서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다. 이를 계기로 ‘이코노미조선’은 정은옥 교수의 연구 성과를 접하게 됐고, 우리 사회와 수학이 어떤 방법으로 호흡하는지를 똑똑히 지켜볼 수 있었다. 인류 생존의 최전선에서도 수학은 제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이코노미조선’은 21세기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이 수학에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하는 이유를 찾아봤다. 각 산업계와 기업에서 수학이 어떤 중책을 맡고 있는지, 성공한 창업가가 수학을 대하는 태도가 어땠는지, 학교의 수학 교육이 학교 밖에서 쓸모를 유지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등을 심층적으로 다뤘다. 수학에 관한 희로애락을 말하는 독자들도 만났다. 세계 속 한국의 수학 경쟁력도 점검했다. 이번 기획이 독자 여러분에게 수학의 가치를 확인하는 계기로 남길 바란다.


Keyword

산업수학(Industrial Mathematics) 수학적 이론과 분석 방법을 활용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산업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학문.


plus point

선진국 공통점은 “수학 극진히 모셔라”

미국 뉴저지에 있는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미국 뉴저지에 있는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오랫동안 수학에 전폭적인 투자를 해왔다는 점이다. 미국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IAS), 수리과학연구소(MSRI), 수학응용연구소(IMA) 등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수학 관련 연구기관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미 연방정부가 수리과학 분야에 투자하는 연구비는 연간 5억달러(약 6100억원) 이상이다. 연구기관뿐 아니라 민간 기업에서도 수학 인재를 앞다퉈 영입하다 보니 미국에선 수학 박사의 30%가량이 고액 연봉을 받고 기업에 취직한다. 대우가 좋으니 미국 내 인기 직업 상위권에는 항상 ‘수학자’가 이름을 올린다.

유럽에서는 독일의 막스 플랑크 수학연구소와 오버 볼파크 수학연구소, 영국의 아이작 뉴턴 수리과학연구소 등이 뛰어난 역량을 자랑하며 각국 경제 발전을 주도하고 있다. 이웃 일본의 경우에도 한국보다 40년 이상 빠른 1963년 수리과학연구소(RIMS)를 설립하는 등 국가 차원에서 수학 진흥에 힘써왔다. 그 결과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 수상자를 지금까지 3명이나 배출했다. 1954년 고다이라 구니히코, 1970년 히로나카 헤이스케, 1990년 모리 시게후미가 그 주인공이다.

한국도 수학 경쟁력 강화를 위해 쉼 없이 달려왔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국제 학술지에 수학 논문 하나 올리기 어려웠으나, 현재는 세계 10위권의 수학 강국으로 성장했다. 2014년에는 수학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세계수학자대회(ICM)를 한국에서 유치하기도 했다. 당시 서울 ICM 조직위원장을 맡은 이가 박형주 현 아주대 총장이다.

그러나 선진국에 비하면 한국의 수학 투자는 여전히 부실하다. 국내 수학 관련 연구기관은 고등과학원과 국가수리과학연구소(수리연)가 대표적이다. 이 중 수리연은 2005년 문을 열었는데 소장의 업무상 횡령 논란, 기관과 비정규직 간 갈등 등의 잡음으로 수년간 업무 마비 수준의 고통을 겪었다. 지금은 정상화했으나 조직이 흔들리는 사이 세계 주요 연구소들과 역량 격차는 더 벌어졌다.

예산도 초라하다. 지난해 8월에 나온 ‘2018 국가연구개발사업 조사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과학기술 예산 18조4589억원 가운데 수학 분야 예산은 821억원에 불과했다. 0.44% 수준이다. 올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출연연구기관 예산은 약 3조2000억원인데, 이 중 수리연에 할당된 돈은 92억원(0.29%)이다. 정부는 2016년 기준 1.8% 수준인 수학 박사의 산업계 진출 비율을 2021년 2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으나 목표 달성에는 실패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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