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5일(현지시각) 오전 1시 30분. 미국 정부와 의회는 2조달러(약 2470조원) 규모의 부양책에 최종 합의했다. 온종일 이어진 줄다리기 끝에 나온 협상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위기에 처한 미국과 세계 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미국 정부의 긴급 처방이다. 여기엔 미국인 1인당 현금 1200달러를 지원하는 안을 비롯, 3670억달러 규모의 중소기업 지원안, 5000억달러 규모의 기업·지방정부 지원 펀드 신설, 1300억달러 규모의 병원 지원안 등이 포함됐다.

이번 부양책은 모든 면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처방을 뛰어넘었다. 2008년 미 의회가 구제금융 합의를 이루기까지 6개월이 걸렸다면, 이번에는 스티브 므누신 재무부 장관이 말을 꺼낸 지 일주일 만에 의회에서 속전속결로 통과됐다. 규모도 2조달러로 금융위기 초창기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내놓은 부양책(1680억달러)의 11배가 넘는다. 미 정부는 이후 3년간에 걸쳐 총 2조8000억달러 규모의 부양책을 내놨다. 당시 자금은 금융시장 붕괴로 피해를 본 대형 금융사·대기업 위주로 풀렸으나, 이번에는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가계와 중소기업 등이 지원 대상이다.

코로나19에 맞닥뜨린 2020년 세계 경제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금융시장뿐만 아니라 기업·가계 등 실물경제까지 무너뜨리는 ‘복합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먼저 경제 위기 우려에 금융 시장이 흔들리자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와 미국 정부가 발 빠르게 나섰다. 두 차례에 걸친 파격 금리 인하와 무제한 양적완화(QE)를 선언한 데 이어, 천문학적인 규모의 부양책을 내놓은 것이다. 또 연준은 사상 처음으로 자금난에 처한 회사채 매입에 나서는 등 기축통화국 중앙은행으로서 ‘달러 발권력’을 총동원했다.

소비와 생산 중단으로 멈춰 선 실물경제를 살리기 위해 각국 정부도 일제히 돈 풀기에 돌입했다. 미국에 앞서 영국 정부는 200억파운드(약 30조원)의 긴급 자금을 투입하기로 했고, 위기에 빠진 프랑스와 이탈리아 정부는 ‘국유화’ 카드도 꺼냈다. 한국의 지자체들도 재난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을 들고나와 1인당 최소 5만~10만원의 현금 지원을 시작했다. 2008년보다 더 빠르게, 더 폭넓게 움직이고 있다.

‘이코노미조선’은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세계 경제의 앞날을 묻기 위해 세계 석학들에게 두 번째 긴급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들에게 미국을 비롯해 각국이 전례 없는 규모와 속도로 펼치고 있는 재정 부양책의 효과, 2분기 경제 전망, 리세션(경기침체) 이후의 회복 모습, 한국 경제에 주는 조언 등을 물었다. 제프리 프랑켈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 모리스 옵스펠트 UC 버클리 경제학과 교수, 배리 아이켄그린 UC 버클리 경제학과 교수, 앤더스 오슬런드 애틀랜틱 카운슬 시니어 펠로, 에스와르 프라사드 코넬대 무역정책학과 교수, 루이스 셰이너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스티븐 해밀턴 조지워싱턴대 경제학과 교수 등 7명이 이메일로 인터뷰에 응했다.


‘성장률 -30%, 실업률 20%’ 침체 ‘생중계’

코로나19 사태 악화로 미국 경제가 셧다운되면서 경제 전망은 점점 암울해지고 있다. 사태 초기만 해도 2분기 침체를 조심스레 점치던 분위기는 최근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잇따라 충격적인 전망을 내놓으며 완전히 뒤바뀌었다. 골드만삭스, JP모건, 모건스탠리는 2분기 미국 경제성장률을 연율 기준 -24~30%까지 예상했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총재는 -50%도 언급했다. 므누신 장관은 실업률이 2008년 금융위기의 두 배인 20%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속속 공개되는 실물 지표도 코로나19 타격이 반영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이 발표한 미국의 3월 복합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0.5로 전달(49.6)보다 크게 하락했다. 하락폭이 2009년 10월 이후 가장 컸다. 생산·재고·고용 등을 종합해 산출하는 PMI는 국내총생산(GDP) 선행지표다. 50을 기준으로 그보다 낮으면 경기 수축을 뜻한다. 유로존 PMI는 전월 51.6에서 31.4로 폭락해 1998년 7월 조사 시작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석학들은 경제학자들이 경제 침체를 ‘실시간’으로 확신하는 전례 없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업 수당 청구 건수, PMI, 소비자신뢰지수 등 경제 지표가 실물 경제 상황을 알리는 바로미터로 활용되지만, 시차를 두고 공개되는 탓에 경제 움직임을 확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3월 16일부터 미국에서도 시작된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은 미 전역의 경제 활동을 위축시켰고 보잉·GE 등 타격이 큰 업종을 중심으로 기업들의 감원과 생산 중단 등의 결정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의 3대 자동차 기업 GM·피아트크라이슬러(FCA)·포드도 3월 30일까지 공장 가동 중단에 들어갔다.

프랑켈 교수는 “역사적으로도 불황 진행 속도가 무척 빠르고 생산량 손실 규모도 매우 클 것”이라며 “우리는 이미 세계적 불황에 빠져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학자들이 확신하고 이런 말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면서 “그러나 이번 경우는 충분히 명확하다”고 말했다. 해밀턴 교수는 “세계는 지금까지 이렇게 크고 날카로운 경제 위축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면서 “충격이 대공황에 버금가는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낙관론과 비관론 두 갈래로 나뉜다. 미국 경제가 V 자형 회복을 보일 수 있다는 것과 더 깊은 L 자형 침체로 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러나 두 경우 모두 회복의 전제는 백신 개발에 따른 바이러스 종식이다. 프랑켈 교수는 “세계가 공격적으로 공공 의료 부문에 총력을 다하면 올해 말쯤 경제는 V 자로 빠르게 회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옵스펠트 교수는 “6개월 안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후 회복세는 매우 느리고 더딘 데다, 그사이 세계 경제 침체의 골은 더 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는 금융시장뿐만 아니라 기업 가계 등 실물경제까지 무너뜨리는 ‘복합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코로나19 사태는 금융시장뿐만 아니라 기업 가계 등 실물경제까지 무너뜨리는 ‘복합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수요·공급 동시 타격에 멈춰 선 실물 경제

2020년 코로나19 사태는 2008년 금융위기와 시장 급락, 경기침체 등에서 비교되곤 한다. 하지만 두 사건의 차이는 극명하다. 당시 위기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에서 시작됐다면, 올해는 바이러스라는 외부 변수에서 시작됐다. 두 번째는 수요와 공급의 동시 붕괴다. 2008년 주택 시장과 금융시장 붕괴가 수요 위축으로 이어졌다면, 올해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은 수요와 동시에 공급이 무너졌다는 점이 다르다. 세계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시장에 돈을 풀어 위기에 대응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이 자금이 경제의 모세혈관에까지 제대로 흘러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해밀턴 교수는 1인당 1200달러의 현금 지원보다 코로나19로 직접적인 타격을 입은 가계와 소상공인들에게 소득 보험을 제공해주는 식으로 돈이 쓰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한창인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현금 지급은 소비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이어지는 한국의 재난기본소득 논란과 비슷한 맥락이다.

해밀턴 교수는 “팬데믹으로 많은 사업체가 문을 닫았고, 이는 시간제 일자리 노동자들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면서 “재정 지원의 타깃은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가계와 소상공인들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옵스펠트 교수도 “급여세 감세 같은 정책보다 사회 안전망을 튼튼히 하고 기업 활동이 지속되도록 지원하고 기업이 사람을 해고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더 많은 부양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연준과 정부의 대응이 충분히 빠르고 적절했지만, 경제 위기에 맞서기 위해서는 추가 부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셰이너 선임연구원은 “2조달러 규모의 부양책은 중요한 첫 발걸음이다”면서도 “그러나 위기가 장기화된다면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기 때문에 가계, 주정부와 지방정부, 기업에 대한 더 많은 보조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프랑켈 교수도 “연준도 많은 탄약을 써버렸지만, 전부를 쓴 것이 아니다”라며 “2008년 대응을 뛰어넘는 수준의 새로운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최근 사상 최초 회사채 매입과 같은 급진적인 조치가 대표적이다”라고 덧붙였다.

다만 경제 지원책이 세계 경제를 위기에서 구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명심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실제로 프랑켈 교수는 “지금 노동자와 소비자들이 바이러스를 피하기 위해 집에 머무르고 있다”면서 “통화 정책이나 재정 부양책 규모가 아무리 크더라도 경제 활동의 위축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들은 국제 보건, 경제 등 공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이켄그린 교수는 보건 분야에 중앙은행과 맞먹는 수준의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장 자금 흐름을 보장하고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소비를 장려하기 위해 통화·재정정책을 사용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이런 교과서적 대응은 공급망이 무너지고 감염병 공포가 확산될 때 큰 효과를 내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독립성을 가진 중앙은행처럼 보건당국에도 자율성을 부여해 각국 보건 기관과 협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슬런드 시니어 펠로는 2008년 금융위기 때와 같은 세계 지도자들의 공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부시 대통령은 재무장관회의로 운영되던 G20을 정상회의로 격상시켜 위기에 대응하는 조직으로 만들었다. 오슬런드 시니어 펠로는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해 임기 말인 앙헬라 메르켈 독일 총리, 국제적 위상이 약화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각국 지도자의 협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한국, 재정정책 망설여서는 안 돼”

수출 비중이 큰 한국 경제도 팬데믹 직격탄에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한국 경제는 이번 사태 이전부터 기저질환을 앓고 있었다. 지난해 한국 실질 경제성장률은 2.0%로 2009년 이후 10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경제 활력과 성장 동력이 약화하고 고용 시장도 좋지 않았다. 팬데믹으로 더 큰 충격을 맞이한 한국 경제에 대해 경제 석학들은 발 빠른 부양책으로 속도를 맞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프라사드 교수는 “한국 경제는 경제·금융적 유대 관계에 있는 주요국과 똑같이 매우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옵스펠트 교수는 “다행히 한국 정부는 재정정책 여력이 있다”면서 “이를 쓰는 데 망설여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해밀턴 교수는 다소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중국이 조업 재개에 나선 만큼 한국도 영향권에 있다는 것이다. 중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후베이성을 제외한 중국 전역에서 공장 가동률을 90%대까지 끌어올렸다. 해밀턴 교수는 “중국은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생산 능력과 공급망을 매우 빠르게 재가동하고 있다”면서 “한국 정부가 향후 몇 달간 소득 구멍을 메우기 위해 상당한 지원을 통해 위기를 잘 관리한다면 수요가 반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plus point

긴급진단 참여한 세계 경제석학 7인은 누구?

제프리 프랑켈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대통령 경제자문관을 지낸 거시경제 전문가로 전미경제조사국(NBER) 경기순환위원회 위원으로 활약했다. 2015년부터 3년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모리스 옵스펠트 UC 버클리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학 강의에서 널리 쓰이는 교재 ‘국제경제학’의 공동저자다. 대공황과 국제 경제 전문가인 배리 아이켄그린 UC 버클리 경제학과 교수의 저서 ‘황금 족쇄’는 벤 버냉키 전(前)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의 정책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스웨덴 경제학자인 앤더스 오슬런드 애틀랜틱 카운슬 시니어 펠로는 국제 정책 싱크탱크인 애틀랜틱 카운슬에서 금융·경제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IMF 금융연구 수석으로 활약했던 에스와르 프라사드 코넬대 무역정책학과 교수는 통화정책·중국 전문가, 루이스 셰이너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미 연준 이사로 통화·재정정책을 연구한 전문가다. 조세 전문가인 스티븐 해밀턴 조지워싱턴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미국 사회에 소상공인 세제 혜택과 관련해 목소리를 내는 대표적인 학자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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