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이하 빅히트)는 단순 연예기획사가 아니다. 콘텐츠 기반 플랫폼에 포지셔닝했다. 국내 최대 포털 네이버, 국내 3대 온라인 게임 업체 넷마블, 세계 최대 음반사 유니버설뮤직 등과 손을 잡은 이유다. 빅히트는 1월 28일 네이버와 함께 자사 팬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앱) ‘위버스’를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통합 플랫폼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팬들은 이 플랫폼을 통해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듣고 그들의 일상을 담은 영상을 보며 직접 소통할 수 있다. 앨범은 물론 스타 관련 기획 상품(굿즈)도 판매한다. 빅히트는 2월 18일에는 세계 최대 음반사 유니버설뮤직과 합작사를 설립, K팝 보이그룹 육성에 나선다고 밝혔다. 앞서 2019년부터 협업체제를 구축한 넷마블을 통해 소속 아티스트 IP(지식재산)를 이용한 게임 사업까지 하고 있다.

빅히트의 행보는 산업 지형도를 바꾸는 게임체인저로 부상한 플랫폼에 올라탄 한 사례일 뿐이다. 전자상거래 포털 SNS(소셜미디어) 등 플랫폼 사업 모델이 먼저 적용된 영역에서 시장지배력을 키운 플랫폼 강자들은 산업 경계까지 무너뜨리며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커머스에서 시작해 콘텐츠, 금융, 헬스케어, 모빌리티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한 알리바바가 대표적인 사례다. 플랫폼에 이(異) 업종 비즈니스를 올릴 수 있다는 건 이들의 강력한 무기다. 기존 시장을 지배했던 오프라인 중심 기업들이 가장 경계하는 부분이다.

국내 금융 시장을 보자. 은행들은 미래의 적(敵)으로 다른 경쟁 은행이 아닌, 은행업에 진출한 SNS 카카오를 꼽는다. 국민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이라는 강력한 플랫폼을 지녔기 때문이다. 4500만 명이 사용하는 카카오톡은 은행 서비스를 위해 찾는 모바일 은행 앱보다 고객 접점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다. 쇼핑, 콘텐츠, 게임 등을 위해서도 카카오톡을 쓰는 사용자들을 금융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

앱 스토어라는 플랫폼으로 스마트폰 시장을 키운 애플과 중국 최대 검색포털 바이두가 자율주행차 시장을 넘보는 것도 기존 산업의 경계를 허무는 플랫폼 전쟁의 가열을 보여준다. 애플은 협업을 제안하고 있지만, 하청 업체로 전락할 것을 우려한 자동차 기업들의 견제로 파트너 잡는 데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플랫폼 강자 vs 기존 오프라인 강자

플랫폼 기업에 위협을 느낀 오프라인 중심의 기존 강자들은 현 시장을 지배하는 플랫폼에 올라탈지, 독자적인 플랫폼을 구축할지 갈림길에 섰다. 1등 플랫폼과 손을 잡으면 단기적 효과는 분명하다. 그러나 플랫폼에 묻힐 수 있다. 전문가들은 자신만의 킬러 콘텐츠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쉬운 문제가 아니다. 미래를 보고 독자 플랫폼을 구축하려면 1등 플랫폼과 경쟁해야 한다. 올 2월 뉴욕증시 상장을 신청한 전자상거래 플랫폼 쿠팡의 가치는 이마트, 롯데쇼핑, GS리테일, 신세계, BGF리테일, CJ대한통운 등 국내 경쟁사 6곳의 시가총액을 다 합친 것보다 많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추정한 쿠팡의 기업 가치는 500억달러(약 55조원) 이상이다.

기업들이 플랫폼 비즈니스를 고민하는 이유는 산업이 온라인 플랫폼을 중심으로 재구성되는 ‘플랫폼화(platformization·플랫포마이제이션)’ 물결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조선’은 아마존이 설립된 1994년부터 세계 첫 스마트폰인 애플의 아이폰이 등장한 2007년까지를 ‘플랫폼 전쟁 1.0 시대’로 정의했다. 중국에선 3대 인터넷 플랫폼인 텐센트·알리바바·바이두가 각각 1998년, 1999년, 2000년 설립됐고 국내에선 1999년 네이버가 서비스를 론칭했다.

이후 모바일 플랫폼이 주도하는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을 ‘플랫폼 전쟁 1.5 시대’로 봤다. 모바일 인터넷 시대는 플랫폼 고객층을 사무실과 집 안에 있을 때만 접근할 수 있는 사용자에서 언제 어디에 있든 원할 때 접근할 수 있는 모든 사용자로 확대했다.

사물인터넷(IoT)·빅데이터·인공지능(AI) 응용 확산으로 플랫폼이 개인 맞춤형으로 진화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진 2018년부터를 ‘플랫폼 전쟁 2.0 시대’로 정의했다. 2019년 5G(5세대 이동통신) 시대 개막도 산업의 디지털화를 가속화하며 플랫폼 경쟁을 가열시키고 있다.

플랫폼 확장의 바탕에는 오픈이노베이션이 있다. 애플이 2007년 아이폰을 출시했지만, 당시 아이폰은 애플만이 앱 스토어에 앱을 올릴 수 있는 폐쇄적 공간이었다. 이후 애플은 타사 개발자의 창의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2008년 앱 스토어를 개방했다. 모바일 콘텐츠 장터, 즉 현 플랫폼 비즈니스의 가장 기본이자 중요한 스마트폰 플랫폼의 시작이었다.

플랫폼 기업들의 공세는 글로벌 빅테크 탄생으로 이어졌다. 애플과 인터넷 포털 구글·네이버와 SNS 페이스북·카카오와 이커머스 아마존·알리바바·쿠팡과 공유 플랫폼 우버·에어비앤비와 OTT 넷플릭스 등이 플랫폼 강자로 떠올랐다.


플랫폼으로 주력 사업 갈아타는 기업까지 등장

플랫폼 전쟁 2.0 시대에는 업종 간 경계가 무너지는 ‘빅블러(Big Blur·경계 모호)’ 현상도 빈번해지고 있다. 현재까지는 강력한 플랫폼을 지닌 기업이 이런 전쟁을 주도하지만, 오프라인 강자들의 반격도 거세다. 국내 오프라인 유통 강자 신세계는 ‘인터넷 플랫폼 1등’ 네이버와 다양한 방안의 협업을 논의하고 있고, CJ는 이미 네이버와 이커머스·영상 콘텐츠와 관련, 전략적 동맹을 맺었다. SK는 11번가를 통해 ‘유통 공룡’ 아마존과 협업에 나섰고, 티맵모빌리티를 기반으로 세계 최대 차량 공유 업체 우버와 손을 잡고 차량 공유, 택시, 대리운전 등 모빌리티 공략을 강화하고 나섰다. 현대차는 모빌리티 서비스 기업으로의 변신까지 준비 중이다. 지난해 말 정의선 현대차 회장은 “미래에는 (현대차 사업 구조가) 자동차 50%, UAM(Urban Air Mobility·도심항공모빌리티) 30%, 로보틱스가 20% 정도 될 것”이라며 “이 틀 안에서 서비스를 주로 하는 회사로 변모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플랫폼 비즈니스는 사업 기반을 다지고 핵심 역량을 개발하는 등 과거 비즈니스와 비교해 플랫폼에 콘텐츠를 잘만 올리면 빠르게 성공할 수 있는데, 기업이 굳이 플랫폼 비즈니스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성공할 수는 없다.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수많은 기업이 엄청난 상품·서비스를 플랫폼을 통해 판매할 텐데, 소비자 입맛에 딱 맞게 추천할 수 있는 빅데이터, AI 등의 기술과 소비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매력이 있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며 “향후 10년 안에 플랫폼 기업들의 통폐합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플랫폼 전쟁 2.0 시대’는 현재 진행형이다.

박용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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