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내로라하는 프로 바둑 기사들이 허탈감에 빠졌다. 구글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에서 이 9단이 잇따라 패하자 모두가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지난 40년간 소프트웨어(SW)와 인공지능을 연구해온 필자는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이세돌 9단이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마치 주판을 들고 전자계산기에 도전하는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알파고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기계와 인간의 맞대결보다는 과학자들의 집단지성이 한 명의 인간을 이겼다는 관점으로 이번 대결을 지켜보자. 인공지능의 발전이 미래 인류와 한국 현실에 어떤 변화를 촉발할지 고민하고 대비해야 한다.


바둑은 알파고가 유리할 수밖에 없는 게임

딥러닝은 처음 나온 개념이 아니다. 이미 오랫동안 과학자들이 연구한 이론을 딥마인드 개발자들이 훌륭하게 적용한 것이 알파고다.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 심층 인공 신경망에 대한 연구는 수십 년 동안 과학자들이 이룩해 놓은 인간 집단지성이다. 인간 집단지성의 총체인 알파고가 한 명의 인간을 이긴 것이다. 어찌 보면 알파고가 이기는 것은 당연하다.

필자는 딥러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았지만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궁금해하며 대결을 지켜봤다. 뚜껑을 열고 보니 알파고의 완승이었다. 5 대 0으로 이세돌 9단이 진다고 해서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다. 바둑은 경우의 수가 유한하지만 엄청나다. 가장 좋은 수를 찾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알파고가 유리할 수밖에 없는 게임이다.


인공지능으로 역동적이고 풍요로운 사회 만들 것

알파고 ‘사건’을 계기로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가까운 미래에 내 일자리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퍼지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인공지능이 발전한 사회는 역동적이고 풍요로운 사회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인간이 하는 일을 기계가 대신한다면 적용 분야에서 엄청나게 생산성이 높아진다. 농사를 인공지능 기계가 대신 짓는다면 먹고 살려는 목적으로 일하지 않아도 된다.

생산성이 높아져서 기본 의식주가 해결되면 인간은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할 수 있다. 인구, 환경 오염 등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이 풍부한 세상이 정말 풍요로운 세상이 아닐까. 이런 문제들은 본질적으로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인공지능의 도움이 필요하다. 인공지능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려면 경제 성장에 대한 인식과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도 필요하다. 현재 경제성장의 바로미터는 국내총생산(GDP)이다. GDP가 높아지면 발전이고 줄어들면 퇴보라는 식이다. 소프트웨어 중심의 사회에선 이런 논리는 낡은 개념이 될 것이다.


기계에 지배 당하는 인간? 있을 수 없다

알파고 ‘사건’을 계기로 인간들이 무기력증에 빠졌다는 내용의 보도를 접했다. 인간이 무릎을 꿇었다는 표현도 나온다. 인공지능은 ‘약한 인공지능’과 ‘강한 인공지능’으로 구분한다. 강한 인공지능은 자의식이 있고 의욕, 부끄러움, 사랑 등 감정이 있는 컴퓨터를 말한다. 만일 강한 인공지능이 인류를 미워해서 공격하지 않을까 걱정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토록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인공지능이 발전하면 사람의 감정이나 사랑을 흉내내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것도 상당히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인간의 자의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직 모른다. 그래서 강한 인공지능이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인공지능의 약점은 없을까?

딥마인드 개발자들도 지난해 10월 판후이와의 대국 이후 업그레이드된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 두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개발자들도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대결에서 어떻게 둘지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개발자도 알파고의 능력을 모른다는 것이다. 알파고는 항상 이길까? 인공지능은 약점이 없을까? 바둑의 경우의 수는 유한하기 때문에 한참 후에는 항상 이기는 바둑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겠지만 지금의 알파고는 항상 이기지는 못한다. 또 사람이 쉽게 하는 것을 인공지능이 못하는 것이 많다.

이런 예를 들어 보자. 인간은 몇십 년 지난 친구 얼굴을 우연히 만나도 금세 알아차린다. 인공지능은 이렇게 하기는 아직 어렵다. 한다고 해도 엄청난 데이터와 컴퓨팅 파워를 써야 한다. 그러나 사람은 훨씬 적은 에너지를 뇌에서 소비해 친구를 알아본다. 그런 관점에서 두뇌에 대해 연구를 하는 것이 인공지능 연구에 도움이 된다.


인공지능의 ‘맹아’ 영국은 초중고에서 수학만큼 컴퓨터 가르쳐

논제를 바꿔 소프트웨어 전공자로서 우리나라 현실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몇 년 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왜 우리나라에선 닌텐도 같은 회사가 안 나오나’라는 질문을 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창의성, 학문적 토양, 새로운 것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공지능도 다를 바 없다. 딥마인드는 10여명의 인력이 2년 동안 이끌어온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다. 바둑 인공지능만 연구했다. 만일 우리나라에서 바둑 연구한다고 스타트업 만들었다면 ‘고운 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

영국은 수학과목과 같은 수준으로 초중고에서 소프트웨어를 가르치지만 우리나라는 최근에 적은 시간이 포함됐다. 미국이나 유럽에선 컴퓨터 과학 전공자가 전체 이공계의 절반 수준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전반적으로 과학기술, 특히 컴퓨팅에 대한 소양이 부족하다. 알파고를 계기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세상이 변화하며, 학문의 축이 컴퓨팅으로 변화했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알아차렸으면 좋겠다.

오늘날 인공지능 성공의 원동력은 컴퓨터의 계산 능력, 공개 소프트웨어로 대변되는 집단지성, 그리고 충분한 데이터다. 구글은 이미 알파고를 만든 딥러닝 소스코드를 공개했다. 우리나라 학자들의 수준이 구글이 공개한 오픈소스를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낮지 않다. 컴퓨터 하드웨어도 돈만 있으면 살 수 있다. 문제는 데이터다.

충분한 데이터가 있는 영역을 잘 선택하면 우리도 수준 높은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다. 한 예로 의학 지식과 진료 기록을 학습해 병을 진단하고 치료 방법을 제안하는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다. 국내 데이터 공개 수준은 매우 낮다. 적어도 국가에서 갖고 있는 데이터는 공개해야 한다. 이제 새로운 혁신에 도전해야 할 때다. 그 방법에 대한 답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


▒ 김진형
서울대, 미국 UCLA 전산학 박사, Hughes 인공지능센터 선임연구원, KAIST 전산학과 교수, KAIST 인공지능연구센터 소장, 한국인지과학회 회장, 한국정보과학회 회장, 현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장.


강한 인공지능(Strong AI) 약한 인공지능(Week AI)
기계가 학습 능력만 갖추면 약한 인공지능, 독립성과 자의식을 갖추면 강한 인공지능이라고 부른다. 최근 대부분 기계 학습의 성과는 약한 인공 지능의 산물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공지능은 강한 인공지능을 말한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엘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는 강한 인공지능, 즉 초지능(Super Intelligence)이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진형 KAIST 명예교수 / 정리 : 김민수 조선비즈 산업2부 기자 / 사진 : C영상미디어 염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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