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건축계의 살아있는 전설’, ‘한국 건축의 교과서’. 모두 김종성(82) 건축가를 일컫는 별명이다. 김종성 건축가는 한국 현대건축 1세대로 세계 근대건축 4대 거장 중 한 명인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를 스승으로 삼은 유일한 한국인 건축가다.

김종성 건축가는 미국 일리노이공과대에서 건축학 학사, 석사 학위를 받고 미스 반 데어 로에 건축연구소에서 근무했다. 일리노이공과대 건축학 조교수, 일리노이공과대 건축학 계획, 디자인(Plan-ning&Design) 학장을 역임했고 현재 서울건축종합건축사 사무소 명예대표를 맡고 있다. 최근 현대자동차그룹은 한전부지에 들어설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의 설계책임자로 김종성을 선임했다.

현대차그룹 GBC의 설계 책임을 지게 된 소감이.
“지금 가장 집중하는 업무입니다. 멋진 건물을 만들어야겠지요(웃음). 현대자동차그룹은 15개월 전에 현상 설계를 두 번 시행해서 건물을 설계할 조직 두 군데를 선발했습니다. 하나는 105층 사옥을 설계할 스키드모어오윙스앤드메릴(SOM)이라는 회사고 나머지는 자동차 전시관, 공연장, 작은 사무실동, 호텔, 작은 규모의 컨벤션을 설계하는 NBBJ라는 회사입니다. 제가 할 일은 이 두 회사가 ‘하나의 언어’로 건물을 짓도록 마스터 플랜을 짜는 것입니다.”

구상 중인 콘셉트가 있나요.
“국제적인 기업인 현대자동차 위상에 걸맞은 이미지를 만들 것입니다. 이번 건물은 건축이자 회사의 CI(corporate identity)입니다. 그만큼 현대차라는 기업을 잘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GBC가 서울시민, 더 나아가서는 우리 국민 모두에게 이바지할 수 있는 공공적인 시설물이 되도록 해야겠지요. 건축하는 사람으로서 제 개인적인 목표는 한국 건축 문화에 일조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김종성이 열다섯 살이 되던 1950년에 6.25 전쟁이 발발했다.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서울에 돌아오니 한옥은 모조리 불타 없어졌고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무허가 판자촌에 모여들었다. 청년 김종성은 폐허가 된 서울을 보며 건축가가 되기로 했다. 그렇게 서울대 건축학과에 입학한 지 2년 만에 그는 일리노이공과대로 유학해, 모더니즘 건축 거장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제자가 됐다. 졸업 후 김종성은 모교인 일리노이공대에서 건축학 교수로 일하던 도중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남산 자락에 힐튼호텔을 지어달라고 요청하자 1978년 서울로 귀국하게 된다.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어떤 점에 매료된 건가.
“대학 시절 헌책방에서 발견한 책에 미스의 건축물이 나왔는데, 마치 한국의 목조 건물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대부분 서양 근대 건축물은 석고를 이용해 빚어낸 조각품 같은데 미스의 건물에는 한옥에서 볼 수 있는 기둥과 보, 서까래의 흔적이 보였습니다. 우리 문화와 닮은 그의 건축 언어에 반했습니다.”

건축가 김종성은 43세에 서울 힐튼호텔을, 48세에 육군사관학교 도서관을, 그리고 50세에 부산 파라다이스 비치호텔을 설계했다. 서울 올림픽공원 내 역도경기장(현 우리금융 아트홀), 경희궁 터에 자리한 서울역사박물관, 서린동 SK빌딩도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건축 환경이 매우 어렵다. 후배 건축가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건축의 본질이 무엇인지 차분하게 배워야 합니다. 요즘 건축과 관련된 정보를 쉽게 접하게 됐는데, 객관적인 시각이 없으면 자칫 현혹될 수 있습니다. 외국 건축 잡지를 보면, 화려하게 포장한 조형 언어가 멋있어 보이죠. 하지만 건축의 본질은 비바람을 막아주고 오래 서 있는 것입니다. 세월이 지나도 허물어지지 않는 건물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배정원 조선비즈 문화부 기자 / 사진 :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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