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23일 노조 파업으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생산 라인이 멈춰서 있다.

저유가(油價)와 환율 급등락이 일상화되면서 글로벌 경제의 큰 흐름이 바뀌고 있다. 변화의 방향은 신흥국의 퇴조와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의 부활이다. 고유가 덕에 손쉬운 경제성장에 취해 있던 브라질, 러시아 및 중동 등 산유국 경제가 급격히 무너졌다. 중국과 인도는 방대한 시장을 바탕으로 그나마 성장세를 유지하지만, 언제까지 이어질지 불안한 상황이다. 방향성도 문제지만 1년 사이에 유가가 반 토막 날 정도로 거시경제 변수가 급변하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이런 점에서 지금은 자동차 업계도 대응 속도를 높여야 할 시점이다.

현대차그룹은 그동안 브릭스(BRICs) 등 신흥국 위주의 성장 전략을 펼쳤다. 이제 신속한 전략 전환이 절실하다. 현대차의 중요한 성장동력은 이른바 ‘값싸고 연비 좋은 차’를 신흥국 현지 공장에서 만드는 것이었다. 이런 차들은 만들기만 하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그러나 그런 호시절은 지나갔다. 미국과 유럽의 선진 시장에서 레저용 차량(RV), 럭셔리 등 고급 차종 위주로 주력 차급을 상향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됐다. 이제 ‘아반떼, 쏘나타’의 시대에서 ‘투싼, 제네시스’의 시대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 현대차가 목표 차급을 높이면 선진 업체들의 텃세와 견제가 심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에서 현장 생산조직에 요구되는 것은 ‘유연성’이다. 유가 급등락과 신흥국 수요 부진으로 이전과 같은 정적인 생산계획이 불가능하게 됐다. 급변하는 상황에 맞춰 생산량과 기종별 비중을 자유자재로 변화시켜야 하는 과제에 직면한 것이다. 미국과 중국 시장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비중은 각각 55%와 40%에 달하지만 현대차, 기아차의 SUV 판매 비중은 20~25%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저유가로 소비자의 선택이 변하고 있는데도 현대차는 소형 세단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상황이다.

여기에 터보, 듀얼클러치 트랜스미션(DCT), 디젤, 하이브리드,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전기차 등 파워트레인의 세분화가 진전되면서 같은 차종 내에서도 세부 기종의 다양성이 커졌다. 글로벌 시장 변화에 적극 대응해 기종별 공급량을 조절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과제인 것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노사(勞使) 협상과 연례 행사처럼 되풀이되는 부분 파업으로 조업에 차질이 생겨 생산 계획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화 잠정 합의안이 두 번에 걸쳐 부결됐다는 점도 실망스러운 일이다. 국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연봉을 자랑하는 현대차에서 통상임금과 임금피크제 등 과거 잔재를 해결하는 것이 수년째 지연되고 있다. 이는 요즘 진행 중인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급격한 변화가 가져 올 리스크를 간과하는 것처럼 보여 적잖이 우려된다.

해외 경쟁사와 비교하면, 현대차의 노사 관계가 기업 경쟁력 향상에 얼마나 큰 부담이 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1950년 이후 65년째 이어진 도요타의 무분규 타결은 2010년 리콜, 2011년 대지진에 이은 엔고(円高)까지 이겨 낼 수 있는 토대가 됐다. 폴크스바겐도 1990년대 노동시간 유연화와 2000년대 노사정 대타협 등 노사 관계 개선에 성공해 오늘날 독일 자동차 산업이 막강한 경쟁력을 갖추게 하는 데 기여했다. 과도한 복지 혜택으로 파산했던 제너럴모터스(GM)의 부활 배경에는 이중 임금제(2-tier wage system)와 3년간의 기본급 동결이 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례다. GM과 도요타 모두 2015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공장 생산성 지표를 비교해도 현대차는 생산성은 낮지만 급여 수준은 오히려 높다. 2014년 기준, 현대차가 차량 한 대를 생산할 때 걸리는 시간(HPV)은 26.4시간이지만 도요타는 24.1시간이다. 하지만 1인당 평균임금은 현대차가 9234만원으로 도요타(8351만원)보다 높다. 사업장 내 전환배치와 공장 간 물량조정 같은 유연성이 낮다는 점과 노사 협상과 파업이 연례 행사처럼 되풀이되는 점을 고려하면, 현대차 한국 공장의 생산성에는 개선의 여지가 크다고 생각된다.

그래도 최근 현대차의 몇 가지 노사합의 사례는 희망적인 변화를 기대하게 한다. 노사 합의로 2015년 울산공장에서는 제네시스와 신형 투싼의 생산량을 증산했고, 2016년에는 제네시스 EQ900 생산량을 기존 대비 두 배인 3만2000대로 늘렸다. EQ900 주문량이 내수시장에서만 1만6000대를 넘어섰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합의가 없었더라면 수출 물량을 대는 것은 고사하고 내수 대기에만 1년 가까이 걸렸을 것이다. EQ900 판매 가격이 8000만원에서 1억원 안팎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노사합의와 실행으로 현대차의 연매출이 1조원가량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합리적 노사 관계가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 상위 5개 메이커 중 매년 노사 갈등이 표출되고 결국 파업이 반복되는 브랜드는 현대차밖에 없다. 급변하는 세계 경제 앞에서 노사갈등은 적전분열(敵前分裂)일 뿐이라는 공감대 형성이 시급하다.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후세에 물려줄 우리의 글로벌 대표 기업이 변화의 타이밍을 놓치게 한다면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노사가 공히 이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노사가 합심해 고용과 수익성을 높이고 경제 선순환의 본보기를 만든 이후 결실을 나눠 가져야 한다. 현대차가 지금까지 쌓아 올린 기술력과 브랜드의 펀더멘털(기초체력)로 보면 이런 ‘상호승리(win-win)의 노사관계’는 충분히 꿈꿔 볼 수 있다.


▒ 신정관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과, 동 대학원 산업공학과 박사, 옥스퍼드대 MBA, 전자통신연구소(ETRI), KT경제경영연구소, 삼성증권, 현 KB투자증권 애널리스트(이사).


임금피크제 놓고 노사 갈등 예상

박용선 기자

현대자동차는 올해도 파업을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1987년 노조 설립 이후 파업 없이 지나간 적은 단 4차례에 불과하다. 매년 연례행사처럼 파업이 발생한 셈이다. 올해도 통상임금과 임금피크제 시행 등 노사 간 쟁점이 수두룩하다.

현대차 노사는 3월 17일 울산공장에서 노사협의회를 가졌다. 하지만 주요 쟁점인 임금피크제 시행을 두고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서로의 입장 차이만 확인했다. 현대차는 임금피크제를 전사로 확대할 방침이지만 노조는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현재 임금피크제는 만 58세를 정점으로 59세는 동결, 60세는 임금 10% 감소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현대차 노사는 지난해 6월 2일부터 7개월간 32차례 교섭을 벌여 12월 28일에야 ‘2015 임단협’을 타결했다. 하지만 임금피크제 도입에서는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노조 파업이 발생했고, 이에 따른 생산차질액은 약 2230억원으로 추정된다.

현대차는 중국 시장의 판매 부진 등으로 어느 때보다 어려운 상황이다. 노사가 합심해도 모자랄 판에 발생하는 노조의 파업은 현대기아차의 발목을 잡는다. 김동욱 한국경영자총협회 기획홍보본부장은 “현대차 노동조합이 교섭하기 전 내부적으로 파업 일정까지 정해두고 있다”며 “현대차도 원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어 파업이 마치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고 있다”고 말했다.

신정관 KB투자증권 애널리스트 / 사진 :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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