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는 신속한 의사결정과 시장 대응 능력을 높이기 위해 지역 중심에서 제품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했다. 사진은 도요타 미국 텍사스 공장.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이 내연기관 운전자 주행에서 ‘전기동력 자율주행차’로 변화하자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이 성장전략을 변경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완성차업체는 수직 계열화를 통해 핵심부품의 내재화를 추진하며 성장했다. 주요 시장에 판매법인과 생산 공장을 설립하고 현지 소비자 취향에 맞는 모델을 개발해 수출(세계화)하거나 현지 생산하는 현지화 전략을 추진했다.

자동차업체들은 제품, 공정, 서비스의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고 수익을 창출했다. 포드의 대량생산 방식(컨베이어 시스템)은 생산성을 높여 원가 절감에 이바지했으며 제너럴모터스(GM)의 차별화 전략과 회계 및 생산관리 전략은 GM을 세계 최대의 자동차업체로 등극시키면서 현대 경영학의 기초가 됐다. 도요타의 혼류(混流) 생산방식(1개 생산라인에서 여러 차종을 동시에 만드는 생산방식)과 적기 공급방식 및 전사적 품질경영(TQM, Total Quality Management)은 다양한 모델을 효율적으로 생산, 공급함으로써 소비자 만족을 극대화하고 재고 비용을 최소화할 길을 열었다.

자동차업체들은 외부환경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면서 성장 기반도 강화했다. 1970년대 고유가와 화석연료 고갈 우려, 주요국 정부의 환경, 연비, 안전 규제 강화는 자동차업체가 친환경 자동차 개발을 촉진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자동차업체 대부분은 성장 과정 중 시련을 겪었다. 미국 자동차 빅 3(GM, 포드, 크라이슬러)는 1970년대 말 이후 부침을 거듭했다. GM은 파산, 크라이슬러는 재매각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직면한 바 있다.

1980년대 이후 승승장구하던 일본의 빅 3(도요타, 혼다, 닛산)도 마찬가지였다. 기술혁신의 대명사로 불리던 닛산은 외국 자본에 넘어가고, 도요타는 양적 성장 그늘이 품질경영에 드리우면서 대규모 리콜과 적자의 늪에 빠졌었다. 1990년대 이후 클린 디젤로 내연기관의 신화를 써 온 폴크스바겐 역시 배출가스 조작이라는 오명을 쓰고 탈출구를 찾고 있다. 모두 양적 성장과 단기 수익 제고 지향형 경영이 초래한 결과로 평가된다.

금융위기 이후 GM, 도요타, 폴크스바겐 등 세계 자동차산업을 이끌던 기업이 최악의 시련에 직면하자 주요국 정부는 자국 자동차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지원과 규제 정책을 강화했다. 또 소비계층이 베이비붐 세대에서 X, Y, 밀레니엄 세대로 변하면서 친환경, 고안전, 고편의 자동차 개발과 상용화 요구가 더욱 강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자동차업체들은 기본역량을 강화하고 공급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성장전략을 바꾸고 있다. 협력적 노사(勞使)관계와 부품업체와의 동반자적 협력관계 등을 통해 원가를 절감하고 생산 효율성도 높이고 있다. 제품 전략도 내연기관의 성능과 효율성을 높이고, 저가 모델과 고가 모델을 동시에 개발하면서 친환경 자동차 모델을 다양화하고 있다. 생산설비의 스마트화와 모듈화도 가속하고 있으며 고객에 대한 차별화된 서비스도 강화하고 있다. 글로벌 생산 및 판매 네트워크도 확대하고 있다.


위기 딛고 성장하는 글로벌 자동차업체

자동차업체들이 무엇보다 중시하고 있는 점은 바로 혁신 전략이다. 자동차업체들은 디지털화, 경량화, 전기동력화와 새로운 이동성(mobility) 실현을 목표로 연구개발(R&D) 투자를 증대하고 있다. 전략적 기술제휴와 인수합병(M&A)도 확대하고 있다. 2014년 세계 자동차산업의 R&D 투자는 1000억유로(약 133조4000억원)를 웃돈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3분의 1인 343억유로가 독일 자동차업체들이 투자한 금액이다.

금융위기 이후 촉발된 완성차업체 간 M&A가 마무리된 후 자동차 부품업체들의 M&A를 통한 대형화 경쟁이 가속하고 있는데, 2015년 주요 부품업체의 M&A 금액은 전년 대비 3.4배 증가한 480억달러(약 58조3000억원)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자동차업계와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 전략적 기술제휴와 지분투자를 증대하고 있는 이유는 필요한 자산과 경험, 비용을 분담하고 위험을 회피하면서 단기간 내에 성과를 내기 위해서다.

자동차업체들은 비즈니스 모델 개선과 조직 혁신도 단행하고 있다. GM은 커넥티드카(자동차와 IT기술을 융합해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자동차) 관련 서비스사업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고 포드는 자동차 제조사를 넘어 이동을 위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빌리티 컴퍼니’로의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GM 역시 공유경제로 인한 소비자 구매 패턴 변화(자동차 대여 증가)와 다가오는 미래 자율주행차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

최근 도요타, 폴크스바겐의 움직임도 눈에 띈다. 도요타는 신속한 의사결정과 시장 대응 능력을 높이기 위해 지역 중심에서 제품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했다. 판매 물량이 1000만 대를 넘어서면서 조직이 복잡해지고 품질관리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요타는 피라미드형 조직을 수평형 조직으로 개편해 현장에서의 결정권도 강화했다. 폴크스바겐은 R&D 조직을 소형, 준중형, 대형과 전기차 4개 그룹으로 재편하고 기능별로 분산돼 있던 의사결정 권한을 그룹별로 통합, 관리하도록 했다. 또한 유럽에 디지털화를 위한 센터를 구축하고 디젤게이트(Dieselgate) 오명을 씻기 위해 전기동력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ICT업체들도 커넥티드카와 자율주행차 개발, 상용화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구글, 애플뿐 아니라 차량 공유 서비스업체인 우버, 리프트도 모빌리티 서비스사업에 진출했다. 이런 경쟁구조의 변화는 자동차업체들이 그동안 쌓아온 브랜드 가치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


한국 자동차산업… 관망 후 추격자 전략 통하지 않아

최근 국내 제조업 위기론이 불거지면서 자동차산업에 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완성차 수출이 3년 연속 감소하고 부품 수출도 지난해에 처음으로 줄었다. 자동차산업 수익률이 하락하고 있다. 한국 자동차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은 그동안의 양적 성장 전략에서 벗어나 질적 성장을 위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현대차는 ‘이동의 자유’를 실현한다는 목표 아래 4대 핵심영역을 설정해 전기동력 자율주행차 시대에 대비하고 있다.

현대차는 친환경차, 커넥티드카 등 미래형 자동차 개발을 위해 2015~2018년 13조3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 중 11조3000억원은 친환경차 기술개발에 투입하고 친환경 기술과 스마트카 개발을 담당할 인력 3200여 명을 포함해 7300여 명의 R&D 인력을 채용할 계획이다. 나머지 2조원은 스마트카 기술개발에 들어간다.

이를 바탕으로 현대차는 2020년까지 평균 연비를 25% 향상한다는 ‘2020 연비 향상 로드맵’에 맞춰 친환경차 라인업을 현재 9개 차종에서 26개 차종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수립했다. 세계 2위 친환경 자동차업체로 자리매김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현대차는 도전적 목표를 설정해 제품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전기동력 자율주행차 개발과 상용화에선 그동안 추진해온 관망(wait&see) 후 빠른 추격자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이제는 현대차가 국내외 연관 산업 내 업체와의 제휴를 통해 전기동력 자율주행차 산업생태계 조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때다.

현대차는 경쟁사보다 일찍이 모듈생산방식을 도입하고 협력업체와 공동으로 공급망 디지털화를 통해 생산 효율성을 높여왔다. 그러나 아직도 내부적인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개선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설비투자보다 해외 직접투자가 증가해 국내 생산기반이 점차 약화하고 있다. 또 현대차는 수직계열화를 통한 핵심 부품의 내재화와 수직통합적인 거래관계를 통해 경영 효율성을 높여왔으나 기존 비즈니스 모델의 유효성이 지속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전략적 제휴나 연관 산업 내 기업 인수 및 개방형 혁신이 상대적으로 부진하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노사가 위기에 공감하고 소통을 확대하는 한편 내부투자를 바탕으로 한 독자 성장전략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동안 현대차는 가격대비 성능비가 높은 모델로 신흥개도국 시장을 선점하고 품질과 디자인경영을 바탕으로 선진시장 점유율을 확대해왔다. 그러나 선진국 경쟁업체들이 금융위기 이후 구조개편을 통해 원가를 절감하고 판매모델과 시장을 다변화하고 있고 신흥개도국 경제성장이 둔화하면서 수요 부진으로 판매 물량 증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세계 수요가 승용차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미니 밴 등으로 전환되고 있으나 현대차는 상대적으로 모델 부족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급업체와의 수평적인 협력을 통해 R&D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세계 자동차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독일의 R&D 투자는 연 40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국내 자동차산업의 R&D 투자는 6조원에 그치고 있다. 국내 자동차산업 R&D 투자의 70%를 현대차가 담당하고 있고 비(非)현대차그룹 부품업체의 R&D 투자 비중은 20%에도 못 미치고 있다. 독일 자동차산업 R&D 투자의 40%를 부품업체가 담당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국내 자동차산업의 혁신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현대차가 승인도 방식과 공급업체의 R&D 제안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현대차가 세계 5위의 완성차그룹으로 부상한 배경에는 강한 기업가정신과 도전정신 그리고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공개기업이자 가족경영 형태로 성장했고 3세 경영 시대를 앞두고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설립과 지속가능 성장기반 강화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도요타, 폴크스바겐과 포드가 3~4세 경영을 통해 안정적인 성장기반을 구축하고 ‘도요타시티’와 ‘볼프스부르크’를 상징적인 랜드마크로 개발했다는 점에서 차질 없는 경영승계와 투자가 한국 자동차산업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한국 정부 수소연료전지차, 자율주행차 지원 계획 혼선

국내 자동차산업의 지속가능 성장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자동차업계의 효과적인 성장전략과 함께 정부의 당근과 채찍 정책이 강화돼야 한다. 국내 자동차산업은 산업 초기 정부의 체계적인 육성정책에 따라 안정적인 성장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내 자동차산업 구조가 독과점 형태를 띠고 자동차산업이 복잡해지면서 산업정책 주무 부처도 다변화되며 지원 효율성이 저하됐다.

전술한 바와 같이 금융위기 이후 자동차생산국 정부가 자동차산업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자동차산업이 제조업 성장의 견인차이자 혁신을 주도하고 중산층을 두껍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동차산업 정책의 통합 조정 기능이 필요하다. 최근 미국 정부는 자율주행차 개발과 상용화에 향후 10년간 40억달러(약 4조7000억원)를 지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독일 정부도 전기차 개발과 상용화를 촉진하기 위해 향후 5년간 20억유로(약 2조6000억원)를 지원할 예정이다.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 정부 역시 자동차산업 발전을 위해 전기차의 보급 확산뿐 아니라 자율주행차 개발과 상용화를 지원할 방침이다. 이처럼 경쟁국 정부가 자동차산업 지원을 강화하고 있으나 우리 정부의 수소연료전지차, 자율주행차 지원 계획은 혼선을 빚고 있다. 국내 완성차업체가 수소연료전지차 양산 기술을 세계 최초로 확보한 가운데, 우리나라 자동차산업과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닌 ICT 산업 간 융합이 이뤄지면 전기동력 자율주행차 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 것이라는 해외 전문가들의 평가가 무색할 정도다.

국내 자동차산업이 미래 전기동력 자율주행차 산업생태계 조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선 다학(多學)제 연구개발 인력은 물론 기능별 전문 인력을 육성해 품질과 생산성 향상을 도모해야 한다. 제품, 공정,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과 조직혁신을 지속해서 추진하는 한편 완성차와 공급업체 간의 수평적 협력을 추진하고 성장전략을 다양화하면서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글로벌 자동차산업의 불확실성과 불투명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자동차산업이 변화에 순응할 경우 지속가능 성장기반을 강화할 수 있지만, 반대로 역행한다면 위기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


▒ 이항구
국민대 국제통상대학원 국제경영학 박사, 미국 워싱턴대 MBA, 자동차산업학회 부회장, 대중소기업협력재단 협업연구회 회장,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사진 : 블룸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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