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민들의 대규모 귀농·귀촌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돼가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더욱 거세다. 한 달이 멀다하고 관련 서적이 출간되는가 하면 인터넷 이곳 저곳마다 귀농·귀촌 정보로 넘쳐난다. 귀농·귀촌을 전문적으로 컨설팅해주는 회사까지 생겨나고 있다. 정부도 정책 자금 지원으로 귀농·귀촌을 독려할 태세다. 그러나 귀농·귀촌은 도시에서 살아온 삶의 패턴을 완전히 바꾸는 일이다. 유비무환의 묘를 살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요사이 귀농·귀촌이 하나의 사회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은 1차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 출생자)들이 본격적으로 은퇴 대열에 합류하면서부터다. 이들은 도시화라는 새로운 사회 패러다임을 만들면서 경제 번영을 일군 고도성장기 우리 경제의 역군들이었다. 거대한 패러다임을 만들 막강한 군집영향력을 가진 이들이 도시로 밀려들면서 주거, 교통 등 도시화를 주도했다면 은퇴 역시 엄청난 사회변화로 이어질 조짐이다. 그중 하나가 귀농·귀촌 열풍이다.

아프리카와 북유럽국가 대사를 거쳐 지금은 지방 국립대에서 초빙교수를 지내고 있는 A씨는 내년 본격적인 귀농을 앞두고 현재 모 농업교육기관이 주관하는 귀농학교에서 구슬땀을 흘려가며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미 2년 전 시골로 내려와 귀촌생활의 매력을 만끽하고 있는 그는 강의가 없는 날에는 집 주변 텃밭을 가꿔가며 부인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랜 시간을 해외에서 보낸 그는 자신의 터전에서 현대적이면서도 토속적인 농산물을 생산할 계획이다.  

2011년 귀농·귀촌 인구 전년보다 두 배 증가

귀농·귀촌 수요 증가는 통계상으로 잘 나타난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도시를 떠나 시골로 귀농·귀촌한 가구는 1만503가구로 2010년(4067가구)보다 무려 두 배 이상 늘었다. 올해는 이보다 더 늘어나 지난 6월말 현재 귀농·귀촌가구가 8706가구에 이른다.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는 1만5000가구를 훌쩍 넘길 것으로 보인다.

올 상반기 귀농·귀촌 세대주를 연령별로 살펴보면 50대가 32.0%로 비중이 가장 많았고 60대 이상(25.2%), 40대(24.4%) 순으로 나타났다. ‘50대 이상’의 비중이 많다는 것은 정년이 임박하거나 이미 회사에서 정년퇴직한 퇴직자들의 수요가 많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앞으로 수요 역시 지금보다 훨씬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토연구원이 지난해 말 펴낸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농촌 활성화 전략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대도시 거주 베이비붐 세대 상당수가 농촌으로 이주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거나 구체적인 이주계획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토연구원이 지난해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에 사는 베이비붐 세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6.3%가 농촌으로 이주하고 싶다고 응답했고 13.9%는 구체적인 이주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사회에 귀농·귀촌이라는 트렌드가 처음 생겨난 것은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직후 무렵이다. 대량 실직으로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이들이 현실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귀농·귀촌이었다. 이들에게 당시 귀농·귀촌은 생존을 위한 탈출구에 가까웠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 귀농·귀촌에 다시 불이 붙었다. 다만 기존과 차이가 있다면 은퇴 이후, 즉 인생이모작 차원에서 관심이 커졌다는 점이다. 이른바 귀농·귀촌 2.0시대가 열린 것이다.

1.0과 2.0시대는 귀농·귀촌을 떠나는 연령층부터가 확연하게 대비된다. 농림수산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1년 귀농·귀촌자는 30대 비중이 35.9%로 가장 높았고 40대가 33.3%로 그 뒤를 이었다. 반면 60대는 5.2%에 불과했다. 50~60대 이상을 합쳐도 27% 수준이다. 이에 비해 귀농·귀촌 2.0시대는 50대 이상 비중이 57%로 절반이 넘는다.


폴리페놀이 함유된 조선오이를 하루 4000개가량 수확하는 한 귀농인

청년 실업자, 농촌에서 희망 찾아

또한 최근 귀농·귀촌 트렌드는 갈수록 30세 미만 젊은이들의 비중이 많아진다는 점이다. 2001년 30세 미만 비중이 4.3%였던 것이 올 상반기에는 4.8%로 늘어났다는 통계결과가 이를 잘 말해준다. 황규광 농림수산식품부 경영인력과 사무관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을 구하지 못한 청년실업자들이 영농에 관심을 보이면서 농촌 사회에 새로운 활력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귀농·귀촌 2.0시대가 열리면서 정부도 관련 예산을 대폭 증액 편성했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내년도 귀농·귀촌예산은 올해(639억원)보다 28% 늘어난 812억원으로 편성됐다. 귀농 창업과 주택구입 자금을 600억원에서 700억원으로 늘려 예비 귀농·귀촌자 부담을 줄여줄 계획이다. 시·도지자체의 협조를 받아 일정기간 시골에 살면서 영농기술을 배우는 ‘귀농인의 집’도 대거 짓는다. 또 개별 시·군·구마다 체류형 주거공간과 농업생산, 유통시설, 교육장 등을 마련한다. 

지방 시·군·구 지자체들이 도시민 귀농·귀촌자를 끌어들이려는 경쟁도 치열하다. 도시민들의 인구유입은 세수확대 외에 농촌문화 변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방법에서 탈피, 최첨단 마케팅 기법을 영농에 적용해 농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만드는 것도 앞으로 기대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이유로 주요 시·도지자체들은 빈집 정보 제공과 정책자금 지원, 영농 교육 등 다채로운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고 있다.

그 결과 몇몇 지방자치단체는 귀농·귀촌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인구 증가 효과까지 거두고 있다. 지난해 말 경북 봉화군은 20년 만에 처음으로 주민등록상 군 인구수가 한 해 전보다 늘어났다. 봉화군은 인구수 증가 이유를 출생아수 증가, 이농현상 완화와 함께 귀농·귀촌인구 증가를 꼽았다. 실제로 봉화군은 귀농자에게 이사비용과 빈집 수리비, 귀농 정착 장려금 등을 지원해줘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1712명(703가구)의 도시민이 이사온 것으로 집계됐다. 


한옥·전원주택을 지어놓고 임대숙박업을 부업으로 즐기는 귀촌인들도 늘고 있다.
사진은 귀촌자가 운영하는 강원도의 한 한옥 펜션.


자신의 목적에 맞게 귀농과 귀촌을 선택한다는 것도 귀농·귀촌 2.0시대에 나타나는 트렌드다. 2000년대 초반 시골로 내려간 사람들은 경제적 이유로 귀촌(歸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현지에서 생활하기 위해 어쩔 수 없어 귀농(歸農)을 선택했다. 귀농과 귀촌 간 경계가 불명확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은 예전처럼 시골로 가서 어쩔 수 없이 농사를 짓거나 농사를 짓기 위해 시골로 가는 것이 아니다. 은퇴 후 노년을 편안하게 보내기 위해서라면 귀촌을, 농사를 하나의 사업으로 생각한다면 귀농을 선택한다.

이에 따라 각 지자체들도 귀농자와 귀촌자를 구분지어 관련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아무래도 귀촌자들은 시골에 내려가서 본격적인 농사보다는 텃밭 가꾸기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기존에 살던 집을 그대로 두고 세컨드하우스를 시골에 마련하는 경우가 많다. 자녀들이 오가는 데 편리해야 하기 때문에 광역교통망이 발달돼 있거나 서울과 비교적 가까운 지역을 선택한다. 이런 기준으로 강원과 충북이 인기 귀촌지로 꼽힌다.

반면 귀농자들은 지역 선택 시 가장 중요한 것이 땅값이다. 특산물이 있으면서 땅값만 싸다면 전국 어디든 터전을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 그런 이유로 중부권보다 상대적으로 땅값이 싼 경상·전라 등 남부권이 유망 귀농지로 분류되고 있다.

도시민 귀농·귀촌인구가 늘어나면서 기업형 영농조합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한 새로운 유통 시스템이 속속 선보이고 있는 것도 긍정적인 대목이다. 특히 12월1일부로 시행되는 협동조합기본법은 소규모 방식의 우리 농촌을 기업화·조직화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 법이 시행되면 앞으로 최소 5명 이상으로도 자유롭게 협동조합을 구성할 수 있게 된다.

양주환 한국농수산대 교수는 “품목,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협동조합이 기존 도시민들의 경험과 어우러질 경우 상당한 시너지를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지난 10년간 귀농·귀촌 세대주의 귀농 전 직업을 살펴본 결과 자영업(24.6%), 사무직(18.5%), 생산직(10.8%) 순이었다. 최근 농촌사회에서 도시민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기 위해 체험형 농장이 대거 개설되는 것도 도시민 귀농·귀촌자들이 농촌으로 내려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사회적기업형 수익모델도 등장

한두 명씩 소규모가 아닌 10세대 등 대규모가 동시에 귀농·귀촌 마을을 형성해 새로운 농촌문화를 써가고 있는 사례도 늘고 있다. 충남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에 위치한 숲속마을은 25가구 귀농·귀촌인이 모여사는 공동체다. 이 마을은 지난 2007년 사회적기업 ‘사단법인 숲속마을 교육 사업단’을 만들어 대안학교 형태의 금산 간디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자연친화형 학교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 마을은 매년 3000명 정도의 도시민들이 다녀가는 귀농·귀촌 명소가 됐다.

충남 홍성군 홍동면도 도시에서 내려온 귀농인들이 하나둘씩 모여 친환경 오리농법의 논농사가 성공을 거두는 등 성공적인 귀농·귀촌지역 사례로 꼽힌다. 이곳은 충남에서 단위 면으로는 가장 많은 귀농·귀촌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도서관, 출판사, 생협(생활협동조합) 가게, 비누공장, 대안학교 등 이곳에 있는 모든 공공시설은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귀농·귀촌은 여전히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지금까지의 도시생활을 뒤로하고 시골로 내려가 사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전북 진안군이 지난해 자체 귀농·귀촌자 463명을 대상으로 귀농·귀촌 후 어려운 점을 물은 결과 응답자의 48%가 ‘준비부족’, 13%가 ‘자금부족’이라고 대답했다. 특히 10명 중 1명꼴(11%)로 ‘소득원 확보 실패’를 꼽았다는 것은 중요한 시사점이다.

김창현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평균 3억원 안팎의 부동산 자산과 200만원에 못 미치는 연금 사정이 은퇴를 앞둔 베이비붐 세대들이 귀농·귀촌을 선택하는 데 제약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이유로 정부 정책의 방향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한 농민단체 관계자는 “정부가 청년실업 해소와 베이비붐 세대 은퇴 문제를 귀농·귀촌 정책 지원으로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이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과 똑같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단기 효과를 거두기 위한 생색내기용 정책이라는 비판이다. 차라리 그보다는 도·농 간 정보 교류를 활성화시키고 예비 귀농·귀촌자들의 농촌 체험을 늘리는 등 현실적인 부분에 정부 지원이 집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남 강진의 한 8년차 귀농자의 말이다.

“귀농을 통한 청년실업 해소 대책은 정교해야 한다. 지금처럼 직장을 구하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농촌에 가서 억대연봉을 벌 수 있다는 식으로 홍보하면 나중에 또 다른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 그보다는 정부가 대규모 토지를 내놓고 영농 기업을 만들어 여기에 젊은이들을 채용한 뒤 영농기술 전수와 생산물 유통 등을 지원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뼛속까지 일이 고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농사 맛을 아는 법인데, 지금 도시에서 자란 젊은이들이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시골로 와 농사를 짓는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Mini Interview | 민승규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정책실장

“농업에 스토리텔링 기법 도입해 소비자 감성 호소해야”



민승규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정책실장(전무)은 강연 때마다 ‘가슴 뛰는 농업, 가슴 뛰는 삶’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낙후됐고 고되다는 농업에 대한 선입견이 민 실장에게는 생명과 열정으로 한 차원 승화된다. 민 실장은 산업의 변화라는 깊은 통찰력을 토대로 농업에 미래가 있다고 주장한다.

“예전만해도 농사로 돈을 벌려면 많이 수확하고 값싸게 내다 팔아야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품질이 좋고 안전하느냐가 소비자의 선택기준이 됐습니다. 귀농·귀촌자들이 기존 농민과 똑같이 벼농사, 밭농사를 짓는 건 해보나 마나한 일이에요. 그보다는 도시생활의 경험을 살려 상품에 스토리텔링 기법을 도입하고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할 줄 알아야 합니다.”

농림수산식품부 제1차관과 농촌진흥청장을 역임한 민 실장은 최근 사회적으로 귀농·귀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에 기대감을 표시했다. 농업을 바라보는 시각을 ‘낙후되고 고되다’에서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엄청난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첨단산업’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 민 실장의 주장이다. 그는 세계경제가 농업에서 산업, 그리고 금융자본주의로 변모한 것을 예로 들며 리먼 사태로 불거진 금융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생명을 중시하는 생명자본주의가 태동할 것을 예견했다.

물론 그가 생각하는 생명자본주의의 중심에는 농업이 있다. 민 실장은 “귀농·귀촌 수요를 정책자금으로 유도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라면서 “차라리 그보다는 실제 현장에서 맞닥트릴, 가령 ‘농촌에 가면 이장님 마음부터 사로잡아라’는 식의 현장 중심 교육이 더 절실하다”고 말했다.  

송창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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