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산 깊은 계곡 사이로 없는 듯 숨 쉬며 사는 강릉시 왕산면 왕산골마을. 고요한 이곳에 권우태(62)·김애순(60)씨 부부가 깃든 지도 벌써 10여년이 흘렀다. 부부의 귀촌생활은 권씨의 해묵은 꿈에서 출발했다. 그는 LG전자에서 20년 동안 근무하다 1995년 한창그룹의 국내 영업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겨 이사·상무를 거치고, 1998년 계열사인 부일이동통신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바쁜 생활에 쫓겨 살면서도 가슴 한쪽엔 항상 고향에 내려가 한옥을 짓고 살겠다는 꿈은 버리지 않았다. 1994년 지인의 도움으로 지금의 집과 밭 터인 약 6612㎡(2000평)의 대지를 샀지만,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여기만 오면 마음이 푸근했죠. 산으로 들로 갈 데가 천지인데다 둘이 앉아 코펠에 음식 해먹는 것도 재미나고, 잠은 춥고 허름한 농가에서 자면서도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러다 어떠한 선택의 시기가 왔음을 느꼈고, 과감히 CEO 자리를 버리고 귀촌을 결심했습니다.”  


세상과 적절히 섞여 사는 게 노하우

그렇게 집짓기가 시작됐다. 고등학교 졸업 후 강릉을 떠난 지 30여년 만에 다시 시골생활을 시작한 셈이다. 1992년 권씨가 대학원에서 전통한옥 강좌를 들으며 전국에 있는 한옥을 답사했던 안목으로 직접 집을 설계했다. 실력 있는 도편수의 도움도 큰 힘을 발휘해 공사 7개월 만에 12칸 집(148㎡), 지금의 왕산골한옥이 탄생했다.

왕산골한옥은 한국 옛집의 단아하고 담백한 멋이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처마 끝 풍경도, 마당에 심은 한 그루 나무도, ‘영은재(瀛隱齋·신선이 사는 산에 숨은 집)’라 적힌 나무 현판도 편안한 기운이 감돈다. 처음 이 집을 지을 때는 부부가 살 집 용도로 설계했지만, 이곳 생활을 부부보다 더 좋아하는 지인들의 권유로 펜션으로 만들었다.

농촌 민박은 농어촌특별법과 도농교류촉진법에 따라 231㎡(70평) 이하 규모의 주택은 사업자등록증 없이 영업할 수 있어 용도를 변경하는 데도 문제 없었다. 현재 한옥은 손님방으로 사용하고, 부부는 한옥집 입구에 있는 소싯적(?)에 지내던 농가를 개조해 살림집으로 쓰고 있다. 

“주말마다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오는데 함께 지내며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고 많은 정보를 나눠요. 시골에 있는 우리는 도시생활에 어둡지 않습니까. 결과적으로 이 덕을 많이 봤어요. 이런 소통이 없었더라면 다시 서울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세상과 적절히 섞여 사는 거죠. 펜션 수입이요? 우리 부부 밥 먹고 살 정도는 되지만 큰돈은 안 돼요. 욕심도 없고요. 돈 벌 생각하면 즐기지 못하고 스트레스만 받을 게 뻔하잖아요.”

영은재가 입소문이 나면서 ‘한옥으로 짓는 펜션’에 대한 문의가 많아졌다. 그는 재산 중 반만 투자해 귀촌생활을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나머지는 추후 필요한 ‘여윳돈’의 개념으로 남겨두라는 것이다. 그는 서울에서 살던 집도 처분하지 않았다. 시내에서 차를 타고 40분 이상 떨어진 곳에 터를 잡는 것도 피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병원을 가야 하는 위급상황에 신속히 대처할 수 있는 곳이 좋다는 뜻이다.

“귀농·귀촌이 생각만큼 쉽지 않아요. 실패할 확률도 큰데 전재산을 투자했다가 빈손이 됐을 때 느끼는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겠죠. 또 살던 집을 처분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고향을 잃어버린 것과 똑같은 거예요. 남겨둔 여유는 시골 생활을 보다 편안하게 해준다는 걸 잊지 마세요.”


권우태·김애순씨 부부는 산과 계곡을 병풍처럼 두른 자리에 한옥을 지어 ‘왕산골한옥’이라 이름 붙이고 민박집으로 사용한다. 이곳은 세상과 소통하는 창이 되어 준다. 시골생활의 가장 큰 적이라는 무료함의 또 다른 돌파구이기도 하다.

CEO 출신 이장 등장에 마을 ‘들썩’

부부가 귀촌해 살며 느끼는 또 다른 재미는 바로 ‘수확’이다. 권씨는 강릉시에서 운영하는 친환경농업 수업과 농업기술센터에서 운영하는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농사일을 배웠다. 그렇게 배운 실력으로 집 앞 4959㎡(1500평) 땅에 감자, 옥수수, 콩, 들깨, 배추, 무, 고추 등을 길러 부부가 먹고, 지인들에게 나눠주기 바쁘다.

“첫해 농사지을 때는 요 옆에 사시는 할아버지가 지나가며 ‘씨 뿌릴 때가 됐는데…’ 하시면 씨를 뿌렸고, 이제 거둘 때가 됐나 하고 기웃거리며 ‘열흘 후에나 해야겠는데…’ 하셔서 그 말 따라 농사를 지었어요(웃음). 농사는 종자 고르는 것부터 밭을 다루는 법, 유기농법, 벌레 퇴치까지 이건 거의 과학 수준이에요.

하면 할수록 농사가 참 힘들다고 느끼면서도 멈출 수가 없는 건 땀 흘려 가꾼 걸 나눠주는 기쁨, 받는 이들의 기쁨을 알기 때문이에요.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아마 모를 겁니다. 이럴 때 보면 참 시골사람 다 됐다 싶어요. 손주 녀석들도 집에 오면 같이 밭에 나가 고구마도 캐고, 흙 만지며 노는데 외가에 대한 뭔가 푸근한 추억을 만들어줄 수 있어서 그 기쁨도 크죠.”

수확의 기쁨은 다른 분야에서도 찾을 수 있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권씨가 마을의 CEO인 이장이 되어 그간 쌓은 경영감각을 발휘해 신선한 변화를 일으켰다. ‘왕산골마을’이란 새 이름을 만든 것도 권씨다. ‘왕산골8경’이란 관광 코스도 그가 발로 뛰며 직접 찾아낸 마을의 비경이다. 마을에 돈도 굴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왕산골8경 아이디어가 강릉시의 ‘참 살기 좋은 마을가꾸기’ 공모전에 채택돼 2000만원 상금으로 마을 재정비를 마쳤다.

같은 해 시에서 우수 평가 마을로도 선정돼 상금 2000만원을 받아 물가에 정자를 짓고, 나무를 심었다. 2009년에는 농촌진흥청이 추진하는 ‘농촌어메니티관광개발사업마을’로 당선됐고, 2010년에는 농촌진흥청이 선정한 ‘살기 좋고 가보고 싶은 마을 100선’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최근에는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주최한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컨소시엄을 따내 54억원의 예산을 받는 데 성공했고, ‘강릉한과’와 ‘강릉 개두릅’을 지리적 표시에 등록시키는 데도 권씨가 앞장섰다. 현재는 강릉시농촌관광연구회장도 맡고 있다. 

“처음에는 지역민들의 의견이 분분했지만 점차 그들의 마음이 모이기 시작했죠. 농사만 지었더라면 귀촌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아내를 위한 생활 계획이 필요

사장 사모님에서 시골 아주머니로 살아가는 아내 김씨의 시골생활은 권씨와 조금 다르다. 처음 남편이 귀농을 선언했을 때는 망설임 없이 이삿짐을 쌌다. 떠나기로 한 바에야 떠난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승용차를 타고 음악회에 가는 대신 마늘을 까며 라디오를 듣겠다는 정도의 각오를 했을 뿐 생계에 대한 뚜렷한 준비를 한 것도 아니었다.

“처음 막 내려왔을 때는 저도 부푼 마음에 농사일을 같이 했어요. 직접 기른 콩으로 된장을 담그려고 400개가 넘는 메주를 뜨다가 결국 허리에 무리가 왔죠. 척추측만증으로 수술을 받았는데 이게 바닥에 앉는 것조차 불편한 거예요. 그러니 농사일도 못하고, 남편은 안으로 밖으로 나가서 일하느라 바쁜데 저는 딱히 할 일이 없었죠. 답답해서 차 한 잔을 마시고 싶어도, 쇼핑을 하고 싶어도, 수다를 떨고 싶어도 주변에 친구도 없고 마땅히 갈 곳도 없으니 적적하고 우울해지더라고요.”

부부가 함께 지내는 시간은 그래도 행복했다. 눈을 맞추며 대화를 나누고, 손을 잡고 산책을 하고, 같이 밥을 지어 먹는 시간은 마치 신혼 때처럼 달콤했지만 그것만으로 김씨의 헛헛한 마음을 달랠 수는 없었다. 더욱이 대문도 없고 방문을 잠그는 자물쇠도 없는 데다 노크하는 문화도 없는 시골 생활은 김씨의 마음을 열기도 전에 생활의 모든 것을 다 열어 놓아야 했다. 시골 문화의 반가움보다는 불편함이 더했다. 권씨가 이장을 할 때도 아내는 주민들과 교류가 없어 주변의 적잖은 핀잔을 들어야 했다. 아내에겐 뭔가 대안이 필요했다.

“아내가 주말에 찾아오는 손님들과는 잘 어울렸지만 평일의 적적함을 굉장히 힘들어 했어요. 취미를 갖는 게 좋겠다 싶어서 아내가 하는 말과 행동에 주목하면서 관심사를 찾기 시작했죠. 뭐에 조금만 관심을 보이면 재빨리 캐치해서 좋아하게끔 만들었어요(웃음). 서울에 가고 싶다고 하면, 또 그렇게 하라고 했고요. 당신 돌파구가 그거라면 해야죠.”

부부는 노후에 귀농·귀촌을 꿈꾼다면 가장 먼저 선행돼야 할 것이 바로 부부간의 ‘합의’라고 귀띔한다.

“직장생활 하다 보면 사실 아내를 과부로 만들지 않습니까. 평생을 희생하며 사는 아내가 전원생활을 반대하면 절대 오지 마세요. 귀농·귀촌 후 5년 이내 실패할 확률 70% 이상이 아내와의 갈등이 해결되지 않아서라고 합니다. 오더라도 확실하게 서로의 돌파구를 만들어야 하고요.”


왕산골한옥 전경

김보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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