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대석(75)·김순자(73)씨 부부가 사는 강원 영월군 수주면 두산리. 이들이 사는 통나무집 ‘자한재(自閑齋)’는 매봉산 자락 해발 400m 지점에 있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아파트 짓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온 황씨는 이곳에서 야생화에 빠져 살고 있다.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졸업하고 1955년 서울로 올라왔다.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나와 건설회사에 입사해 삼익건설 부사장까지 지냈다. 그런 그가 40여년간의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1996년 퇴직금을 챙겨 연고도 없는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나이 들면 어렸을 적 추억이 담긴 농촌에서 살겠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해왔어요. 1995년 정년퇴직을 하면서 낙향을 결심했고, 아내를 설득해 내려왔죠. 애들도 다 커서 부담도 덜했고요.”

우연히 찾게 된 두산리가 그의 발걸음을 잡았다. 주천강이 마을을 휘감아 흐르고 마을 뒤에는 매봉산이 그림처럼 둘러 있는 풍경이며, 지천으로 핀 야생화가 그를 매료시켰다. 곧장 임야 2만3100㎡(7000평)를 샀다.

전공을 살려 통나무집을 직접 설계해 지어보기로 했다. 쓸 만한 통나무를 구하기 위해 해외 견학도 마다치 않고 다녔다. 그리고 1997년 1320㎡(400평) 대지 위에 지어진 통나무집에서 이들의 노후생활이 시작됐다. 부부가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야생화 가꾸기다. 취미로 시작한 일이지만 어느덧 전문가가 다 됐다. 처음에는 3300㎡(1000평) 대지에 종묘를 생산하고, 먹을거리를 길러 볼 요량으로 비닐하우스를 지었지만 시작한 지 몇 달이 채 되지 않아 손을 떼고 말았다. 


황대석·김순자씨 부부가 사는 통나무 집 골목 어귀에 있는 빨간 우체통이 눈길을 끈다. 취미를 즐기며 전원생활을 하는 황씨는 요즘 서각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일하면 청춘, 활력은 ‘덤’

“처음이니까 욕심내서 비닐하우스도 크게 세 동이나 짓고 이것저것 키우기 시작했는데 이게 보통이 아니었어요. 아내도 나도 너무 힘들어 비닐하우스는 안 하기로 했어요. 그래도 야생화 키우는 건 포기하지 않았어요. 틈나는 대로 전국의 자생화 재배단지를 찾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고 재배기술을 배웠어요. 지금 우리 집 마당과 집 앞 길가에 서식하는 종만 해도 600종이 넘어요. 멸종위기 야생식물 1급이 8가지나 돼요. 봄에 왔어야 꽃을 보는데 지금 와서는…. 우리 집이 영월군에서 자원화식물 보존·육성 및 보급농가 제1호예요.”

황씨는 최근에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글씨나 그림·문양 등을 나무나 돌·쇠 등의 재료에 새기는 서각(書刻)이다. 마당에 지은 서각 작업실이 요즘 그가 가장 정성과 관심을 기울이는 장소다. 전시회라도 준비할 때면 밤이 지새는 줄도 모르고 서각에 빠져 있다. 한창때 벌어 둔 돈을 다 소진해 지금은 연금이 소득의 전부지만 종종 작품을 팔아 용돈벌이 하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한다. 이런저런 재미가 붙어 이제는 지천으로 버려진 나무도 예사로 보지 않는다.

“나무에 뭔가를 새기고 있으면 온갖 상념이 사라지고, 그 순간이 행복 자체예요.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서각이나 자생식물 같은 우리 고유의 것에 관심이 없다는 거예요. 이 두 분야는 연구할 부분이 무궁무진해요. 그 길에 내가 앞장서고 싶어요. 노년에 내가 일을 하고, 무언가에 열정을 쏟을 수 있다는 것만큼 신나는 일도 없지요.”

황씨는 영월농업기술센터 내 자원식물연구회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서각협회 강원지회 영월지부 회장을 맡아 서각을 알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토박이였던 부인 김씨는 남편의 꿈인 전원생활에 순순히 따랐다. 하지만 막상 시골에 와 보니 막막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처음 몇 달은 전화기만 붙들고 살 정도였다. 그런 아내도 이제는 산촌생활에 익숙해졌다. 텃밭 가꾸기로 소일을 하고, 음악을 전공한 인근 교회 목사 부인으로부터 첼로를 배우며 재미를 붙였다.

황씨는 귀촌해 노후생활을 꿈꾸는 은퇴자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이 첩첩산중에 터를 닦고 사니 아직도 친구들이 적적해서 어떻게 사느냐고 물어요. 답은 간단해요. 있는 그대로를 즐기는 거죠. 시골에 살려면 자연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노후준비는 돈이 전부가 아니에요. 전원으로 떠나기 전에 스스로 마음의 준비가 돼 있는지 확인해보세요. 그렇지 않으면 적적하고 외롭다는 생각만 하다가 도시로 되돌아가고 맙니다. 또 하나 명심할 것은 귀촌 준비에 너무 많이 투자하지 말라는 겁니다. 제가 가장 후회하는 부분도 이거예요. 이렇게 큰 집도, 터도 필요가 없거든요. 욕심을 버리는 게 행복한 귀촌 생활을 누리는 방법입니다.”  

 

김보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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