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산업에 새 얼굴이 부쩍 늘고 있다.
국내에서는 삼성이, 미국에서는 구글과 애플이 모종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글로벌 정보기술(IT) 강자들이 자동차산업에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지난 5월초 기아자동차가 출시한 고급 대형차 K9은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편의사양이 관심을 불러모았다. 그 중에는 국내 최초로 채택한 기술도 여럿이다. K9은 ‘차량통합제어시스템(AVSM)’을 통해 최적의 주행 안정성을 확보하는 한편 앞차와의 충돌 감지시 위험경보를 발생한다. 또 주행 중 후방 및 측방의 사각지대와 장애물을 사전 감지해 경보해주는 ‘후측방 경보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적용했다. 운전석 전면 유리에 각종 차량 주행정보를 비쳐주는 ‘헤드업 디스플레이(HUD)’도 국내 최초로 채택했다.

이밖에 전자통신으로 변속을 제어하는 ‘전자식 변속레버’, 차량 외부 탑재 카메라로 주변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한 ‘어라운드뷰 모니터링시스템(AVM)’, 차선이탈 감지시 경보를 발생해 주의를 환기시키는 ‘차선이탈 경보시스템(LDWS)’ 등도 돋보이는 편의사양들이다.

K9은 제품 콘셉트도 ‘최첨단 럭셔리 대형세단’을 표방한다. 기아차는 세계 유수의 자동차 브랜드와 정면승부를 걸기 위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집약시켜 K9을 만들었다고 강조한다.

K9은 고급차라는 사실보다 첨단기술의 결정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차량이다. 지금까지 자동차업계가 상용화한 첨단기술을 다수 채택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고급차에 적용되고 있지만 향후에는 대중화 단계로 갈 기술들이다. 자동차 자체가 이른바 지능형자동차(스마트카), 친환경자동차(그린카)로 급속히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K9은 차세대 자동차의 보편적 기능을 미리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자동차산업이 격동기에 들어섰다. 명실상부한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라고 할 만큼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자동차 자체의 개념이 바뀌면서 자동차산업의 구조도 새롭게 판짜기를 하는 양상이다.

요즘 자동차는 기계장치라기보다 전자·전기·정보기술(IT) 등이 총동원된 전자장치에 가깝다. 앞서 살펴본 K9의 첨단기능들은 그런 분야의 기술이 없다면 결코 구현될 수 없는 것이다. 지난 4월 현대차그룹이 자동차 전자제어시스템 전문기업 현대오트론을 전격 출범시킨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다. 스마트카 추세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않으면 자칫 자동차사업 자체의 경쟁력이 훼손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의 발로라는 분석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자동차에서 차지하는 IT, 전자기술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간 현대차그룹은 차량용 반도체 분야가 취약했다. 하지만 자동차 전자화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그냥 둘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반도체 연구개발 기능을 전담할 회사를 세운 것”이라고 밝혔다.



- GM의 2인승 콘셉트 전기자동차

전자장치로 진화하는 자동차

1990년대까지만 해도 자동차의 전장(電裝: 전기·전자장치) 비중은 의미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기술융합에 따른 자동차의 전장화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자동차의 편의성과 안전성을 제고하려는 업계의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 덕분이다. 이미 자동차 제조원가에서 전장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기준 30%를 넘어섰고 수년 안에 40%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자동차의 경우는 전장부품 비중이 훨씬 높아 70%선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쯤 되면 자동차의 ‘DNA’ 자체가 바뀌어간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나아가 자동차는 단순한 전장화를 넘어 소프트웨어, 반도체, 통신, 인공지능, 화학, 소재산업 등을 한데 아우르는 ‘융합산업’의 산물이 되어가고 있다. 자연히 자동차산업의 구조도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지는 추세다. 특히 이종(異種)산업의 기업들이 자동차산업의 ‘기술융합 지대’로 모여들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대목이다.

최근 삼성그룹이 자동차 분야 사업확대를 공식화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사례다. 그 선봉에는 이건희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직접 나섰다. 최근 삼성전자는 차량용 반도체 및 소프트웨어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삼성SDI는 이미 자동차용 2차전지 사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이재용 사장이 직접 챙기는 만큼 자동차 관련 사업이 향후 삼성의 주력사업 중 하나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셋톱박스 신화’로 유명한 휴맥스도 최근 자동차 전장사업에 뛰어들어 주목을 받고 있다. 휴맥스는 지난 5월 차량용 오디오·비디오·내비게이션(AVN) 전문업체인 대우아이에스의 지분 50%를 확보하면서 직접적인 경영권을 행사하게 됐다. 대우아이에스는 대우일렉트로닉스의 카오디오 사업부가 분사한 회사로 차량용 오디오에 강점을 가졌다는 평가다. GM이 최대 고객사이며 르노, 닛산과도 거래를 하고 있다.

휴맥스는 2009년부터 신성장동력의 일환으로 전장사업을 검토해왔다고 한다. 지난 3년간 대우아이에스에 지분투자를 하는 한편 일본 시장에 자동차용 셋톱박스 제품을 선보이는 등 전장사업 본격화를 준비해왔다는 설명이다.

권오정 휴맥스 홍보팀장은 “사실 전장 시장은 셋톱박스 시장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더욱이 최근 전장 시장은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쪽으로 무게가 옮겨가고 있다. 휴맥스는 셋톱박스 사업을 해오면서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기술력을 상당히 축적한 상태다. 이를 바탕으로 자동차 전장 시장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아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시장에서는 이미 수년 전부터 새로운 얼굴의 대기업들이 진출해 사업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전기차 핵심부품인 배터리 분야에서는 LG화학, 삼성SDI, SK에너지 등의 활약이 눈에 띈다. 또 효성은 전기차 모터를 생산하고 있고, LS산전은 배터리 전기를 모터에 필요한 전력으로 변환하는 고출력 인버터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 LG화학 2차전지가 장착된 전기자동차의 절개 샘플

특히 LG화학은 세계 1위 전기차 배터리(리튬이온전지) 제조업체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LG화학이 미국 자동차 전문매체 <오토모티브 뉴스>가 선정하는 ‘세계 100대 자동차 부품기업(Top 100 Global Suppliers)’에 당당히 이름을 올려놓았다는 점이다. 화학업체가 자동차 부품업체로 공인을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세계 자동차산업 구도가 급변했다는 단적인 증거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2020년께 전지를 동력원으로 하는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자동차(PHEV)의 전 세계 판매대수가 약 300만대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반면 엔진과 모터를 함께 사용하는 하이브리드자동차(HEV)는 약 1100만대가 판매될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그린카의 대표주자는 하이브리드자동차다. 전기차는 높은 가격과 오랜 충전시간, 그리고 충전 인프라 미비 등의 문제로 시장확대가 매우 더딘 편이다. 뒤집어 말하면 문제가 해결될 경우 전기차 확산이 본격화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2010년 세계 최초의 양산형 전기차 ‘리프’를 출시한 닛산에 이어 ‘볼트’를 선보인 GM, ‘플루언스 Z.E’를 시판하기 시작한 르노, 2013년부터 전기차 시리즈 ‘BMWi’를 선보인다는 계획을 발표한 BMW 등의 행보는 눈여겨볼 만하다. 또 미국, 일본, 유럽 등 일부 지역에서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이 점차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도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한민구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전 그린카 전략포럼 위원장)는 “현재 전기차 가격은 일반 자동차의 2배에 달한다. 가격이 보급에 큰 걸림돌이다. 그러다 보니 충전 인프라 투자도 주저할 수밖에 없다. 다만 배터리 가격이 일정 수준까지 하락하면 전기차 보급 확대에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배터리 내장형 전기차가 아닌 배터리 교환형 전기차 사업모델을 도입하면 전기차 확산에 상당한 파급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아우디의 한 연구원이 무인 자동주차 기술을 테스트하고 있다.

자동차·IT업계 협력과 경쟁의 ‘이중행보’

스마트카 시대에는 자동차산업과 전기, 전자, 정보, 통신, 소프트웨어 등 범 IT산업의 조우가 필연적이다. 현재 글로벌 자동차업계와 IT업계는 광범위한 전략적 제휴 및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스마트카 시장이 양쪽 모두에게 새로운 기회이자 도전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묘한 분위기도 감지된다.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 하는 물밑 신경전이 치열하다는 분석이다.

김경유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스마트카 산업이 팽창하면서 자동차업계와 IT업계가 모두 관련기술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양쪽의 협력 범위도 넓어졌지만 동시에 경쟁의 장(場)도 확대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래 자동차 시장을 놓고 자동차업계와 IT업계의 헤게모니 싸움이 격화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애플은 인공지능 음성인식 소프트웨어 ‘시리(Siri)’를 기반으로 한 자동차용 애플리케이션 ‘아이프리(Eyes Free)’를 차량에 탑재할 계획이라고 발표해 시선을 집중시켰다. 아이프리는 운전자가 운행 중에 시리를 구동해 음성으로 내비게이션, 전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이 사업에 관해 애플과 제휴를 맺은 완성차업체는 GM, 도요타, 혼다, 크라이슬러, BMW, 벤츠, 아우디, 재규어, 랜드로버 등 9개사로 미국, 일본, 유럽을 망라한 글로벌 자동차 강자들이다. 애플은 모바일 기술 분야의 탁월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자동차 시장에서 공격적인 사업확대를 도모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또 다른 IT서비스 강자 구글은 아예 자동차 개발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구글의 행보가 특히 주목되는 것은 지능형자동차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무인자동차(Self-driving Car)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부터 관련 기술 개발에 나선 구글은 최근 무인자동차 자율주행 시험에 성공한 데 이어 수년 내 상용화를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까지 발표한 상태다.

이런 흐름으로 볼 때 향후 자동차 시장 패권의 향방은 점차 미궁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분명한 것은 스마트카나 그린카의 전체 부가가치 중에서 완성차업체의 비중과 역할이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다.

박용완 영남대 정보통신공학과 교수는 “자동차 전장 비율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를 주목해야 한다. 구글은 무인자동차 개발로 세상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던져줬을 뿐 아니라 ‘구글이 자동차사업도 하는구나’ 하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앞으로 구글이나 애플 같은 ‘게임체인저(Game Changer)’가 자동차업체의 경쟁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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