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엘케이테크놀로지는 앞선 차량과 거리 등을 종합 분석해 이를 운전자에게 알려주는 기술을 갖고 있다.

서울 방배동에 사는 김모씨는 차에 올라 시동을 켜고 “CD, 에어컨”이라고 외친다. 그러자 CD플레이어에서 음악이 나오고 에어컨도 자동으로 켜진다. 주위에 어떤 음식점이 있는지 알려달라는 물음에도 이 ‘똑똑한’ 자동차는 막힘없이 술술 알고 있는 정보를 말해준다. 비록 상황은 연출됐지만 꿈의 자동차로 불리는 이 같은 음성인식 기술은 이미 국내 상용화돼 있다. 이 같은 음성인식 기술이 적용된 현대차 i40과 기아차 프라이드, K9에는 국내 차량용정보기술(IT) 중소기업 미디어젠 기술이 들어가 있다. 

현재 국내 차량용 IT시장은 걸음마단계 수준이다. 세계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전문 중소 IT기업들과 손잡고 특화된 기술을 개발하는 것과 달리 우리 기업들은 해외 유명 제품에 의존하거나 자체 연구 인력을 동원해 겨우 뒤따라가는 수준에 불과했다. 이런 가운데 고유가 시대 친환경, 스마트 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수한 전장(電裝)기술을 보유한 전문기업을 육성하는 것이 국가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2009년 지식경제부와 현대차그룹, 마이크로소프트(MS) 주도가 돼 ‘차량IT융합혁신센터'를 개설한 것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반영해서였다. 차량IT융합혁신센터는 완성차메이커인 현대·기아차가 매년 기술과제를 제시하면 이를 추진할 중소기업들이 정부로부터 개발비를 지원받아 과제를 수행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현대, 기아차는 중소 IT기업들에게 현대차 의왕연구소 연구시설을 이용하도록 편의를 봐준다. 또 양산차나 신차에 해당 기술을 적용해 제품 상용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해준다.

지난 3년간 차량IT융합혁신센터를 통해 지원된 돈은 총 69억원으로 총 23개 중소기업들에게 혜택이 돌아갔다. 미디어젠 역시 지난 2009년 기술과제인 다국어 음성인식 미들웨어(응용프로그램과 시스템 환경을 연결시켜주는 중간위치의 소프트웨어) 개발에 참여해 기술력을 인정받은 케이스다. 현재 미디어젠은 단어에서 문장 위주의 음성인식 방식으로 기술영역을 넓히고 있다.

오비고는 일반 웹브라우징에서 차량용 브라우징 시장으로 사업영역을 넓혀간 것이 주효해 최근 성장을 기록 중이다. 오비고가 개발한 웹브라우징 시스템은 차량에서도 일반 PC처럼 자유자재로 인터넷 서핑이 가능하다. 세계 최초로 HTML5 기반 차량용 웹브라우저를 상용화시킨 오비고의 블루링크라이프(Blue Link Life)는 지난 5월부터 현대차 신형 싼타페에 탑재되고 있다. 내년부터는 현대, 기아차 전 차종에 탑재된다. 또 중소 IT기업 유비벨록스는 차량 단말기를 통해 날씨 정보, 길 안내 등의 다양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모바일 앱을 전문으로 제작하고 있다. 이 회사 기술은 현재 현대차 텔레매틱스 시스템 블루링크(Blue Link)와 기아차 유보(UVO: Your Voice 약자)에 적용돼 있다. 

무엇보다 차량용 IT 벤처 기업에게 현대, 기아차라는 협력 파트너가 생기는 건 커다란 성장 모멘텀이 될 수 있다. 국내 자본이 대주주인 유일한 완성차 업체이기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현대, 기아차에 제품이 장착된다는 것은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통할 만한 기술력이라는 뜻이다.  

차량 이탈 및 앞차 추돌 경보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는 피엘케이테크놀로지는 현대차 6개 차종에 관련 기술을 탑재시켰다. 현대차 사내벤처에서 출발한 피엘케이테크놀로지는 이미 지난 2003년 차선이탈 방지 시스템을 개발한 데 이어 영상블랙박스 등을 해외로 수출해 한해 100만 달러 정도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현재 이 회사가 보유한 기술은 전방 카메라가 찍은 영상으로 차량 주행 경로와 거리 등을 분석해 차량 간격이 너무 가까워질 경우 운전자에게 알려주는 기술이다. 현재 피엘케이테크놀로지는 미국, 이탈리아, 칠레 등지에 별도 제작한 제품을 수출해 한해 10만달러 정도의 수익을 거두고 있다. 이밖에도 스마트폰을 이용해 차량 도난 여부를 감지하거나 단말기와 스마트폰, PC, 웹 등을 하나로 연결하는 서비스, 도시교통정보시스템 내 교통정보를 차량에서 수신할 수 있는 기술 분야에서도 중소기업들이 속속 뛰어들고 있다. 

 



- 유비벨록스의 기술이 적용된 현대차 텔레매틱스 시스템 블루링크



현대·기아차 차량 IT중기 육성 나서

물론 IT융합 분야는 시장이 아직 초기 단계여서 당장 매출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기술력만 갖춰 놓으면 성장 가능성은 크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김명선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은 “지난 3년간 차량IT융합혁신센터에 참가한 전체 23개 중소기업 매출이 34.3%, 고용은 22.7% 가량 늘어났다”며 “기술개발에 따른 국내외 특허까지 감안하면 상당한 이익을 거둔 셈”이라고 설명했다. 현재까지는 완성차와 중소 IT기업의 협력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대형 모바일기기 제조사, 이동통신사까지 참여하게 되면 시장 규모는 지금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스마트카로 대표되는 미래형 자동차는 내연기관 자체 기술력보다는 누가 더 혁신적인 전자장치를 개발해 내연기관과 효과적으로 연결시키느냐가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2000년 20%에 불과하던 전장 부품 비율이 2010년 32%로 늘어난 것이 좋은 예다. 박용완 영남대 교수는 “지금은 ‘나홀로 IT(IT Alone)시대’가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 스며들어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IT융합의 시대’”라면서 “가령 범퍼를 생산하는 부품업체라면 범퍼와 영상카메라를 결합해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탈바꿈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장이 커지면서 완성차업체와 정부의 인식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차량IT융합기술이 더 늘어나기 위해서는 전문기업이 많아져야 하는데 지금처럼 원청업체가 납품가만을 강조하다 보면 하청 중소기업들로선 기술 개발은커녕 존립 기반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아직은 가능성만 가지고 참여해야 하는 중소 부품기업이 중견 부품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제값을 주고 특허기술을 매입하려는 완성차 업체의 노력과 정부의 세제 지원 혜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송창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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