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회장과 김남구 부회장. 이들은 금융투자업계의 양대 거물이다. 하지만 이들은 창업과정이 전혀 다르다. 한 사람은 증권사 말단직원에서 시작해 맨손으로 오늘날의 미래에셋을 일궜는가 하면, 또 한 사람은 비록 아버지로부터 증권사를 물려받았지만 한국투자신탁을 인수하는 등 오늘날의 한국투자금융그룹을 세웠다. 이들은 최근 본격적인 여의도 지존 경쟁에 들어갔다.

미래에셋 자수성가 오너 박현주 회장 

VS 한국투자  2세 오너 김남구 부회장

서울 여의도는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이 밀집돼 있는 우리나라 금융투자업계의 심장부라 할 수 있다. 이 여의도에는 이 업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걸출한 인물 2명이 있다. 바로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과 한국투자 김남구 부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이 두 사람이 한국 금융투자업계를 대표하는 오너이자 CEO(최고경영자)라는 것에 이견을 달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양대 거물이 최근 심상치 않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존 자리를 독주하던 박 회장을 김 부회장이 바짝 추격하며, 박 회장의 지존 자리를 넘보고 있는 것. 그런가 하면 박 회장은 1위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최근 자문형 랩 어카운트 상품의 수수료율을 낮추는 등 승부수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맨주먹으로 오늘날의 미래에셋을 일군 박 회장이 쉽게 지존 자리를 넘겨줄 인물은 절대 아니다. 그럼에도 온돌 달궈지는 것처럼, 한국투자의 꾸준한 성장은 예사롭지 않다. 과연 여의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곳으로 달려가 보자.  

 

 

 금융대권 경쟁 관전 포인트 ① - 창업·성장과정·인맥

김재철 회장한테 ‘배우고’ ‘물려받고’

고려대 선후배 간 ‘한판 승부’ 돌입

박현주 회장과 김남구 부회장. 이들은 금융투자업계의 양대 거물이다. 하지만 이들은 창업과정이 전혀 다르다. 한 사람은 증권사 말단직원에서 시작해 맨손으로 오늘날의 미래에셋을 일궜는가 하면, 또 한 사람은 비록 아버지로부터 증권사를 물려받았지만 한국투자신탁을 인수하는 등 오늘날의 한국투자금융그룹을 세웠다. 이들은 최근 본격적인 여의도 지존 경쟁에 들어갔다. 

지난 2월1일, 긴 설 연휴를 목전에 두고 서울 여의도에 사건이 하나 터졌다. 그날 한국금융투자협회에서 집계한 주식형 펀드 설정액(1월28일 기준)이 100조원 밑으로 떨어진 것. 주식형 펀드는 2000년대 들어 꾸준히 유입돼 2007년 11월8일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어섰다. 이후 자금이 물밀듯이 몰려와 2008년 8월11일에는 144조3444억원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여기가 끝이었다. 이후 리먼브러더스 파산과 함께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되고, 자금 이탈이 시작되면서 설정액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결국 지난 1월28일 기준(발표일은 2월1일) 99조9373억원으로 내려앉았다.

그날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수치가 있었다. 자산운용업계의 군계일학이라고 할 수 있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의 펀드 설정액이 급감한 것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설정액은 2008년 8월11일 50조1785억원이던 것이 지난 1월28일 기준으로는 26조4164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미래에셋의 설정액이 전체 감소분보다 더 가파르게 줄어 설정액은 거의 반토막이 났다.

그러나 미래에셋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투자신탁운용은 같은 기간 중 오히려 6477억원(8조4568억원→9조1045억원)이 늘었다.

이번 사건이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것은 앞으로도 미래에셋의 극심한 부진이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령 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1월28일 이후 3일 만인 지난 2월1일에는 100조2077억원으로 다시 100조원대를 회복했다. 지난 2월11일에는 100조4303억원을 기록하는 등 이후 소폭이나마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래에셋의 설정액은 지난 2월11일 기준 26조2320억원으로 지난 1월28일의 26조4164억원보다 오히려 1844억원 감소했다. 7운용일 동안이니 하루에 260억원 가량이 빠져나간 셈이다.

반면 한국투자는 같은 기간 중 9조1045억원에서 9조4210억원으로 3165억원이나 증가했다. 이로써 한국투자는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9조2015억원→9조1842억원)을 제치고 2007년 이래 외국계 자산운용사에 빼앗겼던 2위 자리를 4년여 만에 되찾았다.



한국투자 삼성적립식 1호, 단일펀드 설정액 1위 등극

미래에셋의 부진과 한국투자의 약진 조짐은 이뿐만이 아니다. 2009년 말까지 설정액 2조9927억원으로 1위를 달리던 미래에셋의 간판 펀드인 인디펜던스 K-2호가 2010년 말에는 1조6039억원으로 급격히 축소되면서 1위 자리를 한국투자의 삼성그룹적립식 1호(1조9838억원)에 내줬다. 2위 자리도 한국투자의 네비게이터 1호(설정액 1조6809억원)가 차지했다.

다만, 여전히 미래에셋은 주식형 펀드 설정액 규모에서 한국투자의 2배가 넘는 일방적인 우위를 지키고 있다. 한국투자는 미래에셋자산운용에 한참 뒤떨어진 2위를 달리고 있다. 한국투자는 3위인 신한BNP파리바에도 불과 2000여억원 앞서 있을 뿐이다. 상황이 나빠지면 2위 자리를 3위인 신한BNP파리바에 내줄 수도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최근 나타난 두 금융그룹의 지표 추이가 그냥 흘려버리기 어려운, 유의할 만한 내용으로 평가하고 있다. 현재 미래에셋의 오너는 박현주 회장이다. 한국투자의 오너는 김남구 부회장이다. 이런 변화로 인해 여의도 일각에서는 지금은 비록 ‘절대지존’을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앞으로 ‘박현주 시대’가 가고, ‘김남구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 아니냐는 성급한 예측을 내놓고 있다.

자산운용업계 상위권인 A자산운용사의 B대표는 “박현주 회장이 최근 시장에서 신뢰가 많이 떨어졌기에 투자자들이 환매를 많이 하면서 펀드 설정액이 급격하게 감소하는 것”이라며 “미래에셋의 하향곡선이 얼마나 가파르냐에 따라 김남구 부회장의 역전 시기가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하향곡선이 현재처럼 가파르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다. 그러나 시장에서 일부 신뢰를 회복한다면 그 가파른 하강곡선이 완화될 거고, 그 시기는 늦춰질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턴어라운드는 어렵기 때문에 김남구 부회장의 역전은 시간문제”라고 했다.

이에 반해 C자산운용사의 D대표는 “박현주 회장의 미래에셋이 그동안 심한 부침이 있었기에 어느 한 시기만을 따서 보는 것은 위험하고, 최소 5년간의 트랙 레코드를 봐야 한다. 특히 인사이트펀드 등 최근 환매 사태로 박 회장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면서 “최근 부진한 것은 2007~2009년 미래에셋에 대한 쏠림이 지나쳤던 것이고, 이 쏠림이 완화되는 과정일 뿐이다. 따라서 쏠림 현상이 해소되면 미래에셋의 하강곡선이 멈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의 부진은) 그동안 급성장했기에 성장에 대한 피로감도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D대표는 김남구 부회장의 추월 가능성에 대해서는 “김남구 부회장도 능력이 많은 분”이라면서도 “박 회장을 앞지를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예상했다.

B대표와 D대표는 자산운용업계에서 10년 넘게 CEO(최고경영자)를 하고 있는, 업계를 대표하는 경영자이자 펀드매니저다.

창업과정

 크게 다른 듯 하면서 같은 곳으로 귀결

비은행계 금융사가 밀집해 있는 여의도에 오너체제인 금융사는 미래에셋과 한국투자가 전부다. 다른 굵직한 금융사는 대부분 재벌그룹이 보유하고 있다. 물론 이 재벌그룹은 제조업이 주력이다.

여의도를 대표하는 오너이자 CEO라는 점에서 박현주 회장과 김남구 부회장은 결정적인 공통점을 갖는다.

다만, 창업과정은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박 회장은 증권사 말단직원에서 시작해 맨주먹에서 미래에셋을 창업해 오늘날의 미래에셋을 일궜고, 김 부회장은 아버지로부터 옛 동원증권을 물려받았다.

박 회장은 고려대 재학 중 내외증권연구소라는 투자자문사를 차리면서 금융투자업계에 발을 들여놨다. 그러나 운영이 여의치 않자 그는 대학졸업후인 1986년 동양증권에 입사했고, 45일 만에 대리로 승진했다. 박 회장은 2년여가 지난 88년에는 한신투자자문(옛 동원투자신탁)을 잠시 거쳐 한신증권(옛 동원증권)에 과장 직함을 받고 옮겼다. 그가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1991년 당시로는 국내 최연소인 33살에 동원증권 중앙지점장이 된 그는 92년에는 전국 증권사 지점 약정고 1위를 차지했다. 94년에는 동원증권 압구정지점장이 됐고, 95년에는 전국 최연소 강남본부장(이사급)에 올랐다.

이렇게 샐러리맨으로 승승장구하던 박 회장은 97년 6월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부회장, 구재상 미래에셋자산운용 부회장 등 ‘박현주 사단’을 이끌고 나와 미래창업투자(현 미래에셋캐피탈)를 설립하며 독립했고, 오늘날의 미래에셋금융그룹을 일구었다. 그가 동원증권을 나올 때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이 무척 아쉬워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김남구 부회장은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2남 2녀 중 장남이다. 그는 한국투자금융 지분 20.23%를 갖고 있는데, 이중 일부는 2004년 동원그룹에서 동원금융지주를 분리할 때 김재철 회장으로부터 433만주(8.03%)를 증여받는 등 모두 17.98%를 물려받았다. 한마디로 창업이 아니라 후계승계를 받은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새로운 회사를 차린 박 회장과는 출발선이 전혀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김 부회장이 여느 재벌 2세처럼 손쉽게 경영권을 물려받은 것은 아니다. 1963년생인 김 부회장은 경성고와 고려대 경영학과(83학번)를 졸업하고 87년 동원산업에 입사했다. 그가 대학졸업 직전인 86년에 제대로 사회생활 해보겠다며 자의반 타의반(부친인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지시도 있었음) 4개월간 동원산업의 북태평양행 명태잡이 원양어선을 탔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김 부회장은 망망대해에서 하루 18시간이 넘는 시간을 원양어선에서 중노동을 하며 버텼다고 한다. 그는 오너인 김재철 회장의 아들인 것을 숨겼기에 다른 선원과 똑같이 생활했다고 한다.

그는 또 동원증권에서도 여의도 본사가 아닌 명동지점으로 발령을 받았다. 지점과 채권영업, 기획실을 거친 뒤 비로소 97년 이사가 됐고, 2003년에야 동원금융지주 대표이사 겸 부사장이 됐다.

시드머니가 있었다는 것에서 김남구 부회장이 박현주 회장보다는 손쉽게 기업을 경영하게 된 점은 다른 부분이다. 하지만 김 부회장은 말단 직원부터 시작해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 경험 많은 전문가라는 점에서, 또한 한국투자신탁을 인수하는 등 한국투자금융지주의 비약적인 발전을 손수 이끌어냈다는 점에서는 박 회장과 흡사하다. 창업과정은 결정적인 차이가 있지만 결국에는 같은 곳으로 귀결된다. 김재철 회장 밑에서 직원으로 있으면서 기본적인 경영수완을 쌓은것도 공통적이다.

- 박현주 회장과 김남구 부회장은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사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김남구 부회장은 아버지인 김 회장으로부터 동원증권을 물려받았고, 박 회장은 김재철 회장이 오너인 동원증권에 근무하면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성장과정

 승승장구라는 점에서 동일

박현주 회장은 1997년 미래에셋캐피탈 창업 후 다음커뮤니케이션 등 벤처기업에 투자했다. 그러다가 98년 법 개정으로 간접주식투자의 길이 열리자 99년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설립하고 새로운 금융상품인 폐쇄형 뮤추얼펀드(용어설명 참조)를 내놨다.

국내 최초의 뮤추얼펀드인 ‘박현주 1호’는 판매한 지 2시간30분 만에 500억원 한도가 다 차는 대히트를 쳤고, 수익률에서도 90%대의 대박을 터뜨렸다. 박 회장은 2000년 1월엔 미래에셋증권을 출범시키면서 파격적인 위탁수수료 인하를 단행해 1년 만에 약정고 7위권의 중견 증권사로 도약시켰다.

광주일고 출신의 호남사람이었던 그는 역시 호남 정부였던 ‘김대중 정부’의 말기에 정치권 연루설, 검찰 조사설 등 이런저런 소문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는 이때 미국 유학을 결심하고 2년 예정으로 2001년 3월 미국행을 감행했다. 하버드대 AMP(최고경영자과정)를 이수하던 그는 유학길에 오른 지 1년도 채 안된 2001년 11월에 귀국했다. ‘칩거’라는 표현을 언론에서 쓸 정도로 조용하게 지내던 그는 2003년에 적립식 펀드 상품을 새로 내놨다. ‘적립식 3억 만들기 펀드’란 이름으로 출시된 이 상품 역시 대히트를 쳤다. 특히 박 회장은 증권사가 아닌 은행을 상품 판매처로 하는 기발한 발상의 전환으로 판매고를 더 높일 수 있었다. 더욱이 2005년에는 ‘적립식펀드=노후’라는 개념을 공격적으로 마케팅에 이용해 엄청난 판매량을 보였다. 손대는 것마다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2005년에는 SK생명을 인수해 미래에셋생명보험을 출범시키면서 은행을 제외한 금융그룹을 완성시켰다. 특히 생보사 인수로 기존 금융사와 엄청난 시너지를 얻을 수 있게 됐다.

자본금 100억원으로 시작한 박 회장은 14년 만에 미래에셋을 수탁고가 118조원이나 되는 거대공룡 금융그룹으로 성장시켰다.

김남구 부회장은 동원그룹의 주력회사인 동원산업에서 처음 직장생활을 했고, 금융사 근무는 1991년 동원증권 명동지점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는 채권부 대리, 기획실 과장, 뉴욕사무소 차장 등을 거치며 착실하게 경영수업을 쌓았다. 이어 95년에는 이사대우, 97년 이사, 98년 상무, 99년 전무, 2000년 부사장, 2003년 동원금융지주 대표이사 부사장, 2004년 동원증권 대표이사 사장에 오르는 등 차례차례 계단을 밟아갔다.

김 부회장이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이 빛을 발한 것은 2004년 시작된 한국투자증권(옛 한국투자신탁) 인수전 때부터다. 그 당시 김 부회장은 “자산운용 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한국투자신탁이나 대한투자신탁의 단독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힌 뒤 결국 2005년 한국투자증권 인수에 성공했다. 그는 한국투자증권을 동원증권과 합병한 뒤 동원이라는 이름도 버리는 승부수를 던졌다. 중위권에 있던 동원증권은 한국투자증권으로 탈바꿈한 뒤 2010년 말 현재 자산 13조8492억원으로 업계 3위(1위 대우증권, 2위 우리투자증권), 자기자본금 2조3921억원으로 업계 5위(1위 대우증권, 2위 삼성증권, 3위 우리투자증권, 4위 현대증권)를 달리고 있다.

한국투자신탁 인수로 김 부회장은 기존 한국투자저축은행(1996년 고려상호신용금고 인수)을 포함해 비은행계 금융그룹의 정상을 넘볼 수 있는 한국투자금융그룹을 완성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합병 전 비슷했던 한국투자신탁과 대한투자신탁이 6년여가 지난 지금 동원에 인수된 한국투자신탁이 하나금융그룹 품에 안긴 대한투자신탁보다 더 나은 성적을 올리고 있어 김 부회장은 수성과 재창업에 성공했다는 업계의 평가를 받고 있다.



 

인맥

 고대 경영학과 선후배지만 겹치는 부분 거의 없어



- (왼쪽부터)박현주 회장과 각별한 사이인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석동 금융위원장.

김남구 부회장과 막역한 사이인 윤진식 한나라당 의원과 유영환 전 정보통신부 장관. 유 전 장관은 현재 한국투자증권의 부회장이다.

박 회장과 김 부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원증권에서 같이 근무했다는 점에서 인맥이 일부 겹칠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두 사람 다 호남 출생이지만 정·관·재계를 두루 살펴봐도 인맥은 상당히 다르다.

박 회장은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김석동 금융위원장, 유지창 유진투자증권 회장(전 금감위 부위원장) 등 당대 최고의 경제관료 출신과 관계를 맺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박 회장을 경제 관료들이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증거다. 박 회장은 이들에 대해 그의 자서전적 책인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에서 “(여러 도움을 줘서)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한다”고 언급할 정도로 이들과 각별한 사이다.

김 부회장의 정·관계 인맥은 고려대 경영학과 출신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예컨대 고려대 경영학과 선배인 윤진식 한나라당 의원(전 청와대 정책실장·산업자원부 장관)·유영환 한국투자증권 부회장과 막역한 관계다. 김 부회장은 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을 하다가 쉬고 있던 윤 의원을 2008년 초에 지주사 회장으로 영입해 2009년 초 윤 의원이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입성할 때까지 같이 근무했다. 또한 김 부회장은 정보통신부 관료 출신인 유 부회장을 2005년에 한국투자금융지주 부사장으로 영입했다가 그가 다시 정보통신부로 돌아가 차관과 장관을 거친 뒤 퇴임하자 5년 만인 2010년에 다시 부회장으로 불러들였다.

박 회장이나 김 부회장은 특별하게 친한 정치인은 없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정치인과 특별하게 인연을 맺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 부회장과 달리 박 회장은 고대 경영학과 인맥이 알려진 게 없다. 이는 박 회장이 78학번(재수)으로 교육학과에 입학해 경영학을 복수 전공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복수 전공 특성상 학과 생활보다는 수강에 중점을 둬 경영학과 인맥이 특별하게 형성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현재 교육학과 동기생들과는 만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또한 그의 이력서에는 고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돼 있다. 이 때문에 박 회장의 교육학과 동기생들은 박 회장에 대해 안 좋은 시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 인맥은 단연 김 부회장이 앞선다. 재벌 2세인 김 부회장이 아무래도 한국무역협회장을 하는 등 한국 재계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부친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후광을 입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김 부회장은 한때 재벌 2세들의 모임으로 2000년대 중반 활발한 활동을 하던 브이소사이어티의 회원이었다. 그 당시 회원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쟁쟁한 멤버였고, 김 부회장은 이들과의 인맥을 자연스럽게 쌓을 수 있었다.

박 회장이 특별한 재계 인맥이 없는 것은 증권·자산운용업을 하다 보니 재계 인사와 인연을 쌓을 기회가 적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프로필

1958년 전남 광주생

1977년 광주일고 졸업

1983년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78학번)

1986년 동양증권 입사

1988년 동원증권 입사

1991년 동원증권 중앙지점장

1996년 동원증권 강남본부장

1997년 미래에셋캐피탈 설립

1998년 미래에셋자산운용 설립

1999년 미래에셋증권 설립

2001년~미래에셋 회장

■ 김남구 한국투자 부회장 프로필

1963년 전남 강진생

1982년 경성고 졸업

1987년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83학번)

1991년 일본 게이오대 경영대학원 졸업

1987~1989년 동원산업

1991년 동원증권 명동지점 대리

1994년 동원증권 뉴욕사무소 차장

1997년 동원증권 이사

1999년 동원증권 전무

2000년 동원증권 부사장

2003년 동원금융지주 대표이사

2004년 동원증권 대표이사

2005년 4월 한국투자증권 부회장

2005년 6월~한국투자금융지주 대표이사 부회장

조완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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