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 빅뱅이 몰아치고 있다.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 농협의 신용-경제부문 분리,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보의 산은금융지주 회장 선임 등으로 대격변이 예고되고 있는 것. 본격적으로 KB·우리·신한·하나·산은·농협등 6대 금융사간에 경쟁이 벌어질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KB에 조용한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 거대 금융그룹인 KB가 서서히 변신하고 있다. 보수적이고 변화에 소극적인 은행, 게다가 공기업적인 성격을 띠고 있던 KB가 밑바닥부터 탈바꿈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대 대학생을 겨냥한 카페식지점인 ‘락(樂)스타존(Star Zone)’이 그중 대표적이다. 락스타존은 KB 이노베이션의 한 단면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거대 금융그룹인 KB는 자산이 326조원으로 직원이 2만6000여명에 달한다. KB호(號)의선장은 어윤대 회장. 고려대 총장, 국가브랜드위원장을 역임한 어 회장이 바로KB 이노베이션의 한가운데 있다. KB금융을 강력한 리더십으로 환골탈태시키고 있는 어 회장의 비전, 리더십, 경쟁력 등 모든 것을 샅샅이 해부한다.
이노베이션 시나리오

지배구조에 메스…KB 완전 장악

변화·혁신 내걸고 체질개선 박차

  

취임한 지 8개월 된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이 KB금융그룹에 이노베이션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조직을 슬림화해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는가 하면, 미래의 잠재고객인 대학생을 붙잡기 위해 카페식 지점인 ‘락스타존’을 론칭하기도 했다. 게다가 KB국민카드를 KB국민은행으로부터 분사해 공격적인 경영에 시동을 걸었다. ‘어윤대식KB 이노베이션’이 서서히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이 취임 후 불과 몇 달도 안 돼 강한 카리스마와 정치적 위상으로 KB를 잘 지배하고 있다. 보수적이고, 배타적인KB 내에서 별다른 얘기가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솔직히 어윤대 회장의 장악력에 무척 놀라고 있다. 이 정도까지 잘할 줄 몰랐다. 그동안 KB가 갖고 있는 결정적인 리스크가 지배구조였는데,어 회장이 이를 일거에 해소했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이 기자에게 어 회장의 지배력을 칭찬한 말이다.

이런 평가를 받는 어 회장이 취임 8개월을 맞았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KB는 짧은기간에 CEO(최고경영자)가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 강정원 전 KB금융지주 부회장 겸 국민은행장 등으로 바뀌면서 어수선했으나 그런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거대 금융그룹인 KB가 일사불란하게 굴러가고 있는 것.

어 회장이 취임하자마자 메스를 가한 부분이 지배구조다. 분산된 권한을 결집시키기 위해 관료출신 금융전문가인 임영록 KB금융지주 사장과 내부 출신인 민병덕 KB국민은행장을 각각 ‘좌우 투톱’으로 기용해 강력한 ‘친정체제’ 를 구축한 것. 무엇보다도 조직 장악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KB금융은 옛 국민은행과 옛 주택은행이 합병한 지 10년이 넘었음에도, 일부에서는 양쪽 출신끼리 반목과 편 가르기가 있어왔다. 그러나 어 회장이 취임한 이후에는 이런 움직임을 감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잠잠해졌다.

이렇게 조직을 안정시킨 뒤 어 회장은 ‘변화와 혁신’ 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어 회장은 취임 전부터 강한 톤으로 KB의 낮은 경쟁력을 질타해 취임하자마자 KB에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는 주변의 예상이 나왔는데, 역시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다.

‘비만증 해소’위해 3200명 감축

그는 취임해 ‘선 내실 다지기 후 외형확장’을 최우선 경영방향으로 정했다. 그리고 변화와 혁신을 맡아줄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KB금융의 본격적인 체질개선 작업에 착수했다.

‘어윤대식KB 이노베이션’의 첫 작품이 바로 KB금융의 ‘비만증 해소’다. 그는 내정자 시절인 지난해 6월22일에 KB 경영진에게“국민은행 직원은 3만명(비정규직포함)으로 신한은행의 2배, 하나은행의 3배이며 인건비는 업계 최고 수준이지만 생산성은 최하위”라며 KB의 낮은 생산성·경쟁력을 질타했다. 어 회장은 지난해 7월13일 KB금융지주 회장 취임 직후에도 KB금융의비대한 조직을 ‘비만증’이라고까지 표현했다.

그의 의도대로 KB국민은행은 지난해 10월 희망퇴직을 단행해 대대적인 인력 조정을 펼쳐 성공리에 마무리했다. 퇴직인원은3244명으로 국민은행의 직원이 2만6000여명인 것을 감안하면 전체 인력의 12%가 퇴직한 것이다. 이는 국민은행이 2005년 실시했던 희망퇴직 인원규모 2200명을 크게 웃돈 것으로 2001년 옛 국민은행-주택은행 통합이후 인력 구조조정으로는 최대규모다.

이 같은 조직 슬림화를 통해 어 회장은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고, 생산성·경쟁력을 높이려 한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보수적이고, 타성에 젖어 있는 KB의 기업문화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KB금융이 몸집을 줄인 뒤 3개월이 지나 ‘어윤대식KB 이노베이션’의 두번째 작품이 나왔다. 신개념 점포인‘락(樂)스타존(Star Zone)’이 지난 1월20일 모습을 드러낸 것. 1호점인 ‘숙대 눈꽃 존’과 2호점 ‘이화 배꽃 존’을 시작으로 서울12개점, 수도권6개점, 충청권9개점, 영남권10개점, 호남권5개점 등 총 50여개 점포를 올해 안에 개점할 예정이다.

대학생 위한 ‘락스타존’ 점포로 미래고객 확보

락스타존은 고려대 총장 출신인 어 회장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 만든 카페식 점포다. 최근 젊은층을 중심으로 뜨고 있는 소통수단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반의 대학생 중심 미래 점포로 은행 서비스와 함께 세미나, 미니 카페, 영화·음악 감상 등이 가능하다. 와이파이 이용은 물론이고 아이패드도 무료로 빌려준다. 창구 직원도20~30대 초반 젊은 직원들로 배치했다. 이들은 유니폼 대신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으로 근무한다. 젊은 직원에 맞춰 지점장도 30대 후반의 해당 대학 출신에게 맡겼다. 락스타존에선 대학생을 겨냥한 실속 있는 금융상품을 제공한다. 가령 ‘락스타통장’ 은 100만원 이하 잔액에 연 4%의 높은 금리를 준다.

보수적이고, 거대 금융그룹이라서 변화에 소극적인 KB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시도다. 때문에 내부에서는 반대하는 이도 있었다고 한다.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심하면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어 회장은 단호했다. 그의 속내는 지난 1월20일 열린 숙대 1호점 개점식에서 잘 드러난다. 어 회장은 이날 “3~4년간 수익이 나지는 않겠지만 젊은 은행 이미지를 강화하고 미래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어서 손해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어 회장은“락스타의 진짜 목적은 미래고객을 선점하는 것이고, 이 역할만 제대로 해준다면 돈을 벌지 않아도 충분한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수익창출이 전혀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미래를 보고 투자하겠다는 얘기다. 고려대 총장 재임시 고려대를 세계 150위권으로 끌어올렸던, 도전에 대한 자신감이 그대로 표출된 것이다.

두 달이 채 안 돼 ‘어윤대식 KB 이노베이션’의 세번째 작품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어 회장은 지난 3월2일 KB국민은행으로부터 KB국민카드를 분사시켰다. KB국민카드의 분사 배경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어 회장은 무엇보다도 신한카드나 하나SK카드처럼 KB국민 은행에서 카드부문을 독립시켜 신속한 의사결정을 바탕으로 카드사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카드부문이 은행에서 따로 떨어져 나와야 자체 영업력 강화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KB 전체 자산의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KB국민은행이 다른 경쟁사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점도염두에 뒀다. 카드부문 분사가 단기적으로 국민은행의 실적 악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KB국민은행은지난해 당기순이익에서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에 뒤지면서 오랫동안 리딩뱅크로 불려온 자존심을 구긴 상태다. 분기별로 1000억원 이상의 수익을 내는 카드부문이 분사하게 되면 국민은행 실적은 다른 은행에 그만큼 더 뒤지게 된다.

어회장은 공개적으로는 “카드부문의 경쟁력을 강화하라”고 외치는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KB국민은행을 향해 ‘카드부문에 의존하지 말고 다른 은행처럼 실적을 내라’는 주문을 한 것이다. 어 회장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변화에 소극적이고, 생산성이 떨어지는 KB국민은행에 변화와 혁신을 요구한 것이다.

어윤대 회장, 직원들에게‘열공’주문

‘어윤대식 KB 이노베이션’은 더 있다. 대학총장 출신답게 어 회장은 직원들에게 ‘열공(熱工)’ 할 것을 주문했다. 조직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대대적으로 인력을 감축한 데 이어 구성원들의 실력 향상을 도모한 것이다.

그는 “진정한 고객만족은 고객이 원하는 수준 이상의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만 가능하다”면서 “전 임·직원이 공부하지 않으면 KB는 고객·주주·사회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며 직원 재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이 일환으로 지난해 11월부터 PB(프라이빗뱅커) 및VM(VIP매니저)에게 ‘금융시장 학습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직원들은 국내외 경제 및 금융시장 동향, 시장이슈 해설 등을 담은 KB경영연구소의 자료 ‘데일리 지식비타민’을 학습한 뒤 매주 월요일  시험을 통해 학습 결과를 평가받는다. 시험성적은 지점성과 평가에 반영되며, 성적이 우수한 직원에게는 표창과 함께 어 회장과의 오찬 기회가 제공된다. 직원들로서는 자기개발도하고, 고과에도 좋아 ‘꿩 먹고 알 먹고’ 인 셈이다.

어윤대식 KB 이노베이션에는 역발상적인 내용도 포함돼 있다. 어 회장은 서민금융에 강한 KB국민은행에 기업금융을 접목시키고있다. 비록, 국민은행이 서민금융 분야에서는 지존이지만 기업금융에서는 경쟁사보다는 크게 뒤처지기 때문. 어 회장은 그동안 교류해온 대기업CEO들과의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실제로 어 회장은 지난해부터 정준양 포스코 회장 등 친분이 있는 대기업 CEO들을 차례로 만났다. 또한 기업금융분야 에서 다양한 경험과 네트워크를 쌓은 이찬근 전 하나IB증권사장을 국민은행 대기업금융담당 부행장으로 영입했다. 실제로 외환서비스 부문에 점유율 1위를 기록하는 등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리딩뱅크 자리 지켜나갈지 예의 주시

이 모든 것의 종착역은 역시 ‘어윤대식 KB 이노베이션’이다. 어 회장은 시중은행에서 근무한 경험이 전혀 없다. 그런데도 KB를 이처럼 밑바닥에서부터 하나하나 바꿔나가고 있다. 변화와 혁신은 고려대 총장 시절부터 어 회장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는 총장에 오른 뒤 고려대를 글로벌대학으로 발돋움시켰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의 혁신 노력 덕분에 2006년 영국 <더 타임스>가 실시한 세계 대학 평가에서 고려대는 150대 대학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가 이번에는 KB금융에 이노베이션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어윤대 회장이 지난해 6월 KB금융지주 회장에 내정되기 전후 정치권과 금융권은 무척 시끄러웠다. 회장 선임과 관련해 여러 뜬소문이 나돌았다. KB금융 노조에서 낙하산이라고 반대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난해 7월13일 어 회장이 신임 회장으로 온 이후 KB금융지주는 급속도로 안정을 찾았다. 금융계에서는 “어윤대 회장이 강한 카리스마로 예상보다 빨리 안정을 찾게 한데다 변화시키기까지 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KB금융 관계자도 “어 회장의 여러 혁신 요구가 힘들긴 하다”면서도 “그동안 내부적으로 어수선하고, 사기도 저하돼 있었던 만큼 강력한 카리스마의 소유자인 어 회장이 이끄는 대로 가야하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금융계는 현재 폭풍전야다. 농협이 신용-경제부문을 분리하고, 금융지주를 출범시켜 경쟁에 뛰어들 태세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사실상 좌지우지하던 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보가 산은금융지주 회장에 임명돼 산은금융지주의 본격적인 몸 불리기가 시작될 전망이다. 하나금융지주도 외환은행 인수를 목전에 두고 있다.

어 회장이 이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이노베이션과 함께 리딩뱅크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조완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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