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의 약력을 살펴보면, 화려하다는 표현이 절로 나오게 된다. 그의 이력서는 1페이지로는 부족하고, 2페이지에도 빼곡하게 적어야 한다. 어 회장은 고려대 총장,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한국투자공사(KIC) 운영위원장, 국가브랜드위원장 등 학계, 금융계, 정·관계에서 안 해본 자리가 없을 정도다. 그가 걸어온 궤적을 따라가봤다.

어윤대 회장은 누구?

고려대 총장·브랜드위원장 등 거치며

학계, 금융계, 정·관계 마당발 인맥

1945년 경상남도 진해 출생인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은 경기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어 회장의 약력에서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을 빼놓고는 그의 인생 궤적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 어 회장이 대학 재학 때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을 만났기 때문이다.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다. 경영학과 63학번인 어 회장은 61학번인 이 대통령을 고려대 재학중 조우하게 된다. 특히 이 대통령이 상과대학 학생회장을 하면서 학우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 어 회장과도 함께 어울리는 선후배 사이로 발전했다. 어 회장은 이렇게 이 대통령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고려대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친 후 어 회장은 미국으로 가 1978년 미시간대에서 국제금융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한 해 뒤인 1979년에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어 회장은 모교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게 되면서 이명박 대통령과 다시 마주치게 된다. 그 당시 이 대통령은 현대건설 사장이었다. 어 회장이 경영학과 교수이다 보니, 기업 CEO(최고경영자)들과 자주 만나게 되고, 현대그룹의 주력계열사인 현대건설의 CEO였던 이 대통령과는 단순히 알고 지내는 것이 아닌 ‘친한’ 선후배로 발전했다.

고려대 교수 시절 어 회장은 외부 활동을 다양하게 하면서 외연을 넓혀갔다. 1992년부터 3년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을 지내며, 금융계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었다. 1995~1996년에는 한국금융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96년부터 99년까지는 산업은행 사외이사, 옛 제일은행 사외이사로 활동했다. 1999~2000년에는 국제금융인 전공을 살려 한국금융연구원 산하 국제금융센터의 초대소장으로 재직하기도 했다. 국제금융센터는 외환위기의 재발을 막기 위해 정부와 한국은행의 지원으로 설립된 국내 유일의 국제금융 전문기관이다. 그는 국제금융센터의 초대 소장으로 선임된 후 이 센터에 파견 나온 신제윤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과 함께 이 기관의 초석을 굳건히 닦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어 회장의 이름이 언론에 본격적으로 오르내린 것은 고려대 총장 재직 때다. 그는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총장을 지내면서 고려대에 ‘변화와 혁신’ 바람을 일으켜 언론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그의 활약으로 임기 마지막 해였던 2006년 영국의 <더 타임스>가 발표한 세계 대학순위에서 고려대는 150위에 오르며 국내 대학가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총장 임기를 마친 후에도 그는 옛 정보통신부 산하 미래전략위원회 공동위원장과 한·미 FTA 국내대책공동위원장, 한국투자공사(KIC) 운영위원장 등 정력적인 활동을 계속했다.

오래전부터 이 대통령의 핵심측근으로 통하던 그가 이 대통령과 더욱 각별한 사이가 된 것은 2009년 1월 대통령직속인 국가브랜드위원회의 위원장이 되고서다. 대학총장에서 우리나라의 국격을 높이는 장관급 공직자로 변신한 것. 물론 이 대통령이 그의 능력을 높이 샀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국가브랜드위원회가 대통령 직속이다 보니, 그는 이 대통령에게 보고할 기회가 많았고, 이 대통령을 자주 접할 수 있게 됐다.

어 회장은 국가브랜드위원장으로 재직하던 때인 2010년 6월 초 중대 결심을 한다. KB금융지주의 회장직에 도전한 것. 국제금융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던 그가 직접 국내 금융사의 국제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싶었던 것. 금융 현장 경험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어 회장은 “산업은행과 제일은행, 하나금융지주 등 3곳에서 사외이사로 활동하면서 충분한 경험을 쌓았기에 (KB금융지주 회장직을 수행하는 데)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그는 희망대로 회장 자리에 올랐다. KB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에서도 “국가브랜드위원장 재임 때 보여준 뛰어난 추진력과 리더십으로 경영능력이 검증됐으며, 인터뷰에서도 실현 가능성이 큰 경영 비전을 제시하는 등 급변하는 금융환경을 선도적으로 헤쳐나갈 적임자로 평가받았다”며 그의 선출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KB금융지주 회장에 선임되기 전 탁월한 능력에 걸맞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한국은행 총재 등 여러 장관급 자리에 이름에 거명되기도 했다.

 

Tip - 어윤대 회장의 성품

다혈질에 승부욕 강한 '열혈남'

어윤대 회장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열혈’이다. 워낙 적극적이고, 정력적으로 행동하기 때문. 고려대 총장 시절 대학발전기금 유치를 위해 기업 문턱을 쉼 없이 넘나드는 등 학생과 직원들에게는 ‘열혈남’으로 각인돼 있다. 기금 유치를 위해서는 못 마시는 술이지만 폭탄주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소탈함과 친화력은 예전부터 정평이 나 있다. 고려대 총장 시절 고려대생들이 어 회장에게 ‘윤대형’ ‘윤대오빠’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다. KB금융지주 관계자도 “솔직담백하게 부하직원들을 대하다 보니 외부 출신 회장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런 소탈함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어 회장은 학계와 금융계, 정·관계에 다양한 인맥을 형성할 수 있었다.

 또 상당히 다혈질인 어 회장은 승부욕도 강하다. 1972년 필리핀 마닐라의 아시아경영대학원에 다닐 때 필리핀 친구들과 재미로 팔씨름 대결을 하다가 팔이 부러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어 회장이 팔이 이미 꺾였음에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다가 결국 팔이 부러진 이 사건은 어 회장의 승부욕을 설명할 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일화다.

조완제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