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장은 한국의 대표적인 ‘융합 전도사’다. 이 소장은 ‘대한민국 과학 칼럼니스트 1호’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1990년대 초부터 20년 동안 조선일보를 비롯한 신문, 잡지 등에 600편이 넘는 엄청난 양의 과학 칼럼을 기고해왔고 30종이 넘는 저술도 펴냈다. 그의 칼럼은 첨단 과학기술 지식을 쉽고 흥미롭게 소개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 소장은 2008년 과학기술과 인문학의 융합 흐름을 개괄한 <지식의 대융합>이라는 책을 펴낸 후 융합 전도사로 나서기 시작했다. 2010년에는 <기술의 대융합>을 기획 및 공저한 데 이어, 오는 2월쯤 <인문학자, 과학기술을 융합하다>(가제)를 펴낼 예정이다. 이를테면 ‘융합 3부작’의 완성인 셈이다. 이 소장은 지난 수 년간 융합을 주제로 약 120회나 강연했을 정도로 인기 강사이기도 하다. 그를 만나 융합이라는 화두를 알기 쉽게 풀어헤쳐봤다.

“융합은 21세기형 르네상스이자 

   

 새로운 창조의 원천입니다”

 “자기 전문 분야를 제대로 알려면 먼저 ‘전체’를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뉴욕에 여행을 간다고 하면 뉴욕 지도만 갖고 가지는 않잖습니까? 미국 지도를 가져가야 뉴욕이 어디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거죠. 융합에 대한 접근도 마찬가지 이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인식 소장은 융합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실행하려면 ‘나무’보다 ‘숲’을 보는 안목과 통찰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옳은 말이 아닐 수 없다. A와 B를 융합하려고 하는데 A나 B만 안다면 A+B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A도 알고 B도 알아야 융합의 구체적인 결과물을 가늠할 수 있는 법이다.

그는 고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주를 예로 들었다. 애플이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같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제품을 잇달아 선보일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잡스가 융합 관점의 제품개발 철학과 방법론을 견지한 때문이라는 것이다. 잡스는 생전에 “우리는 과학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서려고 노력해왔다”고 말한 바 있다.

“스마트폰은 기술적으로 보면 디지털 융합의 한 예이고 산업적으로 보면 제품 융합의 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스마트폰은 아주 간단한 융합 사례일 뿐이에요. 거대한 컨버전스(융합)의 흐름 속에서는 수많은 융합이 가능합니다.”

이 소장은 한국 산업계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아직 ‘융합의 큰 그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아요. 삼성 등 대기업들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지금 한국에서 기술 간의 융합은 그럭저럭 이뤄지고 있어요. 그런데 인문학을 기술과 융합하는 시도는 아무도 하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인문학과 기술의 융합, 바로 그걸 해야 우리 기업들도 스티브 잡스를 넘어설 수 있어요.”

국내 기업들 아직 융합 이해 부족

그는 한 가지 뜻밖의 에피소드를 꺼냈다. 지난 3년간 120회에 달하는 ‘융합 강연’을 다녔지만 기업체에서 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강연이 대학이나 정부 출연 연구소의 초청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벌써 수 년 전부터 융합이니 컨버전스니 하는 말이 산업계의 주요 화두로 떠올랐음에 비춰보면 참으로 의외가 아닐 수 없다.

이 소장은 요즘 ‘융합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인문학자, 과학기술을 융합하다>를 마무리하는 데 여념이 없다. 이 책에는 김우창 이화여대 석좌교수, 박이문 포항공대 명예교수,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 복거일 문화미래포럼 대표, 염재호 고려대 교수, 이인화 이화여대 교수 등이 필진으로 동참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국의 대표적인 인문학자들이라는 점이다. 더 나아가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가 깊은 인문학자들이라는 공통분모도 갖고 있다.

이 소장은 “인문학 대가이면서도 과학기술 분야를 잘 이해하고 있는 분들만을 필진으로 골랐다”며 “이 책은 한국 산업계가 직면한 ‘스티브 잡스 쇼크’를 넘어설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는 길라잡이 구실을 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렇다면 최근 들어 융합이 학계나 산업계의 핫이슈로 대두된 까닭은 무엇일까? 이 소장은 그 이유와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일반론적으로 말하자면, 현대사회는 복잡다단한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데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기 분야 밖의 다른 분야 지식도 필요하게 됐습니다. 그 대목에서 융합이 일어나게 되죠. 아울러 기술이라는 것은 심화하다 보면 다른 기술과 만나게 돼 있습니다. 가령 반도체기술과 나노기술이 만나 반도체 나노공정이 가능해졌고, 인간 유전자정보를 해독하기 위해 정보처리 기술을 접목하다 보니 생물정보학이라는 학문이 탄생했죠. 모든 기술은 발전 과정에서 포개지고 만나게 돼 있습니다.”

융합에도 여러 갈래가 있다. 융합 주체에 따라 지식융합(학교), 기술융합(연구소), 산업융합(기업)으로 분류할 수도 있고, 융합 범주에 따라서는 인문학+과학기술, 과학기술+과학기술, 예술+과학기술로 나눌 수도 있다는 게 이 소장의 설명이다.

“사실 기술과 기술의 융합, 산업과 산업의 융합은 쉬운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기존의 것들, 눈에 보이는 것들을 합치면 되니까요. IT융합이 그런 사례죠. IT기술이 전통산업과 만나거나 다른 IT기술과 합쳐져 탄생한 새로운 것들이 아주 많죠.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인문학과 기술의 융합입니다. 그걸 제대로 해낸 사례가 스티브 잡스, 마크 주커버그 같은 인물이죠. 인문학은 상상력과 창의력의 원천입니다. 따라서 인문학과 기술의 융합 수준에서 성패가 갈리게 됩니다.”

이 소장은 외국의 첨단 융합 연구 사례를 몇 가지 제시했는데, 그 착상이나 내용은 깜짝 놀랄 만한 수준이다.

싱가포르 국립대 경영대학원에서는 기업가나 지도자가 얼마나 선천적인 자질을 갖고 태어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일란성 쌍둥이 1285쌍과 이란성 쌍둥이 849쌍을 대상으로 이른바 ‘쌍둥이 연구(Twin Study)’를 수행했다. 쌍둥이 연구는 유전자 전부를 공유한 일란성 쌍둥이와 유전자 절반을 공유한 이란성 쌍둥이의 유전자가 특정 형질이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하는 것으로 ‘행동유전학’의 핵심 연구기법이다. 따라서 싱가포르 국립대 경영대학원은 경영학과 행동유전학을 융합해 연구과제의 해답을 찾아 나선 셈이다.

유럽연합(EU)이 2007년부터 추진한 이른바 ‘엑스렐(EXREL·Explaining Religion: 종교 설명하기)’ 프로젝트도 최첨단 융합 연구로 주목할 만하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인간의 마음에 신앙심이 존재하게 된 배경을 알아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인류가 종교를 믿는 까닭을 탐구하는 ‘인지종교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적 방법론을 국제적 연구 프로젝트에 도입한 사례로 눈길을 끈다.

융합형 인재 육성에 국가 미래 달려

“2001년 미국과학재단에서 산·학·연 전문가 100여명이 모여 2020년에도 미국이 강대국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과학기술계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논의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처음 ‘융합기술(Convergence Technology)’이라는 용어가 등장했죠. 그러면서 미국과학재단은 2020년에는 한 명의 사람이 과학자도 되고 기술자도 되고 작가도 되는 융합형 인재가 부상하는 ‘르네상스’가 온다고 예견했습니다.”

이 소장은 융합 시대에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는 결국 인재라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융합형 인재를 육성하지 않으면 국가든, 기업이든 미래가 어둡다는 지적이다.

“융합은 지식 기반으로 이뤄집니다. 여러 분야의 기초지식을 먼저 함양한 뒤에 그런 지식들 간의 관계를 궁구해나가는 과정에서 창조적인 융합이 나올 수 있습니다. 요즘 창의력 교육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창의력도 기초지식이 없으면 나오지 않아요. 따라서 주입식 교육을 기반으로 창의력 교육을 추구하는 게 융합형 인재를 육성하는 올바른 교육방식이라고 봅니다.”

이제 융합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되고 있다. 21세기의 메가트렌드가 융합이기에 비켜가거나 외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 소장은 자못 비장한 어조로 마지막 한 마디를 남겼다.

“융합이 얼마나 크고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지는 앞으로 지켜보면 알게 될 겁니다. 우리 사회, 국가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려면 융합 문화를 확산해나가야 합니다. ‘(자기 분야를) 깊게 공부하고, (다른 분야와) 넓게 대화하라’는 말을 꼭 하고 싶네요. 융합의 큰 그림을 잘 그려나가는 게 중요한데, 그러려면 ‘사람간의 융합’이 먼저 이뤄져야 합니다.”

 

  Tip. 이인식 소장은… 

대한민국 1호 과학 칼럼니스트 … 과학 대중화 매진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장(66)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정보통신업계에서 약 20년간 일했다. 1992년 <사람과 컴퓨터>(까치글방)라는 책을 펴내면서 과학 칼럼니스트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이후 저술과 칼럼을 통한 과학기술 대중화에 매진했다. 대학 시절에는 단편소설을 쓰기도 했는데, 그때부터 인문학과 과학기술을 넘나드는 글쓰기를 해왔다고 한다. 2007년 3월부터 2011년 4월까지 4년여에 걸쳐 ‘이인식의 멋진 과학’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조선일보에 연재하기도 했다.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2005년 제1회 한국공학한림원 해동상, 2006년 제47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술상, 2008년 서울대 자랑스런 전자동문상을 수상한 바 있다.

김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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