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은 1990년대만 하더라도 세계 PC시장을 주무르던 절대 강자였다. PC 하면 곧 ‘IBM PC’를 떠올릴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IBM PC가 시장에서 사라졌다. 2005년 IBM이 PC사업을 중국 레노버에 매각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세계 최대 PC업체로 군림하던 IBM이 스스로 주력사업을 내다버렸기 때문이다. IBM은 왜 그랬을까. 그들은 IT시장의 큰 변화를 읽고 파괴적 혁신의 승부수를 던졌던 것이다.

‘주무기’ 녹슬자 주저 없이 ‘신무기’ 장착



- 샘 팔미사노 IBM 회장

강렬한 빛은 사라질 때도 짙은 잔상을 남긴다. IBM의 PC사업이 그런 경우다.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IBM 하면 PC’라는 오래된 선입관이 옅게나마 남아 있다. 하지만 IBM은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기업이 되었다. 정체성 자체가 달라진 것이다.

손명희 한국IBM 홍보실장은 “서버, 스토리지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하드웨어’를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지만 이제 IBM은 스스로 IT서비스·소프트웨어 기업이라고 자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IBM은 PC를 팔 때처럼 ‘단품’을 파는 게 아니라 고객들의 비즈니스 문제를 총체적으로 해결해주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을 지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1980년대까지 IT시장의 최대 강호였던 IBM은 1990년대 들어 심각한 경영위기를 맞았다.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한 결과였다. 1993년 구원투수로 영입된 루이스 거스너 회장은 생존을 위한 경영혁신을 추진했다. 핵심은 전사적으로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을 혁신하는 것이었다.

2000년 이후 IBM은 기존 사업 중 수익성이 낮은 부문을 다수 매각했다. IBM의 명성을 높여준 PC사업도 예외 없이 리스트에 올랐다. PC는 2000년대 들어 중국 등지에서 저가 공세를 펼치는 경쟁업체들이 등장하면서 고부가 제품에서 범용 제품으로 전락했다. IBM 입장에서는 수익을 내기 힘든 사양사업이 돼버린 것이다.

IBM은 자사의 사업 기반을 잠식한 중국 PC업체 레노버에 아예 PC사업을 통째로 넘겼다. 수익성이 떨어진 여타 하드웨어 사업들도 마찬가지 운명을 맞았다.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사업은 일본 히타치로 넘겼고, 프린터 사업도 접었다.

IT서비스·소프트웨어 기업 변신



- IBM의 '스트림 컴퓨터'

하드웨어 사업 부문을 대거 떼어낸 IBM이 새로 장착하기 시작한 신사업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소프트웨어와 IT서비스 사업이 타깃이 됐다. 고부가가치와 고수익을 낼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하드웨어 사업을 주로 하던 기업이 어느 날 갑자기 소프트웨어·서비스 사업을 한다고 성과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IBM은 이 분야의 사업 역량 확보를 위해 1990년대 중반 이후 무려 100여개의 관련 기업들을 인수했다.

IBM은 지난 10여년간 지속적으로 단행한 비즈니스 포트폴리오 혁신을 통해 하드웨어 중심의 사업 구조를 탈피하는 데 성공했다. 1998년 하드웨어 사업 부문의 매출 비중은 44.2%에 달했지만 2010년에는 그 비중이 18.0%로 크게 줄어들었다. 반면 같은 기간 동안 소프트웨어 사업 부문은 14.5%에서 22.5%로, 서비스 사업 부문은 35.4%에서 56.5%로 매출 비중이 증가해 IBM의 새로운 두 기둥으로 자리잡았다.

IBM은 현재 비즈니스 분석 및 최적화(Business Analytics and Optimization: BAO),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 스마터 플래닛(Smarter Planet) 등을 주력 사업으로 삼고 있다.

BAO 사업은 고급 데이터 분석을 통해 기업들이 폭증하는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가치 있는 정보를 찾아낼 수 있도록 돕는 비즈니스다. IBM은 BAO 사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총 140억달러를 투자해왔다.

클라우드 컴퓨팅도 확실한 효자 사업으로 자리매김해나가고 있다. 현재 IBM은 매일 수백만 건의 클라우드 기반 거래를 관리하며 기업, 공공기관 등 고객에게 효율적인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스마터 플래닛 사업은 IBM의 독창성과 창의력이 돋보이는 신사업이다. 말 그대로 ‘더 똑똑한 세상’을 만들자는 기치 아래 IT기술을 산업, 인프라, 도시, 행정 등 다양한 영역에 융합함으로써 시스템이나 업무의 효율성, 생산성 등을 향상시키는 것이 사업의 골자다.

특히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칠 즈음 세상에 선을 보인 스마터 플래닛 사업은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도 IBM의 성장을 견인하는 역할을 해왔다. 전 세계 기업들이 고민하고 있는 비즈니스 문제점에 대해 전략적인 접근 방식과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덕분이다. 2009년 스마터 플래닛 사업을 통한 새로운 계약은 1200여건에 달했는데, 이는 당초 IBM의 예상보다 4배나 많은 실적이었다. 덕분에 IBM은 경제위기 속에서도 월가의 전망치를 넘는 수익을 창출하면서 지속성장을 이어갈 수 있었다.

‘100년 IT기업’ 비결은 끊임없는 변화

IBM은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은 ‘백년 기업’이다. IBM은 지난 1세기 동안 수많은 발명을 통해 인류 문명의 진보에 기여해왔다. 최초의 상업용 전자계산기를 비롯해 하드디스크, 메인프레임(대형컴퓨터), 플로피디스크 등을 세상에 처음으로 선보인 기업이 바로 IBM이다.

또한 온라인 뱅킹과 전자상거래의 기틀이 된 최초의 항공예약 시스템, 컴퓨터 알고리즘 등도 IBM 연구소에서 탄생했다. 20세기 정보혁명의 굵직굵직한 업적들에는 IBM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것이다.

물론 IBM은 시장 변화에 둔감하다가 위기를 겪기도 했다. 메인프레임 사업이나 PC 사업이 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몇 차례 위기를 비즈니스 모델 변화로 잘 헤쳐나갔다.

샘 팔미사노 IBM 회장은 올해 창립 100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기업이 스스로를 제품이나 기술 또는 사업 모델로 정의해서는 안 되며, 자신들의 기업 가치로만 정의해야 한다. 열쇠는 사업 모델이나 기술에서 이룩한 성공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김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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