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인들의 자발적 연대 ‘고벤처포럼’

“한국의 스티브 잡스 탄생 위한

 신명나는 ‘판’을 만들어갑니다”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고영하 고벤처포럼(Go Venture Forum) 회장(59)은 ‘청년’이다. 나이는 환갑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생각과 기상이 누구보다 젊기 때문이다. 게다가 20~30대 젊은이들과 늘 함께한다. 그는 지금 청년 기업가들의 열정과 도전정신을 북돋우며 한국 벤처의 선순환적인 생태계 구축에 에너지를 쏟고 있다.

고 회장은 2000년대 초반 셀런TV라는 IPTV 회사를 창업한 경력이 있는 기업가 출신이다. 그는 2008년 현업에서 은퇴하면서 한 가지 고민에 빠졌다. 한가로운 은퇴 후의 삶을 즐길 것인가, 아니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였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에는 나이가 부담스러웠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죠. 젊은 벤처인들과 같이 어울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가진 경험과 경륜을 전수해주고, 그러다 괜찮은 친구들을 만나면 투자도 하고 말이죠. 이를테면 신생 벤처기업의 멘토나 엔젤투자자가 되어보자는 구상이었지요.”

고 회장은 평소 알고 지내던 젊은 친구들을 불러 자신의 뜻을 밝혔다. 또한 경력과 경륜을 갖춘 지인들과도 의견을 나눴다. 대다수가 깊은 공감을 나타냈다. 그렇게 해서 2008년 8월께 작은 모임이 만들어졌다. 고벤처포럼의 출발이었다. 고 회장을 비롯한 창립 회원들은 자신들의 인맥을 활용해 신출내기 벤처인들을 도울 수 있는 원군을 꾸준히 확보해 나갔다. 그러다 보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회원들이 늘어나면서 모임의 외형도 꽤 커졌다. 현재 고벤처포럼의 회원은 500여명에 달한다.



- 고벤처포럼의 청·장년 회원들이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벤처에 대한 애정으로 뭉친 회원들

멤버들의 면면은 각양각색이다. 창업을 꿈꾸는 대학생에서 초보 벤처기업가, 중견 벤처기업가, 기업인·경영자 출신의 엔젤투자자까지 출신과 연령의 스펙트럼이 무척 넓다. 하지만 모든 회원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바로 한국 벤처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넘친다는 점이다.

고벤처포럼은 매달 한번씩 정기 포럼을 개최한다. 그때마다 참석하는 인원은 약 200명에 이른다. 젊은 벤처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강사를 초빙해 강연도 개최하고, 벤처기업가들이 비즈니스 모델을 발표할 수 있는 무대도 마련한다. 그런 다음에는 모두가 자유롭고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며 서로 인맥을 쌓는 네트워킹 행사로 마무리한다. 고영하 회장의 설명이다.

“정기 포럼은 젊은 벤처인들이 어우러지는 정보공유와 만남의 장입니다. 한마디로 ‘생태계’라고 할 수 있어요. 세상을 잘 모르는 20대 젊은이들은 포럼에 와서 많은 것을 얻습니다. 새로운 선배, 동료를 사귈 수 있을 뿐 아니라 요긴한 정보도 얻게 되죠. 엔젤투자자와 벤처캐피털 관계자들도 많이 찾아오기 때문에 잘하면 투자도 받을 수 있어요. 실제 포럼 행사를 계기로 투자계약이 맺어진 사례도 많습니다.”

고벤처포럼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투자한 벤처기업도 있다. 현재 4개사가 고벤처포럼으로부터 엔젤투자를 받아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고벤처포럼에서 엔젤투자자로 활동 중인 회원은 20여명 정도다. 고 회장은 “좋은 사업 계획을 가진 젊은 벤처기업가들에 대한 투자를 계속 늘려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고벤처포럼의 엔젤투자 제1원칙은 ‘사람’이다. 투자 후보 기업의 대표와 핵심 멤버들의 잠재력을 살펴보고 투자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회사를 경영할 만한 능력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혹 실패하더라도 역량과 수완이 있으면 다시 재기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고 회장은 한국의 열악한 벤처 창업 문화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사회적 통념과 분위기 자체가 벤처의 활발한 탄생을 막는다는 것이다.

“미국 사회는 젊은이들이 창업에 나서면 격려해줍니다. 그러다 보니 똑똑한 젊은이들이 창업을 많이 선택해요. 게다가 미국에서는 젊은 벤처기업가가 한번 실패하더라도 다시 재기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져 있어요.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아들이나 형제, 친구가 창업한다면 뜯어말리지 않습니까? 어렵사리 창업에 나선다 해도 회사가 망하면 바로 신용불량자가 돼버려요. 이래서는 건강한 창업 문화가 뿌리내리기 어렵습니다.”

최근 전 세계 IT산업은 스마트기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클라우드컴퓨팅(Cloud Computing)이라는 신(新) 조류에 의한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새로운 시장과 사업 기회가 열리면서 벤처 창업도 활발하다. 하지만 젊은 벤처기업가들은 아이디어와 기술, 열정이 있더라도 성공을 담보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이걸 채워줄 수 있는 벤처 생태계가 필요한 이유다. 그런 점에서 미국 실리콘밸리는 좋은 벤치마킹 사례다.



- 고영하 고벤처포럼 회장.

미국 같은 역동적 벤처 문화 구축 목표

현재 미국 경제를 대표하는 ‘아이콘 기업’들은 애플, MS, 구글, 페이스북 등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성장한 ‘청년 기업’들이라는 점이다. 애플과 MS는 업력이 아직 40년도 안 됐고, 구글과 페이스북은 창업한 지 불과 10년 안팎이다. 반면 한국과 일본 경제를 주도하는 대기업들은 최소 반세기 이상의 역사를 가진 ‘장년 기업’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미국 경제는 신진 기업들이 끊임없이 혁신을 이뤄가는 반면 한·일 경제는 기존 질서가 점점 더 고착되어가는 구조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이 노쇠했다고들 말하지만 미국의 저력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미국은 젊은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탄생하면서 국가경제의 이노베이션을 이끌어갑니다. 이게 바로 미국의 힘이에요. 고벤처포럼은 미국처럼 건강하고 역동적인 창업 문화를 만드는 데 모든 힘을 쏟아볼 계획입니다.”

고 회장은 TV 예능프로그램 <나는 가수다>를 즐겨본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에 빗대어 벤처 생태계론을 펴기도 했다. “<나는 가수다>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판’을 만들어주니까 유능한 가수들이 인정을 받는구나 하고 말이죠. 벤처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사회가 뛰어난 젊은이들이 맘껏 도전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준다면 한국에서도 스티브 잡스, 마크 주커버그 같은 기업가가 나올 수 있다고 믿습니다.”

김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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