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 떠도는 800조원 투자처 찾아주겠다”



한덕수(56)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김진표 교육부총리, 이헌재 전 부총리에 이어 지난 3월 참여정부의 세번째 경제사령탑에 올랐다. 한부총리는 ‘시장자율경제 및 자유개방’ 신봉주의자다. 때문에 기업인들은 한부총리를 환영하는 반면, 노조나 농민들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한부총리는 자신의 취임을 걱정하는 이들을 염두에 둔 듯 "정책 일관성을 위해선 색깔이 좀 없어야 할 것 같다”는 유화적인 발언을 첫 일성으로 꺼냈다. 한부총리의 경제 해법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사적 모임에서‘극빈층 아파트 건립 구상’언급 ‘국채 금리+1%’수익 보장도 제시



 저 한덕수 부총리의 근본적인 경제 신념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의 한부총리 발언에서 이를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한국 영화를 보호하기 위한 스크린쿼터(한국산 영화 의무상영제)가 오히려 한국 영화산업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1998년 7월, 통상교섭본부장 시절)

 “당시 상황에선 (마늘 협상이) 최선의 결과였다. 모든 책임을 지고 (경제수석에서) 물러난다.”(2002년 7월)

 “자유무역협정(FTA)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2003년 8월, 산업연구원장 취임 기자회견)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서 자유로운 활동을 하도록 하기 위해 많은 나라와 FTA를 체결해야 한다. 그래야만 1인당 국내 소득을 3만~4만달러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산업연구원장 시절 기업인들과의 사적 모임에서)

 한부총리는 2002년 7월 한·중 마늘 협상 파동으로 잠시 공직 생활을 접었다가 2004년 참여정부 2대 국무조정실장(장관급)으로 컴백한 뒤에도 앞서 언급한 발언에 대해 굽히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한부총리를 만난 기업인은 “노사분규에 대해 강경 발언을 서슴지 않아 ‘강성 매파’라는 인상을 받기까지 했다”고 귀띔했다.

 이랬던 한부총리가 국무조정실장으로 고건 전 총리, 이해찬 총리를 잇달아 보좌하면서 그의 경제 신념 색깔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국무조정실은 각 부처의 정부 정책을 원만히 조정하고 통합하는 자리다. 따라서 재계는 한부총리가 각종 국정 현안들을 각 부처와 여러 차례 논의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기본 철학을 상당히 유연하게 재해석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한부총리는 이총리를 가까이서 대하면서 자신의 경제 철학과 참여정부의 코드를 접목시켰을 것으로 한부총리를 만난 기업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최근 대기업의 한 인사는 국무조정실장 시절의 한부총리를 만나 현 정부의 기업 정책에 대해 매서운 비판을 했다가 한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한부총리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그래서 현 정부가 기업 활동을 크게 방해한 적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해 보라”며 매섭게 추궁당했다는 것이다.

 또다른 사적 모임에서 한부총리는 현 정부의 분배 정책을 좀더 구체화시킨 얘기까지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부총리는 그 자리에서 “우리나라 전체 1500만가구 중 200만~400만가구는 집이 없는 극빈 계층이나 다름없다. 이들은 말도 안되는 열악한 상황에서 생활해 가고 있다. 정부가 이들을 보호해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국가가 저가의 임대아파트를 많이 지어야 한다”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고 한다. 한부총리는 이를 싱가포르에서 벤치마킹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파트 건설 자금에 대한 ‘한부총리의 플랜’이 구체적으로 언급된 대목에선 한부총리가 참여정부의 경제 정책을 마무리할 복안을 이미 세워 둔 것 아니냐는 추측마저 든다. 한부총리는 어느 모임에서 “시중에 떠도는 돈이 800조원이다. 이 돈은 은행 이자가 너무 낮아 수요처를 찾지 못해 떠돌고 있다. 이를 방치하면 이 돈은 부동산 투기 자금으로 쓰이거나 해외로 빠져나갈 것이다. 만약 정부가 국채 금리에 1%를 얹어 주는 조건으로 이 돈을 끌어들이면 정부 재정적자를 방지하고, 극빈층을 위한 아파트 건설 자금도 마련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것이다”고 말했다고 한다. 은행 이자율 이상의 수익이 나오지 않을 경우 정부가 이를 보전해 줄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고 한다.

 물론 이같은 발언은 한부총리가 국무조정실장 시절, 그것도 사석에서 했던 얘기인 만큼 실제로 추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만 한부총리가 취임 기자회견에서 가진 일문일답의 내용을 보면 실현 가능성이 낮아 보이지는 않는다.

 

 정책 일관성을 강조해서 그런지 색깔 없는 부총리라는 지적이 있는데.

 정책의 일관성을 위해선 색깔이 좀 없어야 할 것 같다. 참여정부가 그동안 열심히 해서 국가 사회의 발전 방향을 잡았고 수많은 법과 제도도 창설했다. 이러한 것들이 하루 빨리 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게 중요하지 다시 고치는 것은 아니다. 총리와 대통령도 그런 쪽으로 지원하겠다고 말씀하셨다.



 개방의 필요성을 일관되게 강조해 왔는데.

 대통령께서도 선진 개방 국가를 지향하겠다고 말씀하셨고, 개방을 위한 계획과 방안들도 이미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다. 하지만 개방의 효율성을 위해 개방 과정에서 소외되는 계층에 대해선 따뜻한 배려와 보호가 필요하다. 개방의 비용은 과감하게 지불해야 하지만 사회적 통합을 깨뜨릴 정도의 개방은 성공할 수 없다. 재정경제부가 개방 과정에서 배제되는 계층이 없도록 노력하고 그런 기능을 대폭 강화하겠다. 개방의 마찰을 최소화하면서 선진 개방 국가로의 여정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



 이에 따라 종합 투자 계획과 재정 조기 집행, 중소·벤처기업 육성 등 경기 회복을  위한 성장 정책들이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일자리 창출, 신용불량자 문제 해결, 부동산 투기 억제 등 민간 소비 회복을 위한 대책들이 예정대로 집행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내에서 통상전문가로 손꼽히는 한부총리의 취임으로 경제 정책 가운데 통상 정책은 이전보다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한부총리의 리더십과 추진력을 문제 삼기도 한다. 한부총리가 거시경제와 금융 쪽에 약할 수 있고, 전임자인 이헌재 전 부총리에 비해 리더십과 추진력에서 떨어진다는 평가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재경부 관계자들은 “이론과 실물이 다르지만 한부총리가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박사 출신인 데다 통상 분야를 다뤄 봤기 때문에 거시 쪽에도 밝을 것”이라며 “금융도 경제수석과 국무조정실장을 거치면서 주요 현안들을 살펴 왔기 때문에 이해도가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한부총리를 두둔했다.

 다른 관계자는 “경제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는 지금은 새로운 정책 과제를 발굴하기보다는 이미 짜여져 있는 정책 과제를 착실하고 안정적으로 실천하는 게 우선”이라며 “이런 점을 감안하면 지금 상황에선 한부총리와 같은 관리형이 적임자이고 총리와 여당도 신임 부총리에게 힘을 실어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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