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관광은 이제는 단순한 관광에 그치는 게 아니고 남북경협 활성화의 열쇠가 됐다.
남북경협 전도사인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을 개성공단에서 첫 성과물이 나온 다음날 만났다.
2004년 12월15일 북한 개성공단 시범단지에 입주한 리빙아트가 처음으로 남북 노동자들이 함께 만든 냄비 등 주방용품을 내놓았다. 2000년 8월 현대아산과 북한 아태위원회가 개성공단 건설에 합의한 뒤 4년여 만에 이뤄낸 성과물이다.

 이날 오전 11시 개성공단 공장에서 생산이 완료된 냄비는 현대아산과 리빙아트가 초청한 주부 10여 명에게 첫 제품 전달식을 거친 후 곧바로 8t 트럭에 실렸다. 포장과 상차까지 마친 시간은 오후 1시. 냄비를 실은 트럭은 북한 CIQ(세관·출입국관리검역소)를 통과해 오후 2시에는 군사분계선을 지나 오후 2시20분 남한 CIQ를 통과했다.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쯤. 오후 6시가 되자 개성 냄비는 매장에 진열돼 남한 소비자들에게 선보였다. 손님들은 판매 시작 3시간 전부터 줄을 서기 시작했으며, 매장에 진열된 지 2시간 30분 만에 동이 났을 정도로 불티나게 팔렸다. 가격은 1만~2만원에 불과하지만 그 의미는 남다르다. 제품의 질을 인정받았기보다는 첫 남북 합작품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은 북측 노동자들의 해 보고자 하는 자세가 밑거름이 됐다고 평가한다.

 2004년 12월16일 서울 계동 현대아산 사장실에서 만난 김윤규 사장은 국민들로부터 큰 선물이라도 받은 듯 약간은 들뜬 분위기였다. 아니 그동안의  숱한 우여곡절을 생각하면 왈칵 울음이라도 쏟고 싶었을 것이다.

 김 사장을 만난 시간은 약속시간보다 15분 늦은 오전 8시45분. 8시부터 시작된 아침 미팅이 조금 길어졌기 때문이다. 전날 가져온 ‘메이드 인 개성’ 냄비세트의 판매량도 궁금할 것이고, 앞으로의 일정 등을 종합 점검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것이다.

 김 사장에게 ‘개성제 냄비’의 폭발적 인기에 대해 축하인사를 건네자, 그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임원에게 “어제 얼마나 팔렸느냐”며 연신 묻고, 즉각 만족할 만한 대답이 없자 비서에게 “롯데백화점 사장에게 전화를 연결하라”며 흥을 돋웠다.

 김 사장이 앉은 소파 정면에는 고 정주영 회장 사진과 고 정몽헌 회장 사진이 분간이 갈 정도로 서로 겹쳐 놓여 있다. 김 사장은 매일 두 고인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눈다고 한다. 그동안 어려움을 여러 번 하소연했겠지만, 이번엔 첫 성과물의 기쁨을 누구보다도 이들에게 먼저 달려와 보고했을 것이다.

 그는 인터뷰를 시작할 무렵 사진기자에게 자신의 애장품 전문가용 명품 사진기인 ‘핫셀 블라드’(Hassel blad)를 자랑했다. 그는 요즘 700만, 800만 화소에 이르는 디지털 카메라도 많지만 그래도 옛날 방식이 좋을 때가 있다며 먼저 사진 포즈부터 취했다.



 어제(2004년 12월15일) 처음 북한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합작품이 국내에서 팔렸습니다. 소감이 남다를 것 같은데요.

 냄비 들고 개성에서 왔습니다. 50년 분단사에 남북 공동 합작품을 만들어 아무런 장애 없이 서울에서 판매할 수 있게 돼 너무 기쁩니다. 조그마한 냄비에 국민적 관심이 그토록 클 줄 몰랐습니다. 올해(2004년) 안에 북측과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겠다는 다짐이 이뤄져 감격스럽습니다. 냄비 사려는 아줌마들이 백화점에 너무 많이 몰려와 번호표를 나누어 주었다고 하더군요. 우리 국민들도 놀랐겠지만 세계 시장에서도 놀랐을 겁니다. 그동안 남북간 긴장 고조로 주변국이 이익을 봤다면 이제는 남북간 화합이 큰 성과를 이뤄 경쟁력을 갖추게 됐으니까요.



 개성공단에서 첫 생산품이 나왔습니다. 앞으로 나올 제품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2005년 2월까지는 의류, 신발을 비롯해 4개사 제품이 추가로 생산, 판매될 겁니다. 처음에는 공단에 입주한 우리 중소기업들의 걱정도 많았습니다. 잘 만들 수 있을지, 잘 팔 수 있을지. 하지만 성공적인 생산과 운송, 판매를 보면서 안도하게 됐습니다. 개성공단에서 일할 북한 인력을 뽑아 중국의 각 기업체에서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때 가 본 적이 있는데 북측 노동자들의 ‘한 번 해 보자’는 열의가 놀라웠습니다.



 개성공단의 경제적인 효과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개성공단이 우리 경제의 숨통을 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현대아산이 토지공사와 함께 개성시 봉동리와 판문군 일대 2000만평을 공단과 주거 및 관광지로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은 오는 2012년이면 마무리됩니다. 또 통천에 경공업단지와 금강산에 첨단산업기술개발단지인 ‘금강산밸리’를 조성해 첨단 기술을 중심으로 한 종합경제특구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입니다.

앞으로 10여년 동안 남쪽에 10만개, 북쪽에 73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직접적인 경제 효과로는 개성공단 조성이 완료되는 9년 후 남한 경제에 연간 83조9000억원, 연간 부가가치 24조4000억원, 일자리 10만개를 창출할 것이고, 북한 경제의 연간 총수입도 7000억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개성공단은 언어 소통, 낮은 노동비용, 물류비 절감 면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남과 북 모두에 상생의 경제 효과를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경제적인 효과뿐만 아닙니다. 도로와 철도를 통해 유라시아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젊은이들에게 더 나은 비전을 보여주지 않을까요?

 개성공단은 1단계 100만평에 이어 2·3단계 개발도 곧바로 추진된다. 현대아산은 관광·상업·생활지구 등 신도시 개발 사업도 빠른 시일 내에 착수해 총 2000만평을 최대한 빨리 개발하고, 점차적으로 1억평까지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김 사장은 “이러한 개성공단은 중국, 홍콩, 베트남 등 다른 지역보다 뛰어난 경쟁력으로 세계로 발전해 나갈 것이며, 민족 경제공동체 건설의 산실로 국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들에 경쟁력 있는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활로가 되고, 북측에도 경제 성장의 기반을 구축하는 데 밑바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골프장 건설 등 금강산관광사업을 확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백두산 관광까지 가능해진다고 하는데 어떻게 추진되나요?

 민간 개인 기업의 대규모 투자사업인 금강산 골프장이 착공돼 금강산사업에 투자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입니다. 금강산관광사업이 경제성과 수익성 있는 사업으로 인식되는 계기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금강산 골프장에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골프대회를 개최할 수 있도록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코스로 건설하고, ‘아산배 국제대회’도 개최할 계획입니다. 백두산에서 평양, 금강산에 이르는 북한 내 관광 코스도 개발할 것입니다. 설악산과 연계되는 코스도 보완됩니다. 설악산에서 스키 타고, 금강산에서 골프를 칠 수 있는 시대가 조만간 열릴 것입니다. 이러한 투자가 확대되면 금강산 특구는 사업성 있는 국제적 수준의 관광단지로 거듭날 것이며, 남북 화합과 평화 정착에도 더욱 더 큰 기여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골프 스포츠가 통일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금강산관광사업은 저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1989년 제가 정주영 명예회장을 모시고 처음으로 방북해 의정서를 체결한 지 10년 만인 98년 11월18일 관광선이 첫 출항을 하고, 6년간 85만여명의 관광객이 다녀갔습니다. 고 정몽헌 회장도 금강산사업을 책임지고 성공시키라는 유지를 남겼습니다. 어떻게 소홀히 추진할 수 있겠습니까?

 김 사장에 따르면 앞으로 금강산관광특구는 육로와 해로뿐만 아니라 항공, 철도, 자가용 등 자유로운 경로를 통해 출입이 가능해질 것이며, 관광 코스도 내금강·원산 등으로 확대된다. 관광시설도 이번에 착공하는 국제 규모의 골프장을 비롯해 스키장, 특급호텔, 놀이시설 등으로 세계적인 국제관광지구로서의 면모를 갖춰 나간다는 구상이다.



 남북 경협사업을 추진하는 데 어려움도 많았지요?

 현대의 남북경협사업은 남북간에 정치·군사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을 경제 협력을 통해 통일의 기초를 닦아야 한다는 정주영 명예회장의 뜻과, 우리 민족이 21세기 무한경쟁시대를 살아 나가기 위해서 남북이 힘을 모아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당위성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물론 남측 기업이 북측의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사명감도 합쳐져 추진하게 됐습니다. 명분은 충분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지만 해 보라고 하면 누구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업 초기에는 남북 당국간 대화도 없었고, 대화조차도 터부시되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남북경협사업을 시작해 지난 16년간 북측과 신뢰를 쌓기 위한 수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했습니다. 막대한 자금의 선투자, 경협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질타, 특검 조사,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의 죽음 등 수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국가와 민족, 그리고 현대의 미래를 내다보고 금강산관광사업을 지속시켜 왔고 개성공단사업 등을 이끌어 왔습니다. 방북 소떼가 그렇게 힘이 센 줄 몰랐습니다.



 정부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지원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정부는 남북 철도·도로 연결, 전력, 용수, 통신 등 기반시설 건설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남북간 경제협력을 통한 4대 협정서를 체결해 제도적 틀을 마련했습니다. 북측에서도 특구법을 발표하고 월 50달러(6만원)의 경쟁력 있는 임금, 낮은 세금(기업소득세율 10~14%, 8년간 감면) 등 최고의 특혜를 부여해 개성공단 사업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현재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국면에 있는 가운데 동북아 경제중심국가로서의 도약을 꿈꾸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현대는 남북경협사업의 선두주자로서 역사적 사명감을 갖고 과감한 투자를 통해 남북경협의 기반을 닦아 놓았습니다. 하지만 남북경협사업은 더 이상 현대만의 사업이 아닙니다. 이제는 대기업들을 포함한 국내외 여러 기업들이 참여하고 투자할 때가 왔습니다. 특히 대기업들이 선두에 서서 미래 비전을 갖고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최고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 중소기업들도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을 발휘해 투자한다면 더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금융기관에서도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 적극적인 참여의식을 갖고 지원해 줬으면 합니다. 정부에서도 공기업의 투자, 인프라 지원, 정책 금융 지원 등 더 적극적인 정책으로 지원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는 이번 정동영 통일부장관의 방북이 대북사업에 대한 정부의 긍정적인 단면을 보여주는 좋은 예지만 더욱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사장은 남북경협사업 중 판문점을 통해 소떼 방북을 성사시키기 위해 1998년 평양과 서울을 오가던 일과, 민영미 억류사건 해결 과정 등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또 98년 9월경 40여명이 협상 마무리를 위해 전세기를 타고 평양에 갔다가 협상이 결렬돼 그 다음날 새벽에 전원이 베이징으로 철수했던 일 등 많은 일들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김 사장은 “이러한 것이 바탕이 돼 역사적인 6.15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고, 당국간 대화는 물론 대규모의 인적·물적 교류를 통한 민간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등 남북간의 신뢰가 형성됐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먼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국민들의 관심과 격려가 없었다면 그동안의 역경을 헤쳐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요즘도 금강산 관광을 떠나는 사람들을 배웅하러 나가곤 합니다. 그리고 아직 주변 여건과 시설이 불편하더라도 민족 화합과 통일에 일조한다는 마음으로 다녀오시라고 말씀드립니다. 남북간 경협의 문도 현대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남북경협사업은 한반도의 평화와 다음 세대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 반드시 추진돼야 한다는 게 김 사장의 일관된 주장이다. 남북경협사업의 필요성과 의미를 이해하고 참여할 때 다음 세대에게 꿈과 희망이 있는 미래를 물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금강산 관광은 이제는 단순한 관광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평화와 남북 경협 활성화에 일익을 담당하는 열쇠가 돼 가고 있다.

기분 좋게 시작한 인터뷰는 오버하지 않는 그의 모습을 강하게 담고 끝마쳤다. 30년 만의 이상고온일까, 따뜻한 마음을 품고 사장실을 나왔다.

장시형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