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69) 전 대우그룹 회장이 귀국함에 따라 촉발된 소위 ‘대우사태’의 진실 규명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3대 혐의로 제기되고 있는 분식회계, 사기대출, 해외 재산도피 등이 검찰에 의해 그 실체가 드러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대우사태와 관련된 제반 의혹들이 모두 밝혀질 것이란 기대에는 ‘글쎄(?)’. 대우사태의 진실 규명이 이번 수사의 핵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3대 혐의 가운데 김 전 회장이 인정할 수 없는 내용에 대한 진술에서 대우 부도의 실체가 일부 드러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귀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대우사태’에 대한 접근법에 따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공(功)을 앞세우는 한편으로, 과(過)가 먼저라는 다른 한편의 주장이 맞선다. 또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정당한 평가와 책임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없지 않다.  



 외환위기에 발목 잡힌 ‘세계경영’의 총수

 김 전 회장은 지난 6월14일 귀국 행로에서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말로 과에 대한 사죄와 함께 책임을 통감함을 밝혔다. 그는 이 날 공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었다. ‘억울하다’고 주장했던 과거의 입장은 뉘앙스조차 풍기지 않았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의 핵심 측근들은 한결같이 “국가부도 사태로 일시에 몰려든 빚을 정리하다 국민의 정부로부터 늘어나는 차입금이 걱정(?)된다며 하루아침에 강제 퇴진의 길로 내몰린 비운의 기업(총수)”이라는 인식하에 김 전 회장의 귀국을 지켜보았다. 실패한 경영인의 비참한 귀국이 아니라 누명을 벗기 위해 오랜 유배생활을 끝내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들 핵심 측근에 따르면 대우사태의 시점은, 시침(時針)으로는 1997년 10월 환란, 분침(分針)으로는 1998년 12월이다. 시침은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세계경영’이 예기치 못한 ‘국가부도’ 사태로 발목을 잡히며 멈춰 서게 된 해다. 반면 1998년은 정권인수위 시절부터 가시화된 국민의 정부의 재벌개혁의 방향 수정과 환란 위기의 경제 회생방안에 대해 김 전 회장은 전경련 회장 으로서, DJ와의 개인적 친분으로 지속적으로 간여하게 되는데 노선과 이념적 배경이 다른 신흥 경제 관료들과의 갈등과 대립이 격화된 시기로 보고 있다.

 그 결과 대우 해체가 결정된 1999년은 이미 ‘대우 죽이기’로 방침을 정한 정부의 극한적 조이기로 빠르게 수순을 밟는 절차적 의미를 갖던 시기로 측근들은 판단하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측근들의 주장은 기존 정부와 검찰의 발표를 통해 알려진 내용과는 다소 상이하다. 또 과거 대우에서 근무했던 임직원들간에도 시각차이를 보이고 있다. 다만 외환위기라는 벼랑 끝에서 국가경제를 한 번 더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대우사태의 진실규명 작업은,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전제 하에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검찰의 수사과정에서 이 같은 진실이 밝혀졌으면 하는 게 이들의 바람이지만, 검찰에서는 이미 김 전 회장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3대 혐의로 수사가 축소될 것이 분명하다. 또 그에 대한 사법적 판단으로 김 전 회장에 대한 심판도 마무리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그러나 측근들을 비롯한 일부 전직 임원들은 검찰 수사과정에서 김 전 회장 귀국 전 논란을 빚었던 공과(功過) 평가를 떠나 대우그룹 해체가 어떤 과정을 통해 발생했는지, 즉 대우부도가 ‘자살’이냐 ‘타살’이냐를 밝혀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특히 당시 국민의 정부 시절 경제를 이끌었던 신흥 경제 관료들과 갈등을 겪어 보복성 해체를 당했다며 명예회복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한편에서는 김 전 회장의 3대 혐의와는 무관하게 원인 규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때 국내 기업 가운데 자산규모 2위, 매출규모 3위를 차지했던 대우그룹이 한순간에 무너졌다는 것은 국가경제를 위해서도, 대우그룹에 몸담고 있던 임직원들의 이후 고통 경감을 위해서도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라는 것이다.



 대우사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

 실제 대우사태는 김 전 회장을 비롯한 대우그룹 최고경영진들만의 결정이라고 보기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또 해체 과정 속에서 정부 관료를 비롯해 재계 인사들의 이름도 직·간접적으로 거론돼 왔다.

 향후 검찰 수사에서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이들 인사의 명단이 흘러나올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당시 경제정책을 책임졌던 이들이 대우사태로부터 결코 자유롭기는 힘들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까지 김 전 회장의 측근들로부터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는 당시 정부 기관은 청와대와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이다. 또 삼성그룹은 조연급으로 대우사태에 이름이 오르내린다.  

 당시 경제 관료로는 강봉균 재정경제부 장관, 이헌재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 서근우 금감위 기업구조조정 담당관 등이다. 물론 김대중 대통령도 빠지지 않는다. 또 기업인으로는 이학수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대우사태와 관련해 거론되고 있는 이들은 자의든 타의든 대우그룹 해체과정에 간여했다. 때문에 김 전 회장에 대한 사법적 판단과는 별개로 대우사태에 대한 진실 규명 작업이 본격화될 경우 이들은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김 전 회장이 귀국한 현재 모두가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강봉균 전 장관(현 열린우리당 의원)은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해 관심을 모은다. 

 강 전 장관은 김 전 회장이 귀국한 6월14일 홈페이지를 통해 “드라마 같은 인생역정의 주인공에 머물지 않고 바로 7년 전 외환위기 과정에서 대우그룹이 붕괴의 운명을 맞게 한 주인공이기 때문에 그 분에 대한 관심은 현실적이고 냉철한 평가를 수반하게 될 것”이라며 3대 혐의에 대한 진위규명은 “일반 여론의 몫이 될 수 없고 사법부에 그 역할을 맡겨야 한다”고 밝혔다. 공과에 대한 논의 자체보다는 책임론을 강조한 것이다.

 특히 강 전 장관은 “(대우그룹 임직원들 중에는) 김 회장의 경영독주를 시스템으로 견제하지 못하고 법률적으로 주어진 CEO로서의 책임과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점이 없었는지 자문해 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임직원들에 대한 도의적 책임까지 따졌다.

 강 전 장관의 이 같은 입장은 결국 “대우그룹의 해체는 정책당국자들의 판단에서 초래된 결과라기보다는 시장의 신뢰를 상실한 김우중 회장 스스로가 자초한 결과”라는 인식이 짙게 깔려 있다.

 그러나 김 전 회장 측근들은 전혀 반대편에 서 있다.



 팽팽히 맞서는 자살 vs 타살

 대우사태와 관련, 논란의 핵심은 외압 여부로 압축된다. 최근 김 전 회장에 대한 재평가도 사실상 대우 해체가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는 시각에서부터 출발한다.

 국민의 정부 초기 경제팀의 수장이었던 강봉균 전 장관은 이에 대해 “당시의 시대상황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재벌기업들이 무리한 차입재원으로 투자사업을 확대해 부실경영을 초래했는데 그 배경에 관치 금융이 있었다”고 전제한 그는 “따라서 외환위기 극복은 관치금융의 폐해를 치유하는 과정”이었다고 규정했다. 즉, 부실대기업을 정부가 선별적으로 구제하는 것은 바로 관치금융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불가능했으며, 선택은 시장의 신뢰를 잃은 부실기업이 부도를 내고 파산하게 하느냐, 아니면 부실경영의 책임을 물어 경영주를 퇴진시키고 채무구조를 재조정(워크아웃) 해서 채권금융단의 관리체제로 가느냐 하는 길 뿐이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당시 김 회장은 대우그룹이 점차 심각한 자금난에 빠져들자 정부가 나서서 유동성 위기를 해결해 주기를 바랐지만 정부는  그럴 입장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강 전 장관은 그 이유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는 대우그룹에 정책금융을 지시했다면 국제금융사회에서는 한국 정부가 외환위기의 원인을 치유할 의지가 전혀 없는 것으로 판단, 국제적 금융지원을 중단했을 것이고, 둘째는 대우 지원을 지시했더라도 금융기관들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국내 금융기관들도 부실채권을 정리하지 않으면 생존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또 ‘왜 대우그룹이었느냐’는 정치적 배경에 대한 의혹과 관련해서도 강 전 장관은 “당시 5대 재벌의 구조조정은 전경련을 중심으로 자율적 추진을 원칙으로 했다”며 일축했다. 특히 김 전 회장은 당시 전경련 회장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모든 과정을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었던 인물이라며, 대통령을 비롯한 경제장관들과도 가장 의사소통을 잘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서로간의 오해 때문에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재벌의 구조조정 과정에 정치권이 개입해서 재벌들에게 차별적 조치를 취했는지의 여부도 김 전 회장이 가장 잘 알 수 있었던 위치에 있었다는 게 강 전 장관의 설명이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의 측근들의 입장은 다르다. 국민의 정부 정권인수위 시절,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한 김 전 회장은 IMF 사태 초래의 원인과 책임 소재를 놓고 재계 책임론을 주장하던 한국대표들과 격론을 벌인 것을 시작으로 정권이 출범한 5월까지 그 해법을 둘러싸고 경제 관료들과 반목의 골이 깊어졌다고 주장한다. 또 그룹구조조정의 핵심방안으로 추진했던 대우차의 GM 매각이 예기치 않게 GM의 내부 사정으로 무산됨으로써 정부의 강력한 구조조정 압박과 함께 대우의 운명을 ‘사지(死地)’로 내모는 첫 번째 단추를 채우게 됐다고 덧붙인다.



 거꾸로 돌리기엔 역부족인 시계바늘

 특히 이 과정에서 대우는 정부로부터 “폭발물 처리반이 정교하게 해체해야 하는 불발탄과 같다”며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면 해체할 수밖에 없다”는 최후통첩까지 받았다고 측근들은 주장한다.

 이에 김 전 회장을 비롯한 대우 사장단이 정부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마지막 생존 수단으로 ‘41개 계열사를 9개로 줄이고 삼성차와 대우전자 빅딜’을 내용으로 한 최종 구조조정안을 마련했고 김 전 회장은 이 최종안을, 기다리고 있던 경제 관료가 아닌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함으로써 사실상 ‘죽음의 다리’를 건넜다는 게 측근들의 판단이다. 즉, 국민의 정부의 신흥 경제 관료들과의 누적된 갈등이 대우그룹과 김 전 회장을 파멸로 이끌었다는 주장이다.

 김 전 회장의 한 핵심 측근인사는 “그네들(당시 경제 관료)이 ‘그들이 저지른 일을 보고 듣고 알며, 밝히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 앞에서도 그처럼 여유로울 수 있을지 한번 지켜볼 일”이라고 의미있는 말을 내뱉었다.

 대우사태에 대한 양측의 입장 가운데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는 당사자들 이 외에는 알 수가 없다. 혹여 김 전 회장의 측근들 주장이 진실이라 해도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다만 한국 현대사에서 한 기업의 흥망성쇠에 경영 외적인 권력이 그 배후에 있었음이 사실로 확인되기도 했던 기억은, 현재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7년 전 대우사태의 사법적 판단을 바라보는 재계 관계자들에게 개운치 않은 뒷맛으로 다가온다.

한정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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