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0일 오후 녹음이 우거진 관악산 자락의 서울대 연구공원. 이 고즈넉한 곳에 몰래 숨은 듯이 자리한 LG전자 특허센터를 찾았다. 이곳은 글로벌 기술경쟁 시대에 LG전자의 진군을 뒷받침하는 ‘최전선 특허사령부’다. 이정환 특허센터장(부사장)을 만나 LG전자의 전사적인 특허경영 전략을 들어보았다.

분쟁 발생시 협상·소송 양면 대응…‘특허동맹’도 강화

"봄에 씨앗을 뿌리면 여름에 수확하는 토마토도 있고, 가을에 추수하는 벼도 있습니다. 하지만 3년, 5년이 지나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도 있습니다. 특허는 그런 나무와 같습니다. 열매를 안 맺는다고 잘라버리면 영원히 결실을 맺을 수 없습니다.”

이정환 특허센터장이 얼마 전 LG전자 최고경영진 앞에서 담담하게 꺼낸 말이다. 그는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 특허전사’다. 특허업무에 종사한 지도 어언 35년이 됐다. 그는 1977년 금성사(현 LG전자)에 입사하자마자 특허업무를 맡았다. 그 해 금성사는 국내 기업 최초로 특허전담 부서인 특허과를 신설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랜 특허경영 역사를 가진 셈이다.

“사실 우리 특허센터 조직은 회사 전체로 보면 아주 작습니다. 그런 작은 조직의 리더를 부사장에 앉힌 것만 봐도 그룹 차원에서 특허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겠죠. 우리는 단순히 특허량보다는 특허기술의 품질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특허 건수는 많지 않아도 어떤 상대와 붙어도 이길 수 있는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LG전자는 전 세계에 걸쳐 약 4만7000여건의 해외 특허를 출원했고, 약 2만3000여건의 해외 특허를 확보하고 있다. 핵심사업인 휴대전화, TV, 스마트가전, 에어컨 부문에는 이미 수많은 특허기술이 적용되고 있고, 태양전지, LED조명 등 신사업 부문에서도 다수의 특허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LG전자는 가전 부문에서 특히 강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세계 주요 시장에서의 실적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경쟁업체들의 견제도 갈수록 심해지는 추세다. 그들에게 특허분쟁은 좋은 무기가 된다.

월풀과의 분쟁서 보여준 ‘특허 저력’

미국 가전업체 월풀은 2004년 2월 LG전자 전자동세탁기가 ‘투과세탁 기술’과 ‘세탁물 유동 기술’ 등 자사의 특허 2건을 침해했다며 미시간 지방법원에 특허소송을 제기했다. LG전자는 즉각 반격에 나섰다. 월풀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특허 비침해 및 특허 무효 증거를 같은 법원에 제출했다. 미시간 지방법원은 2년여 뒤 ‘투과세탁 기술’에 대해 특허 비침해, ‘세탁물 유동 기술’에 대해서는 특허 무효 판결을 내리며 LG전자의 손을 들어줬다. 발끈한 월풀은 ‘세탁물 유동 기술’ 특허 무효 판결에 대해 연방항소법원(CAFC)에 항소했지만 판결은 바뀌지 않았다.  LG전자의 완승이었다.

LG전자의 특허분쟁에 대한 기본 방침은 ‘강하고 독한 대응’이다. 무슨 의미일까? 이정환 센터장의 설명이다. “독하게 한다는 게 협상 때 무례하게 대응한다든지 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CEO인 구본준 부회장님은 ‘독한’ 대응의 의미를 이렇게 말씀하곤 합니다. ‘준비를 철저히 하라, 그래서 빈틈없이 대응하라’고 말이죠. 일단 전쟁을 하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것이 우리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공세만 펼치는 것은 아니에요. 상대와 협상을 할 때는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이 뭔지를 찾아 설득합니다. 서로의 시장과 이익을 지켜주는 게 낫지 않습니까? ‘죽어라’ 싸워봐야 결국은 서로 손해만 입는 경우가 많거든요. 대개의 특허분쟁은 소송과 물밑 협상을 병행하기 마련입니다. 물론 상대가 ‘무식하게’ 덤벼들면 법률로 응징하는 수밖에 없겠죠.”

기업의 특허 전문가들은 특허분쟁이 발생하면 서로 얼굴을 맞댈 기회가 많다. 그런데 협상을 할 때는 서로 기싸움을 벌이지만 막상 끝나면 친구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싸우다가 정든다는 말처럼 자주 보고 자주 부닥치다 보니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파나소닉, 도시바 등 외국 유명 기업 특허협상 담당자들과는 친구처럼 지냅니다. 왜 어떤 분야든 ‘선수들’끼리는 서로 알지 않습니까? 어떤 게 ‘답’인지를 말이죠. 특허분쟁 협상을 진행할 때도 마찬가집니다.”(최근 LG전자는 소니와 특허분쟁을 벌이고 있는데, 이 센터장은 “소니와의 소송도 잘될 것”이라며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었다.)

이정환 센터장은 LG전자의 ‘특허사령관’답게 수십 년간 분쟁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수도 없이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올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특허분쟁이 발생하면 ‘소방수’로 긴급 차출된 적도 여러 번이다. 과거 LG그룹 계열사들이 휘말렸던 반도체, LCD, PDP 특허분쟁의 최전선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그의 회고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특허공격을 받으면 최일선에서 막는 역할만 했습니다. 그때는 ‘우리는 언제쯤 로열티를 받아보나’ 하며 한숨을 지을 때가 많았죠. 눈물을 쏟은 적도 있습니다. 우리가 로열티를 내고 특허를 사용하는 계약을 맺을 때였죠. 그 순간 결심했습니다. 남자는 한 번 울면 됐지, 두 번 울면 안 된다는 다짐이었습니다. 꼭 복수해야지 하는 오기도 생기더군요. 그 특허사용 계약이 만료될 무렵이 되어 똑같은 회사와 다시 마주하게 됐습니다. 어떻게 됐는지 아세요? 우리가 오히려 로열티를 받는 계약을 맺는 데 성공한 겁니다. ‘1라운드’에는 설움을 받았지만 ‘2라운드’에서는 확실한 뒤집기 한판승을 한 셈이었죠.”

그의 경험담을 듣고 있자니 특허협상과 분쟁의 세계는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 이 센터장은 때로 비장한 표현을 써가며 이야기를 풀어갔다.

특허전문인력 육성은 ‘군대’ 양성

“회사 내에 특허전문인력을 육성하는 것은 군인, 군대를 양성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우리가 임진왜란의 참화를 겪은 것은 율곡 선생의 ‘10만 양병론’을 귓전으로 흘렸기 때문 아닙니까? 전쟁이 터진 후에는 손쓸 수가 없습니다. 특허조직 강화는 미리미리 (특허)전쟁에 대비하자는 차원인 겁니다.”

특허전쟁에서는 우방을 많이 둘수록 유리하다. 그 역시 실제 전쟁과 흡사하다. 현재 세계 주요 기업들은 서로 이해관계가 맞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상대와 ‘특허동맹(크로스 라이선스)’을 맺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특허동맹을 맺은 기업들은 서로 간에 특허 리스크를 제거함으로써 사업과 연구개발 역량을 한층 강화할 수 있게 된다. LG전자 역시 수십 년간 축적한 특허 포트폴리오를 기반으로 특허동맹을 활발하게 맺어나가고 있다. 이 센터장의 설명이다.

“특허동맹을 맺은 대상 기업들을 일일이 공개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비즈니스상 ‘컨피덴셜’한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죠. 다만 LG전자는 세계의 많은 주요 기업들과 동맹을 맺고 있다는 점만큼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특허동맹을 더욱 확대해나간다는 게 우리 전략입니다.” LG그룹은 비단 LG전자뿐 아니라 범 그룹 차원의 특허 경쟁력 강화를 추진해오고 있다. 특히 구본무 그룹 회장의 관심이 지대하다. 구 회장은 지난해 “LG전자를 비롯해 다른 계열사들도 특허 분야를 챙기면서 크게 봐라”고 특별히 당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얼마 후 ‘LG그룹 특허협의회’가 출범했다. 특허협의회는 LG그룹 주요 계열사들이 특허현안, 특허전략 등을 함께 논의하는 기구 역할을 한다.

LG그룹은 또 2009년에는 그룹 차원의 특허학교인 ‘IP(Intellectual Property·지식재산) 스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특허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에게 협상, 소송, 라이선싱, 출원, 분석 등 5대 특허업무 전반에 대해 실무 중심의 깊이 있는 강의를 제공하고 있다는 평가다.

“IP 스쿨 개설이나 특허협의회 출범은 마찬가지 뜻을 갖고 있어요. 특허업무를 보다 폭넓게 보고 이해하자는 취지입니다. 특허도 살아있는 생물처럼 계속 변화, 발전하는 분야예요. 특허 담당자들도 함께 변화해나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저조차도 IP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공부할 게 더 많습니다."

Tip 자회사 ‘제니스’가 효자!

LG전자 ‘로열티’ 수입도 쏠쏠

●● LG전자는 1990년대 중반 미국 TV제조업체 제니스를 인수했다. 과거 제니스는 ‘꿈의 TV기술’을 가진 기업으로 명성을 날렸다. LG전자는 제니스가 보유한 원천기술을 기반으로 연구개발을 가속화해, 그 결실을 2005년 미국 디지털방송 표준기술로 등록시키는 개가를 올렸다. 표준기술 등록 덕택에 LG전자는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 미국 TV시장에 제품을 판매하는 ‘모든 회사’들은 제니스에 로열티를 내야 한다. 제니스로 들어온 로열티는 결국 모회사인 LG전자의 이익이 된다. 그 액수가 매년 1억달러를 넘는다고 한다. 제니스를 통해 확보한 TV 분야 표준기술 외에 다른 기술로도 꽤 많은 로열티 수입을 얻고 있다는 게 이정환 센터장의 귀띔이다.

Tip 200명의 ‘특허전사’ 집결

LG전자 특허센터 이렇게 움직인다

●● LG전자 특허센터는 연구개발(R&D) 활동을 통해 특허권을 확보하는 특허개발 부문, 확보한 특허를 활용하는 라이선싱(Licensing) 부문, 소송·분쟁 대상 특허권을 분석하는 분석 부문, 특허경영 전략을 수립·실행하는 전략기획 부문, 상표·디자인권의 확보·활용을 담당하는 상표·디자인 부문으로 구성돼 있다. 전체 인력은 약 200명이다. 이들은 특허 전문 엔지니어, 변호사, 변리사 등으로 이뤄져 있다. 특허분쟁이 발생하면 라이선싱 전담 부서에서 협상을 수행하고, 특허 분석 부서에서 해당 특허권을 분석하며, IP 법무기능을 통해 분쟁 리스크를 관리하고 있다. 아울러 특허분쟁에 성공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국내외 유수 특허 대리인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김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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