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한국 실정 맞는 워크 라이프 설계해야”

“근무형태, 작업방식, 근로시간 등의 변화를 통해 일하는 방식이 효율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전반적인 ‘워크 라이프’가 변하고 있는 셈이죠.”

이성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이 워크 라이프를 새롭게 설계할 시기”라며 “기업들은 선진사례를 모방하기보다는 한국적 실정에 맞는 독자적인 방식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하는 방식이 변하는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노동과 작업방식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저절로 바뀌는 게 아닙니다. 일하는 방식은 기업과 함께 움직입니다. 직원이 하루가 멀다 하고 떠나는 기업이 이익을 극대화할 수 없습니다. 직원의 회사에 대한 가치관, 회사와의 관계가 변하면서 기업이 일하는 방식을 바꿀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거죠.”

임금보다 즐겁게 일하기 우선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직장인들은 회사에 모든 걸 걸었다. ‘우리 회사’였고, ‘회사=나’였다. 평일에는 늦은 밤까지 일하는 것이 미덕이었고, 주말에 출근하는 직원은 우수인재로 여겨졌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거치며 달라졌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지고, 이제는 평생직업이라는 개념만 남았어요. 회사가 자신을 보호해준다고 여기는 구성원도 없고요.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직원들에게 헌신하라고 요구하긴 힘들죠.”

권리의식이 높아진 젊은 직원들에게 있어 ‘회사에 대한 충성’은 ‘업무 효율성’으로 대치됐다고 그는 말한다. 임금을 얼마나 많이 주느냐보다 일을 얼마나 즐겁게 할 수 있느냐는 것이 우선시 됐다는 것이다.

“1인당 단위생산성을 높이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게 됐어요. 많은 시간을 일한다고 해서 더 높은 성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출근카드를 찍는 것도 무의미해졌어요. 임금 인상만으로 단위시간당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도 한계에 봉착했고요. 기업 입장에서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 불가피해졌어요.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밖에 없게 된 거죠.”

높은 성과를 얻는 것은 단순히 일을 많이 하는 것보다 얼마나 효과적으로 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선진기업들이 얼마나 오래 일을 하는가보다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냈는가를 성과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기업의 구성원들은 일을 빨리 마치고,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려는 욕심이 생기게 돼 업무 몰입도가 높아진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몇 년 전 독일의 폴크스바겐 방문 당시의 일화를 들려줬다. “일주일에 4일 일하는데 우리보다 생산성이 높았어요. 직원에게 일이 끝나면 뭐하냐고 물었어요. 저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더니 집에 가 가족과 같이 시간을 보낸다고 하더군요. 대답을 듣곤 허탈했죠.”

그는 “근무시간과 장소에 대한 기업의 통제가 유연해질수록 성과는 더 높아진다”며 “자발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창의적인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창의적인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선 가장 먼저 기업과 구성원의 신뢰가 형성돼야 한다. “근무시간을 줄이면 직원들이 게을러진다는 고용주의 생각은 잘못된 겁니다. 근무시간 축소는 직원과 회사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형성합니다. 그동안 모호했던 업무시간 내의 휴식시간마저도 뚜렷해질 정도로 일과 여가 시간이 구분됩니다. 직원이 더 만족해하고, 안정감을 느끼면 회사와 직원 모두에게 좋은 거 아닌가요.”

공정하고 투명한 성과평가도 양측의 신뢰형성에 중요한 요건이다. 공정성을 확보하지 못한 성과평가는 오히려 자발성을 떨어뜨리게 된다. 그는 “평가하는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평가하는 사람의 능력이 관건”이라며 “단기적인 성과와 함께 미래 잠재력에 대한 평가도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하는 방식을 기업문화로 성공적으로 구축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확 바꾸기보다는 점진적으로 변화를 추구해야 하고,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통한 장밋빛 전망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마트블루’처럼 우울한 스마트워크 등 다양한 부작용도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일의 노예가 아닌 일의 주인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제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면서 일과 가정의 양립도 위태로워질 수 있습니다. 일하는 시간이 늘어나 24시간 일에 얽매여 사는 ‘일의 노예’가 될 수도 있어요. 다양한 시험이 이뤄지면서 혼란과 갈등도 거쳐야 할 겁니다. 혼란을 줄이려면 소통을 중시하는 우리 기업에 적합한 일하는 방식 찾는 게 급선무죠.”

장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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