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지구촌에서 가장 역동적인 주체는 기업들이다. 선진국과 신흥시장의 대표적인 기업들은 비즈니스 기회를 찾아 세계 구석구석을 누빈다. 그들뿐이 아니다. 이미 세계 각국의 수많은 기업들이 글로벌 환경에서 경영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글로벌화한 기업들은 드넓은 해외시장을 무대로 활동할 뿐 아니라, 경영원칙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구축해 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기업들의 글로벌화는 어떤 기준으로 평가될 수 있을까? 해외 매출, 해외 법인 수, 외국인 임직원 비율 등 여러 가지 항목이 글로벌화의 척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람, 즉 인적자원(human resource)이다. 특히 기업활동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이해관계자들(stakeholders)의 글로벌화는 곧 기업의 글로벌화 수준을 가늠하는 매우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다.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기업은 사람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기업은 결국 사람이 만들어간다는 진리를 나타낸 말이다. 기업의 주요 이해관계자들은 경영진을 비롯해 주주, 종업원, 고객, 지역사회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된다. 그 중 가장 영향력이 큰 이해관계자는 CEO를 비롯한 경영진과 주주라고 할 수 있다. 경영진은 경영전략을 수립할 뿐 아니라 최종 의사결정권자라는 점에서, 또한 주주는 기업의 활동과 성과에 자신의 이익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매우 민감한 주체라는 점에서 두 이해관계자 집단은 기업의 정체성과 실적, 비전 등의 향배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인적 변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 착안, <이코노미플러스>와 서울대 국제경영연구센터는 국내 10대 산업의 매출 기준 상위 20대 기업을 추려(전체 200개 기업) 최고경영진(top management team)과 주주(shareholder) 구성의 글로벌화를 국내 최초로 조사했다. 이른바 ‘최고경영진·주주 글로벌 인덱스(global index)’다. 최고경영진과 주주 구성의 글로벌화 정도를 살펴봄으로써 국내 대표 기업들의 글로벌화 수준을 간접 추정할 수 있다는 취지다. 물론 최고경영진과 주주 구성의 글로벌화 정도가 기업 글로벌화 수준과 정비례한다고 단정 짓는 것은 곤란하다. 다만 기업 글로벌화 수준을 가늠하는 매우 의미 있는 지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 주목할 만하다.
국내 최초 ‘인적자원’ 글로벌화 조사 의미

CEO·임원·주주를 보면

‘글로벌 역량’이 보인다

마이크로소프트, 월마트, IBM, 코카콜라, 네슬레, 도요타…. 이런 외국 기업들을 우리는 흔히 ‘글로벌 기업’이라고 부른다. 세계 전역을 시장으로 삼아 활동하면서 지구촌 사람들 뇌리에 자신의 브랜드를 뚜렷하게 각인시킨 기업들이다. 한국에도 숫자는 적지만 글로벌 기업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삼성전자다. 현대자동차, LG전자, 포스코 등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2000년대 들어 한국 기업들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스스로 글로벌 기업이라고 칭하는 사례도 부쩍 많아졌다. 그런데 우리가 무심코 혹은 자의적으로 사용하는 글로벌 기업이라는 표현은 다소 모호한 개념이다. 도대체 무엇이 글로벌하다는 말인가? 또 어떤 요소를 갖춰야 진짜 글로벌 기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예전부터 기업 글로벌화를 논할 때는 흔히 해외매출 비중, 해외법인 숫자, 외국인 종업원 비율 등을 근거로 들었다. 사실 그런 지표들이 글로벌화의 계량적 잣대로 쓰이는 데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도 없다.

하지만 세상은 늘 변하고 시장도 끊임없이 움직이는 법이다. 덩달아 기업 환경도 매 순간 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기업들의 글로벌화를 가늠하는 지표 역시 새로워질 필요가 있다.

21세기 들어 이른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 기업들의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단순히 이익창출만 추구해서는 장기적인 기업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윤리경영, 투명경영, 인권경영, 환경경영과 같은 새로운 경영 덕목들이 대두된 배경이다.

그렇다면 21세기 경영 환경 속에서 기업 글로벌화를 적정하게 가늠할 수 있는 새로운 지표는 없을까? 이런 물음에 대해 경영학계는 하나의 답을 내놓는다. 그것은 바로 인적(人的)인 지표다. 즉 경영진, 종업원, 주주 등 기업을 구성하는 다양한 인적 자원이 얼마나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느냐를 글로벌화의 잣대로 삼자는 것이다.

한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는 이론이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도널드 햄브릭(Donald Hambrick) 교수가 제시한 이른바 ‘어퍼 에셜론 퍼스펙티브(Upper Echelons Perspective)’라는 경영전략 이론이다. 우리말로는 좀 어색하지만 ‘상층부 관점’ 이론 정도로 풀이할 수 있겠다.

이 이론의 요지는 ‘기업은 결국 최고경영진(Top Management Team)의 반영’이라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최고경영진의 가치관과 규범, 배경 등이 기업의 전략, 조직, 시스템, 프로세스는 물론 성과까지도 좌우한다는 시각이다.

‘어퍼 에셜론 퍼스펙티브’ 이론을 글로벌화라는 이슈와 연결시키면 최고경영진의 글로벌화 수준이 높을수록 기업도 글로벌화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고 볼 수 있다. 서울대 국제경영연구센터가 최고경영진 글로벌 인덱스를 측정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주주 구성의 글로벌화도 비슷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외국인 주주가 많은 기업은 그들의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다. 경영상 중대한 의사결정 과정에 외국인 주주의 기대치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외국인 주주들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준수하는 기업에 주로 투자한다. 지배구조가 건전하고 회계처리가 투명하며 주주 이익을 중시하는 기업을 투자 대상으로 선호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주 구성이 글로벌화되면 될수록 기업 글로벌화도 함께 진전될 수 있는 셈이다.

서울대 국제경영연구센터는 이번 글로벌 인덱스 조사에서 어떤 항목을 측정 대상으로 삼을 지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을 거쳤다. 그 결과 최고경영진 부문에서는 CEO 해외학위 유무, CEO 해외경험 유무, 등기임원 해외학위 비율, 등기임원 외국인 비율, 비등기임원 외국인 비율 등 5가지 항목을 측정 변수로 선정했다. 해외학위는 학사, 석사, 박사 중 어느 하나라도 있는 경우, 또 해외경험 역시 현재 회사 혹은 과거 회사에서 해외법인 근무 경험이 있는 경우를 모두 ‘있음’으로 간주했다.

또 주주 부문에서는 외국인 주식소유 비중, 해외 주식시장 상장 수, 외국인 대주주 유무, 전략적 투자자 유무 등 4가지 항목을 변수로 삼았다. 이들 항목에 대해 최종적으로 PCA(Principal Component Analysis: 주성분분석)라는 통계기법을 활용해 종합적인 점수를 도출했다.

각 항목별 현황을 살펴보더라도 국내 주요 기업 최고경영진 및 주주의 글로벌화 정도를 대략 가늠해볼 수 있다. 먼저 CEO의 경우 전체의 43.4%가 해외학위를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해외경험 역시 44.4%로 비슷한 비율을 기록했다. 국내 주요 기업 CEO 10명 중 4명 이상이 해외학위와 해외근무 경험을 갖고 있는 셈이다. 또 등기임원 중에 해외학위 소지자가 최소 1명이라도 있는 기업은 전체의 83.8%에 달했다. 특히 등기임원의 절반 이상이 해외학위를 가진 기업도 25.3%나 됐다.

반면 등기임원 중 단 1명이라도 외국인이 있는 기업은 전체의 9.6%에 불과했다. 그나마 외국기업과의 합작법인처럼 전략적 투자자를 보유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비등기임원 가운데 외국인을 둔 기업은 비율이 더욱 낮아 7.0%에 그쳤다. 아직 국내 기업 대다수가 최고경영진만큼은 ‘토종’ 중심으로 꾸려가고 있는 셈이다. 다만 삼성전자, LG전자, SK㈜, ㈜두산, SK텔레콤, 기아자동차, CJ제일제당 등 일부 대기업은 외국인 비등기임원을 두고 있어 눈길을 끈다.

한 가지 유의할 것은 글로벌 인덱스가 일반적인 통념상의 기업 글로벌화(해외매출 비중, 해외법인 수 등) 수준과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가령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해외시장에서 글로벌 플레이어로 활약 중인 한국 대표 기업들이라고 해서 글로벌 인덱스가 반드시 ‘1등급’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글로벌 인덱스는 어떤 기업의 ‘글로벌화 역량(Potential)’을 가늠하는 지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글로벌 인덱스 조사·평가 이렇게 했다

▷▶▷ 이번 조사는 먼저 국내 증시(코스피, 코스닥 모두 포함)에 상장된 기업 중 매출액 기준 500대 기업을 표본으로 선정했다. 이어 한국표준산업분류(KSIC) 방식 중에서 현실적으로 의미 있는 산업만을 묶어 10대 산업분류를 새로 만든 다음, 각 산업분류에서 매출액 기준 상위 20위 기업까지 조사 대상으로 추출했다. (이번 커버스토리 보도에서는 10대 산업분류를 일반인들이 친숙한 표현으로 바꿔 표기했다. 경우에 따라 철강·시멘트, 지주·통신·서비스 같이 이종산업을 묶은 듯한 표기도 있으나 산업분류의 대분류 방식에서는 동종으로 본다)

▷▶▷ 따라서 최종 조사 대상 기업은 200대 기업인 셈이다. 단, 섬유패션과 제지목재 등 두 산업분류는 각각 19개 기업이다. 당초 표본인 매출액 기준 500대 기업 안에 포함된 기업으로는 19개밖에 추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 조사 대상은 198개 기업이었다.

▷▶▷ 서울대 국제경영연구센터가 개발한 글로벌 인덱스는 기업의 핵심 이해관계자 집단인 경영진과 주주 부문의 하위 지표들로 구성됐다. 글로벌 인덱스는 지표간 가중치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매우 민감하게 변화한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글로벌 인덱스의 가중치는 고급통계기법 중 하나인 PCA(주성분분석)를 토대로 산출됐다. PCA는 단순평균과 달리 지표간 가중치를 효과적으로 반영한다. (PCA 점수에서 0은 글로벌화의 평균치를 나타낸다. 즉 0보다 크면 글로벌화가 표본기업의 평균보다 더 되었음을 의미하고, 0보다 작으면 글로벌화가 표본기업의 평균보다 덜 되었음을 의미한다)

▷▶▷ 글로벌 인덱스 최고경영진 부문은 CEO와 임원의 두 하위 부문으로 구분해 측정했다. CEO 부문은 ▶CEO 해외학위 취득 여부 ▶CEO 해외경험 여부 등 2개 지표로, 임원 부문은 ▶등기임원 해외학위 취득 비율 ▶등기임원 외국인 비율 ▶비등기임원 외국인 비율 ▶전체 임원 외국인 비율 등 4개 지표로 구성됐다. (이번 보도에서는 비등기임원 및 전체 임원 외국인 비율을 뺀 4가지 항목을 측정한 점수를 기준 점수로 삼았다)

▷▶▷ 주주 부문은 ▶외국인 주식보유 비중 ▶해외 주식시장 상장 수 ▶외국인 대주주 유무 ▶전략적 투자자 유무 ▶장기 보유 외국인 대주주 수 등 5개 지표로 구성됐다. 이는 기업 지배구조 측면에서 외국인의 영향과 해외 자본시장에 대한 개방 정도를 측정한다. (이번 보도에서는 장기 보유 외국인 대주주 수 항목을 뺀 4가지 항목을 측정한 점수를 기준 점수로 삼았다)

▷▶▷ 이번 조사의 모든 지표 자료는 2009년 말 기준 공시자료를 기초로 했으며, 금융감독원의 DART 시스템을 이용했다. 공시자료가 충분치 않은 경우에는 해당 기업의 웹사이트, KISLINE(한국신용평가정보 기업정보 서비스), 네이버 인물검색, 연차보고서 등을 참조했다.

김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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