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6월, 34년 만의 명동예술극장 재개관은 문화계의 ‘초대형 이벤트’였다. 쇼핑의 메카로 변해버린 명동이 명동예술극장 재개관을 계기로 과거 ‘문화1번지 명동’의 명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기대감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과연 명동은 다시금 문화의 향기를 피울 수 있을까.

명동, ‘문화 벨트’가 형성되다

명동예술극장 재개관 ‘신호탄’…

‘문화 1번가’ 명예회복 첫걸음 뗐다

난타전용관, 해치홀 등 공연시설 잇달아 문 열어

넘치는 유동인구 흡수할 마케팅 전략 필요 지적도

명동예술극장이 들어선 건물은 옛 국립극장이다. 지금의 국립극장이 서울 장충동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옛 국립극장은 명동을 아지트삼아 활동했던 배우, 가수, 문인들이 명동에 머물게 했던 근거지였다.

하지만 이 건물이 1975년에 대한종합금융에 팔린 후 명동은 서서히 문화의 향기를 잃어갔다. 그리고 패션매장과 레스토랑들이 늘어나며 쇼핑 중심지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명동의 지나친 상업화를 안타까워했던 명동 상인들과 문화계의 노력으로 이 건물은 문화체육관광부가 2004년에 약 400억원에 인수해 새 단장한 뒤, 552석의 중극장 규모 연극 전문 공연장으로 시민의 품에 되돌려 보냈다.

공교롭게도 명동예술극장이 돌아온 2009년에 명동에는 여러 문화공간들이 함께 문을 열어 기대감을 한층 키웠다. 복합문화공연장 해치홀(명동 M플라자 5층, 200석), 명동 난타전용관(유네스코빌딩 3층, 386석)이 간판을 올렸고, 명동역 인근의 옛 남산드라마센터도 남산예술센터(480석)로 재단장하고 관객을 맞이했다. 1975년에 명동에서 문을 연 뒤 35년간 묵묵히 무대를 이어온 삼일로 창고극장(150석)에도 새삼 재조명이 쏟아졌다. 그만큼 ‘문화1번지 명동’의 부활에 대한 기대감은 상당했다.

그로부터 1년여의 시간이 흐른 2010년 8월 현재, 명동에는 문화의 향기가 얼마나 피어오르고 있을까? 

명동예술극장, 클래식 연극으로 중장년층 몰려

‘명동문화 부흥의 핵’ 명동예술극장의 경우, 쇼핑객이 아닌 순수한 공연 관객을 명동으로 끌어들이며 만만찮은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평균 객석 점유율이 약 80%인 명동예술극장은 관객의 65~70% 정도가 중장년층이다. 이 극장은 대관 없이 극장에서 직접 제작한 작품을 주로 무대에 올린다. 레퍼토리는 대부분 셰익스피어나 몰리에르 등의 클래식한 작품들. 그래서 젊은이들보다는 중장년에게 어필하는 편이다. 명동이 쇼핑 천국으로 변한 뒤로 명동을 찾지 않던 중장년층이 명동예술극장의 공연을 보기 위해 일부러 명동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구자흥 명동예술극장장은 “연극은 시간, 정력, 돈이 많이 드는 예술인데, 특히 셰익스피어 같은 정통극은 민간 극단에서 제작하기에는 부담이 크다”며 “완성도 높은 공연을 무대에 올려 관광·쇼핑의 명소인 명동에 문화의 향기가 흐르면 명동의 격이 올라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명동이 젊은이들이 많은 지역이라는 점을 감안은 하겠지만, 명동예술극장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온가족, 전 연령층이 공감할 수 있는 공연을 중심으로 운영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명동예술극장은 아직 완전히 자리 잡은 것은 아니다. 극장 앞을 오가는 사람들 중 아직도 그곳이 명동예술극장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택시를 타고 “명동예술극장 갑시다” 했을 때 바로 찾아가는 택시기사도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중들에게 극장의 존재 자체가 덜 알려져 있는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마케팅도 부족하다. 자막 서비스나, 여행사 등을 대상으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미리 공연 정보를 제공하는 등의 마케팅도 미흡하다. 이 같은 부분에 대한 보완이 필요한 것이다.

구 극장장도 이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조급하게 서둘지는 않을 생각이다. “보통 한 극장이 공연 팬들 사이에서 그 정체성을 인정받고 관객층이 형성되기까지는 3년가량 걸린다”며 “최대한 자리 잡는 기간을 줄여야겠지만, 우선은 좋은 작품을 올려서 국내 팬들에게 명동예술극장에 대한 인식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명동 난타전용관은 ‘국내외 젊은이들의 쇼핑 천국’ 명동의 입지를 오히려 장점으로 만들며 선전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을 타깃으로 삼아 전략적으로 진입한 덕분이다. 요리사들이 주방에서 벌이는 소동을 그린 비언어극 <난타>는 명동 전용관에서 평일 하루에 세 번 공연하는데, 대부분 매진되고 있다. 관객의 80%가량이 일본·중국 등 외국인 관광객들이다.

이 같은 성적은 <난타>가 이미 국내외 관객들을 대상으로 수년 동안 검증된 공연 콘텐츠인 데다가, 명동 공연장 개관에 대한 사전 홍보를 충분히 해둔 데 따른 것이다. 

난타전용관, 외국인 타깃 마케팅 효과 거둬

<난타> 제작사인 PMC프러덕션의 이동현 홍보담당 대리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명동을 많이 찾고 있어서 이들의 접근성을 고려해 명동에 전략적으로 전용관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명동 난타전용관은 대학로 동숭아트센터가 운영하던 명동아트센터를 PMC프러덕션이 인수해 재단장한 공연장이다. 명동아트센터 시절에는 적자를 보는 공연장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PMC프러덕션은 개관에 앞서 여행사들을 대상으로 명동 난타전용관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난타> 공연을 명동에서 보면 편리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명동 <난타> 공연에는 일본인 배우 이와모토 유카를 기용해 일본 관광객들의 호감도와 국내외 홍보 효과도 높였다.

일본 관광객 관객들은 단체관광보다 개별적으로 한국에 많이 오는데, 명동에 쇼핑하러 나온 김에 난타전용관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즉, 명동 난타전용관의 호조는 타깃 고객층의 동선을 따라 움직이면서, 전략적으로 사전 마케팅을 한 결과인 것이다.

PMC프러덕션의 이 대리는 “명동에서는 공연장 건물 외관에 간판이나 홍보물을 크게 붙일 수가 없어서 거리의 수많은 유동인구들을 관람객으로 끌어들이기가 매우 어렵다”며 사전 마케팅이 매우 중요하다고 전했다.

연극, 콘서트, 강연 등이 모두 가능한 복합공연장 해치홀은 시행착오를 거쳐 명동문화에 적응하는 중이다. 2009년 3월에 문을 연 해치홀은 서울문화교류관광정보센터의 일부를 공연장으로 꾸민 공간이다. 외부 극단의 공연·행사 등이 있을 때 대관료를 받고 빌려주는 대관 중심으로 운영된다.

해치홀은 개관 후 1년간은 민간업체에 운영을 맡겼었는데, 적자가 커져 올해 3월부터 이 센터의 운영 주체인 서울관광마케팅이 직접 운영을 맡았다. 해치홀은 부진했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흑자를 예상하고 있다. 연말까지 대관 일정이 꽉 차있다. 외부 운영업체에 주던 수수료가 사라지고, 필요 없는 인력 조정 등으로 운영비 부담도 줄었다.  

해치홀을 운영하는 서울문화교류관광정보센터의 김병욱 센터장은 “작년에는 공연 레퍼토리가 다소 무거워 관객도 적었고, 운영비 때문에 대관료도 높았지만, 올해 운영 방식을 바꾸면서 비용이 감소했다”며 “대관료가 작년보다 30%가량 낮아져 극단들의 대관 요청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직접 운영을 시작한 후 현재 가벼운 코믹 뮤지컬을 공연 중인데, 관객이 상당히 늘었다고 한다. 최대 200석까지 가능한 해치홀은 작년에는 객석 점유율이 50%를 밑돌았지만 올 들어 80%를 넘어선 상태다.

김 센터장은 “명동을 찾는 젊은 층들은 대부분 가벼운 마음으로 밥 먹고, 영화 보고, 쇼핑을 한다”며 “이들에게는 비싸지 않고 부담 없는 공연이 잘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해치홀은 오는 10월에 시작할 다음 공연부터는 영어·중국어·일본어 등을 지원하는 자막 시스템을 가동해 외국인 관광객들도 관람객으로 끌어들인다는 계획이다.

명동만의 차별화된 해법과 장치 필요

삼일로 창고극장의 경우, 명동에 국내외 쇼핑객들이 흘러넘치기 시작했어도 공연 관객 수가 크게 늘어나지는 않았다고 한다. 명동에는 주로 쇼핑객들이 모이고, 공연을 보러 다니는 관람객들은 대개 대학로로 모이기 때문이다. 명동에 유동인구가 많지만 공연 관객은 별로 없다는 얘기다. 공연 관람객 시장만 놓고 본다면 대학로가 아닌 명동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극단 입장에서는 핸디캡일 수 있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명동의 공연장은 현재 다섯 곳에 불과하다. 공연장이 120여 곳에 이르는 대학로와는 비교 자체가 어려운 수준이다.

삼일로 창고극장의 정대경 대표는 “명동이 또 다른 문화 중심지가 되려면 대학로와 다른 명동만의 해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명동에는 유동인구가 많지만 관객으로 연결이 잘 되지 않습니다. 이들을 잡기 위해서는 명동의 문화공간에 대한 정보를 모아놓은 별도의 지원 공간이 필요하다고 봐요. 대학로에 있는 티켓박스 같은 곳이요. 그런 유도장치가 있으면 명동의 공연문화를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배려도 필요하고, 곳곳에 자리 잡은 노점상들도 정비를 해서 명동거리에 어울리는 문화를 만들어야 해요.”

삼일로 창고극장은 현재 비언어극인 ‘마임’을 거리극으로 준비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도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마임을 들고 관객을 찾아 밖으로 나가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무엇보다도, 명동에 문화공간들이 들어서고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Mini Interview

구자흥 명동예술극장장

“명동 공연 예술의 기반 만들 터”

“아직 국내 연극 팬들이 명동 쪽의 개성을 잘 모르고 있지만, 점차 극장들의 특징이 알려지면 취향에 따라 이쪽을 선호하는 팬층이 생길 겁니다.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죠.”

구자흥 명동예술극장장은 명동예술극장의 재개관에 따른 관심과 기대에 대해 부담이 커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급하게 생각하지는 않는 듯 했다. 구 극장장은 “스타마케팅을 하면 금방 관객을 모을 수 있겠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을 꾸준히 만들어 공연 팬들 사이에서 신용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극장 운영의 중점을 명동 지역 공연예술의 기반을 조성하는 데에 두고 있다. 명동예술극장이 자금력과 시설 등에서 민간 극단들의 우위에 있는 국립 극장이라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대중적인 공연은 대학로에서 많이 하고 있는 만큼 국·공립 극장에서는 상대적으로 공연문화의 중심을 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명동예술극장이 시대적 고증에 충실한 정통극을 만들거나 남산예술센터가 극작가 육성을 위해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올리는 것은 그런 이유지요.”

이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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