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에 따라붙는 닉네임은 많다. 그 중 하나가 ‘금융1번지’였다. 실제로 명동은 대한민국 금융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금융의 핵이었다. 대한민국의 돈이 명동을 중심으로 돌았다. 기업도 기관도 명동에서 돈을 구했고 명동의 정보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은, 격세지감이 이만 저만 아니다. 금융1번지의 영광을 여의도로 돌린 지 오래다. 그렇다고 명동의 금융이 숨을 거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명동엔 정보가 흐르고 돈이 흐른다. 금융의 맥이 살아 있다.

금융1번가 명동 ‘아! 옛날이여’

제도권 금융 ‘실속 가고 상징만 남아’

산업 주무르던 사금융 뒷전으로 물러나

은행 지점 영업환경 악화로 너나없이 악전고투

외국인 관광객 급증 타고 환전상 ‘전성시대’

최근의 일이었다. 명동 유네스코회관 1층에 있던 국민은행이 이전을 단행했다. 무려 40년을 지켜온 자리였다. 국민은행이 떠난 자리에는 화장품 매장들이 들어섰다. 명동 지역 금융 관계자들은 한숨을 쉬었다. 이것이 명동의 현실 아니겠냐는 것이다. “아무리 중요하고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하지만 수익을 내지 못하면 문을 닫아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끼리는 그저 국내 최대 은행마저 화장품 회사에 밀렸으니 큰일 났다고 농담처럼 말합니다.”

명동예술극장 일대는 명동 금융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은행, 신한은행, 미래에셋증권의 대형점포가 몰려 있고 흔히 증권빌딩이라고 불리는 건물엔 증권사의 명동지점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지역은 동시에 명동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지역의 땅값은 명동 최고, 대한민국 최고의 몸값을 자랑했다.

임원 필수 코스 ‘명동지점장’ 옛말

“오후 5시쯤 되면 이 거리가 크게 붐빕니다. 하루 종일 사람이 많지만 이 시간대면 30년 전의 명동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참 대단한 시절이었죠.”

임재선 우리은행 명동지점장은 추억을 되새기듯 말했다. 벌써 30년 전의 일이다. 명동지점에서 은행원 생활을 시작했을 무렵 각 은행의 명동지점은 너나할 것 없이 전국 최고의 지점이었다. 대한민국의 돈이 명동으로 몰렸으니 당연했다. 명동지점장을 맡으면 곧 임원으로 승진할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됐던 시절이다. 명동지점장은 임원으로 가는 필수 코스였다. 지점장이었어도 대접은 이미 임원급이었다. 지점장만이 아니다. 직원들의 자부심도 대단했다. 아무나 명동지점에 올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특히 대출이나 당좌를 취급하던 직원들은 속칭 ‘에이스’였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명동지점은 여전히 A급 점포이지만 전국에서 가장 어려운 점포로 통한다. 본사에서도 지점별 실적 목표를 세울 때 명동지점의 목표를 다른 곳에 비해 낮춰 잡고 있을 정도다. 그러다보니 최근 들어 명동지점장이 임원급으로 승진한 경우도 찾기 어려워졌다. 명동의 지점은 수익을 내기 위해서라기보다 ‘상징적’인 의미가 강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명동지점이 쇠락한 이유는 한 마디로 잘라 말할 수 있다. 영업환경이 너무 열악하다는 게 그것이다. 무엇보다 영업을 할 대상, 고객이 사라졌다. 명동 금융시장이 어렵다는 것은 은행원만이 하는 소리가 아니다. 제도권 금융은 물론 대부업자들까지 입을 모아 하는 말이 ‘도무지 먹고 살 일이 없다’는 것이다.

“영업하려해도 고객이 없습니다”

명동 금융의 결정적 전환점은 IMF 외환 위기에서 출발했다. 외환 위기 전만 해도 명동엔 돈이 넘쳐 났다. 시대마다 거래의 형태는 달랐지만, 여하튼 돈이 필요하면 명동으로 향하기를 수십 년 이어왔다. 경제 발전은 시작됐지만 제도권 금융이 기업 자금을 넉넉히 제공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전주’라고 불리던 사람들의 돈, 이른바 사채를 빌리기 위해 줄을 섰고, 1970년대 사채 시장의 부작용에 따라 사채를 금지한 이후엔 사채 시장을 양성화한 단기금융회사(투자금융회사), 세칭 단자회사가 전성기를 맞았다.

단자회사가 주로 취급했던 것이 어음할인이었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기업들은 어음을 발행했고 단자회사들이 이를 유통시켰다. 단자회사들의 주 거래처는 은행이었다. 은행의 명동지점에 돈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외환 위기는 단자회사의 숨통을 끊어버렸다. 과열 경쟁으로 부실화된 단자회사가 정리된 것이다.

주요 고객이던 기업들도 명동을 떠났다. 전성기 시절 섬유·의류 무역회사들이 명동 지역에 많았는데 업황 저조와 임대료 상승 등을 이기지 못했다. 금융기관들도 여의도로 터전을 옮겨갔다. 은행들도 구조조정됐다. 현재의 금융기업 수는 전성기 시절에 비하면 5분의 1에 불과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영업환경이 나빠졌다고 일을 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명동의 제도권 금융은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명동 인근 직장인들의 급여계좌, 금융기관이나 기금의 자금,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불퇴전의 영업전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상황은 여전히 쉽지 않다. 지점 간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보니 ‘노마진’ 영업을 해야 할 때도 적잖다.  임 지점장의 말이다. 

“기관이나 기금이 여유자금을 예치할 때 예외 없이 하는 게 있습니다. 각 은행마다 금리를 제시하라고 합니다. 그 중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한 은행을 선택합니다. 금리 0.1%에 거액이 왔다 갔다 합니다. 마진은 없어도 볼륨은 유지해야 하니까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낮은 금리를 제시하죠. 그러니 마진을 남길 수 있겠습니까.”

명동 상권이 활기를 찾으면서 많은 유명 점포가 들어섰지만 은행 입장에서 보면 반길 일도 아니다. 명동의 점포는 대부분 프랜차이즈들이다. 그런데 임대료가 비싸다보니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창업자는 많지 않다. 그러다보니 직영점이 많다. 직영점들은 지역 내 은행과 거의 거래하지 않는다. 본사와 직통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당일 발생한 매출은 익일 본사로 송금되는 식이다. 

명동의 제도권 금융이 찾은 돌파구는 영업의 영토를 넓히는 것이다. 명동 역내에서만 고객을 찾을 것이 아니라 인근 지역으로 진출해 고객을 발굴하는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밖에 방법이 없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지역에 고객이 없으니 고객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건설 경기 위축으로 사금융 ‘꽁꽁’ 

명동이 금융1번지라는 별칭을 얻은 것은 제도권 금융과 함께 사금융이 발달해서였다. 과거 명동은 한국의 산업과 기업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었다. 제도권 금융에서 자금을 얻지 못한 기업들이 명동의 사채업자, 어음할인업자들에게 손을 내밀어 사업을 일구었다. 현재의 대기업 거의 모두가 이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2010년 현재, 명동의 사금융은 거의 사라졌다. 한때 어음중개상만 1000여 명이 활동했다던 명동 사금융이 겨우 숨만 쉬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명동 사금융의 대표 상품인 어음 유통은 전자어음의 등장과 현금 거래의 확대로 급격히 줄었고 채권시장도 현물발행에서 등록제로 바뀌면서 잔뜩 움츠러든 상태다. 그렇다고 명동만의 사금융이 완전히 증발돼 버린 것은 아니다. 규모가 작아지고 형태는 달라졌지만 사금융은 존재하고 있다.

먼저 눈에 띄는 게 환전상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명동 골목골목마다 환전상이 들어서 있다. 범 명동권이라 할 수 있는 명동, 남대문, 회현동 등에 약 100여 개의 환전상이 영업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은행과 비교해도 비싸지 않은 환율을 제시하는 데다 영업시간이 길다는 장점이 있어 이 일대 환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명동 환전상들의 상당수는 과거 명동의 사금융업자들이다. 사채업자도 있고 중개업자도 있고 암달러상도 있다. 이들이 움직이는 자금은 많은 경우 수십억원대에 이른다고 알려졌다. 주요한 수익모델은 단순한 환전 수수료가 아니다. ‘밥벌이’는 따로 있다. 이들은 환전한 외화를 가지고 있다가 필요한 사람이 찾으면 내준다. 비자금을 조성해야 한다든가, 남몰래 거액을 해외로 가져가려는 사람들처럼 외화 거래의 흔적이 남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환율은 당연히 시중보다 세게 제시되므로 차익도 많이 챙길 수 있다. 환율이 좋은 나라로 외화를 직접 들고 나가 거래하는 경우도 있고 선물환거래를 하는 업자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사채업자들은 대부분 업종변경을 한 상태다. 부동산 투자자가 된 경우도 있고 주식투자에 몰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사채업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업체들이 그들이다. 현재 약 10여 개의 대부업체들이 문을 열어 놓은 상태다. 

명동의 대부업체들은 기업 거래를 전문으로 한다. 일시적으로 거액의 자금이 필요한 기업이 이들을 찾는다. 특히 건설 회사들이 많다. 건설 입찰에 나서기 전, 재무상태가 건전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명동의 돈을 끌어 쓰는 것이다. 입찰이 끝나면 갚는 구조이기 때문에 오래 쓰지는 않는다. 불과 얼마 전, 전국에 아파트 열풍이 불 때만 해도 이들 덕에 명동 대부업체들은 콧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건설 경기가 바닥을 기고 업계에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면서 건설사 수요가 사라졌다. 가장 굵은 밥줄이 끊긴 셈이다.

주식을 담보로 대출하려는 기업들도 명동을 찾는다. 제도권에서 대출하기 어려운 회사들이 주를 이룬다. 당연히 금리는 상당히 높다. 신용이 아무리 좋아도 최저 10% 이상은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증권의 상장기업은 거의 없고 대부분 코스닥의 B급 이하 기업들이다.

상품권을 거래하는 업자들도 있지만 의미는 별로 없다. 상품권과 ‘카드 깡’을 연결시키는 불법거래가 남아 있기는 하다. 가령 돈이 필요한 사람이 10만원 짜리 고속도로 통행카드를 사서 명동 상품권 업자에게 9만원에 넘기면 명동 상품권 업자는 여기에 일정액의 마진을 붙여 최종 소비자에게 파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거래는 불법이어서 그렇게 활발하지는 않다.

명맥은 유지하고 있지만 명동 사금융이 과거의 번성을 다시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단순히 명동의 문제가 아니라 사금융이 발전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는 것이다. 제도권에서도 명동 금융의 부활은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영업환경이 천지가 개벽하듯이 바뀌지 않고는 과거의 전성기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Mini Interview

최용근 중앙인터빌 회장

“명동 기업정보의 힘, 여전합니다”

“아직도 명동엔 제도권에서 들을 수 없는 기업정보가 흘러 다닙니다. 재무제표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기업의 내밀한 속사정에 기반을 둔 정보, 그것이 명동 금융정보의 힘입니다.”

최용근 중앙인터빌 회장은 ‘명동 사금융의 산증인’이라 불린다. 30여 년을 명동의 사금융에 몸을 담았다. 그가 이끄는 ‘중앙인터빌’은 기업어음과 회사채의 금리 등을 제공하는 명동식 신용평가 기업이다. 장부의 수치보다는 ‘정성적인’ 정보와 분석이 특징이다. 어음을 거래하는 모양새만 봐도 그 기업의 살림살이를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무제표로는 멀쩡하지만 속으로는 그렇지 않은 기업이 있습니다. 사금융을 통해 장부는 맞췄는데 실제는 속 빈 강정이죠. 또 직원 임금은 잘 챙겨주지만 임원의 임금이 밀렸다면 이 역시 이상 신호가 됩니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알아내 기업의 신용등급, 다시 말해 어음의 금리를 정하고 있습니다. 수사관이 탐문하듯이 기업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는 거죠.”

현재 중앙인터빌의 기업정보는 제도권에서도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은행이 대출해줄 때 참고하는 지표가 된다. 제도권 기업정보 전문기업들도 중앙인터빌의 데이터를 이용하고 있다. 어음할인 업계에 종사하던 최 회장이 제도권으로 진출한 것은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였다. 명동 사금융이 급격히 사양화되면서 선택한 길이었다.

비판을 받을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명동 사금융이 흔히 말하는 ‘돈세탁’하는 곳만은 아니었다고 최 회장은 강조한다. 제도권 금융이 여력이 없던 시절 사금융은 한국 기업의 사업을 일으키고 확대시키는 젖줄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한창 경제가 발전을 시작했을 무렵 은행에 돈이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기업이 필요한 돈을 다 제공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기업에 자금을 제공한 것이 사금융입니다. 어려운 시절 한국의 산업과 기업 발전에 사금융이 적잖은 기여를 한 셈입니다.”

하지만 최 회장은 사금융의 부활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단언한다.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자금은 제도권에 얼마든지 있고, 대기업이 자체 보유한 현금만도 엄청난 규모다. 사금융의 필요성이 사라진 셈이다. 최 회장은 “중앙인터빌이 앞으로 할 일은 시장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많은 회원사가 돈을 주고 정보를 구매하는 데 최소한 그 값어치 이상은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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