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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긴축 행보에 미 달러 강세가 나타나면서 각국 통화 가치가 맥을 못 추고 있다. 최근 1년간(5월 31일 기준) 달러 대비 한국 원화는 10%, 유로화와 일본 엔화, 중국 위안화는 각각 12%, 14%, 4.5%, 터키 리라화는 48% 절하됐다. 주요국 중앙은행은 달러 강세가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까 우려하면서 기준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오는 7월 자산 매입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금리를 인상하기로 했다. 한국은행도 올 하반기 세 차례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반적으로 환율이 오르면 수출이 늘어나고 수입이 줄어들어 무역수지가 개선된다. 이 때문에 무역 의존도가 큰 국가는 달러 대비 자국 통화 가치를 절하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기도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은 2010년 자국 통화 가치를 낮춰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방식의 정부 개입을 비판하며, 이 현상에 ‘통화 전쟁(currency war)’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붙였다. 

그런데 최근 많은 국가가 자국 통화 가치를 낮추는 게 아닌, 자국 통화 가치를 높이려고 노력 중이다. 이른바 ‘역환율 전쟁(reverse currency war)’이다. 코로나19로 물가 급등세가 나타나자 자국 통화 가치를 높여서라도 수입품 물가를 낮추려는 의도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최근 3개월간 전 세계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한 횟수는 60건이 넘는다. 2000년대 초반 이후 가장 많은 수준이다. 마크 맥코믹 TD증권 외환전략가는 “정책 입안자들이 더 높은 통화 가치, 인플레이션(이하 인플레) 압력 억제 정책에 환호하는 세계에 와 있다”라고 했다. 

ECB는 6월 9일(현지시각) 통화 정책회의를 열고 “인플레를 억제해야 하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오는 7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1년간 제로금리를 유지해온 ECB 통화정책에 중대한 전환점이다. 유로존의 금리인상은 5월 유로존 물가상승률이 8.1%로 사상 최대로 오른 것에 대한 결과물이다. 앞서 미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미국·EU(유럽연합) 간 금리 격차가 커지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따른 유럽 에너지 수급 불안으로 경제 성장 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1유로 가치가 1달러 수준으로 떨어질 거란 경고가 나오기도 했다.

우리나라와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멕시코 등 중앙은행은 발 빠르게 금리 인상을 실천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8월(0.75%)부터 지난 5월(1.75%)까지 다섯 차례 금리를 올렸고, 하반기에도 추가 인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간 초완화적인 통화 정책을 고수하던 영국 영란은행은 올해만 네 차례 연속 금리를 인상했다. 캐나다와 뉴질랜드 중앙은행도 4·5월 두 달 연속으로 0.5% 인상을 추진했다. 멕시코 중앙은행은 지난해 6월부터 8회 연속 0.5%씩 인상해 기준금리가 7%까지 올랐다. 전문가들은 멕시코 기준금리가 연말까지 9%를 넘길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자칫 급격한 금리 인상이 경기 침체를 불러일으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지속적인 물가 상승)을 야기할 수 있는 우려도 제기된다.

반면 역환율 전쟁에 뛰어들지 않고, 자국 통화 약세를 일부러 용인하는 나라도 있다. 바로 여전히 디플레이션과 싸우고 있는 일본, 경기 침체 방어에 나서고 있는 중국 등이다. 일본은행은 경기 부양을 위해 완화적 통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연일 하락세다. 엔화 가치는 6월 9일 달러당 133엔대에 거래됐다. 2002년 이후 20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유로화와 비교해도 7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일본 정부는 ‘엔화 약세로 자국 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수입 물가 상승으로 오히려 무역 적자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비판도 이어진다. 과거에는 엔화 약세가 일본 자동차 제조 업체나 수출 업체에 도움을 줬지만, 현재는 생산 시설을 해외로 이전(오프쇼어링)한 일본 기업이 많아 상황이 다르다는 이유다. 달러로 사들이는 원자재와 중간재 수입이 늘고, 수출 가격 탄력성이 약해져 달러 강세가 수출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은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금리 인하 등 통화 완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코로나19 경제 충격을 완화하고,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을 지원하려는 셈이다. 

터키는 지난 5월 물가 상승률이 73.5%로 22년 만에 가장 높을 정도로 살인적 인플레에 시달리고 있지만 저금리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탓에 1년 새 달러 대비 리라화 가치가 반 토막 났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정통 경제학의 논리와는 반대로 고금리가 고물가를 유발한다며 저금리로 수출을 늘려 경상수지를 확대하고 성장과 고용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을 내세우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 행보와 루블화 변동세는 더욱 독특하다. 서방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각종 경제 제재를 펼치던 3월 7일 환율은 달러당 135루블(루블화 가치 절하)까지 급등했지만, 현재는 60루블대에 머물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과 외국인의 주식 매도 제한, 러시아산 석유·가스 판매 대금 루블화 결제가 효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많은 전문가들은 루블화 강세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조만간 잦아들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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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부터 글로벌 금융 위기까지…韓 환율 잔혹사

우리나라는 환율 잔혹사를 겪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은 1997년 대기업들의 연쇄 파산, 아시아 국가 화폐 가치 폭락에도 무리하게 원·달러 환율을 달러당 800원대로 방어하려다가 외환보유액을 허비했다. 1997년 11월 외환보유액이 20억달러(약 2조5500억원)밖에 남지 않았고, 정부는 1997년 12월 3일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IMF는 당시 한국에 자본시장 전면 개방, 환율 변동 폭 확대를 요구하고, 고금리·고환율 정책으로 투자금을 유치하라고 압박했다. 금리는 연 20%대로 폭등했고, 원·달러 환율은 2000원에 육박했다. 수출을 늘리고 투자금을 유출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나, 수많은 기업이 달러 빚을 갚지 못해 잇따라 도산했다. 정부가 외환 위기 극복을 위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추진한 결과, 경제는 빠른 속도로 회복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2001년 8월, IMF로부터 구제금융 자금을 모두 상환하고 IMF 관리 체제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외환 위기가 진정되면서 원·달러 환율도 안정세를 보였다. 또다시 원·달러 환율이 튀어 오른 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다. 2009년 3월 6일 장 중 한때 원·달러 환율은 1600원에 육박했지만, 점차 하향 안정세를 찾았다. 이후 2010년 그리스 등 유럽 재정 위기, 2016년 중국 신용 위기, 2019년 미·중 무역 분쟁 등 굵직한 국제적 리스크가 있을 때마다 환율은 널뛰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원·달러 환율은 코로나19 초기였던 2020년 3월 중순, 심리적 지지선인 1300원 문턱에 두 차례 다가섰다가 잠잠해졌다. 하지만 미 연준의 빅스텝(0.5%) 금리 인상 예고에 지난 5월 또다시 1300원을 넘봤다. ‘고환율은 위기 상황’이라는 공식이 남아있는 데다 지난해 11월 이후 외환보유액이 줄고 있어 우려가 터져 나오는 상황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한국 내부 문제로 환율이 오른 게 아닌 만큼, 지나친 과민 반응은 불필요하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오건영 신한은행 부부장은 “최근의 원·달러 환율 상승은 한국의 기초체력(펀더멘털) 문제라기보다는 글로벌 이슈 때문”이라며 “다른 주요 통화와 비교해볼 때 원화가 상대적으로 방어를 잘하고 있고, 아직 외환보유고도 많아 큰 문제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안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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