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환(80) 명동관광특구협의회 명예회장은 명동 사람들에게 ‘살아 있는 전설’과 같은 존재다. 그의 수십 년에 걸친 헌신과 봉사가 오늘날 명동의 부흥과 번영에 큰 뒷받침을 해왔기 때문이다. 김 명예회장은 1982년 출범한 명동상가번영회(명동관광특구협의회의 전신)의 초대 회장에 취임해 2008년 말 후임 회장에게 바통을 물려주기까지 거의 30년 동안 명동 상권의 ‘일등 지킴이’ 역할을 해왔다. 그가 처음 명동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6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니 반평생을 명동 터줏대감으로 살아온 셈이다. 현대 명동 역사의 ‘산증인’ 김 명예회장과 만나 명동의 어제와 오늘을 들어봤다. 인터뷰에는 단짝인 박윤근(80) 전 명동관광특구협의회 부회장도 동석했다. 두 사람은 환상적인 호흡으로 명동을 가꿔온 주역이다.

명동관광특구협의회 김장환 명예회장

“명동·남산 연결 케이블카,

 세계적인 명물 될 겁니다”

수십 년간 명동 발전 위해 헌신한 ‘명동의 전설’

옛 명동국립극장 복원 운동에도 앞장섰던 주역

김 명예회장은 1968년 명동에 둥지를 틀며 명동 사람이 됐다. 그는 당시 장안의 4대 음식점으로 꼽히던 ‘이학’을 운영했다. 한일관, 우래옥, 삼오정이 당시 이학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한 대형 음식점들이었다.그의 회고다. “그 시절 이학은 종업원이 120여 명이나 될 만큼 서울서 큰 식당 중 하나였지요. 청와대에서도 이학의 주방장을 데려다 요리를 시킬 만큼 꽤 유명했습니다.” 김 명예회장이 처음부터 이학을 경영했던 것은 아니다. 우연히 알게 된 후 ‘형님 동생’ 하는 사이로 지내던 이학 창업주 오도선(작고)씨가 평소 그의 겸손하고 성실한 사람 됨됨이를 눈여겨보다가 경영을 맡긴 것이다. “어느 날 저를 불러 술을 한잔 하는 자리에서 식당을 맡으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갑작스러운 제안에 깜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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