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은 회생의 해였다. 2008년은 100년 만의 위기라 불린 글로벌 금융 위기 탓에 세계경제가 살얼음판을 걸어야 했다. 갑작스런 한파에 경기가 얼어붙었고 지갑이 닫혔다. 적자 전환한 기업이 한둘이 아니었다. 2009년은 완연하지는 않지만 봄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성장판에 활기가 돌았다. 많은 기업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2008년의 기저효과에 의해 경이로운 성장세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코노미플러스>와 기업신용평가 기업인 나이스디앤비가 조사한 ‘한국의 300대 성장기업’은 위기를 헤쳐 나와 성장엔진에 다시 시동을 걸고 뛰거나 날고 있는 기업들의 현주소다. 동시에 기업 성장의 영원한 테마인 차별화된 경쟁력이 관철되는 보고서이기도 하다.

한국은 이번 글로벌 금융 위기에서 가장 빨리 벗어난 국가로 꼽힌다. 미국과 유럽 등이 아직도 위기의 여진에 흔들리고 있지만 한국의 경제 성장률은 예상을 상회한다. 세계 유수의 경제연구소와 기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한국의 경제 성장률 전망을 상향조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기업들이 여전히 악전고투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300대 성장기업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을 합산해 2008년과 비교해 보니 고작 2.49, 1.55% 증가에 그쳤다. 거의 변화가 없는 셈이다. 반면 순이익은 77.23%나 불어났다. 한마디로 허리띠를 있는 대로 졸라매고 철저하게 수익 위주의 내실경영을 펼쳤다는 의미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여전히 ‘봄다운 봄’이라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모든 기업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이번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된 케이스도 상당수다. 혼란 속에서 오히려 시장 지배력을 확대하고 새로운 기회를 창출한 기업들이 적잖다. 특히 IT와 자동차 부문에서 많은 기업들이 분위기를 역전시키며 약진에 성공했다. 그 결과가 이번 ‘한국의 300대 성장기업’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IT·전자 기업 약진 ‘놀라워라’

‘300대 성장기업’의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상당수는 IT 기업들이었다. LCD, LED, 반도체, 휴대전화 등 한국이 세계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시장에서 발군의 기술력을 뽐내는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47위와 49위에 올랐다. 순위 자체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내용을 보면 그렇지 않다. 기업의 규모를 감안하면 두 기업의 성장세는 놀랍다고 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매출액은 각각 23.06%, 10.4%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53.57%, 31.62% 신장했고 순이익은 74.62%, 325.21%나 불어났다.

40위권의 성장세가 이 정도니 이보다 순위가 높은, 삼성전자나 LG전자보다 덩치는 작지만 날렵한 중견 IT 기업들의 성장력은 짐작할 수 있듯이 경이로웠다. 5위의 신화인터텍, 7위의 서울반도체, 9위의 대덕지디에스 등 중견 IT 기업들이 최상위권에 즐비하게 포진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남다른 기술력이었다.

서울반도체는 세계적인 LED 기업이다. 최근 발표된 IMS 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LED 패키지 매출 기준 4위를 차지하고 있다. 2009년엔 조명, 자동차, 휴대전화 등 전 애플리케이션에서 고르게 매출이 증가했다. 기존 선진시장뿐만 아니라 중국과 대만 등 신흥시장으로도 수출이 증가했고 BLU와 조명 분야 등에서 글로벌 대형 고객사를 유치하면서 성장세를 더했다. 매출액 59.58%, 영업이익 486.16%, 순이익 325.74%가 향상됐다.

IT·전자업종의 세트업체들이 기세를 올리면서 부품업체들도 쾌재를 불렀다. 국내 대표적인 인쇄회로기판(PCB) 업체인 대덕지디에스가 9위, 대덕전자가 23위, 심텍이 42위, 삼성전기가 46위에 올랐다. PCB업체들의 약진은 기술력도 기술력이지만 환율의 덕을 본 측면도 있었다. 달러와 엔화의 약세로 중국과 일본의 수입량이 감소하면서 생긴 공간을 국내 기업들이 치고 들어간 것이다. 기술력과 우호적인 대외 환경이 어우러지면서 고성장을 일궈낼 수 있었던 셈이다.

PCB업체 중 가장 높은 성장세를 시현한 대덕지디에스는 IT, 가전, 자동차, 반도체산업 등에 소요되는 각종 PCB를 생산하고 있으며 삼성전자, LG전자, 삼성SDI, 휴맥스 등 국내 굴지의 IT·전자 업종 기업들과 도시바, 노키아 등 글로벌 기업들이 주거래처다. 대신증권의 박강호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의 LED TV에 이 회사의 메탈 PCB가 부착되고 있어 올해 매출은 100% 가까이 신장될 것으로 전망했다.  

LCD와 LED 등 디스플레이기기의 부품인 광학필름 업체인 신화인터텍과 에이스디지텍은 각각 5위, 35위에 이름을 올렸다. 두 기업 모두 삼성전자와 연관이 깊다. 신화인터텍의 주고객이 삼성전자고 에이스디지텍은 2007년 제일모직에 지분이 인수되면서 삼성그룹에 편입됐다.

휴대전화 부품업체인 KH바텍도 고성장을 실현했다. 매출액은 135.97%, 영업이익 240.64%, 순이익 94.49% 성장했다. 이 회사는 세계적인 힌지(경첩) 전문기업이다. 다이캐스팅 기술력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매출의 78%가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주요 고객 중 하나가 노키아다. 올해 노키아가 힌지 모델을 다량 출시할 계획이어서 성장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석유화학 기업, ‘Thank you China’

자동차 업계의 약진도 돋보인다. 기아차가 전체 순위 16위에 올랐다. 매출액이 10조원을 넘는 기업 중에서 가장 높은 순위다. 50위권에 매출 10조원 이상 기업은 기아차, 삼성전자, LG전자 등 세 곳뿐이다. 기아차는 매출액은 12.41%로 이 부문 92위에 머물렀지만 영업이익 270.94%로 28위, 순이익 1174.57%로 13위를 차지했다. 

자동차 부품업체 중에는 성우하이텍이 19위에 올랐다. 성우하이텍은 현대기아차가 주거래사이며 범퍼레일, 대시 로, 슬라이드 멤버 등을 주력제품으로 삼고 있다. TWB용접, 레이저용접 기술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타이어 업종에서는 넥센타이어와 한국타이어가 8위, 58위에 올랐다.

석유화학 업종은 2009년 대외적인 환경 변화의 덕을 많이 봤다. 중국 정부가 내수경기를 활성화하면서 제조업 경기가 살아나자 원재료인 석유화학제품 소비가 늘었고 이것이 실적 개선으로 연결됐다. (주)GS와 호남석유화학이 1위와 2위에 랭크될 수 있었던 원인이다. (주)GS는 자회사인 GS칼텍스의 석유화학 부문 실적이 개선된 데 따른 지분법평가익이 크게 늘었고 호남석유화학은 2009년 초 자회사인 롯데대산유화를 합병하며 외형과 수익성이 크게 성장했다.

전반적으로 건설 경기가 좋지 않았지만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건설 업체들도 꽤 있다. 14위의 벽산건설, 22위의 동양건설산업, 30위의 울트라건설, 32위의 KCC건설 등 중견 건설 업체 4곳이 톱 50에 들었다. 벽산건설은 대형 건설 업체와 적극적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하며 도시 재개발 및 재건축 사업의 수주량을 불리면서 실적이 좋아졌다. KCC건설은 플랜트 부문의 매출이 4634억원에서 9170억원으로 증가하며 회사 전체의 외형과 수익성을 견인했다.

울트라건설의 행보도 주목된다. 울트라건설은 특화된 사업과 해외 진출로 성공가를 부른 케이스다. 건설경기 악화의 여파로 국내 도급공사와 민간주택 사업 등은 전년에 비해 오히려 악화됐으나 자체 공사와 해외 도급공사가 좋은 결실을 맺었다. 해외 부문의 토목공사는 670억원에서 1849억원으로 176% 성장했다. TBM(Tunnel Boring Machine)을 활용해 터널을 뚫어야 하는 등의 특수 공사 부문을 특화한 것이 주효했다. 자체공사 부문에선 광교신도시의 참누리아파트 분양을 통해 전년도 180억원에서 1460억원으로 매출액이 크게 증가했다. 

뛰어난 기술력으로 정면 돌파

독특한 사업 분야에서 고속성장에 성공한 기업들도 적잖다. 17위인 송원산업은 정밀화학 업체로 산화방지제가 주력제품이다. 이 부문 세계 1위인 스위스의 시바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기술력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기업은 올해에도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경제의 회복으로 합성수지 소비량이 늘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산화방지제는 합성수지 제조과정에서 꼭 필요한 원재료다.

풍산은 2008년 매출 1조78억원에서 2009년 1조7458억원으로 73.23%나 성장했다. 영업이익은 79.62%, 순이익은 180.23% 증가해 매출 1조원대의 제조기업으로선 보기 드문 성장세를 보였다. 이 회사의 주력제품인 고부가 동제품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나온 결과다. 

한국전력기술은 원자력과 화력발전소 등의 설계 부문에서 탁월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좋은 성과를 창출하며 전체 10위에 올랐다.

이|렇|게|선|정|했|다

한국의 300대 성장기업은 2008년 대비 2009년 실적을 기준으로 선정했다. 선정 기준은 ‘성장’을 계량화한 수치라고 할 수 있는 매출액, 영업이익, 순이익을 활용했다. 절대액의 성장치보다 증가율을 기준으로 삼았다. 절대액을 기준하면 기업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을 공정하게 평가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매출액 증가율, 영업이익 증가율, 순이익 증가율이라는 ‘한국의 300대 성장기업’의 선정 기준은 이렇게 정해졌다.

대상 기업은 코스피와 코스닥의 상장사로 제한했다. 주식투자자에게 보다 유용하고 실용적인 정보를 제공하자는 취지였다. 평가 대상은 상장기업 가운데 매출액 상위 300개로 한정했다.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을 잣대에 올려놓아 한국 산업을 이끄는 대표기업들의 성장성을 보자는 의도였다. 이 가운데 금융기업은 제외했다. 제조업이나 서비스업과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금융업의 ‘성장기업’ 선정은 차후의 과제로 삼을 예정이다. 따라서 이번 조사는 엄밀히 말해 금융업종을 제외한 한국 300대 기업의 성장성을 평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순위 선정 과정은 2008년 대비 2009년 매출액 증가율, 영업이익 증가율, 순이익 증가율을 각각 산출, 순위를 도출한 뒤 각 부분의 순위의 합계로 종합순위를 냈다. 합계가 작을수록 순위가 높다. 가령 A와 B라는 두 기업이 각각 매출액 증가율 1위와 2위, 영업이익 증가율 1위와 2위, 순이익 증가율 5위와 1위였다면 A의 순위 합계는 7위, B의 순위합계는 5위가 되므로 A기업은 B기업에 비해 두 부문에서 좋은 성적을 냈지만 종합순위에선 B기업에 미치지 못하게 된다. 

이번 조사는 기업신용평가 기업인 나이스디앤비가 진행했다. 나이스디앤비는 글로벌 기업신용평가기업인 D&B(The Dun & Bradstreet Corporation)가 보유하고 있는 전 세계 214개국, 1억6000만 개 기업에 대한 신용 정보와 시스템 운영 노하우 및 한국신용정보(주)의 기업 정보, 신용평가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및 해외 기업에 대한 기업신용정보와 신용위험관리 솔루션, e비즈니스 솔루션 개발 등을 제공하고 있다.

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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