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쓰오일은 1976년 쌍용양회공업(옛 쌍용그룹 계열사)과 이란 국영 석유회사 NIOC가 합작해 설립한 정유업체다. 처음 출범할 때 상호는 한이석유. 한국과 이란의 협력을 상징하는 이름이었던 셈이다. 한이석유라는 상호는 1980년 쌍용정유로 바뀌었고, 2000년에는 다시 지금의 에쓰오일로 변경됐다. 출발부터 ‘글로벌’했던 에쓰오일은 지금까지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최고경영진 글로벌 인덱스 1위 에쓰오일

한국의 정에 푹 빠진 ‘CEO 이수배’

스킨십 경영으로 신바람 일으키다

아람코·한진이 양대 주주…협력경영의 모범사례 실천

 “안녕하세요, 이수배입니다.”    아흐메드 에이 수베이(Ahmed A. Subaey·49) 에쓰오일 대표이사 CEO는 처음 만나는 한국인과 인사를 나눌 때면 종종 한국식(?)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수베이’와 ‘이수배’. 사람들은 그의 재치에 절로 무릎을 치며 미소를 짓곤 한다.

수베이 CEO는 국적이 사우디아라비아다. 에쓰오일 대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ARAMCO)에서 파견한 최고경영자다. 그는 세계 최대 석유회사인 아람코에서 엔지니어링, 원유 생산, 기획, 마케팅, 합작 사업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 바 있어 석유 산업에 대해 정통하다.

그는 2008년 3월 에쓰오일 CEO로 부임했다. 외국인으로서 한국에서 최고경영자 역할을 한다는 것은 결코 녹록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는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고 왔다. 무엇보다 한국을 이해하고 한국인과 교감하기 위한 공부를 많이 했다. 그가 한국에 동화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지를 알 수 있는 에피소드도 적지 않다.

수베이 CEO는 임직원들이나 거래처 사람들을 만나면 꼭 본관을 물어본다. 한국인들이 처음 만나는 사람과 대화를 풀어가는 방식을 꿰고 있는 것이다. 단지 물어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답변을 들으면 해당 지역의 역사는 어떻고 심지어는 특산물, 토속음식까지 화제에 올린다고 한다. 그뿐 아니다. 회식 자리에서는 애창곡으로 한국 노래 <친구여>를 부를 정도다. 이쯤 되면 한국인 임직원들이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어지간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외국인 CEO로 정평이 났다.

휴머니티 바탕에 둔 인재중시 경영

김평길 홍보팀 부장의 말이다. “수베이 CEO는 한국으로 부임하기 전에 ‘어마어마하게’ 준비를 한 것 같습니다. 우리 역사나 문화를 놀랄 만큼 많이 알고 계세요. 한국말을 잘 하는 건 아니지만 인사말은 반드시 한국말로 하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그만큼 한국에 대한 애정이 많다는 게 느껴집니다.”

수베이 CEO는 한국인의 가치 중 ‘정’을 첫손가락에 꼽는다. 스스로 한국인 특유의 정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한국 사회와 그는 ‘코드’가 잘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그의 경영철학도 휴머니티를 바탕으로 하는 ‘사람(인재) 중시’가 핵심이다.

수베이 CEO는 평소 “조직의 수익성 등에 초점을 맞추는 리더십은 관리자(manager)의 것이다. 진정한 지도자(leader)는 구성원들을 보살피고 그들로부터 신뢰를 이끌어내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과 마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자신이 정의한 리더십을 실천하는 데도 열의를 다한다. 매주 각 부문 팀장들과 돌아가며 점심식사를 함께 할 뿐 아니라 신입사원들과 정기적인 대화시간도 갖는다. 멀리 울산에 위치한 온산공장을 자주 방문해 현장 임직원들과 유대감을 쌓는 데도 각별한 신경을 쓴다. 이런 스킨십 경영 덕분에 그는 소통하는 CEO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베이 CEO 부임 이후 에쓰오일은 회사 문화도 많이 달라졌다. 한마디로 ‘가족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한다. 김평길 부장의 설명이다. “예전에는 성장과 내실, 효율성 등을 강조하는 분위기였어요. 물론 그 덕에 성과를 냈지만 업무 환경은 좀 각박한 면이 있었지요. 지금은 CEO가 ‘인재가 기업의 미래이자 성장기반’이라는 확고한 신념으로 임직원들을 중시하기 때문에 예전과 많이 다릅니다. 가령 올해 수베이 CEO의 제안으로 ‘집중휴가제도’라는 것을 도입했는데, 임직원 본인이 언제든 원하는 때에 보름간 재충전할 수 있도록 한 겁니다.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CEO의 신조가 담긴 조치인 셈이죠.”

수베이 CEO는 ‘CEO’라는 단어를 색다르게 해석해 경영 모토로 삼고 있다. CEO를 고객(Customer), 임직원(Employee), 주주와 그 밖의 이해관계자(Owner and Other stakeholders)로 풀이하는 것이다. 회사는 곧 고객, 임직원, 그리고 주주 및 여타 이해관계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철학이 담겨 있다. 물론 그 선봉장 역할은 최고경영자인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경영 모토 실천을 위해 7가지의 구체적인 전략과제도 설정했다. 고객중심 경영의 강화, 최고의 업무 환경 추구, 탁월한 운영 효율성의 달성, 체계적인 사회공헌활동 수행, 투명한 기업지배구조 유지, 최적 자본 효율성의 확보, 지속성장 기반의 구축 등이 그것이다.

독창적인 ‘CEO 해석’ 경영 모토 삼아

김평길 부장의 말이다. “수베이 CEO는 에쓰오일을 그저 한때 거쳐 가는 회사로 여기지 않습니다. ‘CEO’라는 독창적인 모토도 부임하기 전부터 구상하신 것 같아요. 수베이 CEO는 에쓰오일이 한국 사회에 기여하면서 동시에 지속성장 가능한 기업으로 더욱 튼실하게 뿌리내리도록 하는 것을 자신의 ‘미션’으로 삼고 있습니다.”

수베이 CEO는 에쓰오일의 미래를 위한 투자도 과감하게 추진하고 있다. 온산공장 확장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내년 상반기 프로젝트가 완료되면 에쓰오일은 석유화학 부문 매출을 기존 10% 선에서 20%대로 끌어올릴 수 있게 된다. 기존 주력 사업인 정유 부문과 더불어 수익구조 다각화를 가져올 중요한 전환점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에쓰오일 경영진은 수베이 CEO를 정점으로 한국인 부사장 7명이 뒷받침하는 진용으로 짜여 있다. 그 중 4명의 부사장은 각각 생산, 영업, 관리, 재무 등 4개 부문을 총괄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부사장들은 옛 쌍용정유 시절부터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이다. 실무 경영진 중에 아람코 측 인사는 수베이 CEO 한 명밖에 없다.

반면 에쓰오일 이사회는 구성이 좀 다르다. 양대 주주인 아람코와 한진그룹이 각각 6명과 5명의 이사를 두고 있다. 수베이 CEO를 빼면 양측이 5대 5로 균형을 이룬다. 이사회 의장은 비상근이사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맡고 있다. 한진그룹은 2007년 옛 쌍용 지분을 인수하면서 아람코와 전략적·우호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에쓰오일은 2003년부터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 CEO 직책을 분리, 운영해 오고 있다. CEO는 경영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이사회는 중립적 입장에서 CEO의 경영활동을 감독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다. 그 결과 책임경영 및 투명경영이 자연스레 실현되고 있다.

에쓰오일은 한국과 사우디 양국의 경제협력 채널로서도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실제 아람코 측에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산유국∙소비국합작법인’ 사례로 에쓰오일을 꼽는다고 한다. 조양호 이사회 의장이 2008년부터 한·사우디 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Tip | 에쓰오일·아람코의 인연

쌍용그룹 위기 맞자 지분 28.4% 아람코에 넘겨 ‘결별’

▷▶▷ 에쓰오일이 세계 최대 석유 회사인 아람코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0년이다. 당시 쌍용정유 경영진은 고도화 시설(BCC; 저급의 벙커C유를 분해해 휘발유, 경유 등 고급 경질유로 전환시키는 고부가가치 설비) 투자비를 조달하기 위해 아람코를 찾았다. 양측은 서로 이해가 맞아떨어졌다. 쌍용정유는 막대한 투자 재원을 아람코로부터 제공받고, 아람코는 안정적인 원유 수요처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해 정식 합작계약이 체결됐다. 이때 쌍용정유는 아람코가 35% 지분을 갖고 쌍용은 28.4% 지분을 갖는 사실상 합작회사로 탈바꿈했다. 합작계약에 따라 쌍용정유는 아람코로부터 4억달러를 들여왔다. 당시로서는 민간이 도입한 외자로 사상 최대 규모였다. 쌍용정유는 그 돈으로 국내 최초의 고도화 시설을 건설했다. 1997년 마침내 완공된 고도화 시설은 정유 업계 후발주자인 쌍용정유의 경쟁력을 단숨에 끌어올리는 효자가 됐다.

하지만 쌍용그룹은 쌍용정유 지분을 1999년 아람코에 넘겼다. 유동성 위기를 넘기 위한 불가피한 구조조정이었다. 쌍용그룹과 결별한 쌍용정유는 2000년 에쓰오일로 상호를 변경했다. 2007년 또 한 번 큰 변화가 왔다. 아람코 측은 한진그룹을 새로운 협력 파트너로 맞아들였다. 한진 측은 과거 쌍용 지분 28.4%를 고스란히 인수했다.

김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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