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하의 현인(賢人)’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 미국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포스코를 사랑한다. 그는 이따금 공개적으로 포스코를 칭찬해 투자자들의 마음을 흔들어대기도 한다. 물론 그 자신이 포스코에 투자한 주요 주주다. 지난 1월 미국 버크셔 해서웨이 본사를 찾은 정준양 포스코 회장과의 만남에서는 “포스코는 세계 최고의 철강 회사다. 나는 철강 산업을 잘 모르지만 포스코 경영진이 잘하고 있다는 사실은 확실히 안다”며 극찬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투자자인 그가 포스코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버핏은 가치투자의 대명사다. 기업의 가치를 판단 기준으로 삼아 장기 투자하는 게 그의 투자 원칙이다. 포스코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어떻게 비칠지는 자명한 셈이다.

세계 3대 증시 상장된 국내 유일 기업

외국인 위한 적극적 IR 시스템 ‘눈길’

일본 ‘신일철’과 전략적 제휴로 철강 공동전선 구축

워런 버핏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포스코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투자 1순위로 꼽는 한국 기업 중 하나다. 실제 이번 조사에서 외국인 주식 소유 비중 톱10 기업 안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외국인 지분율은 50.1%. 최근에도 거의 50%에 육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때는 60%를 웃돌았을 정도로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외국인들이 포스코를 선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회사가 좋기 때문이다. 실적, 성장성, 내재가치 등이 우수할 뿐 아니라 기업 지배구조나 회계 투명성 등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기업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포스코 주식은 세계 3대 증시로 꼽히는 뉴욕, 런던, 도쿄 주식시장에서도 거래가 이뤄진다. 한국 기업 중 세계 3대 증시에 모두 상장된 곳은 포스코가 유일하다.

물론 이런 성과가 거저 달성된 것은 아니다. 포스코 스스로도 외국인 투자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한 노력을 오래 전부터 경주해왔다. 포스코가 해외 증시로부터 자본을 조달하기로 처음 계획한 것은 199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무렵 포스코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tandard & Poor’s)나 무디스(Moody’s) 같은 세계적인 신용평가 회사로부터 A등급 이상의 신용도를 부여받고 있었다. 해외 자금을 조달하는 데 별다른 지장을 받을 일이 없었던 셈이다. 다만 경영진의 마음에 걸리는 변수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해외 차입금 규모가 커지면 환율이나 이자율 변화에 따라 회사의 실적 변동성이 커진다는 단점이 그것이다. 그래서 보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해외 자금 조달을 위해 꺼내든 카드가 바로 해외 증시 상장이었다.

당시 경영진은 1차 목표를 뉴욕 증시로 삼았다. 우선 성공 가능성을 타진해봐야 했다. 미국, 유럽, 일본의 유수 투자은행을 접촉한 결과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국내 기업 최초로 1994년 뉴욕 입성

1994년 10월14일 포스코는 마침내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 조인서에 서명했다. 한국 기업 최초로 세계 금융시장의 최대 관문인 월스트리트에 당당히 입성하는 개가를 올린 것. 이를 통해 포스코는 뉴욕 증시에서 3억달러를 조달할 수 있었다.

뉴욕 증시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비중이 가장 클 뿐 아니라 상징성도 매우 높다. 더욱이 주식 상장 요건이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거래소로 유명하다. 그 무렵 뉴욕 증시 상장 기준은 주주 수 5000명 이상, 주식 수 250만 주 이상, 시가총액 1억달러 이상, 최근 3년간 당기순이익 1억달러 이상 등이었다. 당시 뉴욕 증시에 상장된 외국 기업은 160개사, 특히 철강 업체 중에는 영국 브리티시스틸이 유일했다.

따라서 포스코의 뉴욕 증시 입성은 여러모로 의미가 컸다. 저렴한 금융비용으로 해외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1차적이고 표면적인 효과다. 그보다는 포스코가 국제무대에서 기업 가치를 공인받았을 뿐 아니라 기업구조(가령 주주 분포) 측면에서도 명실 공히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게 됐다는 것이 더욱 큰 소득이었다고 할 수 있다.

포스코의 뉴욕 증시 상장은 한국 경제사에도 일대 전환점으로 기록됐다. 포스코가 첫 주자로 나선 이후 한국전력,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주요 기업들도 잇달아 해외 증시 상장에 나섰다. 한국 기업들이 세계 자본시장에서 위상을 제고하는 결정적 계기를 포스코가 마련해줬던 셈이다.

포스코는 뉴욕 증시 상장 이듬해인 1995년 런던 증시에 상장됐고, 그 10년 후인 2005년에는 도쿄 증시에도 상장됐다. 마침내 세계 3대 증시에서 포스코 주식이 동시 거래되는 시대가 개막한 것이다.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난 포스코는 외국인 주주들을 배려하는 IR(Investor Relations) 활동도 강화했다. 이른바 주주중시 경영의 실천에 나선 셈이다. 그런 차원에서 1999년 IR팀을 신설했고, CEO가 직접 투자자를 대상으로 회사 현황 등을 설명하고 의견을 듣는 ‘CEO포럼’도 개최하기 시작했다. 그뿐 아니라 주요 투자자들을 직접 방문하는 로드쇼도 도입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CEO포럼 등의 공개적인 기업설명회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기업에 대해 갖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포스코의 IR 활동은 기업 가치와 시장 가치의 차이, 경영진과 투자자의 거리를 좁히고 투자자의 신뢰를 강하게 하는 것을 미션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에 투자한 주요 주주 가운데는 동종 업체도 있다. 일본 최대 철강업체인 신일본제철(신일철)이 주인공이다. 포스코는 1998년 신일본제철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기로 하는 데 뜻을 모았다. 서로 상대방 주식을 취득·보유하고 기술협력·설비공급·조업·건설·엔지니어링 분야 등에서 기존 우호관계를 더욱 강화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그 무렵 서구 철강업계는 통합 및 대형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었다. ‘규모의 전쟁’이 서막을 연 것이다. 이런 상황 변화에 맞서 두 회사는 공동 대응 체제를 갖추고 상호 경쟁력 향상을 꾀하기로 한 것이다.

양사의 전략적 제휴 협약은 2000년 공식 발효됐다. 기술협력은 물론 해외 사업, 정보통신기술, 신소재 개발 등으로 협력 범위가 확장됐다. 또한 상호 지분 보유 한도도 3%까지 늘렸다.

 신일철과는 문화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

두 회사의 전략적 제휴는 그간 많은 성과를 낳았다. 공동 연구개발을 통해 저가 원료 활용 기술, 폐수 처리 기술 등을 실용화하는 데 성공했고, 다수의 특허를 공동 출원했다. 또한 비용 절감, 생산성 향상, 품질개선 등을 목적으로 폭넓은 기술교류를 해온 덕에 양사 모두 철강 제조 기술을 대폭 개선할 수 있었다. 원료 조달과 해외 사업에서도 공동 프로젝트를 다수 추진해 뚜렷한 성과를 거뒀다.

포스코와 신일본제철의 문화 교류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지난 2008년 4월 일본 도쿄 소재 ‘키오이홀’에서는 포스코 창립 40주년 및 일본 근대제철 150주년을 양사 공동으로 기념하는 음악회가 열렸다. 키오이홀은 신일본제철 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오케스트라 전용홀이다.

지난해 1월에는 서울 포스코센터에서 양사가 공동 주최한 신년음악회가 열렸다. 이후 두 회사는 양국을 오가며 음악회를 번갈아 개최하고 있다. 공동 음악회 개최를 통해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 나아가 정서적·문화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취지다.

포스코 홍보실 관계자는 “포스코와 신일본제철의 공동 음악회는 양사의 우정을 더욱 돈독히 하는 무대일 뿐 아니라 한·일 양국 기업 간 문화교류의 최초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김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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