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경영진이 기업 글로벌 역량 좌우”

기존 글로벌화 지표 맹점 보완한 새 지표 개발 보람

 “외국의 비즈니스 방식을 잘 이해해 외국 기업과 원활하게 거래할 수 있는 기업, 그리고 외국의 상대방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거래할 수 있는 기업, 이런 기업이 진정한 ‘글로벌 펌(global firm)’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박철순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가 내린 ‘글로벌 기업’에 대한 정의다. 그는 국제경영연구센터장으로서 ‘글로벌 인덱스’ 프로젝트를 총괄 지휘했다. 기존의 도식적인 분석틀을 넘어 차별화된 글로벌 인덱스를 개발하느라 여러 날을 부심하기도 했다.

경영학적 관점에서 이른바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세계화)’은 세계 경제가 통합되고 상호의존성이 강화되는 것을 뜻한다. 이런 과정에서 ‘글로벌화된 기업’이 나온다. 글로벌화된 기업이란 국제무역 또는 해외직접투자에 참여하는 기업을 의미한다.

여기서 기업 글로벌화 측정이 이슈로 등장했다. 일반적으로는 ‘총매출 대비 해외매출 비중’이나 ‘총자산 대비 해외자산 비중’이 글로벌화의 지표로 널리 쓰인다. 가령 어떤 기업의 총매출 대비 해외매출 비중은 시장(market)이 얼마나 글로벌화돼 있는가를 보여주고, 총자산 대비 해외자산 비중은 생산활동(production)을 얼마나 글로벌하게 수행하고 있느냐를 나타낸다. 두 가지 지표와 더불어 해외 종업원 비율도 글로벌화 측정 잣대로 쓰인다. 3가지 지표는 서로 긴밀한 상관성을 지닌다.

그런데 이들 글로벌화 지표는 한 가지 맹점이 있다. 해외진출과 관련이 적은 특정 업종의 기업을 평가하는 데 한계를 노출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로 통신업체를 들 수 있다. 박 교수의 설명이다.

“기존 글로벌화 지표를 사용하면 AT&T나 BT 같은 세계적인 통신업체가 글로벌 펌에서 배제되는 문제점이 발생합니다. SK텔레콤, KT 같은 국내 통신업체도 마찬가지죠. 이들 기업은 분명 글로벌화의 ‘포텐셜(potential)’을 갖고 있습니다. 즉 해외 비즈니스 기회를 적극 개척하고 획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들도 당연히 ‘글로벌 펌’으로 봐야 하는 겁니다.”

유통, 서비스, 식음료, 전력 업종 등도 통신 업종과 비슷한 경우다. 특히 통신이나 전력 같은 ‘규제산업’은 해외로 나가기가 매우 힘든 산업 중 하나다. 따라서 해외매출 비중이나 해외자산 비중만으로 모든 기업의 글로벌화를 일률적으로 측정하는 것은 온전한 방법이 아닌 셈이다. 그런 점에서 기업의 인적(人的) 역량을 글로벌화 평가 잣대로 활용하는 것은 새로운 의미가 있다.

“글로벌 기업을 말할 때 글로벌 활동을 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글로벌 역량을 갖고 있느냐를 봐야 합니다. 인적 역량이 글로벌화돼 있는 기업이라면 언제든 글로벌 기업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이번 글로벌 인덱스 조사는 최고경영진과 주주의 2개 부문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최고경영진과 주주가 기업을 구성하는 이해관계자(stakeholder) 그룹 가운데서도 가장 영향력이 큰 집단이라는 점을 감안했다. 특히 최고경영진(top management team)의 글로벌화 정도가 높을수록 기업의 글로벌 역량이 높아진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최고경영진이 어떤 가치관과 지향점을 갖느냐 하는 것은 조직 분위기에 큰 영향을 줍니다. 모든 조직의 성과는 ‘톱 매니지먼트 팀’에 달렸다고도 할 수 있어요. 경영학적으로도 여러 이론적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최고경영진 부문 조사는 CEO와 임원의 글로벌화를 살펴봤다. CEO의 경우 해외학위 취득 및 해외근무 경험 여부를 측정 지표로 삼았는데, 해외학위나 해외경험이 최고경영진의 글로벌 역량을 짐작할 수 있는 ‘대위변수(proxy)’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임원의 경우 등기임원 해외학위 취득 비율, 등기임원 외국인 비율, 비등기임원 외국인 비율 등을 측정 지표로 활용했다. 다만 경영진의 ‘국적’자체는 중요치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내국인이라도 얼마든지 글로벌 역량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글로벌 인덱스 조사는 기업의 잠재적인 글로벌 역량을 글로벌화 평가의 잣대로 삼은 최초의 시도라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업들 자료를 구하기가 너무 어렵더군요. 해외매출이나 해외자산 비중 정보조차도 얻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어요. 자료에 대한 접근성이 괜찮았다면 보다 다양하고 종합적인 조사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좀 남습니다.”

서울대 국제경영연구센터는…

한국 기업의 국제 경쟁력 향상을 위해 전략 및 국제경영과 관련된 이론 개발 및 연구를 하고 있다. 각종 세미나, 포럼 등을 주관하고 한국 기업 경쟁력 향상을 위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또한 연구 결과의 확산 및 전파를 위해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1995년에는 국내 최초로 해외 명문 경영대학(미국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유럽 런던 비즈니스 스쿨, 일본 히토츠바시 대학)과의 협동 과정인 ‘글로벌 CEO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Tip | 글로벌 인덱스 연구팀원들의 한마디

“우리 기업 글로벌화에 도움 됐으면”

▷▶▷ 서울대 국제경영연구센터와 공동 기획으로 추진한 ‘글로벌 인덱스’ 개발과 조사, 그리고 분석 과정은 지난함의 연속이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절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생한 만큼 작지 않은 보람도 얻었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국제경영연구센터 연구원들의 소감을 한마디씩 들어봤다. (박사과정: 김효정, 박연진, 소경언, 진규호. 석사과정: 이상석, 이용환, 황석현)

▶ 김효정 :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한국 기업의 글로벌라이제이션은 중견기업의 글로벌라이제이션에서 시작되어야 하며, 중견기업의 글로벌라이제이션은 경영진의 글로벌라이제이션에서 시작되어야 할 듯!!

▶ 박연진 : 덕분에 CEO분들 이름이 익숙해졌네요. 오랜 시간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 소경언 : 앞으로는 단순히 해외지점 개수나 해외인력 비율과 같은 ‘숫자’가 아닌 진출 국가의 사회와 문화에 얼마나 녹아 들어 회사의 비전을 실행하는가를 측정할 수 있는 지수개발이 선행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 진규호 : 저희가 개발한 ‘기업지배구조’ 중심의 글로벌 지수가 실제 기업의 글로벌화에 선행하는지 또는 후행하는지 확인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 이상석 : 글로벌 인덱스 개발 및 연구 작업은 국내에서는 아직 시작 단계에 가깝습니다. 서울대학교 국제경영연구센터의 이 같은 시도가 장기적으로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밑거름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 이용환 : 더 많은 한국 기업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개발한 글로벌 인덱스가 기업의 세계화를 잘 반영하는 지표이기를 바랍니다.

▶ 황석현 : 지난 몇 달의 시간 동안,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작업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던 만큼, 이번에 개발한 한국 기업의 글로벌 인덱스가 우리 기업들에게 꼭 도움이 되는 역할을 감당하길 기대합니다.

 

김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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