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은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현대적 제조업체인 제일제당(1953년)과 제일모직(1954년)을 잇달아 설립했다. 1950년대 후반 무렵 두 회사를 쌍두마차로 거느린 삼성그룹은 이미 가장 인기 있는 직장 중 하나였다. 당연히 전국의 많은 인재들이 호암의 품 안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국내 최초로 사원공채제도(1957년)를 도입한 것도 인재 영입에 큰 몫을 했다. 이때 호암과 인연을 맺은 인재들은 삼성의 주축이자 한국 산업화의 숨은 주역으로 성장했다. 오랫동안 호암을 보좌한 삼성 출신 두 원로를 만나 이병철 회장과 함께 한 추억을 들어봤다.

 1  비서 출신 두 원로의 회고담 - 신훈철 전 삼성항공 사장

“카리스마 있는 인품… 흡인력 대단”

“1969년 설립 무렵 삼성전자는 TV도 제대로 못 만들어 쩔쩔 맸어요. 당시 일본 소니는 전자 업계 최강이었지요. 그런데 이제 삼성전자가 소니를 따돌렸으니 얼마나 감개무량한 일입니까.”신훈철(82) 전 삼성항공(현 삼성테크윈) 사장은 삼성전자의 성공신화로 운을 뗐다. 그는 삼성그룹 계열사 대표이사를 역임한 원로 가운데 최연장자급에 속한다. 1956년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1993년 상담역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때까지 40년 가까운 세월을 삼성에서 보냈다. 삼성그룹 퇴직임원 동우회인 삼성 성우회(星友會)의 초대 회장도 역임했다. 한마디로 삼성의 어제와 오늘을 훤히 꿰고 있는 산증인인 셈이다.“군 제대 후 학장님(당시 나익영 서울대 공대학장)께 인사하러 갔더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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