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조 업계에 지난해 피바람이 불었다. 고령화로 국내 상조 업계는 매해 성장하고 있었지만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초 자본금 요건 증액을 골자로 하는 개정 할부 거래법을 시행하면서 영세 상조 회사가 직격탄을 맞았다. 재무구조가 부실한 업체가 대거 폐업을 선언했다. 1월 30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19년 4분기 상조 업체 주요 정보 변경 사항 공개’ 자료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공정위 등록 상조 업체는 86개사로 2018년 같은 기간보다 38%(54개) 감소했다.

공정위의 개정 할부 거래법 시행이 상조 업계에 악재로 다가왔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간 상조 업계가 선불식 할부 거래 방식으로 소비자의 신뢰를 잃었다는 점이다. 선불식 할부 거래란 소비자가 먼저 대금을 일정 시기 동안 분할해 지급한 이후 사업자로부터 재화나 용역을 양도받는 거래 형태를 의미한다. 납입 시점과 서비스 시점이 달라, 소비자가 자본금 미달 영세 업체에서 서비스를 받지 못하거나 납입금을 환불받지 못하는 피해가 잇달았다.

이에 따라 후불제 방식을 도입한 상조 업체들이 늘어났다. 소비자가 회원가입을 하고 정기적으로 내는 납입금 없이 상품에 따라 발인 이전에 대금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후불제 업체들은 개정 할부 거래법의 적용을 받지 않으며, 공정위 제재 대상이 아니다.

다만 후불제 업체도 영세업자가 많아 소비자 피해가 우려되는 사항이다. 특히 ‘끼워 팔기’가 업계에 만연한 현상으로 지적되고 있다.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기존에 약속한 상품보다 한 단계 비싼 상품이나 추가 상품을 권유하면서 서비스 금액을 높여가는 방식이다.

후불제 상례 서비스 ‘3일의 약속’을 운영하는 헬스조선 관계자는 “본인이나 가족이 생전 상례 서비스를 확인하면서 원하는 상품을 미리 정해두는 것이 좋다”면서 “우왕좌왕 준비하다 보면 장례식장에서도 ‘바가지’를 쓸 수 있다”고 조언했다. 헬스조선은 업계 최초로 정찰 후불제를 도입한 바 있다.


상조 업계에서도 장년층 고객 대상 생전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크루즈 여행 상품을 상조 상품과 결합 판매하는 방식이 유행이다.
상조 업계에서도 장년층 고객 대상 생전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크루즈 여행 상품을 상조 상품과 결합 판매하는 방식이 유행이다.
장례식장에 늘어선 화환(기사와 관계 없는 사진). 사진 연합뉴스
장례식장에 늘어선 화환(기사와 관계 없는 사진). 사진 연합뉴스

“휩쓸려 떠나기 싫다” 직접 상조 회사 알아보는 장년층

상조 업계에 대한 불신으로 장년층이 직접 발 벗고 나서서 상조 회사를 알아보는 경우가 늘고 있다. 헬스조선 관계자는 “우리 고객의 상당 수가 1944~45년생”이라면서 “이전에는 자식이 부모를 위해 상조 서비스에 가입했다면, 요즘엔 직접 선호하는 업체를 고르는 부모가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부양 의식이 변화하면서, 직접 죽음을 준비하는 장년층이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1998년 통계청 사회조사를 보면 10명 중 9명(89.9%)이 ‘노부모 부양 책임은 자녀(가족)에게 있다’고 응답했다. 2018년엔 이 비율이 26.7%까지 줄었다. 30대가 6·25전쟁 이후 최초로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가 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상례 서비스를 자식에게 맡기지 않고 부모 세대가 스스로 책임지려는 움직임이 늘어나는 이유다.

상조 업계에서도 장년층 고객 대상 생전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투어 상품은 기본이 됐다. 2012년 한강라이프가 상조 업계 최초로 크루즈 여행 상품을 선보이면서 장년층 고객의 가입률을 높였다. 이후 상조 업계에서 여행 부서를 만드는 것이 관행이 됐다. 보람상조는 지난해 4월 크루즈 전문 브랜드 ‘보람탐크루즈’까지 론칭했다. 헬스조선은 직영 여행사 비타투어를 통해 휠체어 탄 장년층 고객까지 맞춤형으로 이용 가능한 해외 여행 상품을 제공한다.

개별 상품을 내놓는 곳도 늘고 있다. 수의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던 안동삼베마을은 지난해 예효경으로 상호를 바꾸고 종합 상례 서비스를 시작했다. 자체적으로 고인을 보관할 수 있는 고급형 유리냉장관을 출시하기도 했다. 운반이 가능한 형태로 장례식장에도 고인을 안치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한국 상조 문화의 갈 길은 멀다. 상조 업체 가입자 수는 이미 600만 명을 넘어섰고, 선수금 총액도 5조원을 돌파했지만 장례 상품으로 제공되는 고인용품, 관, 일반 수의, 한지한복 수의, 유골함은 상품 다양성이 떨어지고 업체별로 유사한 경향이 많다. 결국 상품의 질보다 가격 경쟁으로 업계 승부가 판가름 난다. 본인이 생전에 장례식을 치르거나, 특별한 장례 형식을 기획하려고 해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조 업체가 드물다.

실제 “장례식장에 고인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종합병원에서 장례식이 진행되면서, 장례 문화가 획일화됐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생긴 공간에서 모두 같은 절차에 따라 장례를 진행한다. 유족과 조문객은 장례식장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고인은 별도로 분리된 영안실에 자리 잡고 있다.

장례식 자체의 특색이 떨어지다 보니 고인보다는 유족이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장례식의 큰 목적이 유족이 그간 지인에게 줬던 부조금을 회수하는 절차로 변질됐다. 유족 앞으로 오는 장례 화환으로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는 장이 되기도 한다.

3일장 형식도 획일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이나 미국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집이나 교회에 모여 영결식을 치른다. 고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다 같이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을 보낸다. ‘짧고 굵게’ 온전히 고인에게 집중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20년간 장례 업계에 몸담은 김익한 예효경 대표는 “고인이 병원이 아닌 집이나 교회, 회사 등 익숙한 환경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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