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1│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두 남매를 홀로 키워온 김선자(가명·71)씨는 건강이 급격히 악화하자 조금이라도 멀쩡할 때 재산을 정리하기로 결심했다. 법정 상속비율대로 자녀에게 재산을 주자니 장애를 가진 딸이 걱정됐다. 김씨는 경기도 소재 아파트와 임대료 수익이 나는 오피스텔, 현금 2억원이 있다. 김씨는 한 은행에 자산을 위탁하고 유언대용신탁 계약을 했다. 은행은 김씨 대신 오피스텔을 관리하며 장애인 딸에게 임대료 수익을 지급하고, 아파트는 생전에 김씨가 계속 거주하다가 사망 후 아들에게 소유권이 이전되도록 설계했다. 현금 2억원은 김씨가 노후 자금으로 사용하다가 남은 금액을 두 자녀가 법정 상속 비율대로 받도록 약정했다.

평화로운 엔딩을 위해 반드시 짚고 가야 할 과제는 ‘상속’이다. 별문제 없이 잘 지내던 집안도 상속 재산이 갈등의 불씨가 되는 일이 적지 않기 때문.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08년 279건에 불과하던 상속재산분할 청구 접수 건수는 2016년 1233건, 2017년 1403건, 2018년 1710건을 기록하며 매년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유류분(遺留分) 반환 청구 소송’은 2008년 295건에서 2018년 1371건으로 10년 새 약 4.6배 늘었다.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은 유산을 더 많이 가져간 가족을 상대로 자신의 몫을 돌려달라고 청구하는 소송이다.

유언장을 제대로 써 분쟁의 소지를 없애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아무리 잘 쓴 유언장도 상속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오해와 갈등이 발생한다. 최근에는 분쟁을 줄이고 동시에 세상을 떠난 후에도 재산을 철저하게 관리하기 위해 유언대용신탁과 같은 상속형 신탁을 이용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앞서 본 김씨의 사례가 그렇다.

유언대용신탁은 금융회사가 계약자와 생전에 자산에 대한 신탁계약을 하고 자산을 관리해주다가 계약자 사망 후 계약 내용에 따라 지정한 수익자에게 지급, 관리하는 금융 상품이다. 살아 있을 때 돈을 맡기기 때문에 생전신탁이라고도 불리며 유언을 대체하는 효과가 있다. 영국·미국·일본 등 해외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상품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오랜 기간 고액 자산가를 위한 상품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가 최근 들어 대중으로 확산하고 있다.


사례 2│2009년 갑자기 세상을 떠난 마이클 잭슨이 유언대용신탁을 통해 상속해 화제를 모았다. 마이클 잭슨은 가족신탁계약서를 통해 사후에 자신의 유산이 어떻게 운용될지 미리 정해놨다. 그는 유산의 20%를 자선재단에 기부했고 장례비, 변호사비 등의 비용을 제외한 나머지 재산은 아내와 세 자녀에게 상속했다. 마이클 잭슨은 자녀들이 유산을 한 번에 받지 않고 성인이 되고도 한참 후인 30세가 넘어야 일부를 상속받도록 설계했다. 계약서상 상속이 완전히 끝나는 시기는 자녀가 40세 되는 생일이다. 자녀의 삶이 유산으로 망가질까 걱정한 마이클 잭슨의 의도가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유언장과 유언대용신탁은 중간에 얼마든지 상속자와 비율을 조정할 수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반면 유언장은 자신의 재산을 상속할 사람만 정할 수 있는 데 비해 유언대용신탁은 상속받은 사람의 사망 후 재산 상속까지 정할 수 있다. 우선 상속자인 A가 사망하면 B에게, B가 사망하면 C에게 주는 식으로 자산 대물림 설계가 가능하다.

유언을 하는 비용은 자필·녹음·구수·비밀증서의 경우 크지 않지만 유언공증은 다소 비싸다. 유언대용신탁은 계약 수수료, 연간 수탁비 등 금융사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있어 더 많은 부담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또 유언대용신탁 역시 유언과 동일하게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을 당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다만 법적 분쟁 시 신탁 계약 내용이 판단 기준으로 작용해 갈등을 정리한 다음과 같은 사례도 적지 않다.


사례 3│장재호(가명·83세)씨는 3년 전 사후 재산을 4명의 자녀에게 배분한다는 내용으로 유언대용신탁 상품에 가입했다. 그러던 중 최근 치매 증상이 악화하면서 큰딸이 장씨를 돌보게 됐다. 큰딸은 정상적인 판단이 어려운 장씨를 설득해 금융사를 찾아가 재산 배분 약정을 취소하고 자신에게 모든 재산을 상속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나머지 3명의 자녀는 반대 의사를 보였고 금융사는 이를 이유로 큰딸의 요구를 거절했다. 큰딸은 해당 금융사를 상대로 재산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으나 긴 싸움 끝에 결국 패소했다.

유언대용신탁은 가족 간 상속 재산 다툼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뿐 아니라 최근에는 한 부모 가정에서 자녀의 양육권과 친권을 가진 한쪽 부모의 사망 뒤 자녀의 양육비 문제, 미성년이거나 사회적 취약 계층 지원금의 안전한 관리 등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활용된다.

사후 계약 내용에 따라 재산을 처분해주는 일반적인 형태의 유언대용신탁 상품으로는 KEB하나은행의 ‘하나리빙트러스트’가 대표적이다. 맞춤형 상품도 있다. 치매안심신탁은 치매가 오기 전이나 치매 초기일 때 신탁을 통해 자산관리와 상속 설계를 해놓는 상품이다. 병원비, 간병비, 생활비 등을 미리 지정하면 치매 판정 후 은행이 돈을 관리해준다. 성년후견인지원신탁도 비슷하다. 성년이지만 발달장애인 등 판단 능력이 없어 법원에서 성년후견 개시 심판 또는 한정후견 개시 심판을 받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은행이 후견인으로서 생활비를 지급하고 주요 재산을 보전하고 관리해준다.

아울러 KEB하나은행은 최소 수탁금액을 낮춘 보급형 유언대용신탁 ‘가족배려신탁’을 운영하고 있다. 신영증권은 ‘신영 패밀리 헤리티지’를 통해 종합자산관리, 자산승계, 특별부양, 공익기부로 이뤄진 종합가족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김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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