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애니메이션 ‘코코’의 한 장면. 사람들에게 잊혀 소멸하는 치차론. 사진 월트디즈니코리아

“Remember me. Though I have to say goodbye(기억해 줘. 지금 떠나가지만).”

2018년 1월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코코’에 나오는 주제곡 ‘Remember Me’의 가사 일부분이다. 코코는 멕시코 남자아이 미구엘이 공동묘지에서 사후 세계로 우연히 발을 들이면서 겪는 일을 다룬 영화다. 영화에선 ‘기억’이 ‘존재’와 동일시된다. 노래 가사처럼, 저승길에 들어선 이들이 이승에 남은 이들에게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이야기한다. 극 중 방랑자로 나오는 치차론은 자신을 기억해주는 이가 없어 저승에서까지 한 번 더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는 나의 존재가 ‘소멸’한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묘비를 세우듯 자신에 대한 기록을 어딘가 각인하고자 한다. 그렇게 남긴 ‘각인’은 때때로 저절로 살아 움직이기도 한다. 죽음 탐험대의 여정을 그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타나토노트’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신기하게도 어떤 스타가 죽고 나면 그의 음반이 불티나게 팔리고, 그의 영화가 텔레비전에 되풀이해서 방영됐다. 그리고 모두 그의 칭찬을 늘어놓았다.”

죽음 이후에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일 삶의 기록을 디자인하고 죽는다면 어떨까. 물론 뜻대로 되란 법은 없겠지만, 아무렇게나 어지럽혀 놓고 생을 마감하는 것보단 안심이 될지도 모른다. 자신의 엔딩을 써 내려갔던 인물을 소개한다.


안자키 사토루(安崎曉) 전 고마쓰 사장

“감사의 모임 개최 안내. 아직 기력이 있을 동안 여러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고자 감사의 모임을 열고자 하니 참석해주시면 저의 최대의 기쁨이겠습니다.”

2017년 11월 니혼게이자이신문 사회면에 ‘사전장례식’ 광고가 났다. 일본 건설기계 분야 대기업 고마쓰의 안자키 사토루 전 사장이 올린 광고였다. 암 진단 사실을 밝힌 그는 주변인에게 마지막으로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사전장례식 문화의 시초격이었다.

사전 장례식에는 회사 관계자, 학교 동창생 등 지인 약 1000명이 모였다. 안자키 전 사장은 식장을 지인들과 추억이 담긴 사진으로 꾸몄고, 본인이 중국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영상 등을 스크린에 틀었다.


화가 프리다 칼로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 프리다 칼로는 6세 때 소아마비, 16세 때 교통사고, 이후 30여 차례 수술 등 죽음의 문턱 앞에 자주 섰다. 병상에서 주로 시간을 보낸 그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그림을 다수 그렸다. 대표 작품은 ‘Viva La Vida!(인생이여 만세!)’다. 붉은 과육이 흘러넘치는 탐스러운 수박이 그려진 그림으로, 생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던 열정적인 그의 삶을 반영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프리다는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생을 마감했다.

프리다의 절친이었던 남편 디에고 리베라는 프리다의 생가 ‘파란색 집(La Casa Azul)’을 멕시코 정부에 기증했다. 그의 삶을 보여주는 수백 점의 그림을 이곳에 전시했다. 그가 지내던 침실과 화실, 화실 안에 팔레트까지 그대로 보존했다. 파란색 집을 방문하면 생전 그의 삶이 저절로 상상된다.


홍성훈 인천 홍정형외과 원장

2012년 생을 마감한 홍성훈 원장은 살아생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를 지내면서 노숙인 진료, 어린이 의료 지원에 이바지했다. 그는 위암 판정 이후 불필요한 치료는 받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이후 주위 사람에게 담담하게 암 진단 사실을 알렸다.

소식을 들은 그의 지인이 생전 그를 위해 사진 전시회를 열어줬다. 그는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사진 찍기를 좋아했다. 그는 자신의 철학을 담은 작품을 지인과 공유했다. 전시회에서 지인들과 인사를 나눈 그는 한 달 후 평온히 생을 마감했다고 알려졌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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