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어느 날,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약속이 잡힌 김미래씨는 광화문 사무실에서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자율주행차를 부른다. 차는 그가 내려오는 시간에 맞춰 주차장을 빠져나와 건물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 김씨는 차량에 탄 뒤에도 운전대를 잡지 않고 노트북을 켜서 밀린 업무를 처리한다. 도로 정체로 가다 서다를 반복하던 차는 막히지 않는 길을 스스로 찾아 속도를 낸다. 어느새 약속 장소에 도착한 자동차는 김씨가 내린 뒤 알아서 건물 주차장을 찾아 들어간다.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다. 조만간 사람이 운전대를 조작하지 않아도 스스로 운행, 주차까지 하는 자율주행차가 등장할 전망이다. 앞으로 8년 후엔 전체 자동차의 70% 이상이 자율주행차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기계 덩어리’ 자동차가 똑똑한 ‘스마트 카’로 바뀔 수 있는 것은 차량에 탑재되는 각종 전장(電裝) 부품 덕분이다.


인포테인먼트·운영체제 분야 급성장 예상

자동차 전장 부품은 차량에 들어가는 인포테인먼트·텔레매틱스 시스템과 안전 센서, 차량용 반도체, 운영체제(OS), 전기차 배터리 등 모든 전기·전자·정보통신 장치를 말한다. 미래의 자동차는 각종 사물인터넷(IoT) 장비를 중심으로 인공지능 기술 등이 탑재되면서 첨단 기술의 집약체가 될 전망이다.

엔진 등을 중심으로 한 과거 자동차 산업은 완성차와 부품 업체들의 독무대였다. 하지만 배터리와 모터로 움직이는 미래 자동차는 정보기술(IT) 기업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최근 IT 기업들이 앞다퉈 전장 사업에 뛰어드는 이유다.

자동차 전장 부품 시장은 2015년 2390억달러(약 270조원)에서 2020년 3033억달러(약 343조원)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세계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큰 시장이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전장에서 급성장이 예상되는 분야는 인포테인먼트다. 인포테인먼트는 운전에 필요한 각종 정보와 음악·비디오 등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일찌감치 전장 사업에 뛰어든 LG전자와 하만을 인수한 삼성전자가 인포테인먼트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미래 자동차의 운영체제(OS) 분야 역시 IT 기업의 격전장이다. OS는 탄탄한 소프트웨어 기술이 누적돼 있지 않으면 진입하기가 쉽지 않다. 자동차 업체는 이 분야에서 구글, 애플 등에 밀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애플은 차량 인포테인먼트용 소프트웨어인 ‘카플레이’를 이미 출시해 진영을 구축했고, 구글도 ‘안드로이드 오토’를 중심으로 자동차 업체 연합 세력을 모았다.

반도체 업계도 새로운 기회를 맞게 됐다. 차량 간 또는 차량과 주변 환경 간 데이터를 주고받는 데에도 반도체가 빠질 수 없다. 자동차에는 메모리·비메모리 반도체, 센서 등 200여개의 반도체가 사용된다. 시장조사기관 IHS테크놀로지는 차량용 반도체 시장 규모가 2015년 300억달러(약 34조원)에서 2020년 433억달러(약 49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IT 업계 인수합병으로 전장 사업 규모 키워

자동차 업체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경쟁 자동차 업체뿐 아니라 애플·구글과 같은 IT 거인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업체 관계자는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IT 업체가 자동차 업체와 경쟁 구도를 형성할 것이라곤 상상하기 쉽지 않았다”며 “하지만 지금 자동차 업계에선 자칫 시장의 주도권을 뺏길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IT 기업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율주행 시스템을 개발하거나 전장 부품 업체를 인수하며 차세대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기반을 다져 왔다. 구글은 커넥티드카를 새로운 사업 기회로 보고 2019년 자율주행차 출시 목표를 내놨다. 애플도 자율주행 시스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엔 미국 거대 반도체 기업 인텔이 전장 사업에 뛰어들었다. 인텔은 지난 13일 이스라엘의 자율주행 시스템 기업 모빌아이를 153억달러(17조3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1999년 설립된 모빌아이는 자동차용 카메라 시스템과 이 기술이 적용된 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ADAS)을 만드는 업체다. BMW·닛산·혼다·현대차 등이 주요 고객사다. 이 분야 시장 점유율이 70%에 달한다. 인텔이 모빌아이를 인수한 것은 차량 반도체 분야에서 엔비디아·퀄컴 등을 제치기 위해서라는 풀이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차량용 반도체 분야에선 테슬라의 부분 자율주행 시스템인 ‘오토파일럿’에 그래픽칩을 공급하는 엔비디아가 가장 앞서 있다. 퀄컴은 지난해 10월 470억달러(약 53조원)를 들여 자동차용 반도체 제조 업체 NXP를 인수했다.

일본 파나소닉은 전장 부품 업체의 대규모 인수·합병을 추진하며 인포테인먼트와 전기차 배터리 등 전장 사업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오스트리아의 전장 부품 업체 ZKW를 1억달러(1조1300억원)에 인수했으며, 2019년 초까지 인수·합병에 모두 10조원가량을 쏟아부을 계획이다.

삼성·SK·LG 등 국내 대기업들도 전장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12일(현지 시각) 미국 전장 전문 기업인 하만 인수를 완료했다. 삼성전자는 하만 인수를 통해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자율주행차 부품, 전기차 배터리 등으로 분야를 나눠 전장 사업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각 분야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해 커넥티드카 또는 전기차 개발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김정하 국민대 자동차융합대학장은 “뒤늦게 전장 사업에 뛰어든 삼성전자가 하만 인수를 통해 선도 업체들과 기술 격차를 줄이고 진입장벽이 높은 부품 시장 공략에 한발 더 다가섰다”고 평가했다.

삼성전자는 이미지센서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이미지센서란 IT 제품의 ‘눈’에 해당하는 시스템 반도체다. 자율주행차에는 전후방 차량이나 사물을 인식하는 카메라와 센서가 필수라는 점에서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IHS는 2014년 3360만개였던 자동차용 이미지센서 시장규모가 2019년 8769만개로 연평균 21.1%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삼성전자가 하만을 인수하면서 전장 시장에서 삼성·LG전자의 맞대결이 펼쳐질 전망이다. 2013년 7월 출범한 LG전자 자동차부품(VC)사업본부는 지난해 2조7731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30% 이상 성장했다. LG전자는 올해 VC사업본부 분기 매출이 1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자동차 시장 진입을 위해 VC사업본부를 신설한 이후 매년 4000억원씩 투자하며 전장 사업을 육성해 온 결과다.



미국 전장기업 하만의 직원이 커넥티드카에 탑승해 각종 기능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 : 조선일보 DB>

“車·IT 융합한 기업이 미래 시장 지배”

SK도 계열사별로 전장 사업에 뛰어들며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중이다. SK하이닉스는 차량용 반도체 전담팀을 설립하며 전장 사업 분야 강화에 나섰다. SK텔레콤은 BMW 등 완성차 업체들과의 협업을 통해 스마트카 사업에 뛰어들었다.

기계식 제동·현가·조향장치로 출발한 만도는 첨단운전자보조 시스템과 자율주행 부품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2008년부터는 센서 기술력까지 확보하면서 자율주행 관련 공급처를 다변화했다. 만도는 미래차 기술력 확보를 위해 최근 실리콘밸리에 연구·개발(R&D) 거점까지 구축했다.

기존 완성차 업체들도 반격에 나섰다. 메르세데스-벤츠·BMW·아우디 등 독일 자동차 3사는 노키아의 지도 서비스 업체인 히어(HERE)를 인수해 자율주행차에 필요한 실시간 지도 데이터를 확보했다. 포드와 도요타는 스마트폰과 자동차를 연결하는 커넥티드카 시스템을 개발하는 등 독자 플랫폼 전략을 세웠다.

현대·기아차는 2020년 초연결 지능형 커넥티드카 출시를 목표로 차량용 운영체제인 ‘ccOS(Connected Car Operating System)’를 개발하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전장 부품을 책임지고 있는 현대모비스도 자체 개발 능력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걸음마를 뗀 국내 업체의 전장 기술이 해외 선진 업체를 따라잡기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자율주행차는 카메라·라이다(LIDAR) 등 센서를 통해 상황을 인식하고, 전자제어 시스템 등으로 정보를 판단한 뒤 가감속·조향·제동장치 등으로 차량을 제어한다. 자율주행 기술의 핵심인 라이다 등 센서 기술은 외국 업체가 거의 독점하고 있다.

김정하 학장은 “국내에서 ‘차량 IT’에 특화된 기술·개발 경험을 가진 기업은 거의 없다”며 “자동차에서 IT를 별개로 보면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동차 산업과 IT 산업 간의 융합이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동차와 IT를 선도적으로 융합한 기업이 미래 자동차 시장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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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 부품 차량에 들어가는 인포테인먼트·센서·반도체·운영체제(OS)·배터리 등 모든 전기·전자·정보통신 장비를 말한다.
커넥티드카(connected car) 자동차와 정보통신 기술을 연결해 양방향 인터넷, 모바일 서비스 등이 가능한 차량을 일컫는다. 자동차와 주변의 사물이 양방향 네트워크로 연결돼 운전의 안전과 편의성이 높아진다.
인포테인먼트(infotainment) 정보(information)와 오락(entertainment)의 합성어로, 정보의 전달에 오락성을 가미한 소프트웨어 또는 미디어 장치를 말한다. 차량용 인포테인먼트는 차량 상태와 길 안내 정보 제공은 물론 인터넷 검색과 이메일 확인, 영화·게임·TV·소셜네트워크 등이 가능한 시스템이다.
라이다(LIDAR) 자율주행차에 필수적으로 적용되는 장치로 레이더보다 전방의 물체와 상황 등을 훨씬 정밀하게 인식할 수 있다. 레이저를 이용해 외부환경을 3차원으로 인식한다.
텔레매틱스(telematics) 통신 네트워크를 이용해 인터넷을 활용하거나, 자동차 사고 시 긴급구조, 도난 차량의 위치 추적, 원격 차량 진단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술이다.


운전자 없이 차량이 알아서 자동으로 주차하는 자동주차 지원 시스템이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plus point

주목받는 스마트 전장 기술
운전자 없어도 빈자리 찾아 자동주차
얼굴 등 신체 인식하고 건강 정보도 관리

첨단 전장 기술은 자동차 모습과 운전 형태를 완전히 바꿀 전망이다. 이미 양산에 들어갔거나 곧 상용화될 첨단 기술엔 어떤 것이 있을까.

세계 1위 자동차 부품 업체인 보쉬는 신체 인식 기술을 차량에 적용해 주목받고 있다. 운전자가 운전석에 앉는 순간 저장된 얼굴 데이터와 일치하면 자동으로 시동이 걸린다. 운전대의 높낮이·미러·실내온도·라디오 채널 등도 운전자의 개인 선호에 맞게 자동으로 설정된다. 또 손동작만으로 계기판 스위치를 이용할 수 있다. 보쉬가 개발 중인 커넥티드카는 클라우드를 통해 집과 회사 등을 연결해 운전 중에 집안일과 업무를 할 수 있다. 도시에 적용된 시스템과 연동해 자율주행과 무인주차가 가능하고, 차가 막히지 않는 빠른 길을 찾을 수 있다.

가장 빠르게 기술이 발전하는 분야는 주차 지원 시스템이다. 초보운전자가 운전할 때 가장 신경 쓰이는 문제가 바로 주차다. 특히 주차 공간이 협소한 국내 주차 사정상 베테랑 운전자조차도 때때로 주차에 어려움을 겪곤 한다. 하지만 이런 주차 걱정이 기우가 될 날이 머지않았다.

현대모비스를 비롯한 글로벌 자동차 부품 업체들이 주차를 어려워하는 운전자들을 위해 주차 지원 기술을 점차 고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주차 지원 기술은 진보를 거듭해왔다.

주차 지원 기술은 후방 장애물과 가까워지면 경보음을 내는 시스템에서 후방 주차 시 가이드라인을 표시해주는 시스템으로 발전했다. 뒤이어 초음파센서를 통해 주차 공간을 탐지하면 운전자가 별도로 핸들을 조작하지 않아도 차량이 알아서 방향을 바꾸는 시스템도 등장했다.


음성인식 기반의 인공지능(AI)

최근에는 방향 조종뿐만 아니라, 기어변속과 제동까지 지원하는 시스템을 비롯해 운전자가 탑승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자동으로 주차가 가능한 시스템까지 개발됐다. 현대모비스는 최근 원격 전자동 주차 시스템 개발을 완료하고 2018년 상용화하기로 했다.

현대모비스는 차량이 알아서 주차장을 돌아다니며 빈 공간을 찾아 주차할 수 있는 ‘무인 발레파킹’ 기술도 최대한 빨리 확보할 계획이다. 최근 프리미엄 자동차에 적용된 텔레매틱스 서비스는 스마트폰을 통해 원격으로 시동을 걸거나 주차된 차량의 위치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 텔레매틱스 서비스를 지원하는 차량의 에어백이 터지는 즉시 관제센터 등에 사고 발생 사실을 자동으로 알려 구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준다.

인공지능(AI) 비서도 더욱 진화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구글, 아마존 등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운전자가 집 안의 AI 비서에 음성으로 명령을 내리면 차량 시동을 걸고 냉·난방 온도를 조절하는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운전대를 잡으면 운전자의 체온과 심장박동수, 혈압 등이 체크되는 헬스케어 기능도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장시형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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